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모임 성경읽기/요한삼서 성경읽기

성경읽기 : 요한삼서 5-8절

박이레 2026. 7. 30. 21:09

성경읽기 : 요한삼서 5-8절 / 마포모임, 23년

- 이병호 형제님 사회 : 요한삼서 5절 말씀부터 성경 읽기 할 차례인데요. 1절부터 8절까지 좀 읽도록 하겠습니다.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요삼 1:1-8).

아멘, 8절 말씀까지 읽었습니다.
요한삼서는 지난 시간에 교제가 되어진 것처럼 가이오라는 인물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신이고, 그래서 요한삼서에는 가이오가 등장하고 가이오 외에도 디오드레베, 데메드르오, 이제 3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지난 시간에 가이오에 대해서 교제가 되어졌고, 오늘 또 지난 시간에 이어서 가이오에 대해서, 가이오를 칭찬하고 격려 하는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다시 말한다면 3절에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했었고, 4절에서도 이 진리 안에서 신실하게 행한다. 이제 그것을 장로가 기뻐 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이제 오늘 다루어질 5절에서 8절까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5절부터 8절까지 네 구절 말씀인데요. 한 절씩, 이렇게 한 절씩 한 15분 정도씩 이렇게 교제를 나누길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5절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5절에서는 "사랑하는 자여" 장로 요한은 가이오가 참으로 사랑받는 성도이고 또 사랑하는 성도임을 다시금 이렇게 친근하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시간 관계상 5절에서는 이런 부분을 교제를 나누길 원합니다. 여기 5절에서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또 그들에게 행하는 것이 나오는데 그들에게 행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은 "신실한 일이다" 이렇게 돼 있고요. 이 부분이 원문에서는 특별히 강조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제 그 이유에 대해서, 5절에서는 이렇게 세 가지 부분에 대해서 교제를 나누어졌으면 합니다.
한 가지 부분만 교제하셔도 좋고요. 이 세 가지를 함께 연결해서 교제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5절 말씀 이렇게 교제를 부탁을 드립니다. 시작하기 전에 청년들한테 좀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다음에 청년들께 기회를 줘야 될 것 같고요. 처음에 잘 시작을 안 해서 한신영 형제님, 먼저 시작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한신영 형제님 : 저는 이게 5절 말씀 보면서 이제 "신실하게 행했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한번 해보게 되었습니다. 여기 가이오가 행한 일은 접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제 신실하게 행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신실하게라는 것은 성실하게 했다는 건데요. 보면 한두 번 기회가 있으면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일을 계속해서 해왔다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상황에 따라서 이러한 접대들과 성도님을 사랑하는 것들은 내 상황에 따라서, 또 내 재정적인 형편에 따라서 이것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기 위해서 가이오 형제님은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여기서 "형제들과 나그네"가 나오는데 형제들은 제가 생각할 때는 아는 성도님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모임에서 있었던, 모임에 있는 형제님들이라든지, 아니면 일정을 알고 있는 형제입니다. 전도하러 가시는 형제님들이라든지, 갔다 돌아온 일정을 알고 있는 이러한 분들을 위해서 준비하고, 예비하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나그네'는 그렇게 일정을 알지 못하지만 지나가시면서 모임에 방문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또 그런 분들을 위해서도 계속 준비하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이러한 다른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고 접대하고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준비 하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이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항상 접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생각 하게 되고요. 그래서 이제 사도 요한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2절에서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한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건강해야 되며, 또 물질적인 필요도 있어서 이제 가이오가 다른 성도를 섬기는 일들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에 합당하게 잘 행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기도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또 이러한 부분들을 통해서 또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가이오가 형제들과 나그네들을 접대한 것은 2절에서 나왔던 이 기도를 생각하게 될 때,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한 것을 생각해 봤을 때 가이오라는 분이 여유가 있었던 분은 아니라 생각이 됩니다. 건강에 여유가 있었지 않고 또한 가이오가 힘이 있어서 이런 것들을 했었던 성도님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사에 잘 되기를 기도했고 또 강건하기를 기도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가이오는 이제 계속 다음에 얘기가 되겠지만 이러한 일들은 사랑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이오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섬김이 가이오는 진리이고 또 마땅히 해야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섬김에 주의 이름을 위하는 일이며 또 이 섬김이 그들과 함께 수고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해왔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이제 뒤에서 다음 주쯤 교제될 것 같은데 9절, 10절에서 보면 으뜸 대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접대를 금하고 또 접대하고자 하는 자들을 내어쫓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가이오는 접대하는 일을,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을 멈추지 않고 또 신실하게 행한 것입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반대가 있는 이러한 가운데서도 충성되게 이러한 일들을 진리를 행하고 있었다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이 5절의 부분의 신실함을 통해서 진리를 따라서 사랑을 베푸는 일들을 신실하게, 또 성실하게, 충성되이 이렇게 하고 있었던 것을 통해서, 5절 말씀을 통해서 가이오 형제님이 이러한 일들을 했다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 조재훈 형제님 : 6절의 말씀을 이제 생각해 본다면 여기 형제, 곧 나그네에 된 자들은 아마도 에베소 교회에서 보냄을 받은 자들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가이오가 이들을 접대해야 될 이유가 그들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고 동일한 생명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나그네라는 표현은 외인이라는 뜻인데, 그들이 이곳을 경유하거나 또는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거나 말씀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여러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는 다양한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필요에 대해서 가이오는 행해야 됐습니다. 행한다라는 이 단어는 일하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도 '일하다'라고 요한일서 8절에 우리의 일한 것을 했을 때 그 단어입니다. 이것은 땀을 흘려서 수고하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형제, 나그네 된 자들의 다양한 필요를 채울 때에 희생과 수고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충성되이 계속했고 이것은 '신실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다시 번역한다면 '충성되게 하고 있는 일이다'라고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앞에 형제님 말씀하신 대로 성실한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가이오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알고 충성되이 행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그의 믿음과 이렇게 부합해서 한 합당한 행동이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 이기범 형제님 : 예, 지금 저희가 5절을 보고 있습니다. 5절을 보게 되면 지금 사회자 형제님께서 물어보신 것 중에서 "무엇이든지"에 관해서 조금 조금만 더 교제를 하고자 합니다.
5절은 사실 이제 6절하고 연결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5절에서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이것을 6절에서 조금 이따 교제가 되겠습니다마는 그것을 이제 '너의 사랑'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무엇이든지" 또는 "행하는 것" 이것은 그 동기가 사랑이고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형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5절에서 조금만 더 교제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 '무엇이든지' 하고 그다음에 '행하는 것'을 조금만 다시 이제 교제를 해보고자 합니다. 방금 형제님께서 이미 교제를 좀 하셨는데요.
이게 영어 성경으로 보게 되면 저희는 '무엇이든지' 하고 '행하는 것' 해서 이게 하나만 행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두 개가 행하는 것이 있습니다. 두 개가 행하는 것이 있는데요. 이렇게 제가 잘 교제를 할 수 있을지, 하나는 이제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 그리고 신실한 일 해서, 이 앞에 행하는 것과 뒤의 일이 둘 다 흥정혁이 보면 같은 것처럼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같은 동사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릅니다. 그래서 무엇에든지 행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는 이것이 '부정 과거'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은 다시 번역을 해보면 '무엇이든지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부정 과거를 조금 잘 이해해 보려면 어떤 필요든지 간에 무엇이든지 그걸 항상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예전에 부정 과거 공부할 때 '시상'이라고 표현을 했었는데 그래서 무엇이든지 이렇게 수고했던 것을 하나 이렇게 놓고요.
그다음에 그것을 이제 계속하는 것입니다. 신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에 나오는 '신실한 일'은 현재형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수고한 것, 그러니까 그 형제들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그 필요를 따라서 어떤 필요든지 간에 그것을 수고해 왔습니다. 그런 것을 신실하게 이제 계속하는 것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두 가지를 다시 끊어서 본다면, 무엇이든지 수고한 것에서는 사실 다양한 거죠. 다양한 필요를 수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저희가 이제 볼 수 있는 어떤 그 대상입니다. 그리고 신실하게 그것을 계속해가는 것입니다. 가이오가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6절에서 그것을 '너의 사랑'이라고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상입니다.

