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달라 마리아 : 주님을 깊이 생각함 > / 탄쯔웨이 형제님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도 함께 참여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 가운데서 다른 모임에서도 형제 자매님들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참 주님 안에서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저 뒤에 계시는 중국에서 오신 성도님들께도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더욱 성도님들과 알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제가 저희 가정을 대표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가정에게 베풀어주신 여러 친절과 호의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우리가 함께 교제했던 시간들은 정말 즐겁고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제가 여행하는 중에 성도님들과 함꼐하여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경복궁에 방문한 것보다 훨씬 즐거웠습니다. 물론 거기에 위대한 건물들이 있습니다만 경복궁에 모셔다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제게 즐거운 시간이었고 감사한 시간이었고 제가 그것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원하시면 본문의 말씀을 찾고 싶습니다.
제가 또 제안을 드리는것은 여기 계신 성도님들이 싱가폴에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한번에 다 오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또 싱가폴에 오셔서 저희와 함께 해 주시기를 원하고 또 저희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으로 주님 안에서 즐겼던, 함께 누혔던 교제에 대해서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금요일, 토요일에 드렸던 제 말씀 교제에 대해서 몇몇 성도님들이 두개의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그거에 대해서 다시한번 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막달라 마리아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기 전에 성도님들이 제게 해주셨던 두가지 질문에 대해서 먼저 답변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금요일날 마리아가 드렸던 예배와 관련된 그러한 질문입니다. "제가 주님의 날에 주님을 기억하는 예배를 드릴때에 제가 어떻게 예배를 준비할수 있을까요?" "제가 주일날 그와같은 감사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평일날 어떻게 그와같은 것을 준비할수 있을까요?" 참으로 우리가 감사의 예배를 주일날 아침에 드리지만 저희는 그 준비를 매일 매일 시간을 들여서 해 나가야 합니다. 참으로 그와같은 예배의 준비는 저희들이 매일매일 성경을 읽는 가운데 준비할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매일매일 성경을 읽고 그것에 시간을 들인다면 여러분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성경읽기에 드리든지간에 아마 아주 어린 성도 같으면 하루에 15-20분 정도 시간을 드릴수 있겠습니다. 아마 또 성숙한, 또 나이든 성도님들은 더 많은 시간을 하루에 드릴수 있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시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성경 읽기에 드리든지간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그 말씀을 읽을때에 생각을 하면서, 이해하면서 읽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그것들을 자세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제가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았을때에 예를 들어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재앙들을 연구할때, 마지막 재앙에서 우리는 그와같은 하나님의 애굽을 향한 심판을 보았을때, "아! 하나님은 참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구나." 하는것을 배울수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의, 특별히 바로에 관한 그 죄를 보았을때 하나님께서 그 바로의 죄를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심판을 통해서 참으로 거룩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데 그와같은 구절을 읽을때에 저희들의 마음속에 주님에 대해서도 한번 다시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가 방금 부른 찬송에서도 '놀라운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을 찬송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그러한 말씀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는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참으로 우리는 모든 말씀 말씀 가운데서 주님을, 그리스도를 발견할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와같은 것을 매일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서 배울수 있습니다. 이제 또한 이러한 것들을출애굽기 12장에서도 발견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대로 유월절 어린양이 보존되었다가 죽임을 당하고 그 피가 발라지는 것을 볼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을 상징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12장을 볼때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이구나.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이시구나 하는것을 배울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어 가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배울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저희들은 하나님께 순종할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출애굽기 12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어린양에 대해서 순종하기를 원하는 그런 것들을 또한 배울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매일매일 성경을 읽을때마다 주님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노트에 적어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것은 토요일날 말씀드린 말씀 집회와 관련된 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매일매일 평일동안 그러한 말씀을 읽어가면서 주님을 발견한 장면이 있다면 그것을 매일매일 노트에 적어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러한 것들을 주님을 발견하면서 기도할수 있습니다. 그와같이 주님을 묵상하면서 주일날 아침에 드려지는 그 감사를 준비할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질문은 주일날 저희들이 감사를 드릴때에 그 감사의 내용 가운데 무엇이 포함 되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주일날 함께 교제한대로 저희앞에 높여져 있는 빵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며 또한 잔은 주님의 흘리신 보혈을 상징 합니다. 첫번째로 제가 제안드리고 싶은것은 그 감사의 기도 가운데 반드시 우리의 감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에 대란 감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기억)하라" 참으로 그와같은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감사 기도가 주님께 포커스가 되어야 하고 또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기도로 드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며 주님에 관한 혹은 주님의 인격에 관한 모든 것들을 저희들이 말할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영광을 말할수 있고 주님의 그 복된 삶을 얘기할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제안드릴수 있는것은 그 감사 기도 가운데 주님께서 그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신 일들을 그 내용 가운데 포함시킬수 있습니다. 