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 자녀 양육 : 그 문제의 핵심, 마음을 지키라 > 2019년 / 글렌 베이커 형제님
다시한번 여러 성도님들을 뵙게 되어 반갑게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결혼과 가정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시간에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 첫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두번째 관련된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시간 말씀드린 것에 대해서 짧게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얻는것이 왜 중요한 문제인지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모든 문제의 핵심은 바로 마음의 문제라고 대답해 드렸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의 마음의 그 내적인 문제를 다뤄준다면, 우리가 단지 자녀의 그 외적인 문제만을 수박 겉핡기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때에 우리는 그의 마음을 얻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의 마음을 가지고, 또 그것을 지키는것이 왜 중요한지를 그 이유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의 마음을 어떤 사람이 가지든지간에, 또는 어떤 물건이 그것을 가지든지 간에 그가 여러분의 자녀의 충성과 삶을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간은 관련된 두번째 시간인데요. 시작하기에 앞서 예레미야 17장 9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극장에서, 또는 tv드라마에서,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철학이 있습니다. 그 텔레비전 강단에서, 또한 여러가지 인터넷에서 이 철학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철학이 참으로 많은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것을 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에게 다가 와서 이 주제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철학을 따라 가다가 얻게 된 나쁜 열매들을 그들이 어떻게 다시 제거해 낼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2019년 올해, 1-3달, 3개월에 거쳐서 그러한 기간 동안에 세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러한 주제로, 이 세상 철학이 그들의 삶에서 만들어 낸 나쁜 열매들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에게 물으며 나아왔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러면 그 세상 철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 철학, 그 사람들의 많은 삶을 망쳐 놓은 그 철학은 '여러분의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해라.'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마음이 정말로 원하는것은 무엇이냐?" "너의 마음이 이끄는대로 가는것이 정답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철학들을 만나게 될때,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서 성경은 과연 이 문제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살펴보고 그것과 비교해서 확인해 봐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세상 철학들은 참으로 우리 마음 속에 그것이 참으로 맞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십지어 오늘날 기독교적인 영화에서도 '너의 마음을 따라가라'는 주제가 말해지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을 단지 받아들이거나, 단지 믿는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확인해 보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 마음에 대해서 과연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는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고 것짓된 것이 마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 질문은 그렇게 부패하고 거짓된 마음을 왜 사람들은 쫓아가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거짓된 것을 왜 우리는 따라가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잠언 18장 2절에서 또한 이 말씀을 찾아보게 됩니다. 이것은 또한 그 사람의 마음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하나님께서는 단지 자신의 의사를 드러 내기만을 하는, 자신의 마음만 나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그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두번째 시간에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은 단지 따라가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는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에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는것이 세상적으로는 아주 아름다운 철학처럼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으로 지지받는 철학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첫번째 예로 에덴동산의 하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와도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5-17).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명확 했습니다.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이제 사단이 뱀의 모습으로 그 동산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하와에게 다가가서, 그는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견고한 반석 위에 서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제 하와가 서 있는 그 견고한 지지대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를 쉽게 유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단이 맨 처음으로 공격한 것은 바로 하와가 서있는 지지대,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합니다. 그가 바로 그가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하시더냐?" 그리고 사단의 그와같은 공격은 성공했고, 이제 하와는 그 견고한 지지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사단은 그를 유혹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눈을 사용해서 나무를 보게 만듭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이 구절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탐스러운 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단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 사단은 하와의 마음을 지금 집중하고 있습니다. 잠깐 여기서 이 이야기를 멈추겠습니다. 여기서 하와의 마음은 그녀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녀의 마음은 그녀에게 '그 실과를 먹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와에게 '그 실과는 너를 지혜롭게 할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와의 마음은 그녀에게 '네가 지금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하와에게 이제 '그 실과는 너에게 하나님과 같은 그 지혜를 너에게 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은 지혜를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단은 그 불화살을 바로 하와의 마음을 과녁으로 하여 정확하게 명중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하와의 마음 속에 그녀 자신에게 말했던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이것을 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하와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하와가 그녀의 마음을 따라서 그 실과를 따 먹을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실과를 먹지말라는 그 말씀을 따를 것인가? 그래서 그녀는 이와 같이 마음을 따를 것인지, 하나님을 따를 것인지 이 선택에 직면하게 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이 되었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하와는 그녀의 마음을 따르기로 선택했고 우리는 6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죄의 결과를 치루고 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따랐기 때문에, 그리고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사망이 그로 말이암아 이 세상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계속 보게 될 때 ,우리는 또 다른 예를 찾아보게 됩니다.
