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3. 2. 12. 15:56

덕언 말씀 : 하나님의 화목제 / 23년 2월 12일 일요일 / 강성찬 형제님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4:9-11, 개역한글)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요일4:14, 개역한글)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일4:17, 개역한글)


이 요한일서 4장에서는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독생자는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입니다. 단 하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특별한 관계이며, 특별한 사랑을 나누고 계시는 단 하나뿐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첫번째는 가장 귀한 것을 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10절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느니라" 세번쨰로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어떤 개인을 위해서 보낸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사랑은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화목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약성경 전체에 거쳐서 화목제가 자주 사용된 말은 아닙니다. 화목제라는 것은 구약에 나와있는 화목제사와는 다른 것입니다. 구약에 나와있는 화목제사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나와있는 이 화목제는 다른 것입니다. 물론 이 화목제는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기에 화목제라고 부르고 있기는 합니다. 이 화목제를 살펴 보았을때 로마서 3장에서 그 의미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3:25-26, 개역한글)

"화목제물" 이것이 요한일서에 나와있는 화목제와 같은 단어,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예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 사람들이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바로 내리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간과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들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실뿐만 아니라 비를 내리시고 그들이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게는 더 놀라운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나의 백성이라 하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들은 "왜 저런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는가? 이것을 불의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대전역에서 내려서 교회당으로 오는데 이런 플랜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최근의 재판의 결과에 '이게 나라냐'라는 구절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과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은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래서 죄를 참아주셨구나, 하나님은 참으로 의롭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도 하나님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형벌하지 않으시고 의롭다 하십니다. 그것을 보고 세상은 하나님을 의롭다 하는 것입니다. 화목제물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고, 사랑하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롭게 사랑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값을 당당히 치루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바로 이것이 사랑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 다음 구절이 "우리도 이같이 사랑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멋있고 괜찮은 사람을 사랑합니다. 자기에게 못하고 별볼일 없는 사람은 별로 사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을 화목제물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스럽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사랑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할수 있는 존재로 하목제물로 만드신 것처럼,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1-32, 개역한글)

악독은 어떤 사람이 나아게 잘못한 것을 그대로 갚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하고 분노하고 또 떠드는 것,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1절과 같이 사람을 대할 수 있고 또 32절과 같이 대할 수도 있습니다. 인자하게 행한다고 하는 것은, 부족함이 있다 할지라도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의 짐을 지워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한 사람에 대해서 이 두가지 반응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나에게 한대로 내가 하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나에게 한 행동이 나의 행동의 기준이라면 우리는 31절과 같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 행동이 기준이라면 32절과 같이 우리는 할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것을 기준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꼐서 나에게 하신 행동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한 잘못을 용서할때에 우리는 화목제물과 같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요한일서 4장으로 와서 보겠습니다.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주의 어떠하심은 현재 주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님은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때에 그 교제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참 어떤 분이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이 세상은 하늘의 또 다른 한 편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흙을 밟고 살아가지만, 사랑할때에 하나님과 아버지와의 놀라운 사랑의 교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을 본받아서 그러한 사랑의 교제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