저희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배운대로 우리가 이 떡과 잔에 참여할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때까지 선포한다고, 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여러분들이 그 감사 예배를 준비하는 가운데 그 내용 가운데 주님의 죽으심을 또한 포함시킬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실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선포한다고 했던 것처럼 주님의 다시오심을 또한 저희들이 포함시킬수 있습니다. 주님의 모든것들, 어떤 면들도 저희들이 감사 기도에 포함 시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들이 감사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인가를 저희들에게 지혜를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본문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저희들은 이 시간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누가복음 8장입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쌔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 8:1-3).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 19:25).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요 20: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 20:11-18).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 16:9).
방금 주님께서 공적으로 읽은 말씀에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은 계속 집회 기간내내 세 사람의 마리아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참으로 나사렛 마리아를 통해서 순종이라고 하는 교운을 저희들은 배웠습니다. 참으로 저희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때 얼마나 멀리까지 갈수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자신을 그 말씀에 복종하였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내게 되어지리이다" 참으로 복종이라고 하는것은 많은 고난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자신을 낮추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 참으로 우리는 베다니 마리아를 통해서 예배라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드린 그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 봤습니다. 참으로 베다니 마리아는 나사렛 마리아와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값비싼 향유 옥합을 떼어 주님께 드렸습니다. 나사렛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주님께 복종하게 한다는, 주님께 순종하게 한다는 그 교훈을 배울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베다니 마리아를 통해서 주님을 사랑할때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께 예배드릴수 있다는 것을 배울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배울텐데요. 막달라 마리아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만을 깊이 생각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늘 주님만을 생각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잠언 23장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떠한 것을 생각하는만큼 그러한 사람이 된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얘기 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가가 당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를 결정한다." "당신이 어떤 운동을 열심히 하느냐가 당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를 결정한다." 이와같은 것들은 세상적인 관점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약같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진리는 아닌것입니다. 참으로 성경은 이와같이 얘기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우리 자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가 여러분 자신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구절에서 생각과 관련된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에서 가도바울은 무엇이든지 진실되고 칭찬하고 사랑할만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는자가 하나님의 평안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희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이 세장에서 깊이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마지막에 읽었던 마가복음 16장의 말씀은 아주 독특한 매우 중요한 말씀 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장먼저 만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 입니다. 베드로도 아니고요. 요한도 아닙니다. 베다니 마리아도 아닙니다. 나사렛 마리아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후에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왜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기로 하셨는지를 배울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제가 믿기로는 그와같이 주님께서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난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늘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8장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구원받는 장면을 살펴볼수 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요한복음 19장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십자가 앞에 서 있는 장면을 볼수 있습니다. 참으로 누가복음 8장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구원받는 장면을 볼수 있다면 요한복음 19장에서는 그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 십자가 앞에서 고통중에 있는것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가 요한복음 20장에서 무덤가에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그녀의 헌신을 우리는 발견할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는 구원을 만날수 있고 요한복음 19장에서는 그녀의 슬픔을 볼수가 있고 요한복음 20장에서는 그녀의 헌신을 만날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누가복음 8장에 있는 세절을 통해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첫번째 사실을 알수 있는데요.