외국 형제님/글렌 베이커 형제님

06. 자녀 양육 : 반항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 1-7가지

박이레 2021. 12. 31. 16:31

< 06. 자녀 양육 : 반항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 1-7가지 > 2019년 / 글렌 베이커 형제님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우리가 이 말씀 집회에서 성품에 대해서 함께 상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과 자녀 양육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 성품과 관련되서는 성품이 성경적으로 무엇이며 또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결혼과 관련해서는 남편의 인도력과 또한 아내의 순종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부터는 자녀 양육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시간 자녀 양육과 관련해서는 반항하는 자들이 가지게 되는 실수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제가 말씀드릴 주네는 사실 제가 몇년간 생각해 왔던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그 수년 동안 많은 부모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 저에게 질문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는 반항하는 자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마이클이라는 청년은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란 청년입니다. 그가 16살 되던 때에 그는 차를 가졌고 식당에서 일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는 19살 된 쳥년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에서 그냥 19살된 청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마이클 부모는 마이클이 점점 직장에서 늦게 오고 매일과 같이 점점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장이 쉬는 날에는 그 친구 집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이클은 점점 규칙들을 조금식 조금씩 어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종종 욕이 튀어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 어머니가 그 상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마이클이 지금 16살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어느날 아침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마이클이 집에 없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식탁 종이에 이렇게 써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내가 이것을 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였지만, 엄마, 아빠,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라고 종이를 남겨 놓았습니다. 그 부모들은 마이클이 '누군가 내가 이것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였지만'에서 그 누군가가 말한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19살 된 청년의 집에 마이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 갔을 때에, 마이클은 거기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마이클의 어머니는 자기 지갑에서 300달러가 없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그가 집을 나갈때에 그 정도 돈을 가지고 나간 것이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의 부모는 마이클의 침실에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서 굉장히 놀랄만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부모가 마이클의 방에 들어갔을때 그의 방에는 락 음악 CD가 많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이클이 담배를 피고 있었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술도 마시고 있었다는 흔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이클이 해골과 아주 악해 보이는 그런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부모들은 저에게 말하기를 그것을 볼 때에 두려움이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보게 될 때에 참으로 그들의 마음은 아프게 되었습니다. 마이클의 어머니가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이클에게 전혀 몰랐던 부분이예요." 잠깐 여기서 멈추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참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마이클의 부모도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마이클이 어려움을 겪는 시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올바르게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이클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마이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던 면을 이제서야 보게 된 것입니다. 5일 후에 마이클은 플로리다에서 전혀 돈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이클의 부모님들은 마이클을 구금할 수 있는 곳에다가 놔두고 그의 차도 전혀 쓸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 마이클과 친구는 일리노이에서 플로리다까지 운전해서 갔던 것입니다. 19살된 친구 청년의 부모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다른 정보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친구의 부모는 19살 된 청년을 거리에서 키우는 그런 부모였기 때문입니다.그래서 19살된 청년과 마이클은 마이클의 부모가 오기 전까지 구치소에서 이틀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의 부모가 거기 가서 그 두 청년을 다 데리고 왔습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그 19살 된 청년은 이 이야기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제 마이클은 부끄러운 가운데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부모님이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이클은 부모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서 마이클의 부모는 이 일에 대해서 완전히 다 용서하고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이 마이클에게 있어서 전혀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마이클의 부모가 행했던 가장 큰 실수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이때부터 마이클은 항상 분명하게 행동하고 숙제를 하고 그리고 부모에 대해서 공경하는 자세를 행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마이클이 단지 지금 방황하고 있는 좋은 소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습니다. 잠언 22장 6절을 다시 한번 이 부분에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여기서 "가르치라" 라는 것은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 다섯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한국어 성경에서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영어 성경에서는 이 히브리어 단어가 영어로 '훈련시키다' 라고 단 한번 여기서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22장 6절에서 "가르치라"고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네번의 경우에서 그것은 영어 성경에서는 '드려지다' '바쳐지다'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번역가들이 이 단어를 잘못 번역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알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분명한 지식으로 그들은 이 단어를 번역했던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히브리어 원 단어에서 우리가 교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히브리어 단어는 열왕기상 8장 63절에서 솔로몬이 여호와의 집을 '봉헌하다'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여호와의 집을 봉헌에 드릴 때에 그가 치룬 그 댓가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는 2만 2천 황소를 본헌에서 드렸습니다. 