여기 호렙산에 서게되는 80살이 되는 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또한 떨기나무 앞에 선 사람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그는 그것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은 그가 누구인지 아실 것입니다. 그는 모세 입니다. 모세가 그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장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이제오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리니 이로서 내가 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가리라."
"이러므로 이제 오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고 너로 하여금 내 백성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게 하리라."하시니라."(출 3:10,킹제임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개역한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제 애굽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모세의 마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모세는 그곳에 가기가 굉장히 두려워 했습니다. 제가 모세라 했을지라도 저도 굉장히 두려워 했을것 같습니다. 모세의 마음은 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다른 방향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3장 11절에서 이렇게 답변하면서 대답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모세는 3장 후반에서, 또한 그 다음 장에 이어서 계속 해서 그는 갈수 없다고 변명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뭘 말하고 있습니까? 그의 마음은 "너는 애굽에 가기 싫어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가라고 하십니다. 이제 모세는 떨기나무 앞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마음이 말하는것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따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모세는 자신의 마음이 말하고 있는 바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그의 마음을 따라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바로 모세가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기 때문에, 그 후 모세의 40년의 생애는 이제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이번 시간에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다은 예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삼손의 예' 입니다. 삼손의 생애는 방황하는 삶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도 방황했고 그는 그의 마음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의 삶의 결말을 보게 될 때에, 우리는 그의 삶의 결말이 의미가 있고 그 목적을 이룬 삶이라고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삶이 공허하고 허망한 그의 삶의 결과를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왜냐하면 그는 계속 방황하는 그 자신의 마음을 따라 다녔기 때문입니다.
여기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요나'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할 것을 말씀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의 마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습니까? 요나의 마음은 니느웨에 가기 싫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신에 요나의 마음은 욥바로 내려가라고 말했습니다. 요나 역시 이제 이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 직면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마음이 말하는것을 따라갈 것인가? 그들 중에 어떤 것을 그는 선택했습니까? 여러분은 그 결말이 어떤 지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의 마음을 따라갔고, 그는 결국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만약 그가 그 마음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 따라갔다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복종해서, 그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면, 그는 바로 그 순간부터 영원의 관점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그 일을 통해서 그 마음을 따라가지 말아야 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을 굉장히 어려운 경험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요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악한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에 대해서 요나는 굉장히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 요나의 마음이 정말 합당한 마음이었습니까?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게 따라가고 있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주고 있는 메세지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고있는 메세지는 전혀 다른 두 방향의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말씀을 다른 두가지 버전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 완전히 상반된 두가지 메세지를 여러분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마음이 말하고 있는 것과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따르는 그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훨씬 나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는 구약시대에 있어서 항상 적용되는 원리 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러분과 저희에게 적용되는 원리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가지 tv와 또한 영화에서, 또한 드라마에서, 이와같은 철학을 선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 마음이 그 원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러한 문구들이 세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메세지입니다. "너의 마음을 따라가라." "너의 마음이 너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너의 마음에 진실되게 행동하라." "너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라." 아마도 여러분은 이러한 문구들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또한 비슷한 문구들이 세상에서 선언되고 있습니다.
여기 또한 암논이라는 한가지 예를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도 역시 이제 그의 마음을 따를 것인가, 하는 선택에 기로에 직면합니다. 아니면 레위기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을 따를 것인가를 선택해야 됩니다. 암논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혹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것인가, 아니면 그의 마음을 따를것인가, 선택하게 됩니다. 먼저 암논은 조금 주저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암논에게는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는 이제 잘못된 것을 행하도록 그룰 부추겨 줍니다. 그의 마음을 따르도록 부추긴 것입니다. 그의 그 부추기는 것을 사무엘하 13장 3절에서 이렇게 보게 됩니다.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저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삼하 13:3).
그 암논에게 친구가 있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암논의 친구가 바로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암논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도록 부추긴 친구였습니다. 이 모든 예들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것인가, 선택해야 되는 기로에 직면한 사라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그런 예일 것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예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것은 다윗왕의 예 이고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 7:2).
다윗왕은 자신이 백향목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집에 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단에게 말했고 그는 "좋은 생각입니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도 다윗의 마음에 소원하는 바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나단 선지자도 이 세상에서 그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있는 동일한 철학을 그댈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하십시요."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삼하 7:3).
그 선지자는 단지 "왕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행하소서" 라고 말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여기에 아주 중요한 표현을 더해서 말합니다.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영어 성경도, 우리말도 "주께서 왕과 함께 계시 오니"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단 선지자가 말한 것은 다윗왕의 마음 속에 있던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일치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지만 선지자 나단은 그가 틀렸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이 다음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다윗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것이 악한 마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소원 자체에는 악한것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나중에 그러한 성전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솔로몬, 그 다윗의 아들이 결국에 그 성전을 짓게 되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좋은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상 8장에 보면 솔로몬이 그 성전을 봉헌해 드릴 때에 한 말과 기도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 아버지의 마음의 진정성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왕상 8:17-18).
