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골로새서 3장, 그리스도의 평강 / 23년 11월 12일 일요일(요약) / 김보영 형제님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2-17, 개역한글)
3장 1절에도, 5절에도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에도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헤로 구원받은 성도가 성도의 신분에 맞는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 말씀은 영적인 것을 좇아서 살아야 함을 말씀했습니다. 성도는 세상적인 측면에서 삶의 목표가 있지 않고 하늘에 있음을 말씀했습니다. 두번째는 5-11절까지 성도가 가지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벗어버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12절 말씀부터는 "옷입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도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비는 남을 포용하는 마음입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앞에서 낮추는 것입니다. 온유는 사납지 않고 부드러운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래참음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옷입으라고 말씀합니다.
13절의 혐의라는 원어의 뜻은 비난하다, 다투다는 뜻이 있습니다. 용납은 자기를 자제하고 용서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가 어떠하든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 분을 내거나 복수하지 않고 은혜를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이렇게 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말씀하기를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용서는 너무나 놀랍니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사랑을 갖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심정에서 자기를 비난하고 해코지하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상대를 주님과 같은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면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자비와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사랑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온전하게 행하기 위해서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말씀합니다. 띠는 다른 것을 온전하게 고정해주지만 또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합니다.
또한 15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말씀합니다. 인간은 사실 평강을 가질 수 없는 자입니다. 평강은 전지전능하시고 무한한 사랑과 은혜가 있는 하나님만의 것입니다. 그 평강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을 끼치노니" 우리가 받은 평강은 다 한 사람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에게 끼쳐야 함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의무고 특권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평강은 자기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피자 서로 공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세상에서 가장 많은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사람에게 항상 평안이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 가진 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평강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최종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16절)
성도간에 이것을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볼때에 성경읽기 시간이 생각납니다. 교회 안에는 분명 말씀의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읽기 시간에는 주님께서 모든 형제에게 피차 가르치고 교제하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읽기 시간에 절대 참여하십니다. 나의 작은 깨달음이 다른 형제에게 큰 깨달음이 되고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권면하고, 이것은 내가 깨달은 바를 행할 뿐만 아니라 또 이 말씀을 들은 형제들에게 권한다는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장이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절) 이는 갖가지 형태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중에 찬양과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이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7, 개역한글)
우리가 어떤 말을 할때도, 어떤 일을 할때도, 어떤 장소에 있을때도 우리는 변함없이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처럼,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주님이 행하신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더라도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좇아 주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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