그리고 12만 양입니다. 여호와의 집을 봉헌해 드리는 것은 결코 싼 댓가가 치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특별히 이 말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대하게 될 때에, 우리는 이것을 이렇게 바꿔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그가 마땅히 행할 길로 봉헌해 드리라." 우리가 이 히브리어 단어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 부모가 그의 자녀를 경건한 자녀로 키우고자 할 때에, 이제 그 아이를 여호와께 바쳐 드리고 그리고 그에 걸맞는 합당한 댓가를 치뤄야 된다는 겁니다. 그냥 반값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지름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 값을 그대로 다 치루고자 하는 자원함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그 값을 치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삶의 양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이것을 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상황에 처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녀 교육을 위해서 그것을 바꿀 수 있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녀를 기르는 부모라면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고자 하고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부모라면 우리는 그 자녀를 하나님께 헌신해 드리는 그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자녀를 헌신해 드리기 위해서 여러분은 그에 필요한 사람이 마땅히 되고자 합니까? 여러분은 그 댓가를 치르고자 합니까? 만약 우리가 그 댓가를 치르고자 하지 않고 그를 위해서 마땅한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잠언 22장 6절 말씀을 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다루고 있는 주제인 반항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와 같은 변화된 사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반항하는 자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는 열네가지 필수적인 조건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가 정직하게 말씀을드리는 것은 이 14가지 조건은 모두 우리에게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것임을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 14가지 것들은 모두 서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14개의 구조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한가지만 모자라도 그 구조물은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14가지 중 우리가 할수 있고 원하는 것만 취해서 한다면 그 모든 구조물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14가지 중 몇가지만 선택해서 사용한다면 여러분은 더 큰 실수를 하게되는 것이고 더 큰 반항하는 마음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남은 시간 동안에 최선을 다해서 그 중에 일곱가지 것만 오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먼저 알아야 될 것이 그 자녀의 마음을 얻는 것에서 우리가 실패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과 우리 자녀에게 용서를 구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이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마이클 청년이 그 안전한, 그 사랑하는 가정을 떠날 수 있었겠습니까? 거기에는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제공되는 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주머니에 300달러만 넣어놓고 세상으로 떠나버린 것입니다. 왜 마이클이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주 쉬운 것입니다. 19살 청년이 마이클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19살 청년이 마이클을 일리노이로부터 플로리다까지 이끌고 간 이유입니다. 가정에서 이 반항하는 것에 대해서 다룰 때에 맨 처음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나는 지금 자녀의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부모로 저의 자녀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그에게 용서를 구해야 될 것입니다. 이 가운데 부모 중에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그 자녀 앞에서 나를 낮추고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는다면 자녀들은 나를 더 이상 공경하지 않을 텐데.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와 같은 반항하는 자녀가 있다면 이미 그 자녀는 여러분을 공경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진실은 이미 여러분이 그들의 공경을 오래 전부터 잃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자녀에게 그렇게 겸손히 사과를 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잃을 공경이 더 이상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여러분이 단지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사과를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자녀가 반항하지 않았다면 바로 그것이 여러분을 권위의 자리에 계속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의 마음을 잃었을때 여러분은 이미 공경을 잃은 것입니다. 제가 틀렸을때 저는 겸손하게 아이들에게 낮추어서 사과를 하게 됩니다. 만약 내가 아버지로서 내가 잘못 했을 때에 자녀들에게 사과하지 않는다면 자녀들도 그들이 잘못 했을 때에, 사과를 겸손히 요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녀의 마음을 잃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되는 것이며, 또 한가지 기억해야 되는 것은, 성경은 순종하지 않는 것은, 반항은 사술의 죄와 같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의 죄의 문제를 다스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에덴 동산에서 처음으로 그 가정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가 그 가정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의 머리를 통해서 다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대화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죄가 들어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또한 가정의 머리와 그 문제를 처리하십니다. 여러분 가정에 그 반항하는 자녀의 문제는 이제 여러분을 먼저 다루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가정의 아버지를 다루심으로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처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반항의 문제에 대해서 그 반항하는 자녀보다 부모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그 자녀의 마음을 잃었을 때 우리는 자녀와 또한 하나님께 이 문제에 대해서 겸손히 사과를 해야 될 것입니다.
