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열왕기상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열왕기상 15장 33-34절, 16장 1-7절

박이레 2024. 7. 1. 20:57
성경읽기 : 열왕기상 15장 33-34절, 16장 1-7절(요약)
 
33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 사년을 치리하니라
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왕상15:33-34, 개역한글)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가라사대
2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저희 죄로 나의 노를 격동하였은즉
3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4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
5 바아사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6 바아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디르사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엘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7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 임하사 바아사와 그 집을 꾸짖으심은 저가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그 손의 소위로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며 또 그 집을 쳤음이더라
(왕상16:1-7, 개역한글)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 사년을 치리하니라 (왕상15:33,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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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아사는 24년이라는 삶을 왕으로서 통치했는데 그 내용이 없다. 그의 소개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했다는 것과 그의 결과만을 얘기하고 그가 무슨 통치를 했느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삶이 얼마나 가치 없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북이스라엘은 새로운 왕을 세웠지만 그 왕도 조금도 그 악에서 변화가 없었다. 곧, 정치적인 변화가 영적인 변화나 신앙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영적인 것이 먼저임을 생각해 본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 모두 똑같이 선지자를 보내심을 보게된다. 더 많은 활동을 했던 선지자들은 주로 북이스라엘이다. 영적으로 더 패역했던 북이스라엘에서 선지자들의 활동이 두드려졌던것을 생각해 볼때 하나님께서 더 큰 죄인이 돌이키기를 은혜를 베풀며 기다리고 계심에 감사가 되었다.
 
열왕기상의 역사를 볼때에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실패를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의 실패는 아니다.
바아사는 변함없이 여로보암의 길로 갔다. 그 길은 필멸의 길이었다. 우리의 삶도 그 길의 끝이 주님인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길의 끝이 주님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의미없는 것이 될까.
 
Q. 바아사가 저주받은것이 왜 여로보암의 집을 친것이 이유가 되었을까? 여로보암은 우상숭배로 인해서 하나님께 그집이 멸망할것을 예언받았고 또 하나님은 말씀대로 하셨다. 그리고 그에 쓰임을 받은것이 바아사인데 하나님께서는 또 왜 바아사에게 저주를 내리셨는가 하는 의무이 있다.
 
A1. 여로보암과 나답, 바아사, 삼대왕의 공통점을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아사는 나답의 모든 가족을 다 죽였다. 그는 자기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서 여로보암의 모든 집 사람을 다 죽였다. 그러나 바아사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그 가족뿐만 아니라 그 친구들까지 다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자기 뜻대로 행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관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일을 인간이 막거나 피할수 없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일이면 반드시 성취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저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어느 때냐 곧 이제라 (왕상14:14, 개역한글)
 
바아사는 나답을 죽였을때 자기는 그런 참상을 당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모든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갈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바아사는 반역을 통해서, 칼을 통해서 왕이 되었다. 곧, 바아사는 나쁜 첫번째 전례를 범했다.
이스라엘 왕가의 왕은 자기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야 하며 또한 왕은 자기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바아사가 칼을 통해서 왕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통해서 자기가 왕이 된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이 세사람의 경우를 보면 칼로 왕위를 찬탈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왕위를 포기하는 행동과 다름없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모독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또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하는 행위다. 곧,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그 왕권을 포기한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왕이 세워진 경위를 보면 이스라엘이 이방처럼 자기들에게 왕이 있기를 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허락하셨지만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통치해야 함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때에 많은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우리또한 성도들의 왕은 우리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반드시 좇아야 한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며 우리의 마땅히 있어야할 위치이다.
 
A2. 바아사는 자신이 섬기던 왕을 배신했다. 한참 작전을 펼치던 중에 내부에서 왕을 배반하고 왕권을 탄찰했다. 그리고 자기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나단의 집을 모두 살육했다.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저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저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왕상15:27, 개역한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아사의 집을 완전히 심판하셨다. 그는 하나님 없이 행동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활용하셔서 하나님께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이루셨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하신 예언을 이루어지는데 그가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그 행동이 정당성을 얻을수 없다는 것을 알수없다. 그는 그의 욕심을 따라 행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왕상14:16, 개역한글)
 
여로보암의 죄의 핵심은 그만 범죄했을뿐 아니라 백성들로도 범죄게 한 것이다. 그리고 바아사도 여로보암과 동일한 길을 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으로 인한 판례를 만드셨고 그 판례대로 바아사에게 적용하셨다. 그래서 우리또한 하나님 앞에서 억울하다고 말할수 없는 것이다.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저희 죄로 나의 노를 격동하였은즉 (왕상16:2, 개역한글)
 
바아사가 그의 욕심대로 왕위를 찬탈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길을 갔다.
 
-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의 통치기간은 합해서 47년이다. 그 기간동안 우상숭배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동안에 백성들 또한 깨어있지 못하고 지도자의 길을 따라갔다.
지금의 모임들을 보면서 잘못된 통치자, 잘못된 인도자가 있을때 쉽게 사람들이 미혹되서 좇아가게 되는것을 보게된다.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 (왕상16:4,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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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저주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얼마나 모욕적인 것인지를 살피기를 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개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개에게 먹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보기 원한다.
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사용된다. 양치는 개는 사람을 도와주는 긍정적인 면으로 묘사가 된다. 그러한 의미로는 히브리어로 '갈렙'이다. 곧, 양치기 개가 가지고 있는 용맹함을 뜻한다.
그리고 보통의 성경에서 나오는 개는 야생의 길들여지지 않는개로 해석한다. 현대의 보통 개과의 동물들은 사람들에게 길들여졌지만 자칼이나 코요테는 야생동물이다. 여기서 성경에서 말하는 개는 자칼이나 코요테같은 사람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부정적이고 사악한 존재로 볼수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사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죽은사람의 시체를 개에게 먹게 하는것은 최악의 모욕인 것이다.
또한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는 내용이 있다. 성경에서 새 또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새는 영적인 것을 방해하는 존재로 의미된다. 이러한 구절들을 볼때에 바아사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생각할수 있다.
 
또한 바아사는 범죄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북방왕국의 왕가를 멸하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심판을 내리신 것으로도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