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3. 4. 12. 22:41

성경읽기 : 열왕기하 25장 18-26절(요약)

18 시위대 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19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내시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바 왕의 시종 다섯 사람과 국민을 초모하는 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바 국민 육십명이라
20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저희를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21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22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로 관할하게 하였더라
23 모든 군대 장관과 그 좇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로 방백을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 좇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 그달리야가 저희와 그 좇는 자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신복을 인하여 두려워 말고 이 땅에 거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25 칠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십인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저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26 대소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왕하25:18-26,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저희는 세번째로 느부갓네살왕을 배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4장 1절에 첫번째 배반이 있었고, 24장 끝 절에 두 번째 배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왕이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삼았는데 또 이스마엘이 그를 죽였습니다. 세 번째 배반입니다. 이 세 번의 배반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히 받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가 멸망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바벨론 사람들의 통치를 순히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동일하게 지금 저희들의 시대에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지침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18-21절까지 자유롭게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왕족에 대한 처형 이후에, 유다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처형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위대장은 바벨론왕에게 그들을 끌고가서  그곳에서 죽입니다. 왜 바벨론왕에게까지 끌고가서 죽였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24 시위대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25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바 왕의 시종 칠인과 국민을 초모하는 군대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바 국민 육십명이라
26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렘52:24-27, 개역한글)

이것은 그들이 시드기야로 하여금 반 바벨론 정책을 쓰도록 하고 친 애굽 정책을 쓰도록 추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신28:15, 개역한글)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곳에서 너와 네 열조의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신28:64, 개역한글)

하나님은 말씀으로 예언하시고 그것을 다 이루심을 보게 됩니다. 말씀의 불순종에 대한 결과가 이렇게 엄청난 것을 보게 됩니다.
저희가 현대를 살고 있지만 현대의 생각과 풍습에 저희 가치관을 두지 말고 말씀에 기준을 두어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는 이 시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시대에 나이가 든 사람은 요시아왕의 하나님을 향한 번영을 경험했을 것이고 또한 유다 제국의 파멸을 함께 경험하고 있습니다. 유아들은 바벨론에 끌려가고 70년을 포로 생활을 해야 하는 중첩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앞선 형제 자매님들은 우리 나라에서 많은 구원의 역사가 있는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구원의 역사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형제 자매님들은 이 가운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그 섬김을 지속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고 그 뜻을 이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70년이 지난 후에 고토로 돌아와서 다시 재건된 성전을 보고 나이든 사람들이 보고 그것을 보고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전이 다시 재건되었기도 하지만 과거의 무너진 솔로몬 성전의 위대함과 너무나 비교되는 초라한 성전의 모습을 보고 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도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어떠한 것을 보여주시든지 그것을 따라가는 삶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유다 총독으로 그달리야가 임명이 됩니다. 그는 사감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입니다. 아히감은 여선지자 훌다에게 간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고, 또한 거짓 서지자들과 맞서서 적극 예레미야를 변호해서 그의 죽음을 막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달리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크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달리야는 예레미야의 충고에 따라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살 길임을 굳게 믿고 예레미야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24절에 기록된 그달리야의 충고는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충고와 같습니다.  
전쟁에 지고 남은 자들은 바벨론에 반감이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달리야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과 그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21절) 이는 유다를 다스리는 사람이 더이상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이미 유다는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서 계속 교제하면서 보여지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패역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때에 회복을 목적으로 두고 하심을 또한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멸망한다고 하는 것은 큰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이사야서는 많은 부분에서 여호와의 초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인격에 대해서도 곳곳에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룰 구속 사역에 대해서 세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이룰 천년왕국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직접 영원한 왕으로 이 땅에 오실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닌 영적인 이스라엘을 품고 계셨습니다. 천년왕국에서 영적인 이스라엘을 함께 통치하는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은 주님의 섭리 안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는 사람의 뜻이나 행위로 무엇이든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멸망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21절에 유다가 사로잡혀서 본토에서 떠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꼐서는 창세기에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에 본토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땅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이었지만 불순종으로 인해서 그 땅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또다른 반역자인 이스마엘과 요하난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달리야를 죽이고 간 곳이 애굽이었습니다. 어느 한 무리는 바벨론으로 가게 되고, 어느 한 무리는 애굽으로 갑니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대하36:21, 개역한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늘 먼저 말씀하시고 그 말씀이 늘 이루어졌습니다. 솔로몬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대로 이루어졌고 젊은 하나님의 사람과, 아합과, 엘리야에게 미리 약속하신 약속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 연대기를 보게 될 때에 고레스왕이 조서를 내린게 bc560년 경입니다. 사울왕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가 bc1050년 경입니다. 460년의 나라의 기간이 있고 또 그 사이에 70년의 안식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안식년을 지켰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안식년을 지키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강제로라도 그 땅을 70년을 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은 것을 미뤄두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이루시고 갚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안식년에 대해서는 많은 교훈이 있기 때문에 형제 자매님들께서 묵상해 보실 때에 많은 교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2절에서 바벨론왕이 그달리야를 유다땅의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는 먼저 교제되었습니다. 그달리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소리를 지지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베냐민땅 미스바에 자리를 잡아서 다스렸습니다.
25절에 보면 잠시동안 안정이 있었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이스마엘에 의해서 그 안정은 깨어집니다. 예레미야 40장에 보면 이스마엘을 암몬 자손의 왕이 그를 선동해서 그렇게 했다는 내용이 있지만 그것은 변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적인 이유는 이스마엘이 왕족이었는데 왕족이 아닌 그달리야가 총독이 된 것이 불만이어서 이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이을 저지른 후에 이스마엘과 그를 따른 사람들은 애굽으로 내려가는데,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달리야가 맹세합니다. 이 맹세하다는 단어는 원어적으로 일곱번 되풀이하며 맹세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저한 이행을 전제로 하는 맹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이러한 맹세를 이행하지 않고 배반하여 그달리야를 죽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유다가 멸망한 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70년의 포로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다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달리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그를 총독으로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왕족 이스마엘은 상황을 분변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왕족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그달리야를 민족의 배반자로 몰아서 죽였습니다. 통치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망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힘이 없었기에 그 자리를 마음대로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달리야가 신임하고 있는 요하난은 군대 고문으로 일하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스마엘이 거짓 충성하기에 믿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만 그달리야는 그 경고를 믿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결국 그는 살해 당했습니다.
그달리야를 죽인 이스마멜은 에돔으로 쫓겨가고 국민들은 다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결코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얘기했지만 그들은 그 말을 무시하고 예레미야 선지자, 바룩 선지자까지 함께 애굽으로 데리고 가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벼운 멍에는 피하고 사단이 주는 죄와 사망을 연결하는 무거운 멍에를 지기를 자처했던 것입니다.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은 강제로 끌려갔지만 그들은 스스로 사단의 회가 있는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 선택이 어떤 것인가를 보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