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롯 성전 2. 초막절에 성전에 오신 예수님 > 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
우리는 지난시간부터 헤롯성전에 관련하여 성전을 상고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분이 열두살 되던 해에 사람들과 함께 성전에 계셨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당시에 학생이었던 주님께서는 이제 교사로 성전에 나타나십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을 지난 시간에 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요한복음 7장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요 7:1-2).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4-17).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39).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요 8:1-3).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요 8:20-21).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0-32).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요 8:52).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요 8:59).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9:1, 개역한글)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7).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요 9:35-38).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 10:22-30).
제가 이 성전과 관련되서 세가지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그림은 단지 성전만이 아니고 성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플렛폼까지 포함하고 있는 그림 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는 예루살렘 성을 보여주고 있고요. 이 부분이 이 왼편에 있는 성전 플랫폼을 포함한 그림 입니다. 그래서 첫번째가 이 성전 자체를 말하고 있고요. 그리고 두번째가 이 성전 플랫폼을 포함한 그림 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우리가 보게되는 것이 이 예루살렘 성에서 이 성전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헤롯이 만든 그 위대한 건축물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헤롯은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헤롯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에서의 후손입니다. 그는 기원전 36년도에 이 보좌에 올랐습니다. 그것외에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말미암아 그는 유대인들에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헤롯이 이것을 통해서 인기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일환으로 그는 이 큰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일을 하는 동시에 그는 로마 황제와 좋은 관계를 맺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성전을 지으면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에 노력 했으며, 또 몇가지 포인트에서 로마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공학자이기도 하며 또한 정치가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 플랫폼을 144스퀘어미터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성전을 다시 건축한다고 할때에 유대인들은 그것에 대해서 많이 의심하였습니다. 그 유대인들의 역사 가운데 우리는 5가지 성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첫번째가 우리가 지난 집회에서 살펴 보았는데요. 그것은 솔로몬 성전입니다. 두번째가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에스라서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솔로몬 성전은 열왕기상, 하에서 보게 됩니다. 헤롯성전은 세번째 성전입니다. 그것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네번째가 그것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는데요,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건축하는 성전 입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번째, 마지막 성전은 에스겔 성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에스겔서 40-48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 다섯가지 성전을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것을 유대인들 자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그들에게 첫번째 성전입니다. 그들은 이 두번째와 세번째 성전을 묶어서 두번째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오늘날 유대인들은 세번째 성전을 건축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자신이 새로운 성전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주의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이 스룹바벨 성전을 계승하는것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헤롯이 그와같은 행동을 하는것에 대해서 굉장히 의혹의 눈길로 쳐다보았습니다. 기원전 22년도에 헤롯은 이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기원전 37년도에 그가 왕위에 올랐고 그는 기원전 22년도에 새로운 성전 건축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먼저 그는 스룹바벨 성전을 완전히 무너뜨린 다음에 새로운 성전을 만들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그가 스룹바벨 성전을 완전히 무너뜨린 다음에 그 다음에 건축할수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당신이 그렇게 성전을 만들고 싶다면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따로 준비해 놓고 그 다음에 스룹바벨 성전을 무너뜨릴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약 3년 동안에 그는 수천의 작업자들을 가지고 그 재료들을 모두 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3년후, 기원전 19년도에 이 헤롯성전 건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건축물은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오직 제사장들만 이 안에서 일을 할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특별히 훈련받은 천명의 제사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돌을 다듬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약 1년 반후에 그들은 이 건축물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것은 전에 있었던 어떤 건축물보다도 더 크고 훌륭하게 건축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 본 건물을 건축한 후에 그들은 이제 그것을 확장하여 외곽부분을 공사를 하였습니다. 