이 가정에 반항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그들은 상담을 구하고 있습니다. 설교자에게 와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제 전도자는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보게 됩니다. 서로에 대해서 비난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구절이 그 광경을 볼 때에 생각이 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어린 자녀에게 방에 혼자 있어봐라, 라고 요구합니다. 이제 그 전도자에게 생각난 말씀은 말라기 4장 6절 말씀입니다. "그가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아오게 하며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 돌아오게 하여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치지 아니하게 하리라"

"그가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켜,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하리라."(말 4:6, 킹제임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한다. 그리고 그 전도자는 이 가정의 반항의 문제를 다루게 될 때에 먼저 다뤄야 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아버지들의 마음을 먼저 자녀들에게로 돌이키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들에게 갔을 때, 그의 마음이 원래 있어야 되는 장소로 갔을 때에, 이제 자녀들은 아버지에게로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전도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을 때에, 그 어린 반항하는 자녀를 부릅니다. 그 어린 반항하는 자녀가 자녀가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상태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ㅇ들을 향하여 "아들아 내가 그의 마음을 몰랐고, 잃어버렸고, 그리고 내가 그것에 대해서 무관심했다."며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은 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포옹을 하고 그들은 화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일어났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이 아들에게로 돌아왔을 때에 이제 그것은 아들의 마음이 아버지께로 돌아올 그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순서대로 일어났고 그 아들은 회복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은 바로 말라기 4장 6절 말씀의 성취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바로 침례 요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7).

여기서 "거스리는 자"가 바로 반항하는 자녀입니다.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이것이 바로 의인의 슬기가, 아버지가 가져야 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새로운(세운) 백성르 예비하리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전망하시는 결과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의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기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에게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그 자녀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의 마음을 얻는다면 이제 여러분은 주님의 백성을 만들 수 있는 그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먼저 말씀드린 것처럼, 자녀의 마음을 잃어버렸을때 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된다는 것을 첫번째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부모들이 분명하게 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먼저 주님께 온전히 헌신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번역이 약간 잘못되어 있는데요. 부모님들은 자신이 완전히 하나님 앞에 헌신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부모의 삶 가운데서, 자신들의 삶 가운데서 감추어진 죄가 없는지 확인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좋은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저에게 속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저도 여러분에게 제가 좋은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거짓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도 서로에 대해서 거짓으로 자신이 좋은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심지어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여러분이 좋은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 반항의 문제에 대해서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로 가정의 반항하는 문제를 다룰 때에 우리 자신이 먼저 숨겨진 죄가 없음을 분명히 해야 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시편 139편 23절에서 "하나님이시여 나를 살피사 나의 마음을 아시고 나를 살피사 나를 시험하사 내 생각들을 아시옵소서" 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

부모로서 내 마음에 진실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서 살고자 합니까? 아니면 단지 우리의 자녀들이 그냥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이제 자녀들이 나에 대해서 볼 때에, 내가 진실로 그리스도를, 주님을 내 삶의 첫번째로 두고 있고 세상의 것들을 두번째로 두고 있는지 그들은 정확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과 내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일치하게 살고 있는지 그들은 보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그들의 반항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다루기를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만약 그들의 삶 가운데 그들의 죄가 있다면 그들의 문제는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 부모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지혜와 도움을 구하고자 할 때에, 그 자녀를 다루고자 하는 그 지혜를 구하고자 할 때에, 바로 그 부모 자신의 죄는 그 도움을 구하는데 있어서 하나님 자신에게 너무나 멀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요인입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자녀의 마음을 잃었는지 확인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한 두번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우리 자신이 먼저 헌신되었는지 확인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한 아이들은 반드시 악한 영향력으로부터 분리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집회의 처음에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위해서 어떠한 대가도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 지점에 있어서 여러분이 치뤄야 하는 대가는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무슨 의미로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까? 