- 이병호 형제님 :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시간 관계상 6절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6절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6절 보면 이제 첫 번째 문장이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다." 이렇게 돼 있는데 여기서 '저희'는 누구를 말하는지, 그리고 '교회 앞에서 증거하는 것' 이게 어떤 의미인지,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사도행전 14장 27절에 보면 전도 여행을 마치고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였다." 이렇게 사도행전 14장에 전도여행을 마치고 교회를 모아서 선교 보고 집회를 한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지금 여기서 교회 앞에서 증거했다는 게 이런 선교 보고 집회에서 얘기했다는 건지, 가이오에 대해서 아니면 다른 것을 말하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교제를 부탁을 드립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예, 여기 이제 가이오를 만나고, 또 가이오에게 접대를 받고, 도움을 받고 이제 전도 여행을 한 형제님들이 돌아와서 그 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 선교 복음에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것 중에 하나가 이 가이오가 어떻게 도왔는지가 다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말씀을 볼 때에 우리가 다른 성도님들을 접대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방문한 성도님들을 도울 때 그냥 개인적으로 그분을 도와주고 접대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이제 교회적인 일로 이 보고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 가이오가 어떤, 어떤 것을 이렇게 도왔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을 했겠죠. 이제 그것을 요약적으로 사랑을 증거했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이오의 한 일에 있어서 그 주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참 우리가 작게 생각하는 그러한 일들이지만 교회적인 일이고, 또 얼마나 높게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사실 이 부분은 사도가 가이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격려하고 있는 그런 부분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도 나온 것처럼 "그것은 신실한 일이다" 이렇게 평가를 했고요. 계속 디오드레베가 이런 접대하는 일에 대해서 무시하고 하지 말라고 하고 그것을 평가를 깎아내리는 것과 반대로 그런 분위기에서 살고 있는 가이오에게 격려를 해주기 위해서 이런 말들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사실 사도는 여기 보면 "그것은 어떠 어떠한 일이다." 이렇게 계속 말합니다. 이제 5절에 보면 "신실한 일이다." 6절에도 보면 "가하리로다" 되어 있는데요. 이것도 문자적으로는 "선한 일이다.", "유용한 일이다." 이렇게 돼 있고, 또 11절에도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은 본질적으로 선한 일이다. 계속 이게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계속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디오드레베는 5절에 보면 "네가 무엇이든지"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이게 아주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디오드레베는 가이오가 하는 일에 대해서 "아니, 뭐 그런 걸 해. 그거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야." 이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사소하게 생각하고 접대하는 것에 대해서 평가 절하하고 그런 것이죠. 그런데 이제 사도 요한은 "네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기에 얼마나 작은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도운 것이 네가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 신실한 일이고 그것은 교회 앞에서 중요하게 보고되는 것이다. 그건 이제 너의 사랑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 김회상 형제님 : 형제님 말씀하신 것처럼 5, 6, 7, 8절이 다 가이오를 격려하기 위해서, 계속 그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지금 적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임 가운데 디오드레베라고 하는 사람이 가이오를, 가이오가 하는 일을, 그리고 가이오를 계속 핍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중요한 일인지, 이런 것들을 계속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제 6절에 "너의 사랑을 증거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가이오가 이 형제들에게 행했던 일들을 사랑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5절에 보면 그것이 행하는 것, 아까도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행할 때 수고했습니다. 우리가 2절에서 배운 것처럼 자신의 물질과 건강을 돌보지 않고 수고했고요. 5절에 보면 "신실한 일이니" 그래서 그 안에 있는 가이오 안에 있는 진리를 따라서, 진리에 따라서 그는 사랑을 이와 같이 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6절 후반부에 이제 교제가 되겠지만 그의 사랑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드려진 것이고요. 그리고 8절에 보면 이와 같은 사랑은 또 "진리와 함께" 수고한 것이다라고 이렇게 계속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 이병호 형제님 사회 : Q. 자연스럽게 두 번째 문장에 언급이 돼서, 두 번째 문장 보시면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렇게 돼 있는데요. 여기서 이제 '합당하게 전송한다'는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게 합당한 전송인지 교제를 부탁을 드립니다.
박용수 형제님 교제 부탁드립니다. '합당한 전송'에 대해서.