이 성전 외곽뜰을 확장하는 공사는 많은 횟수가 걸렸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유대인들이 주님께 "이 건물은 46년동안 건축되었거늘"이라는 말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외곽부분의 공사를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가운데 부분은 단지 18개월이 걸렸지만 이 외곽부분은 40년 넘게 공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건축물은 1세기 경에,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건축물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큰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여러분은 이 건축물의 전면이 모두 금으로 싸여져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다른 돌들은 반짝이는 대리석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냥 눈으로 봤을때 눈을 부시게 만드는 빛을 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크고 아름다웠지만 또한 분주한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적어도 60명의 제사장들이 매일매일 번갈아가면서 그들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일은 아침 3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이 그림에서 몇가지 부분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난시간에는 이 스크린 뒤에 있는 그림을 보여드렸는데요. 오늘은 새로운 그림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그림은 이 뒤에있는 그림보다 잘 그려진 것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그러지 못한점이 있습니다. 이 뒤에 있던 그림은 예루살렘에서 제작된 그림입니다. 하지만 이 두번째 그림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가지 상세한 부분에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면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루살렘에 가게 된다면 '성전 연구소'라는 곳을 보게 됩니다. 이 성전 연구소라는 곳을 가게 된다면 성전안에 필요한 기구들을 그들은 이미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세번째 성전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이슬람 사원의 돔이 언젠가는 제거되고 거기에 새로운 성전이 건축되고 그때 필요한 제사장 의복과 기구들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던 그 그림이 그 성전 연구소에서 제작한 그림 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오늘날에도 예루살렘에 갔을때에 이 부분에서 그 계곡 밑으로 큰 돌이 뭍혀져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 돌은 이 정도 크기가 되는 크기 입니다. 그리고 그 돌에 아주 흥미로운 기록들이 적혀져 있습니다. '이것은 그 나팔소리가 불리는 장소를 위한 돌이다.' 그리고 그 돌들 밑에 보면 계곡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그곳에 있진 않았습니다. 그 돌은 이 벽의 이쪽 코너에 있었던 돌인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제사장은 아침마다 여기 서서 쳐다보게 됩니다. 그는 이제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그 날의 첫 여명이 뜨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돌 위에서 그 여명이 뜨는순간 그는 나팔을 크게 붑니다. 그것은 어떨때는 아침 3시에 될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던 그 제사장이 트럼펫 소리를 들었을때 그는 이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린다면 그 날의 여러가지 사업이나, 여러가지 성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신호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서 들어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사장에게 조언을 듣기위해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기도하고 찬양을 드리기 위해 들어옵니다. 이와같이 수천의 사람들이 매일과 같이 이곳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제가 오늘 우리가 상고해 보고자 하는것이 어떤 점에서 지난시간에 했던것과 다른지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각 복음서가 다른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성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부분과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에서 성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 언급한 것을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그 성전안에 있는 충성된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누가복음 3장을 보게 될때에, 우리는 여기서 흥미로운 것을 보게 됩니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 3:1-2).
우리는 이 목록에서 일곱명의 유명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헤롯과 같은 사람입니다. 가이사 같은 사람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같은 사람입니다. 그 제사장들, 안나스, 가야바 입니다. 아주 권력이 있고 영향력이 많은 일곱명의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이 두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장과 2장 전체에 거쳐서 우리는 일곱명의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 1장과 2장에 나와있는 일곱명의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도 아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많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충성되고 영적인 사람들 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단지 두 구절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두장 전체에 거쳐서 기록하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곱명의 충성된 사람들이 성전에서 하고있는 일은 하나님의 눈에는 세상의 유명한 일곱명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그 일곱명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입니다. 요셉과 마리아 입니다. 시므온과 안나 입니다. 그리고 침례요한 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든 부부 입니다. 그들은 결혼한지 오래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늙은 연령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들이라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이든 부부가 행하는 일에 대해서, 그 기여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젊은 부부도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입니다. 