이제 그 반항하는 자녀가 다른 악한 영향력을 주는 인간관계로 분리되어야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반항하는 자녀를 여러분이 생각할 때에, 그 반항하는 자녀에게 다가가는 자들 중에서 여러분이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모두 다 분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반항하는 자녀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여러분의 가족의 구성원일지라도 그렇게 해야되는 것입니다. 이 반항하는 자녀의 회복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누구든지, 그 반항하는 자녀의 친구든지, 반항하는 자녀가 알고 있는 사람이든지, 그들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차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반항하는 자녀를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이제 악한 인간적인 관계를 모두 차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대가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그 반항하는 자녀와 취침 시간에도 같은 방에서 자야 된다는 것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그 반항하는 자녀의 정도에 따라서 이것은 그가 학교를 그만두고 이제 집 안에서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불경건한 악한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렇게 심각한 정도로 분리가 요구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에 대해서 이것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공립 학교에 보내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 반항하는 자녀의 문제가 생겼을 때에, 이제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극단적으로는 그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그 자녀를 집 안에서 교육을 시키는 것까지 고려를 해야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그 자녀를 다른 학교로 전학 시키는 것도 포함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서 대가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하지 않는데요?" "다른 그리스도인은 가정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데요. 그들의 자녀들도 아주 잘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 시간 말씀드리는 것은 평균적인 그리스도인 가정을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반항하는 그 자녀, 그 문제가 생긴 가정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대해서 이제 분명하게 거절하고 거역하고 있는 상태인 자녀인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그 자녀의 친구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13장 20절에서는 "지혜로운 자들과 함께 걷는자는 지혜로우려니와 어리석은 자의 벗이 되는 자는 멸망을 당하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그리고 이 구절의 후반부에서는 "어리석은 자들의 벗이 되는 자는 멸망을 당하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벗이, 어리석은 자가 된다고 말하지 않는 점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는 훨씬 더 나쁜 결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벗은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녀를 경건치 않은 인간적으로 관계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마이클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이클을 플로리다에서 다시 그 부모들이 데려왔을 때에, 마이클은 자시을 돌이키고 모든 것을 다 자백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이클의 부모는 후에 다시 이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이클이 단지 10살 되었을때, 그가 집에서 나쁜 영화들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이클의 부모가 단지 6개월동안 케이블 Tv를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모가 없을 때에 마이클은 그것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마이클의 부모가 마이클에 대해서 알지 못하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마이클은 알리지 않은 다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알려지지 않은 친구들은 마이클이 원할 때마다 록 음악, 또 경건치 않은 영화들, 그리고 담배들, 그리고 술들, 그것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여러분의 자녀의 다른 면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집안에 반항하는 자녀가 생겼을 때에, 그 경건치 않은 나쁜 영향력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모두 분리시켜야 하는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반항하는 자녀를 다룰 때에, 이 경건치 않은 영향력은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압살롬, 그 다윗왕의 아들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압살롬은 그를 따르는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아주 큰 반항하는 자 중에 한명입니다. 그리고 이 반항하는 자는 항상 그 동료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반항하는 자는 항상 경건치 않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을 좋아하며 이제 그들은 한 그룹이 되는 것입니다.
