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나는 '무엇무엇' 이다.

덕언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박이레 2025. 5. 15. 00:50

< 덕언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한봉래 형제님

네,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나는 무엇 무엇이다 하는 구절들을, 생명의 떡이다, 세상의 빛이다, 문이다, 이렇게 쭉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서 하신 말씀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여기 주님께서 자신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 말씀은 말씀이, 아들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신 거죠. 그다음에 육신이 돼서 "우리 가운데" 사람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는 단어가 이게 영어로 하면 '타버너클'입니다.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 이런 뜻입니다. 성막을 만드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막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거기서 백성들을 만나주시기 위해서 만든 장치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제 요한복음을 어떤 어떤 형제님은 '성막 복음'이다. 성막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러니까 지성소 언약궤에 하나님이 계시고 이제 물론 구약에서는 제한이 있었죠. 대제사장이 1년에 한 차례 피를 가지고 자기를 위하여 속죄를 먼저 드린 후에, 피를 가지고 안에 들어가면 그 언약궤에서 하나님이 대제사장에게 말씀하시고 대제사장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염두에 두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이 우리의 성막이다', 이렇게 말씀하셨고요.

그다음에 이제 예수님이 계속 이제 하신 말씀이다. 성막과 관련돼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문이니"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성막의 구체적인 문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이제 상막을 보면 이제 문을 들어가면 거기 뭐가 있냐면 첫 번째로 번제단이 있습니다. 거기서 이제 짐승들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리고 한 거죠. 이제 우리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피를 뿌린 것이죠. 그래서 번제단이 요한복음 12장입니다. 12장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님이 자신의 피 흘리시고 죽는 죽음을 소제로 표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12장이 번제단입니다.
그다음에 요한복음 13장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게 물두멍이입니다. 피로 인해서 죄가 용서되었다고 다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정결한 자로 서야 합니다. 그게 이제 요한복음 13장입니다. 죄 용서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깨끗함을 얻는 방법, 이게 요한복음 13장입니다.
그리고 이제 들어가면 뭐가 있냐면 저희들이 지금 문에서 지성소까지 이렇게 일직선입니다. 성막을 보면 일직선으로 돼 있어요. 양쪽에 있는 것들을 빼면 진설병이 있고, 저기 등대가 있지만 빼고, 일직선으로 하면 문, 그리고 번제단, 그리고 물두명, 이렇게 가지고 계속 직선입니다. 그리고 이제 안으로 들어가면 양쪽에 있지만 그 길을 빼버리면 바로 위에 향단이 있습니다. 이제 금향단으로 이건 이제 대제사장이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향단은 이제 기도를 드리는 것이죠.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이제 언약궤가 있고 거기서 이제 살아계신 하나님을 뵙는 거죠. 이 기도가 뭐냐 하면 이 '향단의 기도'가 요한복음 17장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지성소 앞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직접 하는 기도죠. 이 기도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입니다. 요한마음 17장에서 주님이 이제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향단을 드리듯이 이제 기도하는 내용인데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요 17:1).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 기도하십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6절에 가룟유다는 빼야 되겠지만 사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두셨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나타내신 거죠. 그다음에 쭉 믿으로 하겠습니다. 계속 사도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셨고요. 그다음에 20절 보시겠습니다. 이게 이제 저희들하고 관련된 것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주님께서 이 향단에서 기도하시는 그 기도의 제목이 뭐냐 하면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열두 사도들만, 나중에 교회를 세울 사도들만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사도들이 이제 증거할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과 주님의 인격과 주님의 사역을 증거할 것입니다. 그때 이제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도 위함이니" 이게 이제 우리입니다. 교회입니다. 사도들의 전도를 통해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원받아 교회를 이루게 된 이 우리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길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가게 하는 길입니다. 주님이 길이 되신 첫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게 요한복음 1장입니다. 사람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막에 이제 하나님을 만나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문을 통과해 보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으로 믿을 때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길을 걷는 겁니다. 제일 처음에 만나는 것이 주님의 번제단, 주님께서 피 흘리신 십자가를 만납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발을 씻기신 것을 만납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주님의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뵙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의미에서 이제 주님이 '길'이시고, 그다음에 성막은 전부 그림자였습니다. 주님이 실체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서 주님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이 '생명'입니다. 이게 영생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기도 중에서 저희들이 교훈 받으려고 합니다. 교훈 받을 내용은 첫 번째 20절에 보면, 이제 교회를 위한 기도 내용이 뭐냐 하면 딱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21절, 22절 23절을 보시면 전부 '하나 됨'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요 17:21).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요 17:23).