그리고 과부 안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시므온에 대해서 그가 결혼했는지, 안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론 침례요한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부, 그리고 독신인 사람들, 그리고 젊은 부부, 그리고 나이든 부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명의 사람들이 한 일에 대해서는 아주 주의깊게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요한복음에 오게 될때에 우리는 성전과 관련되서 전혀 다른 각도에서 말하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한은 성전에 대해서 기록할때에 성전과 관련된 절기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성전에 충성된 사람들, 요한은 성전의 절기들에 대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이 성전은 매일과 같이 아주 붐비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붐비는 시점은, 그 유대인의 달력에서 그들의 절기 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안식일 역시 바쁜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빠르게 언급하는것을 잘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유월절에 그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에서는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리고 7장부터 9장은 초막절 입니다. 그리고 10장은 수전절 입니다. 이 절기들은 모두 유대인의 성전과 관련되서 아주 중요한 시점 입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이 유월절은 구속과 관련된 날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안식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초막절은 특별히 저희가 오늘 이 시간에 더 말씀을 드리겠는데요, 그것은 기쁨과 관련된 날입니다. 이 수전절과 관련되서 간략한 설명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110년 전에 안티오쿠스, 잔혹한 왕에 의해서 그 성전이 더럽혀진 적이 있습니다. 안티오쿠스, 그의 이름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이름의 의미가 '하나님이 증명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는 완전히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제단에 돼지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3년동안 그렇게 성전을 완전히 더럽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3년후에 이 성전이 다시 드려진 것입니다. 그 수전절에 모든것이 다시 새롭게 깨끗하게 되고 드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전과 관련되서, 구속이며, 안식이며, 또한 기쁨이며,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이 네번에 거쳐서 이 성전을 방문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구속을 가져다주는 분으로 가르쳐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참된 안식을 가져오는 분이다. 그분이 큰 기쁨을 가져오시는 분이다. 그리고 바로 그분이 완전히 새롭게 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날 우리 자신이 이 네가지 위대한 일에 증인인 것입니다. 우리의 성전은 건축물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전은 바로 그리스도 그분 자신인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속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에 안식을 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변화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이 성전에 들어온 사람들이 나갈때에 그들은 이제 어떤면에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물론 항상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 당시에 사람들은 여기 와서 단지 외형적인 제사를 드리고 같은 그 모습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참된 성전이신 그리스도께 나올때에 우리는 완전히 변화된 다른 사람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아주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20-2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자기 육체를 가리켜 성전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우리 주님의 육체가 성전인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점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장소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만나는 그러한 장소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들은 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를 그 그리스도의 육체 가운데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초막절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7-9장에 거쳐서 많은 분량에 우리 주님께서 초막절에 성전을 방문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절기 가운데서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초막절은 굉장히 중요한 절기 입니다. 실제로 유대인의 절기는 가장 마지막의 것입니다. 그것또한 가장길게 이어지는 절기 입니다. 그것은 8일동안 지속하게 됩니다. 7일을 그 절기를 지내고 또 마지막을 특별하게 기념합니다. 여러가지 기쁨 가운데서 찬송하고 또한 춤추고, 활발하게, 생명력이 있는 절기입니다. 이 초막절과 관련해서 유대인들이 행하는 두가지 특별한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것을 유대인들의 유전이라고 말한 이유는 구약 성경에 그것과 관련되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막절과 관련되서 세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의 일을 다시 상기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두번째로 그것은 예언적인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그것은 또한 미래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번째로 영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집회를 마치기 전에 이것과 관련되서 영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두가지 유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번째는 그들은 물을 길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그들은 등대를,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어떤일이 일어났느냐면 7일간 초막절 기간동안에 이 물과 관련된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물을 제사장은 그 물을 가지고 특별히 이 수문을 통과해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성전을 나와 이 길을 통과해서 계단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는 이제 이 성전 밖으로 나와서 이 긴 길을 따라 실로암 못까지 가게 됩니다. 그는 은그릇을 가지고 쭉 걸어나와서 실로암 못에서 물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이 그 물을 가지고 올라가게 될때 그를 뒤쫓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단에 도착했을때 그는 실로암 못에서 뜬 물을 붓게 됩니다. 그가 이제 제단을 한바퀴 돈 다음에 그는 물을 붓게되고 이제 그를 따르는 행렬이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절기 매일과 같이 행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번씩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곱번째 날에는 이 제단을 일곱번 돌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가장 큰 찬송이 올려지게 됩니다. 