우선 첫번째 우리는 그 자녀의 마음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고, 두번째로 부모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세번째로 그 반항하는 자녀가 나쁜 영향력으로 모두 분리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번째로 그 나쁜 인간 관계 뿐만 아니라 나쁜 영향력을 미치는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 되어야 됩니다. 이 경치 않은 나쁜 영향력들을 주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영향력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물건들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나쁜 영향력을 끼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비인격적인 영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자녀의 아이패드 일수도 있습니다. 전화기 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음악과 영화일 수 있습니다. 전자 게임, Tv와 라디오와 인터넷, 그리고 부도덕한 잡지들, 그리고 여러 카탈로그들, 이 경건치 않은 영향력을 주는 목록 리스트는 참으로 길고 길수 있습니다. 이것은 경건치 않은 영향력을 우리에게 주는 것들입니다. 또한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정의 부모들의 그들의 자녀를 아주 잘 키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들의 자녀에게 아이패드나 여러가지 것들을 허락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제가 여기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평균적인 그 가정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 가정에서 제 자녀들은 집에서 인터넷과 아이패드를 사용합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서 완전히 다 제거해 낼수 있는 그러한 것들이 아닙니다.그리고 제 자녀들을 홈스쿨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인터넷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반항하는 자녀에게 그것을 통제 하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자 않는 그 자녀를 다루는데 있어서의 경우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자녀들이 경건치 않은 영향력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사단이 더 이상 우리 자녀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그 도구들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우편물들이 여러분의 집에 마구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제 그 잡지 목록에는 노출이 심한 사진들이 그대로 보여집니다. 단지 그것 하나가 우리 아들의 마음 속에 사단의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게 하는 시작이 될수 있습니다. 이 불경건한 영향력은 굉장히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사단은 그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서 우리 자녀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느니라" 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이 사단은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 가정을 삼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삼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물건이든지 이 목적을 위해서 사단이 할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자녀를 빼앗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로서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적 사단은 우리의 가정을 삼키도록 열심히 찾아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영화가 상영이 됩니까? 그것은 불경건한 영향력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그것을 통해서 여러분의 자녀의 마음의 지지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다 제거해 버릴 댓가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여러분의 육에 호소하는 잡지들이 여러분의 가정에 있습니까? 사단은 또한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우리 자녀의 마음을 사로 잡을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모두 제거할 만한 그런 대가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떠한 방문하는 장소에 여러분의 자녀의 마음이 사단에 빼앗길 그러한 것을 주는 그런 장소로 가게 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계획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댓가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제가 강력하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영화관은 그리스도인이 갈 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 스크린에 지나가는 화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것은 단지 안보겠다고 지나가게 할수 없습니다. 그것을 빠르게 지나가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소음이 안나오게 멈출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극장 안에서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지 자리에 앉아서 여러분의 육을 자극하는 그 장면들에 노출되는 것 뿐입니다. 만약 반항하는 자녀가 여러분의 바로 옆에 앉아 있다면 분명히 사단은 그 시간을 통해서 그 반항하는 자녀의 마음을 확고하게 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됩니다.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건치 않은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우리의 모든 자녀를 다 분리시켜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7절에서는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마귀와 타협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참 우리 자녀들은 그들의 하는 행동, 죄된 행동에 대해서 우리와 타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단지 그들을 놓아 줌으로서 우리가 다시 그들을 얻어낼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거역하는 죄는 사술의 죄와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4장 27절에서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많은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이들 DVD, 그리고 여러가지 영화들,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영화 스토리들의 대부분이 마녀들인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 영화에 좋은 마녀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영화에 나쁜 마녀들도 나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의 자녀들은 그 영화를 보면서 좋은 마녀가 이기도록 응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좋은 마녀라는 것이 사실 존재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가운데 마녀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죽여야 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좋은 마녀다, 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마녀라는 개념이, 우리의 거실에, 그 영화에 그런 좋게 꾸며진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그런 마녀의 모습들을 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은 사단에게 조금이라도 틈을 주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서 대가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런 마녀들을 모두 집 밖으로 내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집에 주님께서 방문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분께서 여러분의 쇼파에 앉아서 여러분의 어린 딸이 그분에게 다가와서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그 어린 딸을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주님께서는 참으로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이렇게 그 딸이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좋은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나요? 여기 좋은 마녀가 있고 나쁜 마녀가 있었는데, 그들이 싸우다가 좋은 마녀가 이겼어요." 주님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딸 아이에게 "그래 그것을 계속 잘 봐라."라고 하시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문화에 대해서 그냥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사술과 같은, 마녀의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자녀들을 키우고, 그 가운데 반항하는 자녀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단은 이미 그러한 악한 영향력을 자녀에게 끼치고 있는 것을 나중에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댓가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잠언 22장 6절에 아이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아이를 훈련시키라, 그를 헌신해 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번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섯번째로는 '뭔가를 대체하는 영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경건치 않은 영향력을 주는 모든 인간 관계를 다 분리해 내었을 때, 또한 우리가 불경건한 그런 여러가지 물건들을 다 치우게 되었을 때, 우리가 이제까지 한 것은 모두 다 제거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대체하는 다른 것들을 공급해 주어야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그냥 비어있는 상태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진공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서 이건 네가 해서는 안돼, 이건 네가 자겨와서는 안돼라고 다 빼내 버렸을 때에, 이런 것들은 자녀들에게 좋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다 빼어 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경건한 다른 것들로 채워 넣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더 큰 사단의 공격 아래 노출시키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뺏어 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다른 것으로 채워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실제로 우리 주님께서 이제 다른 것으로 채워 넣는 영적인 규칙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마 12:43).