- 박용수 형제님 : A. "하나님께 합당하게"는 제 생각에는 뭔가 하나님께 하듯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하게 그들을 잘 대하고 챙겨서 보냈다,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전효진 형제님 : A. 나그네로 계속 여행을 하려면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꽤 많이 있겠죠. 숙소가 필요하고, 또 먹을 음식이 필요하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아낌없이 물심 양면으로 다 공급이 됐다고 이렇게 보여집니다. 이들이 나그네들을 이렇게 대접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주님께서 보내주신 그 종을 하나님을 대접하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한 방법으로 제공하는 모습이다라는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A. 이 말씀이 조금 이제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전도자들은 그 전도의 길을 떠날 때 이방인들에게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복음답게 전해져야 되고 은혜로 전해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나갑니다. 그들은 이제 지팡이와 막대기만 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먼 여행을 이제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이 가이오가 그들에게 접대했을 때, 그 접대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고 계시는구나. 우리를 공급하고 계시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하나님께서 하듯이,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종을 보살피듯이 했다는 의미로도 저희들이 좀 생각해 볼 수 있겠고요.
그리고 이제 앞에서 형제님들 말씀하신 것처럼 가이오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이와 같은 주님의 이름을 전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주님께서 보낸 자들이고, 주님의 권위로 일하고 있고, 주님의 대리인으로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이오 입장에서는 마치 주님을 접대하듯이, 하나님을 접대하듯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것이 정말 받음직하고,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만한, 이러한 접대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 이병호 형제님 사회 : 교제해 주신 것처럼 '합당하게 전송한다'는게 주님께 하듯, 하나님께 하듯 하는 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순회 전도자들 또는 순회 교사들을 보낼 때 그들을 잘 접대하고 또 친근하게 작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또 갈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거기에 필요한 경비들, 또 거기에 필요한 그런 물질적인 필요들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 그래서 이제 보내주는 게 이런 것까지 다 포함하고 있지 않나, 이런 부분을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고요.