랍비들이 그것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이 예루살렘 전체에 그 공기가 기쁨의 소리로 가득찼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바로 이 물을 붓는 행사가 초막절에 있었던 가장 큰 행사중에 하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 행사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한 일을 돌아보게 하는것입니다. 바로 특별한 물이 그들이 광야를 통과할때 계속 따라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초막절에 그들은 나뭇가지로 텐트를 만들어서 그 안에 거하곤 하였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떤 유대인들은 이 초막절에 텐트를 만들어서 거기 거하기도 합니다. 이 텐트는 임시적인 거할 곳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집, 옥상에 그렇게 만들어 놓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것 역시 그들이 광야에서 나그네로 살았던 것을 다시 회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때, 광야를 통과할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물을 그들에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행사는 이 역사적인 관점에서 중요하였습니다. 또한 예언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어떤날이 되면 예루살렘에 특별한 강이 흐를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큰 도시들은 그 안에 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대에서도 마찮가지 입니다. 로마에서도 티베랴강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유브라데스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는 나일강이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에도 마찮가지 입니다. 런던에 텐즈강이 있습니다. 서울도 마찮가지 입니다. 한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도시에 강이 없는 것입니다. 그 예루살렘에 아주 신기하게도 강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하기를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감람산이 두개로 나눠지고 거기서 강이 흘러서 이제 지중해로 흘러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물을 붓는 행사는 미래의 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대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선하심에 대해서 그들은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동시에 미래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실 그 날을 바라보며 그들은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물을 붓는것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7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을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초막절에 가운데 명절 중간에 들어가셨습니다. 첫째날에 물 붓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날에도 있었습니다. 세번째 날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번째 날에도 있었습니다. 다섯번째 날에도 있었습니다. 여섯번째 날도, 일곱번째 날도, 그리고 일곱번째 날에는 그들은 물을 가지고 일곱번 제단을 돌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뻐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것이 조용해지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앉아서 교사로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일어나시고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라고 외치셨습니다.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른것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그것은 새로운 강이었습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흘렀던 그 강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래에 있을 그 강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강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을 믿는 자마다 그가 성령을 부으심 받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주님 자신이 바로 그 강을 공급하실 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때 생겨나는 의문은 이것입니다. 그 초막에 거했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계속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 영원히 살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광야 입니다. 이 광야라는 세상 가운데 우리를 만족시킬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과 부와 명예, 그런것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다 높은 교육, 그리고 정치권력, 그리고 돈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이 근대적인 사회에서 말입니다. 많은 편리한 것들이 제공되고 여가 생활이 제공되는 사회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목말라 있습니다. 그들이 어디서 만족을 얻을수 있겠습니까? 그 인간의, 가장 깊은곳에서 나오는 그 갈급함을 무엇이 만족시킬수 있겠습니까? 주 예수로부터 받게 되는 그 구원의 강, 그 성령의 강만이 우리를 만족시킬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잠시 모든 믿는 자들이 받게 되는 그 성령의 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거룩하게 하고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이 집회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의 그 영혼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독교라는 것은 외향적인 어떤 규칙을 잘 따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는것이 참된 믿는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의 인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다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버드에서 아주 유능한 전문가, 어떤 학신이 많은 사람을 모셔서 우리가 하는 집회를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전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똑똑한 그런 학식있는 사람이라 할찌라도 우리가 말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아주 총명한 두뇌가 없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분에게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없기 때문에 이 영적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분이 주실 이 성령님의 선물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한잔에 해당하는 그 정도 양의 성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 성령의 작은 물줄기를 말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어떤 한 강을 말하고 있는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하는 것은 믿는 자의 배에서 풍성하게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각각의 믿는 자들은 제한없는 그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각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말이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의 도덕 기준이 이제 어떤 것보다도 높은 기준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성정에 대해서 여러분은 보다 더 합당하게 조정할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담지 감정에 이끌려 휩싸이지 않게 됩니다. 