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언 : 생명의 떡 > 한봉래 형제님
제가 이 시간에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주님이 "나는 ~이다"라고 하는 것을 좀 다루려고 하는데요. 지난 시간에 했던 걸 다시 한 번 하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6장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요 6:35).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자신에 대해서 첫 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그리고 저희들이 요한복음 6장의 배경을 보면 구약 성경에 나오는 만나 사건입니다. 구약의 만나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에 대해서 구약 성경이 가르친 두 군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6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남을 주신 이유를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출 16:4).
그래서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나를 하늘로부터 내려주셨죠.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
이 의미는 이렇게 말씀드렸죠.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합니다. 그리고 변명하기를 "먹고 살아야 되니까요. 먹고 살아야 되는데 세상이 얼마나 힘든데, 말씀대로 다 갖고 살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늘에서 만날을 내려서 먹을 것을 해결해 주십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실 것을 해결합니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는 동안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먹고, 살고, 주거를 하나님이 완전히 광야 40년 동안 해결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테스트합니다. 그러면 순종할 것이냐? 그러면 말씀을 순종할 것이냐?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압니다.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부 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테스트하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저도 말씀 순종하고 싶어요. 그런데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현실을 핑계대고 말씀의 불순종을 정당화합니다. 이게 만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입증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순종하고 싶은데,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이런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신명기 8장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신 8:3).
하나님이 저기 광야에서 여러 가지로 먹이실 수 있는데, 그 전에 없었던 만나라고 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먹이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는 이걸 가르키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우리가 떡으로도 살아야 되죠. 하지만,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떡이 아닙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한다. 말씀 없으면 죽은 거다, 이걸 이제 만나를 통해서 가르치신 거죠.
이걸 배경으로 놓고 요한복음 6장을 보시겠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구약에 있었던 만나의 실체다. 만나가 그림자고,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었던 건데 사실은 너희들은 나를 먹어야 된다. 내가 생명을 주는 떡이다. 이렇게 이제 말씀하신 거고요.
이걸 이제 출애굽기식으로 이제 주님께서 하시는 것은 이제 이렇게 하는 거예요.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하셨죠 만나를 두신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셔도 사람들은 불순종한다라고 하는 걸 입증하셨죠. 이번에는 이렇게 하십니다. 여기는 광야하고요. 그다음에 5천 명 정도가 있습니다. 남자만, 이제 여자하고 아이 치면 1만 5천 명, 2만 명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은 한 소년의 도시락 하나입니다. 오병이어, 떡 5개, 물고기 두 마리라고 하는 1인용 음식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제자들 아이디어는 전부 이런 거죠. "흩어져서 자기들끼리 먹긴 하죠." "뭐 가라고 그럽시다."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줘라." 이렇게 한 거죠. 그래서 이제 우리가 주려고 하니까 빌립이 딱 계산합니다. "빌립이 주님 이거 주려면요. 아무리 싸게 잡아도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죠. 그다음에 안드레는 오병이어 하나 갖고 와가지고 "이거 하나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이렇게 전부 주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전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적다. 그다음에 상황은 어마어마한 상황이다라고 두 가지 변명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대목을 한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요 6:10).
남자만 5천 명이 되는 사람들을 놓고 주님이 이렇게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 5천 명 되는 사람들 다 앉게 해라. 너희들이 앉으세요. 그래서 이제 이렇게 100명씩, 200명, 100명씩, 50명씩, 이렇게 앉은 거죠.
이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다. "앉게 해라. 먹을 거 줄 테니까, 먹을 준비해라 해라."