이 여자는 일곱귀신이 들렸던 그러한 여자 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는 그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주님께서 일곱귀신을 쫓아낸 마리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얼마나 놀라운 구원 입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단지 한 귀신에 들린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일곱귀신이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 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많은 귀신 들렸던 자들이 얼마나 나쁜 상태에 있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그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수많은 귀신에 들려서 그 거라사인 사람은 통제할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통제하려고 쇠사슬을 감았지만 그는 그것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그는 무덤가에서 그와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일곱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도 얼마나 악한 상태에 처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 이 일곱귀신을 다 쫓아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녀는 놀랍게 구원받았습니다. 제가 막달라 마리아는 참으로 주님을 싶이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것은 그가 얼마나 처참하고 악한 상태에서 구원받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죄 가운데 살던 그러한 상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어느날 하나님의 은혜가 저희들에게 임하고 저희가 주님을 영접하여 놀라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였을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죄를 영접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짐을 다 지고 가셨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어깨에는 무거운 죄의짐이 있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그것이 모두 주님께 지워진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분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위해서 그분이 상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그분이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를 주님께서 담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날에 이사야 선지자에 대해서도, 그 죄의 결과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즐겁게 영접했을때에,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도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것은 그와같은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죄가 주님에 의해서 용서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와같이 놀랍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얼마나 주님께 감사했겠습니까? 참으로 우리가 그녀의 구원받은 것을 생각할때에 더욱 주님께 감사드릴수 있을 것입니다. 3절의 후반부를보면 마리아와 또 다른 몇몇의 여자들이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자원하여 자신이 가진 물질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도왔던 것입니다. 주님을 돕기 위해서 그와같은 물질을 낸 것입니다. 그가 가진 모든것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 찬송을 불렀었는데요. 참으로 주님보다 더 귀한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마리아는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녀는 구원받기 위해서 그 물질을 드린것이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많은 것들을 주님께 드릴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물질에 관한, 재물에 관한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물질만 드릴수 있을뿐 아니라 내 자신을, 내 삶을 주님께 드릴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은 이와같이 말씀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귀신을 주님께서 좇아낸 이후에 주님을 좇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19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방금읽은 누가복음 8장에서는 마리아가 어떻게 놀랍게 구원받았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9장 25절에서 그 막달라 마리아는 이제 십자가 곁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그녀는 슬펐습니다. 참으로 그분은 나에게 있었던 일곱귀신을 좇아내 주셨던 분입니다. 자기의 고통을 해방시켜주셨던 그분이 지금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도 베다니 마리아처럼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약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이와같이 비판할수 있습니다. "그 베다니 마리아처럼 주님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 무덤에 가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우리는 쉽게 막달라 마리아를 비판할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베다니 마리아처럼 영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여전히 그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교훈이 되지 않습니까? 참으로 주님께서는 저희들의 마음을 살피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들의 마음을 살피고 계십니다. 우리는 참으로 성경에 대해서 많은것을 알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혹은 성경에서 많은 교리에 대해서 잘 모를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영적인 지식이 적다 할찌라도 주님은 저희들의 마음을 여전히 살피고 계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저희는 이와같은 교훈을 배우는 것입니다. 베다니 마리아는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러한 사실을 아직 알고있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그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참으로 주님과 가까이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우리에게 도전이 되지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는 25절에서 예수의 어머니가 되시는 그 마리아가 계시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기 두명의 동명이인의 마리아가 있습니다. 나사렛 마리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예언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에 의해서 주님에 관한 예언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 마음을 찌르리라" 시므온이 그와같이 주님에 관해서 예언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슬픔이 있겠다고 시므온은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와같은 예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기서 그와같은 슬픔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8장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기쁨의 눈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한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또한 그녀가 울고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가 구원받았을때 눈물을 흘렸고 요한복음 19장에서는 고통중에 눈물을 흘렸으며 이제 요한복음 20장에서는 무덤 앞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립니다.
