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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유다서 3-4절(요약)

박이레 2026. 9. 13. 15:24

성경읽기 : 유다서 3-4절(요약)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1:3-4,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3절에서 수신인인 사랑하는 자들에게 권하는 내용이 나오고요. 4절에는 왜 권하게 되었는가가 나오고요. 5절부터는 그리스도에게서 돌아선 자들,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서 나옵니다.
오늘은 먼저 3-4절을 교제를 하기를 원합니다.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유다가 먼저 쓰려고 했던 서신의 의도는 우리가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대해서 입니다. 이는 공통으로 누리는 구원입니다. 이는 매우 은혜롭고 따뜻하고 긍정적인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 주제를 바꿉니다. "간절하던 차에" 유다는 원래의 목적으로 서신을 쓰기에 간절했지만 긴급한 상황에 그 주제를 바꾸게 됩니다. "힘써 싸우라" 이는 격투기 대결을 의미합니다. 격렬하게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을 지키는 것이 평온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유다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격렬하고 힘써 싸우는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단번에 주신 진리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진리는 다시 추가할 필요없는 완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유다서에 나오는 거짓 교사들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그들은 이미 완성된 진리에 더하거나 외곡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4절에 "가만히 들어온 몇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신분을 드러내고 들어온 자가 아니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교회 안으로 스며들어온 자들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거짓은 처음부터 자기 정체를 선포하고 밝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미 "그 판결이 이미 기록된 자"입니다. 이는 완료형으로 그 결과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5-7절을 구약에 나온 심판 사례로 예로 보입니다. 성경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일관된 심판을 말씀합니다. 그들이 하는 첫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것입니다. 헬라어 뜻으로는 방종, 방탕, 무절제함을 뜻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방탕함으로 바꾸었을까 생각할 때에 은혜로 얻은 구원이기에 구원받은 후에는 모든 죄가 죄가 아님을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죄와 완전히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죄를 계속 짓는것은 모순입니다.
두번째는 홀로 하나이신 주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면서 삶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4절까지 교제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번주에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대해서 조금 교제 했는데요. 모든 성도님들은 공통적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누구도 다른 성도보다 더 차원이 높은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할수 없습니다.
두번째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입니다. 그래서 30%, 50%, 70%, 90%, 100%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닙니다. 단번에 주셨기에 하나님께서 어느 시점에 그 사람의 마음을 여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단번에 믿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 배경에 이 진리를 반대하는 도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임안에 가만히 들어와서 이와같은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 외에 다른 차원의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어떤 복음을 주장한다면 그에 대해서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믿음으로 말미암는것 뿐 아니라 다른것을 더 행해야 구원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이 만연합니다. 그것이 아닌 것을 서술하는 내용이 유다서에서 저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보여집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사랑하는 자들아"(3절) 이들은 수신자들입니다.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왜 힘써 싸워야 할까 생각하게 될 때에 4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거짓 교사들이 들어왔습니다. 또 "믿음의 도"를 생각할 때에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행위가 아니라 성도들이 함께 믿는 복음과 지켜야 할 가르침 전체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과 그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4절에 "색욕거리로 바꾸고"라고 합니다. 왜 이러한 표현을 했는가 볼 때에, 색욕은 성적인 욕망을 절제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게 사용되는 단어는 아닌것 같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죄를 지어도 되는 구실로 사용하는 잘못된 해석으로 보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죄용서를 받았기에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유다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삼았다고 표현했다고 보입니다.

