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열왕기하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열왕기하 20장 12-15절

박이레 2022. 11. 16. 21:01

성경읽기 : 열왕기하 20장 12-15절(요약)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라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왕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15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왕하20:12-15, 개역한글)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오늘은 히스기야가 병이 나은 후에 바벨론에서 온 사자에게 모든 왕궁의 내탕고를 보인것에 대해서 이사야에게 책망을 듣고 여호와에께서 히스기야의 후손의 때에 어떠한 일이 있을지를 말씀하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12-15절까지 우선 교제를 나누고 그 이후에 시간이 남으면 계속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12-15절까지가 바벨론의 사절단을 맞이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왕하20:12, 개역한글)

12절의 말씀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39장에도 거의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브로닥발라단은 반앗수르의 정책을 폈던 바벨론의 왕입니다. 그는 앗수르에 대해서 세번의 반역을 일으켰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사야에서는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모든것을 알고도 왜 예물을 보내고 편지를 썼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유다와 동맹을 얻기 위해서 사자를 보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히스기야의 병을 회복을 기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유다의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피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국가 간의 영원한 적이나 영원한 동맹은 없습니다. 그럴때에 히스기야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임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히스기야가 그 사자를 보고 기뻐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도 바벨론의 동맹제안을 기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왕하20:15, 개역한글)

이사야는 바벨론의 내막을 예상했지만 히스기야는 그에대한 경계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쟁에 이긴것은 여호와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히스기야는 그 전쟁을 자신의 능력으로 이긴 것처럼 생각하고 교만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유다가 바벨론의 속국이 될 것임을 예언 받습니다.
우리가 우리집에 손님이 올때에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야 할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에서 사자가 왔을때에 그는 여호와를 소개하지 않고 자신의 보물을 자랑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이러한 어리석음을 보고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증거해야 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32:31, 개역한글)

바벨론은 하나님의 이적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 이적은 해 그림자를 10도를 물러가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기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
(대하32:22-23, 개역한글)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며 (대하32:27, 개역한글)

앗수르가 물러간 후에 여러 나라에서 사절단이 방문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의 부와 영광이 극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절단에 궁의 내탕고를 다 보이는 잘못을 범하고 맙니다. 그는 교만에 빠졌고 이 일은 즉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찐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왕하20:17-19, 개역한글)

저는 19절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나라가 미래에 망할것을 들었는데 태평하게 대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주석서에서는 겸손하게 그 심판을 받아들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뉘우쳤다면 하나님 앞에 자기의 잘못을 실토하고 기도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히스기야에게 있어서 거의 마지막 시험인것 같습니다. 여기서 히스기야의 실패를 보게 됩니다. 그는 산헤립의 편지를 여호와 앞에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화친의 편지가 예물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아시는 것과 같이 앗수르와 가까운 나라가 아니고 바벨론은 비교적 먼 나라입니다. 멀리서 왔기에 그 먼 나라가 우리에게 무슨 큰 영향을 주겠는가, 하고 간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들을 나쁘게 말하고 대적하고 완고한 세상 가운데서는 쉽게 그것이 사단으로부터 오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굉장히 따뜻하고 위로의 말고 편안한 위치와 유혹, 그런 관계가 더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생각할때 스바여왕과 굉장히 큰 비교가 되었습니다. 스바여왕도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려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예루살렘이 어떻게 운영되고 성전의 계단을 받을때에 그녀의 정신은 현황하였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자신의 내탕고를 다 보여준 것은 그의 교만에서 나온 일이었습니다.

윤철 형제님이 교제해주신 대로 해 그림자가 10도를 물러간 것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점성술에 능통한 그들은 이 일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도 모임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날때에 그것을 주목하고 찾아올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왕하20:15, 개역한글)

이것은 '나의 내탕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는 그것이 '나의 내탕고'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교만함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 김보영 형제님 : 히스기야가 또 다른 시험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
(대하32:22-23, 개역한글)

하나님이 높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서 보면 그는 교만해 졌습니다.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
(대하32:25-26, 개역한글)

정말 빠르게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것 같습니다. 백성들도 함께 회개했다고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며 (대하32:27, 개역한글)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32:31, 개역한글)

바벨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것은 해시계도 있겠지만 앗수르 군사 18만 5천을 하나님이 하룻밤 사이에 죽인 사건을 궁금해 했을 것입니다. 바벨론은 앗수르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강력한 앗수르를 무찌른 것은 그들에게 관심의 대상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사동맹을 맺고자 하고 왔는데, 그때에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유다의 모든 보물뿐 아니라 군사기밀까지 다 보여주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셨는데 자신이 모든것을 이룬것으로 착각하고 잘못을 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것이 성취가 됩니다.
이와같은 것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이 됐다고 생각할때 항상 조심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평안하다, 잘된다 할때에 조심해야 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 대에는 징벌을 하지 않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아들 때에는 히스기야에게 전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지은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물론 구약과 신약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며 죄에 대해서 심판하실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불순종한 것을 나의 대가 아니라 그 자식 대에서라도 징벌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세상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겸손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 개역한글)

- 장승훈 형제님 : 히스기야가 바벨론왕 부로닥발라단이 왔을때에 했던 행동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16절 이하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얼핏보면 먼 나라에서 왔고 자신이 가진것을 보여줬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일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교훈으로 얻게 됩니다.

18장을 보면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왕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앗수르의 요구를 히스기야는 다 줍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물러갑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전체적인 하나님의 평가는 앗수르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가 유다에서 어떤 선한 일을 했었는지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19장에서 하나님께서 그 이후에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군사 18만 5천을 다 죽이셨습니다.  

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
(대하32:22-23, 개역한글)

다 내어주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금은보화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해시계가 10도를 물러간 사건이 다른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나아오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나의 내탕고'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수 있듯이 히스기야가 교만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7: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귀한 것들을 돼지 앞에 던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훗날 그들에게 굉장한 위협이 되고 그의 후손들은 굉장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자랑을 했습니다.

이사야가 세가지 질문을 합니다. 1. 이 사람이 어디서 왔습니까? 2. 무슨 질문을 하였습니까? 그러나 히스기야는 어디서 왔는지만 대답합니다. 그들이 멀리서 왔기에 큰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질문은 3. 왕국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사실대로 대답합니다. 그의 교만이 얼마나 컸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대하32:25, 개역한글)

마지막으로 보물고의 금, 은을 보여줍니다. 금과 은은 저희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을, 주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을 생각할때에 저희들이 주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귀한것을 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내보이는 것이 얼마나 허비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히스기야 때에 임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가 행한 선한 일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히스기야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것은 저희들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히스기야가 실패했을때를 보면 그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기적으로 회복된 후입니다. 저희 생각대로 하자면 더욱 겸손하게 주님을 섬길것이기에 실패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적으로 굳건한 성도라도 결코 그 삶에서 실패가 없을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내탕고를 모두 보였을때 이사야가 와서 꾸짖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바벨론의 사자들이 와도 그들이 자신을 공격할수 없을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사야는 20장에서 히스기야가 죽을것을 전하고 히스기야가 다시 살것을 말하고 또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전하며 꾸짓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때에 자신의 생각을 넣지않고 두려움 없이 그대로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지만 저희들의 상태는 계속해서 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꾸짓음이 되기도 합니다. 저희들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서 저희에게 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달라짐을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