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전의석 형제님(요약)

복음 :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반응하고 있습니까?

박이레 2023. 1. 22. 12:46

< 복음 :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반응하고 있습니까? > 2023년 1월 22일 일요일(요약1) / 전의석 형제님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1:1-6, 개역한글)

창세기 1장 1절을 피면 "태초에 하나님이 처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제일 처음 기록된 말씀인데 굉장히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가 이러한 하나님임을 밝히 드러내고 계십니다. 내가 땅에 살고 있는데 그 하늘과 땅의 참된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히 마태복음 1장이 드러내고 계십니다.

1장 1절의 영어 성경을 참조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 나오고 그 다음에 다윗왕이 나오고 그 다음에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마태복음을 시작하면서 참된 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은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고 또한 약속을 처음받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약속은 창세기에서 하와에게 하신 약속이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약 이천년의 시간이 흐르고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이천년이 흐르고 다윗으로부터 예수님까지 이천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약속 하셨고 그 약속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또한 두세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곳에 함께 있다는 약속을 하셨으며 마태복음의 마지막에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그 약속 가운데서 모이는 것입니다.

저희는 가스펠홀로 모이는 것이 아니며 채플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습니다. 물론 많은 훌륭한 형제, 자매님들이 그러한 간판을 걸고 모이지만 그것이 저희에게 어떠한 약속이 있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때에 주님의 임재를 느낄수 있고 또 그 가운데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보에는 네명의 여인들이 나오는데요. 그 여인들이 많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21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22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23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잠30:21-23, 개역한글)

저는 이것을 거꾸로 대입해보려고 합니다. 종이 임금된 것은 밧세바이며, 미련한 것이 배부른 것은 룻이며 꺼림을 받는 여인이 시집을 간 것은 라합이며, 계집종에 주모가 된것은 다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계보를 이룰수 있는것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다 할지라도 그 여인들은 세상이 보기에는 견딜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룻은 모압여인으로 모압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족속이었습니다. 모압에 기근이 있을때에 그가 이스라엘에 와서 배부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한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배불렀습니다.
꺼림받는 계집, 라합은 술을 파는 여인이었습니다. 누가 기생과 결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몬의 아내로서 보아스를 낳는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갑니다.
또 다말이 나오는데요. 그는 남편을 잃고 그의 남편들과 여러 일들을 하였지만 소득이 없었고, 시아버지는 그를 꺼려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래서 계집종과 같이 버려짐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말을 베레스를 낳고 세라를 낳습니다. 다말에게 영예가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았지만 성경은 야곱만을 낳았다고 간단히 기록합니다. 그러나 다말은 베로스와 세라를 낳은것 모두를 기록합니다. 다말이 믿음 가운데 그 일을 하였을때 베레스와 세라라는 두 이름을 성경에 남기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을 받으며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 도저히 맞출 수 없기 때문에 이 기준에서 떠나겠다고 할수 있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곁을 결코 떠나서는 안됩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마1:16, 개역한글)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기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며 신실하게 성취하십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1:20, 개역한글)

요셉은 당연히 다윗의 자손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십니다. 그러나 한 측면으로는 주님은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 측면에서 그 말씀하신 모든 것을 다 이루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그는 목수입니다. 그리고 나사렛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봤을때 이 사람은 주목을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윗의 자손이며, 이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1:19-20, 개역한글)

여기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가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끈혹자 하되" 우리는 어떤 의로움을 어떤 사람의 잘못을 발견했을때 그것을 바로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바로 정죄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을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로 말씀을 주십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죄를 덮어주고 없이하고 눈감아주는것이 옳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떠날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깊이 생각할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1:21, 개역한글)

그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이 모두다,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1:24-25, 개역한글)

그가 이제 이러한 말씀을 들었을때에 잠이 깼습니다. 그는 잠이 깨었을때 바로 마리아에게로 갔을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받았을때 그대로 잠들어 있다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요셉은 잠이 깨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일어나서 바로 마리아를 데려왔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보존하고 훼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 될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23, 개역한글)

처녀가 잉태하기 위해서는 동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가 이것을 알고 지키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유다왕 중에서 대단히 악한 아하스왕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누구에게 하신 약속이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십니다. 여러분은 아하스왕보다 악하십니까? 어떤 면에서는 더 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상태와 상관없이 여러분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신실하게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서 노역 가운데 고통 중인 사람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그리고 홍해를 가르시고 홍해를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나서 광야생활을 지겨워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젓혀두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때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변괘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또 불평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렇게 싫다고 합니다. 그럴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을 모두 죽이시고 약속을 없애시나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가나안 땅에 다다랐을때 이스라엘은 그 땅을 악평합니다. 그랬을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사람들을 다 죽이셨습니까? 아닙니다. 40년을 광야에서 보내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결국에는 가나안에 넣으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주의 만찬을 떼었는데요. 저희들에게는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때에 여러분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만일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큰일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그 약속에 요셉처럼 여러분이 반응한다면 여러분에게 큰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요셉과 같이, 믿는 사람들과 같이 함께 누리면 참 좋겠습니다. 나머지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드님과 성령님께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