요한복음 20장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저희가 아까 읽은대로 마가복음 16장에서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대로 주님께서 그와같이 첫번째로 막달라 마리아를 선택하신 이유가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그와같이 주님께 헌신하는 것들을, 그 증거들을 살펴볼수 있습니다. 여기 그 증거 다섯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째로 마리아는 아침 일찍, 이른 아침에 주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아직 어두울때, 그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가로 갑니다. 참으로 "아직 어두울때" 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한 표현 입니다. 그녀는 여자로서 혼자, 그 어두운때에 주님의 무덤으로 간 것입니다. 그와같이 어두운때에 여러분들이 혼자 나간다고 하는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절대 자기 자녀들이 어두울때 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두울때 그녀는 혼자 주님의 무덤가로 가는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서 그녀가 오직 주님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이와같이 이야기 할수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무엇으로 가득차 있는가?" 무엇으로 마음이 가득차 있을까, 누가 질문을 한다면 그 생각이 들었을때 벌떡 일어나게 하는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날때 여러분들은 무엇을 처음 생각하면서 일어나십니까? 학교를 생각하십니까? "아! 늦었다, 지각이다!" "아! 직장에 가야 하는데 늦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어서 그녀가 눈을 떴을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그와 같았기 때문에 그녀는 아직 어두울때에 주님의 무덤가로 갔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침일찍 서둘렀을뿐 아니라 그녀의 힘쓰는것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그녀는 달려가서 시몬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그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침일찍 일어났을뿐 아니라 그녀는 에너지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15절도 보면, 동산기지인줄 알고 마리아는 주님께 이와같이 대답합니다. "어디로 옮겨 갔습니까?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참으로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그 무거운 몸을 들고갈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지금 이것저것을 따지지 않고 "주님을 어디 두었습니까? 제가 주님을 가져가겠습니다." 라고 주님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녀에게 이와같은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마리아의 감정을 살펴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감정에 대해서 11절에 "무덤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참으로 그녀의 눈물을 매우 특별한 것입니다. 참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은, 구원받을때, 그리고 그녀가 슬픔중에 있을때에, 그리고 이 무덤 앞까지 연결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제가 금요일날 말씀드린대로 주님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 주님을 기억함으로 흘리는 눈물은 그 병에 담아져 기억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리아가 흘리는 이 눈물은 마리아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리아가 말했던 그 말의 표현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3절에 보면, 마리아는 이와같이 고백합니다.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 합니다. 참으로 주님은 그녀에게 개인적인 주님이십니다. 마리아는 이와같이 얘기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어디에 두셨나요?"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나의 주님' 내 개인적인 내삶의 주인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감사 할때에 우리는 내 자신이 경험했던 내 자신의 개인적인 주님을 알고 감사 드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막달라 마리아는 마지막으로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 앞에서도 그 마음이 다른데 가지 않고 주님께만 가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12절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흰옷입은 두 천사를 바라보게 됩니다. 참으로 흰옷입은 두 천사가 그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머리편에 하나는 주님의 발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베다니 마리아도 주님의 머리에 부어 드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여기에도 또 머리와 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이 천사들에게 마음을 뺏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보았을때 어떻게 반응 합니까? 여기 천사는 흰옷을 입은 천사 입니다. 아마 매우 밝게 빛나는 천사일 것입니다. 한 천사도 아니고 두 천사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천사들에게 뺏기지 않았습니다. 그와같이 천사들에게 마음을 뺏기지 않은 이유가 막달라 마리아는 오직 주님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13절에 천사들에게 대답한 후에 그는 뒤로 돌아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흰옷입은 두 천사를 본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천사가 그와같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면 우리는 얼어붇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 천사들을 대답한 이후에 다시 주님을 찾아 뒤돌아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녀는 천사에게 빨리 대답하고 나서 주님을 찾아야 겠다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를 찾는것인지 아는것처럼 그렇게 주님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15절을 보면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동산기지인줄 알고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내가 가져가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제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막달라 마리아, 잠간! 잠깐! 당신은 지금 누구를 얘기하고 있는거죠?"라고 물어볼 것입니다. 지금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 주님께 생각이 빠진 나머지 동산지기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를 찾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 동산지기에게 "당신이 어디로 옮겨 갔습니까? 내게 이르소서."