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다니엘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다니엘 3장 19-23절

박이레 2023. 7. 12. 20:54

성경읽기 : 다니엘 3장 19-23절(요약)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낯빛을 변하고 명하여 이르되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배나 뜨겁게 하라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을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지라 하니
21 이 사람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질 때에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더라
(단3:19-23,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느부갓네살은 그 말대로 이 사람들에게 내립니다. 그러나 이 심판이 이 세 사람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9-23절까지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세 친구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극렬히 타는 풀무속으로 던져집니다.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이 세상의 거센 시험을 이겨내야 하는지 교훈받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세 친구들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고난당할 때에 함께 하심을 보게 됩니다. 풀무불에 세명을 던졌으나 결박당하지 않은 네사람이 다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보내사 세 친구를 보호하십니다.
또한 세 친구는 간신히 목숨이 건져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머리카락도 그슬리지 않고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완벽하게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처럼 신실한 사람이 돌에 맞아 죽는 상황을 허용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를 맞이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일어나셨고 하늘을 열어서 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을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스데반처럼 순교할지라도 그의 순교로 교회의 간증을 보이며 그를 직접 맞으시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19절에 보시면 느부갓네살왕이 잔뜩 화가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직장 상사가 아닌 왕입니다. 그리고 온 세계를 재패하고 있는 나라의 왕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던 왕입니다. 그런데 그 왕에게 절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절하겠다고 하는 신념을 유지했을 때,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이 이렇게 화를 낼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을 지켰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9:10, 개역한글)

이것은 우리가 암송하는 말씀입니다. 경외한다는 뜻은 공경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 할 것인지,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작은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선택하지만 큰 문제에 있어서는 세상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 친구들과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과연 그렇게 할수 있을까, 하는 교제를 지난주에도 했었지만 하나님을 선택해야 함이 자명함을 보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세 친구들은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떨어졌는데 풀무불에 결박되지 않는 네 사람이 다니게 됩니다.(25절) 그들은 결박되었지만 풀무불에 떨어지는 순간 그 밧줄들은 다 타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불은 단련함, 시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23:10,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불에 들어가지 않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불에 들어갈 지라도 불 속에서 구원을 해주시는 분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일4:4, 개역한글)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개역한글)

왕의 명령을 불순종했을때 세 친구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맹렬히 타는 풀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느부갓네살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실지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아니실지라도 순종하였습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벧후2:9, 개역한글)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1:7, 개역한글)

만일 세 친구들이 금신상에게 절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거니는 영광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며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의 간증을 보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지난 시간 제가 교제하지 못한 부분을 교제하겠습니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3:17-18, 개역한글)

17절 말씀은 우리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지만 소망이 이 땅에 있습니다. 이 곤란에서 건져내시리라 했지만, 이것은 우리들이 항상 바라는 이 세상 가운데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18절의 "그리아니하실지라도"는 자신들의 죽음은 성도의 죽음으로서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며 내세의 구원이 있음을 믿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는 이 세친구들의 소망이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또한 소망이 하늘에 있습니다. 교회의 소망은 세상의 소망과 다릅니다. 교회의 소망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저희들도 이 세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풀부물에 던져질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곤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것을 참고 인내하며 하늘을 소망하는 것이 세 친구들의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세 친구들은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이 세 친구들의 소망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고, 또한 이 세 친구들의 믿음을 가지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19절에서는 풀무의 뜨겁기가 7배나 뜨거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군대용사가 그들을 결박하고 각종 옷을 입은 상태로 그렇게 풀무불에 넣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많은 수단을 가지고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뜨겁게 할 수록 그들이 단련된 금처럼 나오는 것을 봅니다. 용사들이 그들을 붇잡았을지라도 이 사람들에게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러가지 옷들을 입은 채 던져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들이 움직이는데 또한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거치게 될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며, 또한 나타낼 수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하고 동행하는 가운데 더 빛나는 믿음을 나타낼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윤철 형제님께서도 교제해 주셨는데요. 신약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생각하게 됩니다. 각자 다른 고난이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제일 먼저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증거자로서 살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순교했습니다. 요한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그는 홀로 유배되어 자포자기할 수 있었지만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가 요한계시록을 씁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다 고난이 있지만 놀라운 증거를 걸출하게 남겼음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저희들에게 큰 위로와 교훈으로 다가온다고 생각되어집니다.

- 김보영 형제님 : 느부갓네살왕에 의해서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불속으로 이 세사람이 던져집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불 가운데서 전혀 해를 입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의 믿음을 인해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불 가운데서도 구원하실 수 있고 물 가운데서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출애굽 사건의 생각하면 뒤에는 애굽군대, 앞에는 홍해바다 있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전능의 하나님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신약에서도 여러가지 주님으로부터 온 이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도요한이 끓는 불가마에 던져졌어도 해를 입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이들이 중요한 능력을 힘입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걷는 주님을 보고 베드로가 자기도 걷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베드로도 바다 위를 걸었지만 풍랑을 보고 두려워하자 빠져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을 결정할 때에 주님 말씀에 입각해서 믿음으로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19-23절까지의 말씀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결국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로 떨어집니다. 그들은 17-18절에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17절의 이 능히 건져내시겠다는 간증이나 믿음이 주님께서 풀무에 던져지게 하지 않을수 있다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18절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 믿음을 버리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많은 시험이나 고난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 친구들처럼 시험이나 고난을 피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가운데서 건져내실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와 비슷한 일로 나사로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오셨습니다. 그의 동생들은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보이십니다.
저의 삶 가운데서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주님께서 저희를 도우시지 않아도 주님의 뜻 가운데서 저희를 이끄시는 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세 친구들이 결박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의 삶에서도 저희가 어찌할 수도 없는 결박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주어질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또한 친히 불 가운데로 다니게 하심을 보게 됩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단3:15, 개역한글)

느부갓네살은 15절에서 당당히 말했지만, 느부갓네살왕은 결국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이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의 말에 굴복하였다면 그들은 풀무에 던져지지 않았겠지만 하나님께서 높여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친구들의 믿음으로 인해서 그들도 보호받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졌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카질라 형제님 : 3장 19절 이하의 말씀에서 몇가지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느부갓네살왕은 크게 분노합니다. 그래서 풀무를 7배로 뜨겁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에도 이 세사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권능으로 이 세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어떠한 불도 이 세사람을 해하지 못했습니다.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사43:2-3, 개역한글)

신약에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유대인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읽을수 있습니다.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 (눅23:5, 개역한글)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막15:14, 개역한글)

우리가 믿는 순간 세상과의 대치선이 그어지게 되었습니다. 악한 자, 사단은 항상 우리를 대적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고통, 괴로움을 줍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16:33, 개역한글)

우리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것이니 우리는 평안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삶에서 위기와 시험에 직면하게 될때에 우리 주님의 승리를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