또 이제 그게 7절하고 또 계속 내용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연결이 되기 때문에, 7절 말씀 보시면 7절은 흠정역을 보시면 "왜냐하면"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5, 6절에 그런 그렇게 하는 이유를 설명을 해 주고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7절 보시면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저희가 나가는데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한다,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이제 7절에서는 그렇게 한 이유에 대해서, 이방인들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6절에서도 잠깐 교제가 되어졌는데 이 부분을 좀 더 교제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7절 교제하겠습니다.

- 한신영 형제님 : 앞에서 이 부분 형제님이 얘기해 주신 것처럼 복음이 은혜로 전해져야 하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무엇을 받고 또 금전적인 것들 그 이방인들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 하나님의 복음이, 참 은혜는 은혜가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방인들에게 받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이 되어지고요. 그다음에 이제 보면 이방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이방인이 아니라 여기서 이방인을 나타내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을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이상입니다.

- 전효진 형제님 : 영접된 성도들이 갖는 특권 중에 하나가 이 모임의 천거서를 지참하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교회에 그런 접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여행하는 동안 이방인의 공급은 절대로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성도들의 섬김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하나님의 손길이 다 따라오기 때문에 이방인들의 그러한 손길은 성도들이 그렇게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방인들'이라는 것은 의미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그러한 무리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 무리들한테 성도들이 공급을 받을 필요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여행하는 그런 모든 과정 가운데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일이고 또 하나님의 일인 것이죠. 그 하나님의 일에 그들이 동참해서 어떤 빌미를 이렇게 제공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고 또 저희들이 그런 것도 필요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이병호 형제님 사회 : 네, 이것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또 그 말씀하고도 또 관련이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마태복음 10장 7절부터 11절에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마 10:7).

제자들을 이렇게 보내면서,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마 10:8-11).

이 말씀처럼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주님만을 의지해서 이렇게 갈 것을 명령하시고, 가면 합당한 자를 찾아내라고 했는데 합당한 자가 이런 가이오 같은, 그리고 같은 성도들, 그런 도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이제 그래서 주님만 의지하고 가라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혹시 7절에 대해서 한 분 정도 더 교제할 수 있을까요?

- 강성찬 형제님 : 여기 7절, 8절에서 이제 순회하는 사역자들을 도와야 되는 그 이유를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7절에서는 이제 그 두 가지가 있는데요. 1. 첫 번째로는 그들의 사역의 모습, 그들의 사역의 동기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갔다'라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들이 이방인에게 공급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세 번째가 8절에 그리고 그들을 우리가 돕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큰 '특권'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의 이름으로 나갔다"라고 되어 있는데, 나갔다라는 것이 그 앞에 있는 그 요한이서에 보면 이제 거짓 교사들도 세상에 나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참된 교사들도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나가서 그 복음을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역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역에 접대함으로 같이 동참을 해야 되는 거고요. 그리고 그들은 자기 이름을 디오드레베처럼, 자기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동기를 가지고 일을 하고 그런 동기를 가진 사역자들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런 것들이 또 우리 그리스도인의 또 합당한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병호 형제님 : 형제님이 교제해 주신 것처럼 요한이서와 함께 비교해서 보면 이제 이런 부분들이 더 대조가 되면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8절로 넘어가겠습니다. 8절 보시면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이제 앞에서 계속 교제가 되어졌지만 다시 그걸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여기서 각별히 '영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또 교제를 부탁을 드리고요. 그리고 8절에서는 "이것은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제 함께 수고하는 자가 나오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 이 두 부분에 대해서 형제님들 교제를 부탁을 드립니다.