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지금 자기가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밝히지도 않은채 급하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막달라는 주님을 기꺼이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그와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와같은 말씀들을 통해서 막달라 마리아는 오직 주님만을, 구주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제자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자기 안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 대해서만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 그녀를 가장 먼저 만나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같은 말씀들을 통해서 그녀가 얼마나 깊이 주님께 헌신되어 있는가를 살펴볼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막달라 마이라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그것을 주님께 알렸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닦였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주님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 주님께서 그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이제 16절에서 예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이제 16절에서 주님께서 "마리아야"라고 한마디 부르심으로 그녀의 눈물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 그 방식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막달라 마리아는 즉각적으로 이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 이렇게 부르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저에게 "탄쯔웨이"라고 부르면 또는 어떤사람은 "즈웨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쯔웨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를때 그 안에 어떤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바로 알아챘습니다.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마리아야"라고 부르실때 그녀는 즉각적으로 그것이 주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이제 그는 마리아라는 음성을 듣자마자 돌이켜서 "랍오니여"라고 불렀습니다. 이 '랍오니여'라고 하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한번만 나타나는 단어인데요. 이것은 '위대한 슥승님' '위대한 성샌님'이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쎄만 이 랍오니여라는 호칭을 붇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전에는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는 주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예배드리는 사람에서 이제 그는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됩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났을때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참으로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 이제는 예배드리는 사람이 됩니다. 참으로 예배드렸던 우리가 주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18절에 막달라 마리아는 이와같이 증거합니다.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주께서 자기에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참으로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 깊이 헌신되어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는 제자들에게 그녀는 주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이 여인을 통해서, 주님께 헌신된 이 여인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참으로 이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들에게 주님의 메세지를 전하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녀는 이제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두가지를 사도들에게 전달합니다. "참으로 내가 주를 보았다."라고 증거합니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하고 증거합니다. 참으로 내가 주님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고 증거합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경험을 할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때에 주님을 만나는것 같은 그런 영적인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마치 커지는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와같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녀가 주님을 본 것만을 증거했을뿐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것을 또한 증거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주님 자신을 나타낼 뿐 아니라 주님께서 또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한 형제님을 볼수 있습니다. 말하지 않고 보여만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볼뿐만 아니라 서로 말을 함으로써 교제할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께 깊이 마음을 두고 있을때,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에게 주님을 보여주시며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세명의 마리아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이것들은 참으로 저희들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순종의 영역에서, 얼만큼 우리는 나갈수 있는가? 참으로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는 그러한 영역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자원하여 드릴수 있는가? 우리가 주님께 깊이 마음을 두는 영역에서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배우는, 주님을 발견하는 것들을 할수 있는가?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결정하는 세가지라고 생각 됩니다. 참으로 스피커가 많은 것들을 통해서 이것을 말씀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순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많은것을 주님께 드려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더 주님께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드려야할 필요가 있는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22장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
우리는 세명의 마리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저는 이것을 통해서 나사렛 마리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녀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참으로 순종했던 그 마음, 참으로 베다니 마리아를 통해서는 이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혼을 다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의 예배는 참으로 귀하고 값비싼 것으로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이제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는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생각을 다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막달라 마리아는 그 생각이 주님께 가 있었습니다.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마음을 다하여, 네 혼을 다하여, 너의 생각을 다하여. 참으로 이와같은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저희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와같이 여러분들과 말씀교제를 나눌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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