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열왕기상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열왕기상 19장 19-21절

박이레 2024. 7. 2. 22:10
성경읽기 : 열왕기상 19장 19-21절(요약)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 들었더라
(왕상19:19-21, 개역한글)
 
 
[ 19-21절 성경읽기  ]
- 이 시기는 삼년동안 비가 오지 않아 기근이 매우 심한 때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엘리사는 농부였다. 그는 농사를 짓기에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그는 열두겨리(최소 24마리의) 소로 밭을 갈고 있었다. 그는 자기 일에 충성되이 일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기 일에 충성되이 일하는 사람을 불러 쓰시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다 같은 직업을 성도님들이 인도함을 받지 않는다. 어떤이가 보기에는 좋은 직업, 혹은 천한 직업을 가질수도 있지만 중요한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직업에 충성되이 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엘리사가 엘리야를 만났을때 그가 소를 버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찾아가야함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엘리사가 가족들에게 입맞출것을 허락을 구하는것은 엘리야를 따를 준비를 하는 것으로 분별할수 있다. 그는 그냥 엘리야를 따르는것이 아니라 소를 잡고 그 쟁기마저도 불살랐다. 자기의 본 직업을 버리고 전심으로 엘리야를 따를 것을 보여준 모습으로 보인다. 그는 약 10년간 엘리야를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엘리사는 사밧의 아들로서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것을 버리고 엘리야를 섬기는데 헌신하는 것을 보게된다. 누구나 엘리야가 되고 싶어하지만 누구나 엘리야가 되지 않는다. 성경에는 엘리야도 있고 엘리사도 있고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칠천명의 사람도 있다. 내가 누가된다 할찌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라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 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목소리나 꿈으로 사람을 부르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엘리사는 하나님의 목소리나 꿈이 아니라 엘리야라는 사람의 부름으로 부름을 받았는데도 그 부름에 주저없이 따랐던것을 생각하게 된다. 
 
- 엘리사는 엘리야의 부름에 즉각 순종했다. 이는 대단히 훌륭한 자세이다. 그러나 이런 엘리사 뿐만 아니라 엘리야가 더 훌륭하다고 할수 있다. 엘리야의 많은 업적중에 엘리사를 세웠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큰 일을 한 것이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났을때 자기의 겉옷을 던졌다고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자기의 모든 직책, 직분을 엘리사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이후 엘리사는 50년이 넘는 시간에 거쳐서 활동을 한다. 자기보다 나은 후세의 일꾼을 세울수 있다면 그것보다 기쁜것은 없다. 엘리야는 그 일을 하였다.
 
- 겉옷을 던지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 볼때, 이 겉옷은 현대의 일반적인 자켓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겉옷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스라엘에서 겉옷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며, 자기의 몸을 보호하는 방한복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겉옷은 자기가 가진 재산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 그 사람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가를 만질때에 나을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겉옷이 가지고 있던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다.
 
엘리사는 현재의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해서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엘리야가 나타나 겉옷을 던졌을때에 그 상징적인 의미를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가 불의 전차를 타고 하늘로 올리워져 갈때 엘리야의 겉옷이 엘리사의 앞에 떨어지고 그가 그 겉옷을 주워 입는것이 이 모든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엘리사는 이와같이 어려운 시기에 좀 부유한 생활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렇다 할찌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때에 그는 자기의 생각이나 뜻이나 시간을 버리고 주저없이 주님의 부르심에 따랐다.
 
- 지난 시간에 교제된 내용을 이어서 교제해 보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꿇지않은 칠천인을 남겨 두셨다. 그리고 그 칠천인 가운데 한명인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엘리야는 찾아가게 된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부름 앞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볼수없다. 그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염두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열두번째 겨리에서 그는 맨 마지막에 자리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12는 성경에서 행정의 수로 많이 쓰인다.
 
또한 엘리사의 부모님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것은 그가 가족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기보다 그가 분명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모습으로 생각할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때에 엘리사와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 엘리야는 기존에 있던 농업의 멍에가 아닌 엘리사가 준 겉옷으로 멍에를 매었다. 이는 이전에 매던 것보다 더 가벼운 것이다. 또한 더 명예롭고 더 가치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20절) 이는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겉옷을 던진 것을 말하고 있다. 곧, 엘리사를 부른것은 엘리야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임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사역을 받는것도 개개인의 사사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임을 생각하게 된다.
 
- 엘리사가 자기 가족과 친지를 버리고 즉각적으로 엘리야에게 수종든것을 보게된다. 이와같은 일꾼들이 일어나야 한다. 추수할 것은 많지만 추수할 일꾼은 적음을 주님도 말씀하셨다.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