- 김민원 형제님 : 먼저 "일반으로"라는 말씀이 '우리가 공통으로 받는 구원'에 대해서, 또 우리가 '공유하는' 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합니다. 그들이 수신인들입니다. 그들에게 쓰고자 하는 내용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구원의 내용으로 편지를 쓰려고 하는 뜻이 간절하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과 같은 것으로 저는 분별했습니다. 그렇게 '일반'이 우리 성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서 힘써 싸워야 할 필요를 느껴서 유다는 권면하게 됩니다. 그 권면의 이유는 4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 때문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1. 경건치 않고, 2.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고 바꾸고, 3. 홀로 하나이신 주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구약의 세가지 예를 드는데요. 광야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 또 자기 지위를 떠난 천사는 홀로 하나이신 주재를 부인하는 자, 또 소돔과 고모라는 경건치 않은 자들로 연결된다고 생각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단번에 주신 믿음을 지키라고 유다는 말합니다. 그는 자기가 쓰려고 한 주제를 고집하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그 주제를 변경했습니다. 그는 성령님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또 "힘써 싸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다투기를 좋아하는 자들처럼 육체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교회진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저희는 이 받은것을 보존하고 전해야 하는 청지기입니다.
또 부"르심을 받은 모든 구원받은 자들에게"라고 합니다. 어떤 특정한 분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성도님들이 이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 믿음을 지키라고 했기 때문에 그때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계속 진리가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 충성스럽게 전달해줘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속사람이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도 다르게 흘러갈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수 없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4절에 또 가만히 들어왔다고 말씀합니다. 은밀하고 교묘하게 악한 것들이 교회안에 스며들었음을 말한다고 생각됩니다. "들어온" 이는 부정과거형입니다. 유다가 이 편지를 쓰는 시점에 이미 그들이 교회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서는 거짓교사가 있을것을 예언했다면, 유다는 이미 그들이 들어와 있다고 말합니다.
"몇사람이 있음이라" 그 수는 많지 않지만, 그 위협이 작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그 위협이 큽니다. 누룩은 작은 양이지만 나중에 반죽이 부푼것을 보면 그 작은 누룩이 빵은 크게 부풀게 합니다.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불경건과 거짓에 빠지도록 예비하신 것이 아니라, 이런 자들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신것을 말씀하시고, 그들의 결과가 어떠할지를 이미 구약성경에서 보여주셨음을 말씀한다고 생각하빈다.
경건치 않음은 하나님을 거스려 행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세상의 정욕을 버리도록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온 자는 구원을 은혜로 받았기에 어떻게 살아도 문제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은혜의 의미를 외곡하고, 은혜를 자기 욕망대로 사용하는 정당한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딛2:11-12,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죄를 가볍게 여기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값없이 사랑하신 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더 사랑할지를 생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은 낮춰지는 것이 아니기에 저희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설수 있도록 맞춰가야 하는 것입니다.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절대적인 소유권과 어떤 것으로부터 통제받지 않는 절대적인 통치권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우리를 완전히 소유하시고 다스리실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신 분입니다. 4절에서 이 구절이 나오는 것은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자기 몸은 자기 것이기 때문에 자기 욕망대로 살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유다는 이 구절을 통해서 주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이신지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교제해주신 대로 3절에 유다는 자기가 서신서를 쓰는 목적을 말합니다. 수신자가 누군가 하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말씀의 흐름대로 보면 유대교에서 구원받아 모임에 더해진 성도들이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배교적인 측면을 계속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으로 얻은 구원"은 모든 성도가 같은 복음으로 구원받은 것을 말합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는 영원히 불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영원성과 불변성은 어디서도 찾을수 없는 유일한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저버리지 말것을 유다는 권고합니다. 이를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간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말씀합니다. 다들 잘 아시는대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문제로 히브리서가 쓰였졌고, 유다서가 쓰여졌는데요.