박용수 형제님, 이건 박용수 형제님 잘하실 것 같아요.

- 박용수 형제님 : 원래 이런 거는 은사자들한테 질문하셔야 되는데, 지금 은사자도 아닌데 자꾸 질문하셔가지고 답을 못 해서 죄송하네요.
제 생각에는요. 이거는 사실 저는 봐도 그렇지, 이런 생각밖에 안 들어요. "우리가" 요한을 포함해서 가이오, 등등 해서 성도들이 그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서는 일꾼들을 영접하는 것이 너무 마땅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꾼만 주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도울 때, 우리도 그들이 수고하는 것처럼 수고하는 것이고 우리 말씀 중에 있어요. 그 말씀이, 왜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 그런 게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증거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고, 다시 말하면 우리가 뛰어난 일꾼의 상을 그대로 받는 법이 그를 접대하면, 그를 대접하면 그의 상을 같이 받는 것처럼 최고의 가성비 투자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 김영권 형제님 : 그다음에 저 시키실 것 같아 가지고, 일단 형제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과 같지만 '함께 수고하는 자'가 누구일까를 보았을 때 신약에서는 15번 나오는데 대부분 '동역자'로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 형제님의 동역자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면 디모데가 많이 언급이 되었고 또 천막 같이 만들 때 브리스가 아굴라와 같은 정말 필요를 위해서 함께 돕고 또 진리와 복음을 위해서 함께 섬긴 분들을 동역자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 같은 경우 는 이제 가이오에게 얘기를 하면서 동역자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그렇게 되면 뭔가 바울 형제님을 돕는 그런 디모데나 성도님들이 함께 도운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서 나그네들을 섬기는 형제님에 대해서 같이 이 동역자라는 같은 단어를 썼습니다. 그렇게 보면 앞서서 형제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괜찮은가, 뭔가 너무 쉬운 방법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지만 이게 하나님의 판단, 하나님께서 저희를 보실 때 동역자로 같이 봐주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뭔가 이름이 있는, 이름이 난, 그리고 저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성도님들의 사역뿐만 아니라 이렇게 흔한, 지난 시간에 배웠던 흔한 이름을 가진 성도라고 할지라도 정말로 신실하게 일하고 있는 주님의 일꾼에 대해서 함께 돕고 섬기는 자에 대해서 주님의 평가는 이렇게 동역자로 함께 수고하는 자로 이렇게 판단을 하신다는 것에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러한 섬김이 그냥 단순히 동역자로가 아니라 진리를 위하여 함께 동역자가 되었다라는 것에 얼마나 큰 칭호인지, 칭찬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상입니다.