우리는 이 더러운 귀신이 왜 사람으로부터 나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혹시 그가 경건한 음악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갔는지도 모릅니다. 이 더러운 귀신은 그 가운데서 불편함을 느끼고 나갔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 사람이 복음 집회나 또한 말씀 집회에 참석해서 그 말씀을 들을때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갔는지는 모릅니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빼내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44절 말씀을 또한 보게 됩니다.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마 12:44).

이제 이 더러운 귀신은 내가 어디 가서 쉬어야 될까? 라고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가 쉴 곳을 찾지 못하자 그가 말하기를 나는 다시 돌아가야 되겠다.내가 나온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되겠다. 이제 그 더러운 귀신은 다시 그 사람에게 돌아와서 그리고 이제 그가 발견하는 것은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 사람은 자신의 삶을 깨끗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집을 깨끗하게 한 것처럼 더러운 귀신이 떠나자 그 사람은 자신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 장소가 청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가 수리되었습니다. 그 삶을 깨끗하게 단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가장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그 더러운 귀신이 돌아왔을때 그 집이 빈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위가 자녀들에게 그에게 좋지 않은 것을 다 제거해 내었을 때에, 이 나쁜 친구들과 같이 다녀선 안돼, 하고 그들을 떼어 냅니다. 이 나쁜 것들을 봐서는 안돼, 하고 그것들을 다 떼어 냅니다. 그 자녀의 마음은 이제 비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의 마음을 그렇게 빈 상태로 두어서는 안됩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비었을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 더러운 귀신은 나가서 더 악한 귀신들을 데리고 옵니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 12:45).

이 더러운 귀신은 나가서 더 악한 더러운 귀신을 데리고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은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서 모든 나쁜 것들을 다 제거해 내었을때 그 상태로 그냥 둔다면 우리는 우리 자녀를 더욱 공격 당하기 쉬운 자리에 둔 것입니다. 거기에 반드시 다른 것들로 채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세상 음악을 빼어 내었을 때, 그 대신에 찬송가를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경건치 않은 다른 친구들을 다 떼어 내었을 때에, 이제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로부터 Tv를 뺏었을 때에 여러분에게 이제 경건한 것으로 그를 대처할만한 다른 것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체와 관련된 영적인 원리인 것입니다. 반항하는 자녀에게 단지 빼앗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또한 채워줘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와 관련된 예를 실제로 주셨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다 제거해 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것은 그것을 대체하는 영적인 원리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루실 때에, 단지 가져가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체하는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를 대할때에 우리는 그와 같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공격당할만한 쉬운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번째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악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소서."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전쟁터에 있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그냥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삼킬자를 찾는 울부짖는 사자처럼 마귀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또한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이 대적 사단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기 위해서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 전쟁에서 한번 싸워볼래?"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미 그 전쟁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정이 우리 주위에 가득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과 같이 "악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소서"라고 기도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원자폭탄을 만들어서, 그것은 아주 작은 폭탄이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터진 것처럼 많은 파괴를 줄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우리의 대적 사단은 영적인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는 이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우리가 이 구절을 보게 될 때에, 사단은 그의 조직된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 대적에 대해서 그 군대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또한 그것을 알고자 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구절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은 사단은 그의 군사를 조직해서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가정에 반항하는 자녀가 생겼을 때, 우리는 단지 혈과 육에 대한 씨름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정사와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 우리의 반항하는 아들을 지금 잡고 있고 그들이 우리로부터 더 멀게 만들어 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드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항하는 자녀를 다루게 될때, 우리 자신이 먼저 숨겨진 죄가 없어야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과 같이 이 악에서 우리를 건지소서, 라고 기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무엘상 15장 23절에 불순종하는 것은 마술의 죄와, 사술의 죄와 같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강력한 대적과 싸울 무기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서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4).

