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열왕기상 13장 19-23절(요약)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왕상13:19-23).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왕상13:18,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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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분명하게 말했지만 18절에서 그는 늙은 선지자의 말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는것을 보게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하나님의 사람이 왜이렇게 늙은 선지자의 미혹에 쉽게 넘어갔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늙은 선지자의 말을 들었을때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과 맞는가를 비교했어야 했다. 늙은 선지자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다해도 이 말의 진위여부를 분명히 확인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고 그것이 그의 실패의 원인이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여러 측면에서 말씀들을 듣게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분별하는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행17:11-12, 개역한글)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같은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한번 깨닫는것은 우리가 말씀을 받고, 상고해야 한다. 그러나 교리적인 말씀을 받을때에 그 말씀이 분명히 그러한가를 상고하는 것이 매우 필요한 일이다.
- 늙은 선지자의 모습을 보았을때, 그의 과거는 어찌했을지 모르나 현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좇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수 있다. 그는 우상숭배가 이뤄지는 벧엘에 그대로 거했다.
그리고 20절의 말씀에서 이 늙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것을 보았을때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려고 할였을때 늙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된다.
이 사실은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을 생각하여 적용할수 있을것이다. 발람이 불의의 삵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나귀를 타고 발락에게 갈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음을 나귀의 입을 열어서 말을 하게 하셨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악한 선지자나 나귀의 입을 사용하시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왕상13:20,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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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이 네게 이르시기를"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13장에서 두번 인용한다. 그는 그것으로 여로보암의 암박과 시험을 이겨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순종하는 것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바울은 이와같이 말씀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이 하나님의 사람과 달랐던 것을 보게 된다. 선지자와 형제들이 눈물로써 예루살렘에 가는것을 만류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루살렘에서 잡힐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예루살렘으로 나아갔다.
또한 늙은 선지자는 왜 젊은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을 그냥 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의 일에 관심이 있어서 그를 속여서까지도 그의 일에 참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부분을 통해서 내게 허락된 일만을 종용히 하고 다른 형제 자매님께 허락된 일에 억지로 참여하지 않는것이 맞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또한 어떤 말씀이 전해졌을때 그 말씀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말씀이 맞는지를 분별하는 것도 중요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 여로보암이 주려고 했던 예물은 굉장히 좋은 예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왕상13:7, 개역한글)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18절에서 (예전에는 하나님이 사용하셨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늙은 선지자의 말에 넘어간다.
앞서 형제님이 교제해주신 것처럼 이 내용이 우리가 알고있는 내용에 맞는가를 살피는 것은 매우 필요한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벧후1:12, 개역한글)
또한 하나님의 사람은 그와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우리가 이 말씀을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로만 받을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교훈하기 위한 말씀이다.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3:1-5, 개역한글)
현재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때는 말세이며 고통하는때이다. 그리고 이때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믿는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세상적인 욕망을 보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형태로 다가온다.
3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3:3-4, 개역한글)
"주님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그대로 있지 않느냐?"
우리는 먼저 말씀이 이미 있는 진리에 부합되는지를 살펴야 하는것이고 또한 두번째로는 그 말씀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살펴야 한다.
우리가 어떠한 말씀을 듣느냐도 중요하고 누구로부터 말씀을 듣느냐도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말씀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체크했어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와같은 부분에서 분명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이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문제다. 우리는 경계하는 것을 그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상수리 나무아래서 쉬는 것으로 경계하는 것을 잠시 놓쳤다. 우리는 이 경계를 잠시라도 놓쳐서는 안된다.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딤전6:10-12, 개역한글)
디모데전서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 나온다. 그는 피해야 하고 좇아야 한다. 이것은 현재형 명령으로서 주님앞에 갈때까지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 세가지를 해야한다. 우리가 마땅히 피해야 할것을 피하지 않고, 좇아야 할것을 좇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것을 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람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의 사람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사단은 한번만의 공격을 하는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공격하는 것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는 한번의 사단의 공격을 방어 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며 기회가 주어질때마다 공격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 국경을 넘지 못하고 왜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쉬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얼마나 벧엘에서 얼만큼의 시간을 보냈는지는 알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벧엘에서 그가 먹고 마실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으로 인해서 육체적인 욕구가 갈급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상수리나무 아래서 쉰것, 또한 늙은 선지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것이 육체적으로 갈한 것이 이유 중의 하나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마태복음 4장에서 주님께서 사십일간 금식하였을때 마귀가 가장먼저 시험한것이 먹는 문제로 시험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미혹을 이기셨다.
육체적인 욕구가 그 사람에게 잠시 중요한 문제일지 몰라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살리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우리 또한 삶을 살아가면서 크게 유혹을 받는것이 우리의 먹고사는 것에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너하시리라"
- 하와또한 먹는것으로 미혹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에 넘어감으로 두 사람은 실패하고 죽었다.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왕상13:23, 개역한글)
하나님의 사람은 아마도 걸어와서 걸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귀를 주게된다. 그러나 그는 그 나귀를 타다가 시체가 되어서 그 나귀에 얹어져서 돌아오게 된다. 우리가 세상에서 안락함을 생각하고 원하지만 그 악락함은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수 있다.
-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하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심판하실지를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늙은 선지자를 통해서 즉각적으로 심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반문하는 장면이 없다.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수도 있다. 늙은 선지자가 그를 속였기에 그는 불순종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에도 잠잠히 있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크게 심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배우게 된다.
또한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이루어질것을 말한다. 그가 돌이키고 변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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