식사 대형으로 모여라 이런 거죠. 음식 나올 테니까 각각 자리 잡고 앉게 해라라고 주님이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 명령을 제자들이 순종합니다. 변명하지 않고, "주님 가진 거 하나도 없는데 앉게하면 어떡하시려고 그러세요? 저기 이백 데나리온도 없고 오병이어 하나밖에 없다니까요?" 이렇게 하지 않고, 그런 상황임을 주님과 제자들이 다 압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그 상황 속에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을 변명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주님이 명령합니다. "앉게 해라." 그리고 그들이 앉힙니다. 이게 이제 오병이어 기적의 출애굽기 명령을 순종하나, 순종하지 않나?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순종했던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상황을 보지 않고, 자신을 보지 않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냐면 이 기적이 일어나자 어떻게 하죠? 주님을 임금 삼으려고 합니다. 왜 임금 삼으려고 하는 거죠? 음식 때문에, 우리의 먹을 것을 해결해 주는 분을 우리의 왕으로 삼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음식을 해결해 주시려는 분이 아니고,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에는 관심이 없고, 영원한 것, 하늘에 속한 것에 관심이 없고, 이 땅에서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우는 분을 왕으로 삼자. 이게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 태도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이 임금 삼으려고 한다가 이제 15절에 나와 있죠.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불신자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말하냐면 이제 만나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말하죠. 34절입니다. 이게 불신의 표현입니다.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요 6:34).
이게 그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만나였고, 만나의 실체이신 주님이 아니라, 만나와 유사한 오병이어의 기적, 이것을 원한 것입니다. 기적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보시면 되겠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 이제 신명기 쪽으로 가셔서 아까 했죠. 주님이 만나를 이렇게 주신 것은, 혹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은 이유가 뭐냐 하면 이걸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말씀으로 살아야 된다.' 실체가 있다. 그 기적의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 이걸 가르치는 거죠. 이거 보겠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68절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 영원한 생명을 가르쳐주는 말씀,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영원한 생명이 무엇이고 그게 어떤 것인지를 말씀해 주시는 말씀이 주님에게 있은즉, 우리가 어디를 가겠습니까? 이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사실은 그 기적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기적이 가리키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사도들이 주목하고, 그 말씀을 기뻐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다. 이게 구원받은 성도들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60절입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요 6:60).
말씀 너무 어렵다. 주님 말씀은 성경은 왜 이래 어렵냐? 도대체 이해할 수 없게 써졌냐? 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 어떤 건지 살펴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구원받았기 때문에 아는 건데요. 우선 41절 보겠습니다.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요 6:41).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다? 이게 무슨 말이지? 특히 이렇게 말하죠.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요 6:42).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이게 이제 어렵다라고 하는 거고,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다 이렇게 하는 거죠.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다음에 두 번째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3-54).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는 게 뭐야? 예수님은 피를 마신다는 게 뭐야? 이거 어려운 말씀인데? 라고 하는 것이 이제 두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요 6:62).
62절은 주님의 승천을 말합니다. 주님은 이전에 있었던, 주님은 하늘에 계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실 것입니다. 올라가시는거죠. 이 부분은 승천을 나타냅니다.
그럼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41절,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무슨 뜻이냐면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 성육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52절, 살을 먹게 하고 피를 마시게 한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심으로, 살을 찢으심으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62절, 주님은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주님의 생애를 가리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주님이 가르키고자 하는 것은 주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해서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의 저주받은 죽음을 죽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죽음을 기뻐받으시고, 주님을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히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 단순한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게 영생의 말씀입니다. 영생은 이렇게 얻는 거다. 영생은 이 속에 있는 거다, 라고 이 말씀을 하시고, 이걸 자꾸 어렵다고 느끼는 겁니다. 왜 어렵냐 하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어려운 말씀 앞에 "주님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을 알게 해 주십시요. 단순한 믿음의 말씀으로 저를 밝혀주시고, 주님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셨는가라고 하는 이 사실을 알고 주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영접하고 기뻐하게 하옵소서."라고 받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이해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있으니, 이렇게 해서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어디를 갑니까?" 주님 제자로 끝까지 남아서 주님을 섬기고,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주님 오실 때 만나 뵙기를 원합니다. 이게 이제 제자들이 지금 고백하고 있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주님께서는 구약에서 만나를 주셔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 변명하면 안 된다. 환경과 자신의 능력을 근거로 주님 말씀을 순종할 수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우선순위가 먼저다. 주님을 순종하면 환경을 주님이 바꾸시고, 우리의 연약을 강하게 하실 것이다.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리고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분이 무엇을 하실 것인가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의도다라고 하는 거죠. 저희들이 주님 은혜로 구원받고 이 놀라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또 주님에 대해서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게 하신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계속 저희들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죠. 지금도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저희에게 알려주시고,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에 우리 자신을 보지 아니하고, 우리의 형편을 보지 아니하고, 참되신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살아가는 저희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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