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마포모임 학생캠프(요약)

다니엘에게 주어진 세가지 시험

박이레 2023. 1. 6. 20:13

< 다니엘에게 주어진 세가지 시험 > 2023년 1월 6일 금요일 (요약) / 원인수 형제님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4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5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함이었더라
6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단1:3-9, 개역한글)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예비하신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시기 위해서 미리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모두 말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 면만을 보여줍니다. 구약에 나타나 있는 사람은 사람이기에 모든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낼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나타나 있는 구약의 인물로 인해서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 할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초등학생의 나이였을지 모릅니다. 그 나이에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 갔습니다. 그 바벨론에 가는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이 아닌것을 그 마음에 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래서 70년간 바벨론에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이 징계는 그 가운데서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고 바벨론에 온 사람은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단1:3, 개역한글)

처음 바벨론에 잡혀 온 사람은 왕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귀족 중에 몇사람이었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과 친구들은 소년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생 정도되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라는 관계를 통해서 우리 주님과 제자들이 되는 교회에 대해서 구약에서 그림자로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구약에서 신약의 요한계시록이라고 불리우는 예언서입니다. 가장 강하게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고 있는것이 다니엘서입니다. 1-6장까지가 사건들을 다루고 7-14장까지가 예언이 다루어집니다.
1-6장에서 다니엘은 뜻은 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이 뜻을 세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뜻을 세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목표로 했을때 그 뜻을 향해서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1장은 말씀과 관련된 장입니다. 다니엘 6장에서 다니엘은 기도하기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갑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은 그의 평소 습관이었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신약에서의 우리 주님의 놀라운 특징입니다. 주님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로마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기 위해서 새벽마다, 밤새도록 기도하신 분입니다. 1-6장까지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부분을 볼수 있습니다. 주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분께서 말씀을 잘 아시며 그 말씀 가운데서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대로 행하셨습니다. 1장을 마감할 때에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다니엘이 뜻을 정했을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가 다니엘과 함께 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뜻을 세워서 우리가 놀라운 일을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뜻은 아무리 세워도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주님께서 뜻을 세우시고 그 모든 길을 먼저 가셨고 모든 시험을 먼저 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모든것을 아십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어떤 시험과 핍박이 있어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모든것을 경험하셨습니다.
내일은 주님과 세명의 제자에 대해서 교제할 것입니다. 그 세명의 제자는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놀라운 특권입니다. 우리나라에 유명한 BTS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BTS와 친하다면 자주 만나고 전화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주님과 대화 합니까?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많이 대화하고 있습니까?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을 자랑합니까? 주님과 친하다고 하면서 주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주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면 그것은 슬픈 일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저희들이 방금 읽은 말씀에는 바벨론에서 세가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단1:4, 개역한글)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함이었더라 (단1:5, 개역한글)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단1:7, 개역한글)

첫번째 시험은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배워야 합니다. 두번째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어야 합니다. 세번째는 이름을 바꾸는 시험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구약과 달리, 여러분이 구원받고 난 다음에 지금 살아있는 이유는 여러분의 뜻대로 살라고 남겨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누구는 잘할것 같아서, 또 누구는 못할거 같아서 남겨두거나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십니다. 주님께서 더 많은 기회를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첫번째 시험인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배워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학문을 배워야 합니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는데 진화론이 마치 진리인것처럼 가르칩니다. 물론 모든 세상의 학문이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이 세상의 과학이나 지식이 하나님이 창조로부터 나왔습니다. 무에서 유가 나온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죄가 있고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 사용해서 하나님을 거역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히 동떨어져서 학문이라는 것으로 여러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이렇게 변명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바벨론에 왔으니까 저희가 배울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세가지 시험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시험은 돌덩이를 떡이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40일째 주리실때에 마귀가 시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배고파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어릴때 노는게 좋아서 점심을 많이 굶었는데 한끼만 굶어도 배가 등에 붙은것 같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신명기에 나온 말씀을 인용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주님의 말씀은 떡이 필요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떡으로만 사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학문이 이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학문으로만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 학문이 나오게 한, 모든 창조물을 만드신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우리처럼 종이가 없기 때문에 돌판이나, 금속이나, 파피루스에 기록합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세겨서 받은 민족이 이스라엘 입니다. 이 십계명은 말씀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돌판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왔을때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놀고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춤추는 것은 우상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그 두 돌판을 던져서 깨버렸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그 말씀에 대한 거역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넘어가겠습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는 일이 있습니다. 왕의 진미는 거지의 만찬보다도 월등한 것입니다. 노숙자가 먹는 음식을 여러분이 같이 먹을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왕이 먹는 진찬이라면요? 솔로몬의 한끼는 소 몇십마리를 잡아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보다 더 큰 나라를 이룩한 바벨론의 왕의 진미는 얼마나 진수성찬이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먹는것을 구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무엇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할지가 구약에 나와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으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먹을수 있는것과 먹으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먹을수 있는 채소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먹을수 있는 많은 나무의 실과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단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관심을 가지고 굳이 그것을 먹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육신을 통해서 그 선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 하나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피했습니다. 그것은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포도주는 기쁨을 나타내는 음식입니다. 잡혀 왔는데 포도주를 먹을수 있습니까? 그래서 거절한 것입니다.
세번째로 이름을 바꾸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머지 시험과 이 시험도 연결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번째 이 이름을 바꾸는 것은, 성경사전을 찾아보면 단과 엘이 합쳐진 이름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다 하나님이나 여호와라는 단어가 그 이름에 들어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짓습니다. 아이의 이름에 여호와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이 아이가 하나님과 관련된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이 바벨론의 우상의 이름으로 다 바뀝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남기기를 바랍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남기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이 세상의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남기기를 바랍니까? 이것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경을 다 알아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아는 것 만큼 세우는 것입니다. 뜻은 배워서 아는대로 세우는 것입니다. 잘 자라기 위해서는 음식을 계속 먹는 것입니다. 다 알기 때문에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장은 저절로 하지만 먹는 사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가운데서 많은것을 해주실수 있지만 먹는것은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