그리고 이어서 5절에서,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번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모는 단지 자연적으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가 자녀들을 더욱 가깝게 만드는 그 일을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부모들이 반드시 알아야 되는 것은 그가 어떻게 자녀들에게 다가가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놀고, 공부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자녀들과 함께 성경을 함께 공부하면서 이 일을 해야 됩니다. 그 부모가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저는 그 반항하는 자녀를 둔 아버지에게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에 한시간씩 최소한 여섯주를 그렇게 해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는 "아, 나는 지금 일정상 바빠서 그렇게 할수 없는데요."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댓가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또한 특별히 이러한 일을 하는 과정 중에 그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기를 조언해 드립니다. 그 반항하는 자녀의 마음 속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여전히 부모에 대해서 이제 쓴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체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녀에 대해서 강하게 대하지 않는 그런 방법들을 알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어떻게 얻는 것인지를 알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구절은 잠언 23장 26절입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이 내 길을 지키게 할지니"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 23:26).

"나의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라." 부모님들께서 여러분 자녀의 마음을 가졌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다. 한 부모는 이쪽 쇼파에 앉아 있고, 그의 자녀는 저쪽 쇼파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이제 자녀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가 말한 모든 것들은 참으로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한 모든 것은 다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잘못인지 말해주는 성경 구절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앉아있는 반항하는 아들은 여전히 눈을 깔고 주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부모와 반항하는 자녀 사이에는 아주 큰 간격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완전히 절망한 가운데서 왜 이 자녀들이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건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계속 이 더 많은 진리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항하는 자녀는 더욱 더 멀리 도망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부모는 자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그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얻었다면 그 자녀의 눈은 그부모를 바라보고 그 부모가 하는 길을 바라보고 따라갈 것입니다. 바로 이 구절이 "네 눈이 내 길들을 지키게 할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라" 그것이 먼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이 구절의 후반부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눈은 그 아버지의 진리의 길을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부족한 것은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얻었다면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진 셈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녀의 인생과 그들의 충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모가 그 자녀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할 때에, 그 자녀는 그 마음을 열고 그 부모가 말하는 것을 다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 일을 말하는데 화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친절하고 온유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말하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이제 그 자녀들이 바로 응답하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 자녀가 그 부모에 대해서 말한 모든것에 다 동의하지 않다 할지라도 그 부모가 말한 것을 자녀는 하고 싶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 부모가 그 자녀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항하는 자녀를 가진 우리 부모의 경향은 이렇습니다. 그들이 잘못했을 때, 바로 화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여러분의 자녀의 마음을 잃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일을 저질렀고요, 그리고 이제 부모님이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지를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말했을 때의 경우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했을때 부모는 이것을 화낼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의 화는 자녀의 입을 다물게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때, 자녀는 그 상담을 원하고 조언을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때 자녀는 그들의 마음을 닫고 어떠한 입도 열지 않으며 조언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상황에서 화를 냈다면 그 자녀는 그 마음의 문을 닫고 그들만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여러분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잠언 11장 3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나무니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우니라"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니, 혼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잠 11:30, 킹제임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 11:30, 개역한글)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