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와 복음의 차이 > 24년 5월 12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2:13-22, 개역한글)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눅5:39, 개역한글)
마가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된 종이신 주님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은 마태, 레위를 부르신 사건과 레위가 연회를 베풉니다. 그리고 세리와 죄인들이 오고 주님께서 함께 잡수십니다. 그리고 이어진 사건이 바리새인들이 왜 당신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혼인집에 있는 신랑을 언급하시고 새포도주와 새가죽 부대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세관에 앉은 레위를 보시고 나를 좇으라고 합니다. 앞에 읽은 말씀에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바로가 쉬이 보내주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모든것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레위는 자기의 모든것을 바로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연회를 베풀고 자기들의 동료들을 불러서 주님의 말씀을 듣게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은 자가 믿은 후에 어떤 삶을 사는가가 레위의 모습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앞에 나와서 묻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같이 먹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믿는 종교는 유대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지금 유대교와 복음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외모를 중시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18:11-12, 개역한글)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번 금식했습니다. 이는 대단한 일입니다. 하루만 금식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표면적으로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 나갈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죄인들 가운데 오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주님께서 죄인들에게 다가가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과 잡수신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면 대부분의 종교가 유대교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면 그 신이 알아줘서 내가 어떠한 수준에 이를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복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와같은 것들이 종교와 복음이 나타내는 큰 차이입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2:21-22, 개역한글)
이 '새'라는 것이 붙은것은 다 복음이고요. '낡은'이 붙은것은 다 유대교입니다. 종교입니다. 종교에 새로운 것을 가미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갈수 있느냐? 그렇게 될수 없다입니다. 복음도 복음답지 않게 되고 종교도 종교답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2:17, 개역한글)
이 말씀은 의인이 여기 있고, 죄인이 여기 있는데, 죄인만 부르러 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3:10-11, 개역한글)
의인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다라고 할 때에 의인은 누구일까요? 자기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임을 아는, 그리고 모든 사람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인은 누구입니까?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3:11, 개역한글)
하나님 앞에서 깨닫는 자도, 하나님을 찾는자도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고 싶다고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빛의 비췸을 받은 자들뿐입니다. 오늘날에는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비췸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죄인은 이와같이 말씀의 비췸을 받은 자들로 자기들이 죄인임을 안 사람들입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막2:18, 개역한글)
레위가 잔치를 베푼 날이, 하필이면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 날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예수님은 제자들과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었습니다. 그들은 전통을 중시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금식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대속죄일 단 하루만 금식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레16:31, 개역한글)
구약에 나오는 여러 금식들은, 말씀을 따라서 한 금식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상황이 너무 슬퍼서 차마 식사를 할수없어 한 금식입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교에서 하는 금식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식이 아니고 그들이 새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할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신랑이신데, 이 기쁜 때에 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가운데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금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괴운 가운데 금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어떠한 말씀을 순종한다는 생각으로 금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금식은 무엇입니까? 금식은 자신의 어떤 괴로운 상황 가운데서 먹지 않는것이 먹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때에 개인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강조한 것은 기도와 금식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는 금식은 지금 이슬람 신도들이 하는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 아닌, 자기들이 세운 전통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혹은 그냥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실지 모르겠지만 금식을 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면 그것은 잘못된 기도이며, 종교적인 기도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생베조각에 낡은 옷을 붙이는 자가 없습니다. 복음과 유대교는 결코 혼합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유일무이성을 여기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낡은것을 좋아합니다. 전통을 중시하고 규모를 중시합니다. 성경에 나온 진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행해온 오랜 전통, 규모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묵은 포도주를 더 원합니다. 새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전통을 좋아하고 복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복음이 종교와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대전 중구 모임(요약글) > 장승훈 형제님(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0) | 2024.06.23 |
---|---|
성도 : 은혜와 율법의 구분 (0) | 2024.05.26 |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실히 행하시는 주님 (0) | 2024.04.14 |
하나님의 참된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 (0) | 2024.04.14 |
주님께서 부르시는 사람의 특징 (0) | 2024.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