저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감정에 이끌려서 행동하는 것들을 볼때에 놀라게 됩니다. 주일에 아주 기쁘게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월요일에 만나보면 웅얼웅얼 거리며 점점 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수요일에는 말도 하고싶어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강이 그 배에서 흘러나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오늘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삶에 대해서 만족하고 계십니까? 저는 이 가운데 우리 중에 어떤 분들은 그 만족하는 기준이 굉장히 낮아져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단지 이것은 우리를 만족시킬분만 아니라 이런 만족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 나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께서 단지 우리 안에 들어오셨을뿐 아니라 이제 강 같이 그것이 흘러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란 단지 축복을 받아들이는 그릇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 축복을 흘러내는 터널과 같은 존재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자신이 기쁨에 가득찬 그리스도인이 되는것 뿐만 아니라 이제 주님께 유용하게 사용될수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주제가 요한복음 전체에 거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시간에 그것을 다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요한복음 4장의 그 말씀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우물가에 앉은 여인에게 주님께서는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같은 말씀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물을 받아 마시는 자마다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이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솟아나는 샘물'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7장에서는 '흘러나가는 강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부분 모두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4장에서는 예배와 관련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솟아나는 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분께 아버지로서 예배를 드린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님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7장에서는 주제가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며 밖으로 내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주목하게 되는것은 4장이 먼저있고 7장이 그 다음이라는 것입니다. 예배가 먼저고 그리고 간증하고 증거하고 봉사하는 것은 그 다음인 것입니다. 제가 이 물을 부어드리는 행사와 관련되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약성경은 말하기를 우리 마음속에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의 가장 깊은 개인의 인격 안에 성령께서 그를 건드리신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안으로부터 주시는 능력으로 밖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종교는 단지 밖의 형식들을 따르는 것이고 그리고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 초막절에 사람들이 행하는 물을 붓는 행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교훈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다시한번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초막절과 관련된 질문은 이것에 답변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광야를 통과하게 하여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가? 그 광야는 물이 없는 곳이고 이제 그 광야를 생존해서 나가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특별한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고있는 나그네들 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떤것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이 세상 가운데서 절대로 어떤것도 그 안에 있는 영혼을 만족시키는 것을 발견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온전히 만족 시키는 생수의 강을 주셔서 이 광야에서 살아가며 또한 만족하며 목적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빠르게 그 두번째 유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등대의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뜰에 네개의 큰 등대가 있었습니다. 그 각각의 등잔은 25m정도 되는 높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등잔에 꼭대기에는 네개의 등이 있었습니다. 이제 제사장 중에 젊은 사람이, 새로 제사장이 된 사람이 그들이 첫번째로 맡는 임무는 그들이 사다리를 올라가서 이 등잔에다가 오일을 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4겔론이나 되는 기름통을 들고 높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또한 제사장들이 입었던 옷, 낡아서 더이상 입지 않는 옷을 또한 들고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제사장의 옷이 꼬여서 그 등잔을 밝히는 심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막절의 그 7일동안 밤에 이 네개의 거대한 등잔은 불을 밝히고 있게 됩니다. 