이 다윗왕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한 것이 악한 마음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마음의 자체에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있엇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데 있어서 뭔가 다른 의도로 하고자 했던 것입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윗은 그의 마음이, 동기가 진실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에 대해서 선지자 나단에게 그것은 잘한 것이라고 승인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단 선지자가 "그 마음에 뜻한 대로 하십시요."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제 선지자 나단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나단에게 명하셔서 바로 돌아가서 다윗에게 말하라고 명령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마음에 있는 것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의 동기가 순수한 것이었지만, 그리고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것이 그 자체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의 마음과 동기가 순전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젼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역대상 17장 4절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보게 됩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대상 17:4).
여러분은 이 다윗이 이때 왕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될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는 그 성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여기 전혀 문제가 없잖아? 라고 그 자신도 평가할 수 있는 그런 결과 입니다. 그렇게 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지 그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말하는 것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것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무슨 교훈을 받게 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좋은 뜻과 순수한 동기로 하고자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에 우리가 이것을 확인해야 되는 한 원리가 잠언 3장 5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 네 모든 길에서 그 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 분께서 네 행로를 인도하시리라."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모든 길에서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들을 지도하시리라."(잠 3:5-6,킹제임스).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개역한글).
"네 모든 길에서" 내 동기와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그것과 상관 없이, 여전히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도록 내어드려야 됩니다. 다윗의 경험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다윗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되서 나는 어떠한 잘못된 것도 발견할 수 없지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따라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단지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모든 좋은 소원과 모든 좋은 동기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저와 제 아내는 바로 이러한 점에 대해서 한가지 경험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심 사역을 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저와 제 아내가 마음에 소원을 두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던 그 소원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소원의 동기 역시도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알고 있는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선한 소원과 또한 좋은 동기가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전심 사역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삶에 대해서 인도하실 것을 기다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에 이것을 말씀해 주시도록 우리는 기다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경험을 했던 그 기간들을 되돌아 볼때에, 그리고 나중에 주님을 위한 전심사역자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에,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우리의 마음을 따라서 이것을 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결정의 순간을 되돌아 봤을 대에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 인도를 하셨다고 마음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다윗은 나쁜 소원과 나쁜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뜻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항상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를, 우리의 항상의 기도로 삼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제 아내와 저는 이 전심 사역의 길로 들어설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 저는 이제 수영장을 청소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문제는 이제 하나님을 조그만한 상자에 자꾸 담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 제가 가지고 있던 태도는 만약 이러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저러한 일을 하신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것인지를 알겠습니다. 라는 태도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이러한 일을 깨닫게 된 것은 저는 제가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이렇게 하십시요, 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어떠한 방식으로 대답하셔야 된다고 자꾸 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왜 하나님이 대답하셔야 한다고 그 이유를 제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에게 언제 이 대답을 해 주십시요, 라고 명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하는 시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저에게 .보여 주실 것을 믿고, 온전히 다 내려 놓아야만 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저는 완전히 그 모든 것을 다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일어났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고객 중의 한명의 수영장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평안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말씀을 해 주실것을, 그리고 무슨 말씀을 해주실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스윙 풀을 청소한 후에 트럭에 앉아서 고속도로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화를 받자, 상대방 저의 공급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저에게 말하기를 "저는 당신이 운영하고 있는 그 사업체를 팔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여러분이 집을 내놓지 않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여러분의 집에 노크를 하고 들어와서 "이 집 팔려고 내놨지 않았나요?" 라고 물은 것 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그 집에 대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내와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지금 이 집을 팔 것인가, 아닌가를 생각하고 있던 때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문자적으로 그때 경험하게 되는 당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수영장 청소하는 사업을 판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수영장 사업을 하는 다른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전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말이라든지, 광고를 전혀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전심 사역을 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사업을 팔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수영장 청소하는 사업을 10년 동안 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전화를 받기 직전에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맏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실제로 그러한 가운데 평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전화가 왔고, "당신의 사업체를 팔기를 원합니까?"라고 묻는 전화가 왔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굉장히 특별한 상황이지만, 이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확정짓는 증거가, 그것만으로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우리에게 단지 환경으로만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확정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30장 21절에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이키든 왼쪽으로 돌이키든 네 뒤에서 나는 말을 네 귀가 들을터인즉 이르기를 이것이 길이니 너희는 이 길로 걸으라 하리로다"
"네 귀가 네 뒤에서 말을 들으리니 말하기를 "이것이 길이니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든지 왼쪽으로 돌든지 너희는 그 길로 걸으라." 할 것이요,"(사 30:21,킹제임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사 30:21,개역한글).
