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열왕기하 23장 26-30절
성경읽기 : 열왕기하 23장 26-30절(요약)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28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30 신복들이 그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묘실에 장사하니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저에게 기름을 붓고 그 부친을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왕하23:26-30, 개역한글)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요시아와 같이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이 없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찬사를 받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겼고 자기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도록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아는 장년에 씁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유다 왕국은 멸망을 맞이합니다. 26절부터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요시야가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였지만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므낫세의 죄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죄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요사야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지만 백성들이 이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요시야가 죽은 이후에 백성들은 다시 우상 숭배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백성들의 마음 상태를 알고 계시기에 유다를 향한 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왕하23:27, 개역한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하나님께서는 북왕국의 죄악과 남유다의 범죄가 동일함을 말씀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죄악 가운데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26절에 보면 므낫세가 나옵니다. 요시야의 아버지가 아몬이고 그 할아버지가 므낫세입니다. 그는 오랜기간 동안 하나님을 거절하고 배도했습니다. 그 기간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십니다. 그 타오르는 진노를 요시야가 끄지 못하고 이렇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잘못을 잊지 않으심을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시아가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율법을 온전히 준행하였지만 그 백성이 요시야와 같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생각해 볼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집단적으로 받는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선한 왕이 계속 배출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악한 왕이 계속 배출되는 것도 아닙니다. 각각의 개인의 결심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그 좌우가 결정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시야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애굽과 바벨론의 전쟁 사이에 끼어서 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전쟁은 세계사에도 기록된 아주 큰 전쟁이었습니다. 여기서 교훈받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일을 그들이 하도록 놔둬야지 그리스도인이 그것에 관여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화를 맞이하게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악한 대적이 유다를 쳐들어 온다면 당연히 막고 방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싸움이나 일은 나서지 않고 관여하지 않는것이 옳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18년에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고 31년을 통치했습니다. 13년이라는 시간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기간 동안 요시야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주었고 또 그와 동시에 그의 고집이 조금씩 쌓여 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기 위해서 올라왔고 요시야에게 상관이 없으니 관여하지 말라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하나님을 얘기합니다.
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대하35:21-23, 개역한글)
요시야왕이 이 세상의 애굽왕보다 훨씬 더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사람인데, 그가 바로느고에게 이러한 말을 듣게 됩니다. 이는 그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말씀이나 성도님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듣지 않으면 세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있다면 세상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결국 전쟁에서 죽게 되는 유다의 유일한 왕이 됩니다. 이 모습을 볼 때에 여선지 훌다의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훌다는 그가 평안히 묘실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는데 그는 전쟁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입장에서는 그가 평안히 죽은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 아래 그는 유다에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못하고 편안히 묘실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나라가 개혁이 되었지만 여전히 유다의 멸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볼 때에 백성들은 요시야의 개혁에는 복종했지만 그 중심의 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시야왕은 젊은 나이에 죽게 됩니다. 그리고 훌다의 예언처럼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자비였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살아서 하나님께서 그 나라에 내리는 재앙을 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대하33:9, 개역한글)
므낫세는 노년에 회개하여 다시 유다에 돌아와 통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므낫세의 죄는 자기 혼자만의 회개로 무마될 것이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므낫세가 뿌린 씨앗은 백성들 가운데 만연했던 것입니다.
므낫세는 백성들에게 끼친 자신의 죄악이 얼마나 뿌리깊게 파고 들어갔는지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죄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요시야의 므깃도에서의 죽음을 보면서 꼭 전쟁을 해야 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왕하23:29, 개역한글)
그는 피할 수 있는 전쟁과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또한 전의석 형제님이 교제하신 말씀을 생각할 때에 애굽왕 바로느고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까를 생각하게 될때,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꿈으로도 왕에게 미래에 있을 일을 나타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애굽왕의 말을 듣지 않고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아마도 요시야는 앗수르를 향한 격한 감정과 미움으로 인해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 중에는 내가 죽어도 용서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 벌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용서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서 우리의 격한 마음을 가라앉힌다면 이러한 잘못이나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26-27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지 않고 북왕국을멸망시킨 것과 같이 남유다를 멸망시키겠다 선포하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루살렘과 성전도 버리겠다 하십니다.
사실 요시야왕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추구한 왕이 없습니다. 그러나 므낫세의 범죄로 인해서 유다도 멸망시키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용서하겠다는 말씀과 많이 배치가 되는 것 같습니다.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렘29:11-14, 개역한글)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게 회개하고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저들을 사하신다는 말씀이 분명하게 있는데도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 왜 유다가 멸망을 당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남유다는 요시야왕이 율법을 좇아 우상을 척결하고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꼐 돌아오기를 원했지만 지금까지 교제된 어떤 말씀 속에서도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들이 합당한 회개와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볼때에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유다가 망한 이후에 주님이 오시기까지 그 왕권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면서 폐하실 것을 작정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적인 이스라엘을 세우기를 원하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31:32-33, 개역한글)
주님이 오시고 새로운 영적인 이스라엘을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그 주님의 뜻이 성취되어가는 과정에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 구원받는 모든 성도가 영적인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생각할때에 이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왕을 세우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이스라엘을 마음에 두시고 그것은 주님 안에서 성취하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왕하20:17-18, 개역한글)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말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세우셔서 유다를 심판하는 것이 그 뜻이셨습니다. 그리고 요시야의 어떤 노력으로도 그것을 돌이킬 수 없음을 훌다를 통해서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28절에 들어서 매우 황급히 요시야의 사적이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말년에 요시야가 이같이 잘못된 판단을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애굽왕 바로느고가 앗수르를 치고자 합니다. 세계사적으로 앗수르는 멸망할때가 다가왔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역사의 중심에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 가운데 바로는 앗수르를 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것이 그 자신의 마음인지, 하나님의 뜻을 따름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시야왕은 이렇게 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이해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애굽을 막는것이 유다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의 생각인데, 요시야는 하나님께서 유다에 내릴 심판을 거두시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희가 단기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이 있고, 또한 큰 상황 가운데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요시야를 데려가십니다.
그 후에 세워지는 왕들을 보면 여호아하스가 나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 후의 여호야김 또한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바벨론왕이 올라왔을때 그를 섬기다가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이 됩니다. 그와 같은 것을 요시야는 보지 않고 평안하게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게 됩니다.
저희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때에 더 넓은 영역에서 크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안목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