그리고 기록되기를 그 등잔에서 나오는 빛이 예루살렘 성 전체를 환하게 비췄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거대한 등잔이 예루살렘 전역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밤새워서 기뻐하며 그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등잔은 첫째날에도 밝히고 두번째 날에도, 세번째 날에도, 네번째 날, 다섯번째 날, 여섯번째 날, 일곱번째 날, 그리고 그 불을 끄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그리고 요한복음 8장에서 "그 다음날"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날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그 큰 등잔을 보았을때 더이상 불이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8장 12절에서는 주님께서는 이 놀라운 선언을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모든 빛이 꺼지고 캄캄한 가운데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큰 등잔의 빛을 이 성전의 빛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등잔의 빛이 이 성의 빛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등잔의 빛은 꺼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성전의 빛이다, 라고 말씀하신것도 아니고, 나는 이 도시의 빛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나는 이 세상의 빛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역사적인 면, 영적인 면, 또한 미래적인 면을 빠르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등잔 역시 과거를 조망하게 됩니다. 다시한번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하던 때 입니다. 그때 당시에 그들은 특별한 빛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름으로 광야를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떤 그늘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막의 방향을 지시해주는 그런 지시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길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네개의 등잔이 그 역사적인 사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미래의 어느날 예루살렘은 다시한번 그 영광의 구름이 그 위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내게의 등잔은, 미래에 그 영광의 구름이 다시 올 날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일어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당신들은 더 이상 그 미래의 구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내가 바로 그 영광의 구름이며 그 구름기둥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얼마나 놀라운 그런 발언이었을까요? 우리는 인간으로서 두개의 큰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한가지는 우리 영혼의 죽음 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강을 주십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우리 마음의 어두운 곳 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세상의 빛을 주십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8장에서 여러가지 것에서 주님께서 이 빛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선 죄사함과 관련해서 이 빛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돌에 맞아 죽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유에 관련된 빛 입니다. 아들이 자유케하면 참으로 너희가 자유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하는 빛을 주십니다. 어떻게 아버지를 알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미래와 관련된 빛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믿는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이와같이 주님께서 가르치심 가운데 많은 빛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분은 밝게 빛나는 빛이었는데도,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볼수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제가 눈을 가리면 이 방에 어떤 빛이 있던지 저는 볼수 없습니다. 이 빛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빛이 있고, 또한 제가 그 빛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볼수있는 그 시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장 후반부에 사람들은 돌을 들어, 그 새로운 건축물이 만들어지고 있는데서 발견할수 있듯이 그 성전 주위에는 항상 그런 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돌을들어, 주님을 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강을 원하지도 않았고 그 빛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성전 밖으로 나가십니다. 성전에서 요한복음 8장 59절에 기록하기를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분께서 이 문을 나가실때 그분이 발견한 것은 무엇입니까? 소경되어, 날때부터 소경된 자가 앉아있는것을 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제 내가 생수의 강을 주리라, 내가 너희의 빛이다, 라고 말씀하셨을때, 성전에서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고 구세주께서는 성전을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소경되어 난 자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그에게 특별한 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실로암 못으로 보내십니다. 이제 그 사람은 이 길을 따라서 실로암 못으로 갔어야 합니다. 그것은 제사장들이 갔던 그 길입니다. 그 남자가 주님이 말하신 대로 행했을때 그는 눈을뜨게 됬고 생수를 얻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두가지가 주님께서 그 이스라엘의 민족에게 성전에서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나라 전체로서 그들은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성전을 나오셔서 이제 한 개인에게 그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마치면서, 제가 길게해서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아, 아직 시간이 다 되지는 않았네요.
주님께서는 여전히 지금도 물을 주시고 또한 빛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토록 그와같은 분입니다. 그 요한계시록 21장에 마지막 환상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 큰 성이 있는데 어떤 성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도시 전체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21장, 2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도시의 어떤 부분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고 그 도시 전역에 거쳐서 임재해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예수께서 그 도시의 빛이라는 것을, 등대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보좌로부터,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수정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영원토록 생수의 강을 발견할수 있으며 그분께서 영원토록 빛이라는 것을 볼때에 참으로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들은 돌을들어 주님을 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9장 마지막 장에서는 그 소경되어 난 자가 시력과 물을 얻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동일하게 하나님께 우리 주세주로 말미암아 우리가 참된 만족의 생명수를 얻었고 참된 빛을 얻었음에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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