그래서 교회를 위해서 주님이 기도하시는 것은 '하나됨' 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24절에 보면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위한 기도는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두 가지인데 우선 하나 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 됨은 이렇게 조직적인 하나됨이라든가 외적인 하나 됨이 아닙니다. 모든 교회가 저기 똑같은 이름을 갖는 게 아니고, 여기서 하나 됨은 영적인 하나 됨입니다. 어떻게 하나가 되냐면 저희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이 구원이 같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주신 생명이 똑같은 생명입니다. 같은 생명을 가졌습니다. 그다음에 그다음 차이가 나오는 것은, 이게 예수님이 실제로 우리 삶의 주인이면 우리가 실제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그리고 주님이 주인이고 주님을 순종하고 따라가는 삶을 살면 우리 모두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주님을 모시고 똑같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똑같이 살아갈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오순절로부터 해서 어마어마한 한 2천 년 이상을 지금 왔으니까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여러 가지 사고 방식이 다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회는 주님의 생명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님의 영광을 높이는 그 길을 가면 전부 하나인 것입니다. 이 영적인 하나됨, 그래서 일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데, 각 동일하고 주님이 만드신 교회에 대해서 우리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살 것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주님을 주로 모시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불일치가 생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모든 교회의 모든 시대에 모든 민족의 모든 교회 성도들이 하나 되기를, 주님이 주신 생명 때문에, 주님의 말씀 때문에, 주님의 주되심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것이 주님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적용해야 될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있는가? 입으로만 그런 게 아니고 실제로 주님을 나의 주인님,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순종하는 종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죠. "예수 그리스도 종 나 바울은" 이렇게 하고 있는가? 이게 이제 주님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응답되야 합니다.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하셨던 이 기도, 이 기도가 어떻게 응답이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 기도가 응답되는 과정 가운데 저희가 있는 거죠. 저희가 정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인 삶을 사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24절에 보면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이제 언제 보는 거냐면 여기 보시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주님 계신 곳에 주님과 함께 있어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이거 첫 번째입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 계신 주님 계신 곳에 함께 있고 그곳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느냐?
첫 번째 우리가 죽을 때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임무를 마치고 주님이 우리를 불러내시면 그때 우리는 주님이 계신 곳에, 아버지 앞에, 하나님 앞에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이게 첫 번째 가능성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저희들이 많이 그렇게 기도하지만 주님이 공중에 오실 때입니다. 주님이 공중에 오시면 우리가 변화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몸을 입을 것입니다. 그리고 눈으로 주님을 뵐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닮아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해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토록 볼 것입니다. 휴거 때입니다.
세 번째입니다. 계속 순서 이제 세 번째 순서는 그다음에 천년 왕국에서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주님이 그 나라 왕이 되셨을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주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세상을 통치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네 번째입니다. 이제 천년이 끝나고 사단을 잠깐 풀어주었다가 그다음에 사단을 불못에 던져버리고, 그리고 이 지구도 태워버리십니다. 이제 영원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는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이게 이제 이 기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시 저희들에게 적용하면 그러나 지금 저희는 주님의 영광을 무엇을 통해서 보느냐?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인격을 보고 그 주님의 말씀에 나타난 주님의 신성, 주님의 낮아지심, 이와 같은 것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보고,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그리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서로 돕고 이루어 내도록 주님께서 저희를 대전 지역에 지역 모임으로 불러 모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우리가 이런 걸 보면 사랑이 요한복음 13장은 이게 제자들과 함께 하신 거죠. 13장부터 17장이, 13장은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마지막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사랑으로 시작해서 17장 마지막 절이 사랑으로 끝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버리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알고, 이제 이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고, 우리는 이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보겠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이 우리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도 가끔 주님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펴고 그 안에 나타난 주님 영광을 보고 감사하고 순종합니다. 우리가 그러는 것보다도 주님이 우리 안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각 속에, 우리의 선택 속에,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주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길이십니다. 주님이 실체이십니다. 구약에 여러 번 예언되었던,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예언되었던 그 실체가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생명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것이 참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따라서 저희가 오늘도 모여서 함께 예배해 드렸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되는 한 주일, 이제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놀라우신 주님을 저희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살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증거하고 그리고 또다시 모여서 주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