베드로후서와 유다서가 비슷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먼저 썼는가가 많은 관심이 있는데요. 단번에 얻은 도,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 나오는데요. 이러한 것이 전경에 들지않은 에녹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봅니다. 물론 에녹서가 문제가 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전경에 들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볼때에 분별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일서에서는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나갔습니다. 그러나 유다서에서는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서를 쓸때는 요한일서의 모임의 상태보다 더 나쁜 상태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단들의 실체를 보면, 그들의 심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계심을 말씀합니다. 그 시점이 언제냐고 할 때에 논란이 있지만 역시 에녹서를 참고하지 않았느냐 하는 분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실체에 대해서 "경건치 않다"고 합니다. 원어로 '경외치 않는 사악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교제할 때에 배교의 문제가 많이 나오는데요. 이러한 문제가 복음의 진리에 비춰보아서 한번 믿은 구원은 영원한 것과 배치되지 않는가 생각할수 있습니다. 믿고서 유대교로 가면 영원한 저주를 받는가 하는 생각들을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경외치 않는 사악한 자'라고 원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심판받기로 결정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안에 들어와서 "색욕거리고 바꾸었다"라고 합니다. 앞서 교제해주신대로 방종, 방탕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그 은혜의 범위를 무한하게 적용해 우리가 마음대로, 어떻게 살아도 하나님께 정죄받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방 종교에서 행하는 종교적 음행을 모임의 성도들에게 권하고 성적인 방탕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마땅히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또한 이들은 주님의 사역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단호히 교회에서 쫓아내고, 믿음의 성도들은 받은 진리에 대해서 굳건히 붇들고 의지해서 신앙생활을 해야함을 말씀해 준다고 보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3절에 유다는 편지를 쓰려는 목적을 바꿉니다. 처음에는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대해서 쓰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모임에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모임을 어렵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고요. 이제는 그 소식을 알자,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주제로 편지를 쓰게 됩니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는 외부의 세균이나 병원균이 몸에 침입하려 해도 몸이 그것을 다 막아냅니다. 우리가 면역력이 떨어지고 피곤하면 그러한 것들이 우리 몸을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모임은 후자입니다. 매우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거짓 교사라고 명함을 붙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구원받은 사람인 것처럼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처럼 경건치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육신적인 삶을 삽니다. 또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명하신 삶을 따르지 않는 삶을 삽니다. 그들 자신은 가만히 들어와 있기 때문에 다른 성도들이 이를 모를것이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유다는 그들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3절에서 서신을 쓰게 된 목적이 변경된 이유와 관련되서 한가지 말씀드리면, 22절에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모임에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갓 구원받았거나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벽은 문제가 없지만 기둥이 부수려고 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연약한 성도들을 건드리는 것은 기둥을 건드는 일인 것입니다. 아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민감하게 받았다고 교제해 주셨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고, 유다는 성도들을 아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4절의 내용은 5절 이하의 내용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보이는데요.
"경건치 아니한 것",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마음과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온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않은 마음과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내 자신을 돌아보며 내 삶, 모임 안에서 합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빌미로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대놓고 잘못된 삶을 살아버립니다. 저희들은 연약이 있기 때문에 가끔씩 이러한 일들을 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의 연약까지도 십자가에서 처리하셨기 때문에 그부분에서 저희 연약을 하나님께 아뢰고 저희를 인도해 주십사 엎드려야 된다고 봅니다.
또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신 삶을 인정하고 사는가"하는 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아예 정해놓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아예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성도들의 믿음을 떨어뜨리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반드시 교회에서 내어쫓아야 합니다.

또 '배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제가 정리한 수준으로 교제드리면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6:4-6, 개역한글)

이들은 애초부터 구원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히브리서를 받는 자들 가운데 구원받지 않은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갑자기 배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충분히 듣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 주님을 욕하고 배교한 것입니다. 이같이 타락한 자들은 회개케 될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가 그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조금도 형용될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구원받지 않았는데 숨어있던 자가 배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십자가에 주님을 달게 하소서라고 외친 자들은 모르고 외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배교한 자들은 알고서 배교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회개하게 할수 없스빈다. 성령 훼방죄를 진 것입니다.
이 배교자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의 구원을 없앨수 없지만, 그 삶의 믿음을 떨어지게 하고 실족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경계하고 그들과 힘써 싸우라고 유다는 유다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