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열왕기상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열왕기상 19장 1-3절

박이레 2024. 7. 2. 22:08
성경읽기 : 열왕기상 19장 1-3절(요약)
 
1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왕상19:1-3, 개역한글)
 
 
[ 1-3절 성경읽기  ]
- 아합왕은 이세벨에게 18장에서 있었던 일을 다 얘기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대한 일반적인 사람의 당연한 반응은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세벨은 이러한 기대와는 전혀 달리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세벨의 반응에 엘리야는 당황하게 된다.
우리도 주님의 뜻대로 수고하고 고생하였을때 어떠한 결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그러한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에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보이실 것이다.
엘리야는 마음이 당황한 가운데서 3절의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 또한 어떠한 상황,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 형편을 보고" 일어났고 "자기 생명을 위하여 도망" 하였다. 그 전에 엘리야는 자기 목숨을 하나님께 맏기고 담대히 행했지만 그가 형편을 보았을때 도망하게 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 일은 갑작스럽게, 위대한 일을 행하고 난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엘리야와 같은 사람도 이럴찐대 우리와 같이 연약한 사람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교훈을 받게 된다.
 
3절의 뒷부분을 볼때에 사환을 머물게 하는데, 이것은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동역자를 떠나서 혼자 도망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는 모임이라는 울타리가 있고 그곳에는 함께 하는 형제 자매님들이 계신다. 이를 볼때 엘리야는 고독했던것 같다. 뒤에 보면 그는 하나님께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주님께서 많은 형제 자매님들을 곁에 주셔서 엘리야와 같은 고독을 느끼지 않게 해 주심에 감사한다.
 
- 아합은 18장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능력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적을 행하시는 역사를 성경에서 세군데를 볼수 있다. 첫번째는 출애굽해서 가나안까지 오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 했다. 두번째는 영적으로 가장 타락한 시대인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이다. 세번째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표적을 행하시고 사도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모든 사람이 이러한 기적을 체험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적을 체험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부흥회 같은데 참석한다. 그러나 그런곳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성경적인 복음을 받아들이냐고 한다면 또한 그것은 아닌것을 볼수 있다.
 
이세벨은 아합에게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듣고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지만 이세벨은 이러한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형편을 보고"(3절)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행했을때 이스라엘이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나오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19장 초반부를 보면 이스라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엘리야는 자기가 행한일에 대한 허망함을 가졌다. 엘리야는 호렙산을 향해서 도망간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그는 하나님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엘리야는 엄청난 실망감 때문에 자기가 있던 곳을 떠나갔다.
또한 사환을 떼어놓고 갔다는 것은 하나님과 단둘이 있기 위해서 떼어놓고 갔다고 생각할수 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엘리야는 하나님의 종인데 왜 이러한 일이 있을때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것은 사람은 심각한 절망에 빠졌을때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연약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이라 할찌라도 연약이 있음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된다.
 
- 아합왕은 18장에 있었던 일을 이세벨에게 얘기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두려움에 대해서 얘기하기보다 엘리야가 바알 제사장들을 죽인행위만을 설명한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언할때에 그것을 말리기보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한 것이다.
 
브엘세바(3절) 유다 남단의 최 남단에 있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맹세하여 지명이 명명된 곳이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남왕국의 최 남담지역으로 피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엘리야의 연약을 볼때에, 모든일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용하셔서 능력을 행하심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연약을 아셨지만 엘리야를 사용하셨다. 엘리야의 능력이 뛰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선택하셔서 사용하신 것이다. 이와같은 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생각하며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
 
- 이세벨은 공개적으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공개적인 참수를 선언하는 이유는 영적으로 회복되려고 하는 부흥의 불씨를 꺼뜨리게 하기 위한 정치적인 계략으로 추리된다.
 
엘리야는 성경에서 산채로 하늘로 들림을 받은 몇안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구약을 대표하는 두명의 인물(모세, 엘리야)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19장의 내용을 보면 엘리야는 많은 연약을 보게된다. 그가 이후 자기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 할때에 그의 사역이 끝나게 되는 것을 보게된다. (엘리사에게 그 사역이 이어진다)
이러한 엘리야의 모습을 볼때에 우리의 마음이 좋지 않다. 이것은 마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내랴?" 라고 하면서 반석을 두번 쳤을때에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과 같다.
 
엘리야가 그 형편을 보았을때에 넘어질수밖에 없었다. 엘리야가 주님만을 바라보았을때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지만, 그가 형편을 보았을때 이러한 쇄락의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가 일어나서 도망가는 것은 육신적인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는 전에는 하나님만을 보는것으로 관점이 잡혀 있었지만 이제는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가게 된다. 이것은 엘리야를 폄훼하는것이 아니라 우리 누구나 이렇게 될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다 연쇄적인 반응이다. 우리의 우울과 믿음의 불신 믿음의 바닥의 끝을 보기는 매우 쉽다.
엘리야는 브엘세바에서 멈춘것이 아니라 계속 더 밑으로 하룻길을 도망간다. 그는 도망갈수 있을때까지 다 가는 모습을 보게된다. 브엘세바는 과거에 하나님의 약속과 희망을 느낄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사환을 두었다는것은 자기는 누구와도 교제하기 싫다는, 영적으로 바닥을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같은 영적인 거인도 넘어지는 모습을 볼때에 우리또한 넘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경각심을 가지고 주님앞에 살아야 할것으로 생각한다.
 
-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야 5 :17)
 
엘리야는 18장의 기적을 통해서 이세벨의 태도가 변하기를 기대했으나 전혀 반대의 상황이 일어났다. 그렇기에 그는 절망과 두려움에 빠지게 된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은 받응을 보인 사람은 한명이 더 있다. 그는 모세이다.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민11:14-15, 개역한글)
 
엘리야는 예정대로라면 북쪽으로 가야했다. 그러나 그는 반대로 남쪽으로 도망간다. 엘리야는 깊은 낙심에 빠졌고 모세도 이와같은 낙심에 빠졌었었다.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창12:11-12, 개역한글)
 
아브라함은 자기의 눈으로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하는 잘못에 빠진다.
아무리 영적으로 강한 사람도 깊은 낙심에 빠질수 있고, 영적으로 약한 사람도 강한 믿음을 낼수 있다. 이러한 깊은 낙심에 빠지게 되면 자기의 책임을 놔 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두번째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떠나버린다. 세번째로 굉장한 자기연민 가운데 빠져버린다.
우리도 이러한 모습을 보일수 있다. 누구나 낙심가운데 빠질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돌이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