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2. 11. 23. 21:07

성경읽기 : 열왕기하 20장 16-21절(요약)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찐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권력과 못과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1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하20:16-21,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오늘 저희들이 교제할 내용은 이사야에게 징계에 대한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의 대답이 나옵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찐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왕하20:19, 개역한글)

이 부분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형제님들께서 교제 나눠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에도 이 부분이 교제되었습니다. 16-21절까지 교제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희가 히스기야의 마지막 인생을 보면서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는 선한 왕이었지만 그의 인생 가운데서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25살에 왕이 되어서 14년간은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그가 이룩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이 들었을때 25+14= 39세입니다. 그리고 그후에 하나님께 수명 연장을 15년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39살이기에 감정이입이 많이 들었습니다.히스기야가 수명연장을 받은 것처럼 저희들의 연수도 한정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히스기야왕과 주님과 큰 대조를 보이는 몇가지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세개의 성경에서 언급됩니다. 열왕기, 역대기, 이사야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네가지 성경에 대해서 단 일점 일획의 오류도 없으신 완전하신 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14년의 삶은 우리에게 시원함을 주지만 그는 완벽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하신 왕이시고 완전하신 사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스기야는 죽을것을 통보받았을때 그는 벽에 서서 울고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그 고난의 잔을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런 은혜를 받았을때 겸손해져야 했지만 도리어 교만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의 연약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때때로 여러가지 시련들이 주어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마음을 낮춰서 행한다면 그 시련들을 이길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도 시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단은 점점 높은 곳으로 유도해서 시험하는 것이 그의 방법입니다. 저희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형제 자매님들께 존경을 받을때에 저희가 넘어질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40장에서 히스기야가 병이 나았을때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겠다고 고백하고 주의 신실함을 그의 아비가 자녀에게 알게 하겠다고 하지만 그 고백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므낫세의 이름의 뜻은 잊어버리다는 뜻입니다. 요셉이 그 고난의 일을 잊어버렸다고 할때에 그 첫째아들에게 이름으로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기적과 은혜를 그 아들에게 전해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히스기야의 고만이 무엇을 야기하냐면 그의 재산, 그의 자손이 다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고 또 환관이 되게 됩니다. 역대하의 말씀에 보면 그가 뉘우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전에는 그와같은 심판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겠다고 하셨고 히스기야는 그것을 안도하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시는 분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는 분도 있는데요. 므낫세를 생각할때에 히스기야가 그 뉘우침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저희가 말할수 없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저희에게 주어진 기회이고 책임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못과 수도를 만들어서 성중으로 인도하여 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이 말씀을 볼때에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기에 그가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 율법을 잘 가르치고 성전을 회복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열조와 자는데 그가 높은곳에 기록되어 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한 왕으로 대우하시고 저희들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것 보여줍니다. 이것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떠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동맹을 하기를 원했던 바벨론은 이후에 예루살렘을 공격하며 멸망시킵니다.

19절의 히스기야의 대답은 저는 긍정적으로 분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십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다고 고백한 것은 그 심판 가운데 긍휼을 베푸신 것을 감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이는 자신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으로 분별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히스기야는 자신의 재력과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바벨론의 사절단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주는 잘못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리고 그에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그의 사후에 이뤄집니다.
저는 19절의 말씀을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에 자기때에 심판이 내려지지 않음을 안심하면서도 감사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수명이 15년이 연장되었음에도 그의 연장된 수명에 그가 한 것은 아들 므낫세를 낳은 것 외에는 남은것이 없지 않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죽을날을, 자신의 수명을 알고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수명을 알고서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을때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왕하18:3, 개역한글)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왕하18:5, 개역한글)

그 후에 크고작은 사건들이 있지만 히스기야에 대한 여호와의 평가는 이와같습니다.

첫번째 앗수르의 침공때에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재물을 의지했던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즈음에 히스기야에게 병이 온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앗수르의 침공이 있습니다. 그때에는 남은 은금이 없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대하32:24, 개역한글)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며 (대하32:27, 개역한글)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32:31,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가 나을것에 대한 이적을 보이셨고 그 이적을 많은 나라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기위해서 많은 나라의 사신들이 유다를 찾았을 것이고 바벨론도 그랬을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을 바벨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천체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때는 은금이 적들에게 가지만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을때 은금이 히스기야에게 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로 인해서 교만해졌을때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됩니다.
바벨론은 이적에 대해서 궁금해 했지만 히스기야는 자신의 내탕고를 보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는 마음과 재물이 연동되어 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부분으로 보입니다.

20장 19절에 대한 교제를 형제님들께서 해주셨는데 저에 대해서 동의하고요.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
(대하32:25-26, 개역한글)

히스기야의 마음과 예루살렘 거민의 마음이 연합되어 있습니다. 이 언급을 근거로 해서 열왕기하 20장 19절의 말씀은 히스기야가 뉘우치고 하나님께서 그의 시대에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하신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회개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저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대하32:33,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에 높은 곳에 장사하게 하신 것입니다.
저희들이 잘못을 할수 있습니다. 그 잘못이 반복적이고 그 잘못이 심해지면 안됩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잘못할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스기야처럼 회개하고 돌이킬때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이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히스기야는 12절에서 바벨론에서 보낸 친서와 보물을 보고 마음이 열려서 자기의 모든 보물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에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16절부터 선언이 됩니다. 그리고 왜 19절의 내용을 히스기야가 말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은 지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왜 선하다고 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찐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왕하20:19, 개역한글)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32:31, 개역한글)

히스기야가 그런 과오를 범할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떠났고 그의 심중에 있는것을 시험하셨다고 하십니다. 히스기야가 이런 고백을 하는것을 볼때에 그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철저히 순종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는 변명하지 않고 히스기야가 마음으로 철저히 순종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찐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히스기야가 잘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앞으로 15년간을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감사함으로 받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므낫세가 즉위할때에 12세입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수명이 연장된 후에 태어난 아들인데, 그 아들을 여호와의 교훈을 키우지 않은 것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되어 집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7절의 말씀은 25장의 시드기야왕때에 성취가 됩니다. 또한 18절의 말씀은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환관이라는 말의 뜻이 신하, 시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역대하 33장 말씀을 보면 므낫세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 갑니다.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 간지라
12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13 기도한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대하33:11-13, 개역한글)

열왕기하 말씀에는 이러한 내용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히스기야의 아들 중에서 누가 환관이 되었을까 의문을 갖게 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주석들에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견해는 예레미야의 사사로운 편집이 아닐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알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히스기야에게 므낫세 외에도 다른 아들이 있었는가 그래서 성취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절의 말씀에서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라고 합니다. 만일 자기 생전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지 않은것에 대해서 안도했다면 그는 나쁜 사람입니다. 자기 잘못이 아들에게 심판이 내려지는 것에 안도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나의 죄가 나의 자식의 대에가서 내 대신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은 히스기야에게 굉장히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신이 지은 죄의 댓가가 자식때에 받는다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범죄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내리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의 잘못은 그의 아들에게 내려졌습니다. 또한 히스기야의 잘못에 대한 죄값을 하나님은 거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으시고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약적인 측면에서 구약과 같이 적용하지 않는다 해도, 나의 범죄를 나의 자식이 보고 있고 그 죄가 자식에게 어떻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주님 앞에서 살아야 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 김태우 형제님 : 히스기야가 산당을 없애고 우상을 훼파한 것은 국가간의 경제적인 고립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을 감당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온 왕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히스기야왕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그가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 앞에 선하다는 평을 들을만한 왕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떠나셨다는 것을 볼때에 저희안에 선한것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