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덕언 말씀

덕언 : 사단의 세가지 시험을 이기신 주님 / 한봉래bro

박이레 2023. 3. 8. 12:46

덕언 말씀 : 사단의 세가지 시험을 이기신 주님 / 23년 3월 5일 일요일 / 한봉래 형제님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눅 4:1-13).

주님께서 시험 받으신 세가지 시험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첫번째 시험 내용은 주님이 40일간 굶주리셨는데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시험입니다. 우선 이 시험은 우리에게는 시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돌을 떡으로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에게만 시험입니다. 주님은 돌을 떡으로 만들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시험에 대답하시면 주님은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내용이고요. 그 다음에 이 시험에 문제가 되는 것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으라고 하는 건데요. 주님은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주님은 인생이 무엇이냐, 인간이란 무엇이냐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떡을 먹고 그 육체가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 이상입니다. 사람은 떡을 먹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 이상입니다. 그럼 뭐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참 인생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거절하신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참 인간은 자기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떡을 먹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인간이다, 이렇게 이 시험을 말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 두번째는 사단이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절하면 이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는데요. 거기에 뭐가 추가되어 있느냐면,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 이게 사단이 말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피조물입니다. 사단은 천사가 타락한 것이죠. 그런데 이 사단에게 이 세상 만국이 그 손 아래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죠. 사단을 이 세상 신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혹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세상에 지금도 힘을 가지고 역사하는 것은 사단입니다. 사단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의로운가? 하나님은 왜 세상을 사단에게 넘겨주셨는가? 물론 하나님이 넘기신 것은 아니죠. 하여간 이같은 질문이 듭니다. 두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의로운가? 왜 사단이 통치하게 하시는가? 왜 그리스도인에게도 고통이 있는가? 왜 믿음으로 사는데 어려움은 생기는가? 라고 하는 두번째 질문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사단이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제안을 거절하시면 주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주님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에 승복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단이 원한건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단을 멸하지 않고, 사단을 인정해 주시면 사단이 이 세상에서 계속 통치의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인정해 주시면, 이 모든 영광을 넘기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단을 멸하실 것입니다. 그를 천년동안 가두실 것이며 그를 영원한 불못에 던지실 것입니다. 주님은 사단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게 두번째 시험입니다.

세번째 시험은 사단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다. 당신은 이 말씀을 믿는 사람 아니냐? 그러므로 믿음을 행함으로 보이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뛰어 내려도 하나님이 그 발이 부딧치지 않게 하리라고 하신 메시아의 약속의 말씀이 있으니, 그 말씀을 실행해서 그 말씀이 사실인 것을 입증해라고 사단이 시험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야고보의 말과 비슷해 보입니다. 사람이 말로만,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행함으로 구원받는다. 이렇게 되어 있죠. 이것은 야고보가 진정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여기서 믿음을 말하는게 아니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지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실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것을 의심하고 그것이 진짜인가 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사단이 의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으니까 그와 같은 말씀에 따라 행동하시도록 하나님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상황을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은 자기를 입증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의해서 입증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증명할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하나님이 그렇게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말씀과 달리 행하시는 분으로 낙인 찍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코너로 몰아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하나님이 우리를 따르도록 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험을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것을 내가 안다. 때가 되면 그렇게 하실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다. 이것이 주님의 세번째 시험입니다.  

그래서 이 시 험의 세가지는 이것입니다. 첫번째, 인간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통치는 의로우냐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주님이 이기십니다.
어떻게 이겼냐 그러면 첫번째, 주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래서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시험을 이긴 것입니다. 두번째는 주님이 어떻게 시험을 이겼냐? 주님이 십자가를 가실 것을 결정하심으로 이깁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 자신에 대한 희생으로 두번째 시험을 이기십니다. 세번째 시험은 성경을 아심으로, 하나님을 아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때문에 시험을 이긴 것입니다. 저희들에게도 이게 필요합니다.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헌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신뢰할 것입니다. 오늘 저희들이 주님 앞에 떡과 잔으로 주님을 기억했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 그리고 기꺼이 십자가에 피흘리신 주님을 떡과 잔으로 기억했습니다. 이 기억이, 이 찬양이 우리의 삶에 살아 있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다시 주님 앞에 올때까지 이 주님이 저희의 일상생활에서 부딧치게 되는 여러가지 선택 가운데 살아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내가 왜 이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지를 알기에,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선한 것임을 알기에, 그리고 하나님과 참된 경험을 갖고 있기에, 저희들이 여러가지 벌어지는 선택에서 믿음으로, 말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택을 하고 다시 주님 앞에 와서 주님의 떡과 잔 앞에서 다시 주님을 기억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의 생애를, 저희들의 삶을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