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언 : 성전보다 더 큰 이 >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41-42).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5-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마 12:14).
이것을 본문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마태복음 12장이 이 복음서의 전환점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바로 이 시점까지 주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 나라에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을 거절하는것이 명백해 졌습니다. 우리가 방금 14절 말씀처럼 바리새인들이 어떻게하면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처음으로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24절에서 바리새인들은 또한 주님의 그런 사역을 바알세불을 힘입고 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을 죽이고자 하는 그 계획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율법에 유능한 사람들이 주님께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그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분이 정말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위대한 분인가?' 소위 지혜로운 사람들이 우리 주님에게서 어떤 위대한 점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은 그분이 분명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의 배경이 이러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특별히 우리 주님의 위대하심에 대해서, 더 크심에 대해서 세번에 거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찬송을 부르며 또한 말씀을 통해 주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하였습니다. 참으로 꿀보다 단,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다우신 그분을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 장에서는 세 영역에 거쳐서 더 크신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는 "성저보다 더 큰 이"십니다. 그리고 41절에서는 "요나보다 더 큰 이" 이십니다. 그리고42절에서는 "솔로몬보다 더 큰 이" 이십니다. 우리는 이 세가지를 합쳐서 볼때에 종합적으로 주님을 말하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성전은 우리에게 구약에서의 제사장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한 요나는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물론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이 세가지, 구약성경의 위대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 선지자, 그리고 왕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장에서 이 세가지의 모든 총체이신 주님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제사장보다 그 희생제물보다 더 크신 이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말씀에 있어서 어떤 선지자보다 더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위엄에 있어서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우리는 이 세가지 중에 첫번째 것을 좀더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굉장히 강력한 발언이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헤롯성전보다 더 큰것은 없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 그 아름다운 건물보다 더 크다고 하신것은 참으로 강력한 발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발언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더 조사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성전보다 더 큰 이신 것입니까? 제가 다섯가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대의 성전은 이제 하나님의 임재를 사람들에게로 모셔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성전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제 땅에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멀리 계시는 어떤 하나님이실뿐만 아니라 이제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성경에 이러한 질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같이 어느 이방 나라 중에 그렇게 하나님께서 가까이하신 나라가 있느냐?" 그것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어느나라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거하셨고, 그리고 보다 더 영속적인 방법으로 성전에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거하신다고 하는것은 기이한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이것보다 더 기이한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사람들에게 오신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그 사람이신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신것은 이 인류의 역사상 없었던 것입니다. 고대의 하나님께서 성전에 거하신 것은 이제 하나님의 처소라고 불리웠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이땅에 계셨을때는 단지 하나님의 처소라고 불리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육하신 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지 건물안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체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 건물은 손이 없습니다. 그 건물은 발이 없습니다. 그 건물은 자지 않습니다. 건물은 울지도 못합니다. 그 건물은 배고플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이 모든것들을 다 가졌었습니다. 참으로 그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어느때보다도 더 가깝게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성전보다 더 큰 이신 것입니다.
제가 두번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닌다. 이 성전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가깝게 다가오시는 장소일뿐만 아니라 이제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장소 입니다. 이 땅 가운데에 피가 뿌려지고 피를 흘리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희생제사가 하나님을 만족케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사람들의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것이 성전을 굉장히 특별한 장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희생제사를 근거로 사람들과 만나실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희생보다 더 뛰어난 제물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가장 뛰어난 속죄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분의 속죄제사는 짐승의 피로 드리신 것이 아니고 자신의 피로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속죄제사는 하나님을 단지 1년 동안만 만족시켜 드린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성전에서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희생제사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만족시킨 것입닌다. 참으로 이것은 믿기힘든 발언이지만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전보다 더 큰 이셨습니다.