"이것이 길이니 너희는 그 길로 걸으라"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되며, 우리의 마음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의 세번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우리가 따라가야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마음의 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자녀의 마음은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활동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잠언 4장 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옴이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호하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 안에 들어와서는 안되는 것이 들어오지 않도록 그것을 보호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올해 초반부에 저에게 상담을 하러왔던 그 세명 중에 한명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저에게 의논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그 상담자에 대해서 바로 이 원리를 말하고 이 원리대로 따를것을 조언해줄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문제가 바로 이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것이며 이제 이 말씀을 통해서 이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이 온전히 보호되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마음은 그 사람이 따라가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음은 우리가 지켜야 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 것입니다. 저는 우리 바닥에 있는 카펫에 한 원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원 안에 마음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키십시요."라고 말해줬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이도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리고 그 단순한 원리가 자신의 보호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시야로 살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잠언 23장 7절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 마음 속으로 생각 하듯이 실제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하지 아니하느니라"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하지 아니함이라"(잠 23:7).
그 마음이 생각하는바가 바로 그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생각과 그의 감정이 함께 가고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우리는 이것과 관련해서 각 개인의 영적인 양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어떤 것을 섭취하는가가 이제 그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는지를 결정 합니다. 창세기 6장 5절에서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함께 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또한 행동하고 있는 것들이 그들의 영혼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취하는 영적인 음식들이 이 세상에서는 온전히 다 악한 것들 뿐이었을 상태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창세기 6장 5절에서 보게 되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이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악한 소원이 이제 그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을 만들게 하고, 악한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시대에 그 사람들이 취했던 영적인 양식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또한 그 사람들을 더욱 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홍수로 내릴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의 마음은 또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우리의 신념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경우에 이 예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니엘서 1장 8절은 이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이 정해준 음식이나 왕이 마신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겠다고 마음 속에 작정하였으므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내시들의 통치자들에게 요청하니"
"그러나 다니엘은 그가 왕의 음식으로나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하지 않으리라고 마음에 결심하고 내시 장관에게 요청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하였더라."(단 1:8,킹제임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개역한글).
제가 이 구절을 통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니엘의 작정은, 다니엘의 확신은 바로 그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작정과 결단이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 이유의 하나를 우리는 지난시간에 살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마음이나 여러분의 자녀의 마음을 누가 가지던지 바로 그 사람이 여러분의 삶과 충성을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과 충성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확신과 결단이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결정이 된다면, 단지 우리의 마음이 말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저는 이와 같은 다음 질문을 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왜 저는 이것이 잘못됐다고 알고 있는 것을 자꾸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와 같은 질문의 대답은 단순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잘못됐다고 단지 그들의 머리속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 속에 작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작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해서 잘못된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심을 머리 속에 하고 마음 속에 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것이 잘못 됐다고 아는 것이 우리를 죄에서 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작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40장 8절에서는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8).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우리 마음 속에 있어야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이 매일의 삶에서 우리의 봉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엡 6:5-6).
하나님의 뜻을 마음으로부터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 마음(선한 뜻-킹제임스)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엡 6:7).
(에베소서 6:7)
우리가 주께 하듯 봉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가 하고 있는 일 만을 바라보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내가 그 일을 완수할때, 내가 어떤 태도로 하고 있는 지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순종에 대해서 가르칠때, 세가지 중요 요소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세가지는 순종하라, 그리고 즉시하고 그리고 웃으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가지 요소 중에 웃으면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바로 순종할 때에 태도를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저는 제 자녀들에게 이 쓰레기 봉지를 버리거나 방 청소를 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물론 이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쁜 태도로 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모가 요구한 그 일을 완수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만약 자녀가 그것을 나쁜 태도로 한다면, 그들의 섬김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순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그 마음의 태도 입니다. 만약 자녀들이 그 일을 나쁜 태도로 완수한다면, 이 자녀들은 그 일을 다시하고 다시하고 다시하라고 요구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들이 바른 태도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기 전까지 그 일을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 단지우리가 하는 일만을 보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길 때에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섬김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과 저의 자녀들의 마음은 우리의 예배와 찬양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그들이 겉으로는 아주 놀라운 찬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하는 기도는 아주 영적으로 들렸습니다. 그 기도는 참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는 기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런 활동에 마음이 부족한 것을 지적하십니다. 이사야서 29장 13절을 인용하셔서 바리새인들이 하는 그 일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막 7:6).