- 조재훈 형제님 " 이전에는 "네가"라고 돼 있는데 여기는 "우리가"라고 돼 있고요. 그리고 "이 같은 자들", 예전에는 "저희가"라고 돼 있는데 여기는 '이 같은 자들'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범위가 확장되는 것을 이렇게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또한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원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영접이라는 것은 단순히 받는 것 이상으로 문자적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다'라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형제요, 나그네 된 자들을 환영하고 또 집안에서 접대할 뿐만 아니라 합당하게 전송하는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표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마땅하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5절에 나왔듯이 '신실한 일'이고, 6절에는 '선한 것'이고, 여기서는 '마땅한 일', 우리의 마땅한 의무인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고, 또 11절에서는 다시 '선한 것', 여기서 이제 다른 선하다라는 단어가 뜻 나오는데요. 6절에서는 본질적으로 선한 것을 말한다면, 11절에서는 유익한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마땅히 순종할 때 우리는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된다라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님 말씀하셨듯이 이것은 특권인데요. 여기 "진리를 위하여"라는 단어에서 '위하여'라는 전치사가 실제 원문에서는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라고만 이렇게 되어 있고 이것이 역격이라고 해서 문장에 따라서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 성경과 같이 "진리를 위하여"라고 우리가 읽는다면, 우리가 누구의 동역자가 되냐면 '진리를 위하여 수고하는 이 같은 자들의' 동역자가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서 아무것도 받지 않고 수고하는 자들과 우리는 함께 동역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제 흠정역에서는 이것을 '진리에게'로 번역했고요. 다비역에서는 '진리와 함께'로 번역을 합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여기서는 우리가 누구의 동역자가 되는 것이냐면 '진리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진리가 사람인 것처럼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인데요. 우리는 12절에서도 그와 비슷한 표현을 보게 됩니다. "데메드리오는 뭍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니" 진리의 증거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말씀을 읽는다면 진리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의 선포를 통해서 듣는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진리가 역사하는 것을 위해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할 때 그 진리가 계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또 사람들 안에서 세워질 수 있도록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했을 때 진리에 의해서 증거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부분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7절 말씀 간단하게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 첫 번째 7절 8절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7절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입장에서 왜 그렇게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고, 8절에서는 그 접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렇기 때문에 이렇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아무것도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아까 사회자 형제님께서 1. 첫 번째로는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복음을 전할 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거고, 2. 두 번째로는 그 복음의 '성격'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습니다. 만일 돈을 주고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돈을 주고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진리의 성격상 저희들이 그것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3. 세 번째로는 이것이 세상의 철학자들, 혹은 거짓 교사들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것들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제 이렇게 진리를 전했다고 생각이 되고요.

