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최재홍 형제님(요약)

아브람과 사래와 하갈을 교정하시는 하나님

박이레 2023. 2. 26. 12:46

< 아브람과 사래와 하갈을 교정하시는 하나님 > 23년 2월 26일 일요일(요약2) / 최재홍 형제님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년 후이었더라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8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찌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창16:1-16, 개역한글)

오늘 아브람과 사래, 하갈에 대해서 교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많은 자손을 주실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지만 먼저 믿음이 약해진 쪽은 사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사래가 인간적인 능력으로 아이를 갖기가 불가능해질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래는 자기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자기의 여종과 동침하라고 합니다. 이런 방법들은 고대 중동의 풍속을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아브람은 이 부분에서 가정에서 책임을 가지고 인도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도 동일하게 아담이 하와의 말을 듣고 인도하지 못하고 인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편은 가정의 머리로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남편에 있음을 우리가 아담의 사건을 통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하갈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면, 기근 때에 아브람이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때 아내를 자기의 누이라 속이고 바로에게 빼앗겼다가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다시 돌려받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에 바로가 많은 재물과 노비를 아브람에게 주는데 그 가운데 하갈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근으로 인해 아브람이 실수한 일은 지금도 이어져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갈은 임신하고 그 여주인을 멸시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자, 아브람은 사래에게 하갈을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갈을 취했을 때, 그는 암묵적으로 그의 아내가 된 것이지만 하갈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사래의 학대를 받은 하갈은 도망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납니다. 그때에 하갈은 곧바로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봅니다. 아마도 그는 아브람과 사래의 장막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녀는 다시 애굽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다시 아브람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에게 "사래의 여종"이라고 말씀합니다. 하갈은 자기의 본분을 잊었기에 하나님은 이것을 지적하셔서 말씀하십니다. 하갈에게 여주인에게로 다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갈의 입장에서는 학대를 받다가 도망했는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순종하라는 말을 듣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갈이 아브람과 사래에게 방치되고 학대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지켜보시고 계셨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의 뜻에 없던 것이었지만 또한 하갈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에게 또한 약속하십니다. 그 자손이 번성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갈은 하나님을 만났던 우물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람이 자기를 버렸을 때에도 자기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떄문에 하갈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에게 다시 돌아가서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을 분명히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 또한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시작은 잘못되었을지라도 그들은 다시 올바르게 순조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았을때 그 이름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스마엘이라고 하고 또 그 아이를 '하갈의 아이'라고 합니다. 사래는 하갈이 낳은 아이로 자기의 아이로 하려 했지만 그것은 진행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하갈의 아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희가 살아가면서 많은 실수도 하고 말씀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능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의 노력으로는 지 변화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할때에, 시작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영적으로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는 삶을 살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상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