그 마음이 내게서 멀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따라가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마음을 지키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봉사의 중요한 요소 입니다. 그리고 예배가 나오는 그 샘물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구절에서 이 마음이 예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시 9:1).(시편 9:1).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시 33:21).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서 동굴로 피신해 들어갈 때에 그는 이와 같은 찬양을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시 57:7).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의 마음이 중요한 것은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의 말씀을두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여러분의 머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있다면 그 말씀은 여러분의 삶에 더욱 강력하게 역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계명이 어떻게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잠 3:1).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잠 4: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은 우리 마음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과 그냥 단지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무언가를 두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이나 어떤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기도하시기를 원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인들은 나중에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그러한 마음 가운데 기도했을 때에, 참으로 그 갑자기 마음 속에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 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기도를 했던 그 사람들이 그 순간에 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받은 그런 메세지가 단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 두가지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마음 속에서 그냥 일어난, 생각난 것들은 그냥 굉장히 거짓된 마음으로부터 나온 메세지 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말씀하신 메세지는 거짓을 말씀하실수 없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두신 것인지, 아니면 마음 속에서 그냥 일어난 것인지를 비교할 때에, 그 속이는 마음에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를 이렇게 비교해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온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할 때에 여러분은 그 차이를 알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는 것이 중요한 이유 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어떠한 말씀이 생각날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다른 말씀과 비교해서 그 말씀을 확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마지막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마음의 자리가 우리 삶 가운데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는 마음을 따라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최종적인 권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최종적인 권위이며, 우리의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관련해서 우리 마음을 인도하는 것으로 바라 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도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고 우리의 마음은 첫번째가 아닌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시 119:133).
내가 내 마음을 따라간다면, 그렇다면 불법이 나를 지배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이 나를 보호할 수 있습니까? 그러한 보호는 우리가 주의 말씀 안에서 내 발걸음을 옮길 때에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먼저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그 말씀을 복종하는 자리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3-4).
여기서 흥미로운 것을 한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많은 자를 보내고 이모티콘을 보내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모티콘을 여기에 두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이와 같은 이모티콘을 두셨습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5).
여기에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쳐서 그것은 제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궁극적인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여러가지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결정을 해야되는 순간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결정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이런 결정들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결정하게 되는 모든 결정은 내 자신의 인격과 성품을 결정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성품이라고 하는 그 건축물의 여러분의 하는 한 결정이 그 벽돌을 쌓아올리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결정하는 그 하나의 결정마다 하나의 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이건, 작은 문제이건 간에 상관없이 다 여러분의 성품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결정들이 여러분의 성품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이 질서를, 이 순서를 아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제일 먼저 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 그 마음으로 이제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여러분의 성품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벽으로 결정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우리는 히브리서 1장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것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지금 시간상 그것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 성품과 관련되서 여러분은 마포모임 집회의 녹음 파일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그 벽이 우리의 성품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은 열심을 다해 지켜지게 되는것입니다. 그 잠언 말씀처럼 말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이 마음은 보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그냥 세상 철학이 말하는 대로 아무것이나 들어와도록 노출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마음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손상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이제 그들의 삶에 인도자로 맨 앞 전방에 둔다면,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했을 때에 그 마음은 가장 손상받기 쉬운 자리에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마음은 맨 앞자리가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을 닮은 성품 안에서, 벽 가운데 보호되어야 있어야 되는 것이 마음의 자리인 것입니다.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시 25:21).
여기서 계속해서 성품에 관련된 순전함, 곧바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잠 11:3).
""의로운 사람은 자기의 성실함으로 행하고, 그의 후손들은 그로 인하여 복을 받느니라."(잠 20:7,킹제임스).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잠 20:7,개역한글).
그리고 이제 마음과 관련된 마지막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은 이 질서와 이 순서와 관련해서 뒤죽박죽 순서를 바꿔버립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마음을 가장 맨 앞에 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이 그 마음에 복종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그 마음의 인도에 따라서 결정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이 그들 마음 속에 악한것들이 일어나는대로, 모든 악한 생각의 종이 되는 이유 입니다. 그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의 모든 상상이 모두 악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이 생각은 악한 것을 따라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서 결정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정은 그들의 성품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슬픈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 상황 가운데 가장 마지막 바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최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거짓된 마음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뒤로 밀쳐버리는 가운데에 행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이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이는 삶의 문제들이 거기서 나옴이라."(잠 4:23,킹제임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개역한글).
주님께서 이 말씀들을 사용하셔서 우리 모두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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