지금 7절, 8절에 있는 이 원리가 저희들이 모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의 중요한 원리라고 저는 생각이 됩니다. 첫 번째로 저희들이 모든 교회적인 일이든, 개인적인 일이든, 1.첫 번째로는 저희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영광을, 저희들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저희들의 저희들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저희들이 해야 되는 거고요. 2. 두 번째로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해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뿐만 아니라 저희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이제 그와 같이 되어야 되고요. 3. 마지막으로는 8절에 있는 것처럼 '진리와 함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가운데 그런 일들이 이제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이와 같이 순회 사역자들의 일일 뿐만 아니라 저희들이 모든 교회적인 일이나 또는 저희들이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모든 삶의 원리가 이와 같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예, 계속 형제님들 말씀하신 것처럼 8절에서는 "우리가" 또 "이 같은" 해서 전체적인, 보편적인 진리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이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오는 디오드레베 아래에서 나만 이상한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도는 여기서 가이오에게 "네가 하는 일이 맞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이오가 하는 일이 그건 진리를 위하여 또한 이 진리와 함께 수고하는 일이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5절에서는 나그네 된 자들에게 수고하는 것이었고, 실질적으로는 그렇죠. 그 나그네 된 자들에게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여기서는 진리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다.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것인지를 알아라라고 또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 이병호 형제님 : 8절 말씀에서 순회 교사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그들을 접대하는 것이 작은 일이 아니고, 진리를 위한 일이고, 또 함께 상을 받는 일임을 말씀을 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은 요한이서하고, 나가서에서도 요한이서하고 연결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은 요한이서에서는 거짓 교사들의 접대를 막을 것을 요한이서 10-11절에서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또 인사하는 것은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다, 이렇게 그러기 때문에 그 접대를 막았었는데 이제 이 반대의 이유로 우리가 그런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필요성을 또 8절에서는  대조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는데요. 5절에서 8절 말씀, 혹시 교제가 좀 덜 되어진 부분이나 아니면 5절에서 8절까지 전체적으로 또 정리해서 교제하실 분 계시면 한두 분 정도 이렇게 좀 정리해서 교제를 부탁을 드립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스토리를 보면 이제 배경이 이렇게 되겠습니다. 어떤 순회 교회에서 천거된 이 순회 전도자, 순회 교사가 가이오가 있는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그때 가이오가 접대하고 이분들이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하고, 아마 보고한 교회가 사도 요한이 있는 에베소 교회였지 않나 이렇게 생각이 되고, 그걸 듣고 사도 요한이 가이에게 계속 그와 같은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내용이 요한삼서로 보이고요.
그다음에 이 순회 전도자들이 다시 그 지역을 방문할 계획을 세운 것 같고요. 그래서 여기 6절에서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희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이렇게까지 돼 있고요. 이건 이제 한 번 방문한 거고, 그다음에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 부분은 동사가 '미래형'으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다시 가이오가 있는 지역을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을 사도 요한이 알고 이들이 또 방문했을 때에도 변함없이 주께 하듯, 혹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방식으로 계속 돕기를 바란다라고 하는 것이 6절 후반부 내용입니다.
그렇게 돼 있고요. 그리고 이제 이걸 통해서 저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어떻게 전도 활동을 하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저희들이 실행하고 있는 거지만 지역 모임에서 천거된 일꾼들이 밖에 나가서, 방문해서, '이방인'이라고 그랬기 때문에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한 거죠. 그랬을 때 이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어느 지역으로 보내서 복음 사역을 하게 했을 때,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보낸 사람들을 공급할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 되죠. 그래서 당연히 이방인에게 받지 않는 거죠. 그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저번에 아까 말한 대로 복음의 성격 자체가 그렇고, 은혜로 받는 거고, 그다음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 쓰는 표현을 보면 사도 바울이 전도하는 그 동기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예를 들면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이 구원받으면 자기 교회가 생겨서 이런 게 아니고, 그 이방인들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이제 받지 않아야 되는 거죠. 그러면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이방인에게 받지 않으면 이걸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 그런데 믿지 않는 자에게는 받지 않는다. 그랬을 때 하나님이 직접 공급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은 두 번째 원칙이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통해서 일하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믿는 자들이 이와 같은 사람들을 지원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일하려고 하는 어떤 진리를 세우는 거죠.
그렇게 돼 있고, 그다음에 아까 요한이서하고 비교했을 때 요한이서에서는 어떤 자매님에게 어떤 사람이 왔어도 영접하지 말아야 된다 된 거죠. 만약에 이 찾아온 사람이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20장에 말한 대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 중에서, 에베소 교회 일꾼들 중에서 어그러진 사람이 일어날 것을 말을 했거든요. 그러면 극단적인 예를 들면 이 자매님이 볼 때는 자기가 있을 때 그 모임의 장로였어요. 그런데 그분이 모임을 나갔어요. 그리고 자기 집을 찾아온 거예요. 그럴지라도 거절해라, 이게 이제 자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고요.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로는 이제 가이오에게는 계속해라, 영접해라, 디오드레베 같이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계속해라, 이렇게 돼 있죠. 그래서 저희들이 디모데전서 2장을 보면 자매님들의 경우는 "겉을 꾸미지 말고 속 사람을 온유한 심정으로 단장하라" 이렇게 돼 있고요. 그다음에 형제인 경우는 "분노와 다툼으로 하지 말고" 이렇게 돼 있는 거죠. 그래서 요한삼서는 약간 저는 개인적으로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을 영접할 때 보면, 그러니까 형제들을 영접했는데 이 형제들이 나그네, 이렇게 돼 있는데 나그네가 모르는 사람이란 말이죠. 그래서 어떤 낯선 사람이 왔을 때 그를 영접하다 보면 잘못 영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 영접하는 경우가 나올지라도 영접해야 될 사람을 놓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영접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 강조된 서신이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는 디오드레베와 같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러니까 여기 말할 때 아까 "신실하다" 이렇게 했는데 이게 결국은 사랑과 진리잖아요. 그래서 이제 진리라고 하는 것은 항상 신실한 거죠. 그러니까 어떤 태도가 필요하냐 하면 내 생애를, 나의 입장을 정할 때는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보내시고, 그리고 보낸 사람들이 합당한 사람은 이방인에게 받지 않고, 그럼 하나님이 공급하실 거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로 하나님은 백성을 사용하시는 거고라고 하는 이 큰 틀의 진리를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 이게 이제 자기에게는 믿음이죠. 신실한 거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으로 나가는 것, 그래서 이제 진리와 사랑이 이 가이오에게 이제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가, 그런 이와 같은 방식이 하나님의 원칙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큰 틀에서 일하시는 원칙이다라고 하는 걸 알고 이것을 믿음으로 계속 행해야 되는 거죠.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계속 이 길을 가는 거고, 그리고 온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영접하는 것, 이게 큰 주제로 느껴집니다. 이상입니다.

- 이병호 형제님 : 예, 오늘 8절 말씀까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요한이서하고 삼서를 비교하면서 또 여러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서는 우리의 적에 대해서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그들을 대적하고 배척해야 되고, 또한 삼서에서는 아군에 대해서는 우리가 철저하게 반대로 완전히 극단일 수도 있는데, 반대로 철저하게 우리가 우리의 모든 힘과 정성과 모든 걸 다해서 또 사랑해야 됨을 이걸 적극적으로 권면하고 있음을 이제 비교해서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