세번째 이유를 보겠습니다. 고대의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기를 원할때 그들은 성전을 향하여 기도드렸습니다. 우리는 다니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되어 갔을때도 그는 성전을 향하여 난 창을 열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솔로몬이 바라였던 그 기도의 방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고난의 때에, 그들이 포로가 되었을때에 바로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한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우리는 또한 지난 집회에서 주님께서 이 성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집은 모든 이방의 기도하는 집이거늘" 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성전보다 더 큰 이 이신 구세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전을 향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건물을 향하여 기도하기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알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고대의 성전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고리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그 연결고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래서 참으로 그분은 '성전보다 더 큰 이' 라는 말씀이 옳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임재케하신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만드신 속죄제사로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가능케 한 기도로 말미암아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왜 주님이 성전보다 더 큰 이신지 빠르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대에 성전은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위대한 건물에 모여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 건물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을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 서로를 만나게 됩니다. 참으로 그 장소에서 그들은 수직적으로 교제를 나누며 또한 수평적으로 교제를 나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그러한 집합의 중심은 어디인 것입니까? 우리의 집합의 중심은 건물 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예루살렘도 아닙니다. 마가라는 어떤 장소 입니까? 누가 우리를 이곳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서로를 만나게 하는 그 장소가 어디 입니까? 성경이 말하기를 바로 그분께 성도들이 모일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이 세상의 수많은 믿는 자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모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건물로 모이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조직체계로 모이고 있지도 않습니다. 어떤 이 땅에 있는 본부에 모이고 있는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한 인격에 모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보다 더 큰 이라는 것이 분명한 진리인 것입니다.
제가 다섯번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성전에 고대에는 사람들이 찬송을 하기위해 몰려 왔습니다. 그들의 예물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들이 가져온 그 제물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 흠향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우리의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습니까?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영적예배를 드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에서는 그런것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런것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찬양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큰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주 멋진 돌과 금으로 된 건물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뛰어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이것은 과장해서 말하는 그런 발언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전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이 다섯가지 그 이유를 생각할때, 여기 또 다른것들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진리인 그 발언 입니다. 참으로 어떠한 의심의 그늘의 여지도 없는 진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전에 기억한 이 영광스러운 주님은 그 헤롯성전의 그 영광스러운 건축물보다 더 큰 이신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그러한것은 어떤것도, 어떠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분앞에 어떠한 선임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후계자도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그 뛰어나심은 어느 누구도 비교할수 없는 뛰어나심인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그분을 더 큰이신, 그 위대하신 분으로 오늘 오전에 기억한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더 큰 특권인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님의 보배로운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면서 모인 특권의 시간에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신, 그분의 영원하신 영광을 바라보고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한 그분께서 이 땅 가운데에 참으로 겸손히 낮아지셔서 가지고 오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분이 죄 없는 삶 가운데서 자라나신것을 보며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당하신 그 슬픔을 바라보며 감사를 드립니다. 슬픔의 사람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나이다. 참으로 우리가 이분께 감사를 가지고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비어있는 그 무덤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제 살아계신 우리의 구세주를 바라 봅니다. 그 높아지신 우리 주님을 또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 아버지 우편에 그 위대하신 분을 바라보며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 제사장으로서 그 위대하심을 바라보았나이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 그분이 가져오실 그 위대한 나라를 바라보며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가시 면류관을 쓰신 구세주께서 이제 곧 영광의 면류관을 쓰실 그 날을 바라보며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주님께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또한 우리 주님께서 오실것을 바라 봅니다. 참 우리가 주님을 그 얼굴을 맏대고 바라볼 그날까지 우리를 충성되이 보존하여 주시기를 또한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누릴 이 특권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주일에 다른 집회들을 또한 의탁을 드립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주님의 축복을 구하게 되옵니다. 이 건물에 모이고 있는 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주님께 의탁을 드립니다. 참으로 주님의 백성들에게 계속적으로 복을 내려주시길 원하옵나이다. 이 모임을 기억합니다. 또한 이 아침에 참석한 여러 가정들을 또한 의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 각각을 주님께 의탁을 드립니다. 그 각각의 성도님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남아있는 집회들을 우리 주님께 의탁을 드리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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