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제자의 삶

당신은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

박이레 2022. 9. 23. 16:00

< 당신은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 > 2022년 9월 18일 일요일 / 한봉래 형제님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3-18).

우선 예수님이 누구냐 하는 것인데요. 마태복음의 구조를 잠깐 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합니다. 이 세상을 통치하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이 세우신 왕입니다. 그래서 족보가 나오고 그분의 탄생과 관련된게 나오고 그 다음에 그 분이 왕으로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릴 것인지를 쭉 이야기 하다가 12장에 이르면 이스라엘이 거부합니다. 1장부터 쭉 왕으로서 이야기가 나오다가 12장에서 예수님이 거부당합니다. 그리고나서 마태복음 13장에 유명한 비유가 나옵니다. 씨뿌리는 비유가 나오는데요.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비밀로 들어갑니다. 이제 더이상 이스라엘에게 선포하지 않고 이제 좋은밭에 뿌린 씨가, 씨가 뿌려졌는데 좋은 땅에서는 결실하고, 길가에 있는 땅에서는 열매가 맻히지 않고, 이렇게 쭉 들어갑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12-13장까지 해서 한 문단이 나뉘어지고요. 그 다음 16장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리고 제가 16장을 살피고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 이야기를 하지요. 그 중에서 잠깐 한 사람이라고 한 이 대목을 기억해두십시요. '침례요한이다.' 예수님을 침례요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죠, 그랬을때 베드로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랬을때 주님께서 이렇게 칭찬을 합니다.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다." 잠깐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게 되었는데, 그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라고 했을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어느날 음성으로, 혹은 다른 뭘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직접 계시했겠습니까? 저는 그랬다기 보다는 13장까지 이렇게 되고 14장부터 16장, 이 사이에 있었던 주님과의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가 확신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것을 '내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이 고백은 어떤 점에서 중요하느냐면 첫번째,이것이 교회에 들어가는 토대입니다.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해야 교회로 들어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거죠. 구원받는거죠.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그래서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야 되고요. 구원받은 후에 세상이 유혹합니다. 세상이 성도들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유혹하고 압박하고 합니다. 그럴때에 세상을 이길수 있는것도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확신하게 되는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마 13:54-55).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수 있는 근거는 54절에 나와있습니다. 두가지입니다. 첫번째, 예수님의 지혜 때문입니다. 두번째, 예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근거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쉽게 저희들이 흔히 쓰는 용어로 바꿔보겠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지혜는 말씀 때문입니다. 능력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를 근거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55절 보면,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요셉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길가에 뿌려진 씨앗들입니다. 씨가 길가에 뿌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수 있습니다. 근거가 뭐냐? 두가지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예수님이 하신 기적입니다.
잠깐 제가 요한복음을 통해서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이런 사건이 하나가 나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가만히 놔뒀다가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백성들의 마음을 치고 또 예수님이 하신 기적이 너무 놀랍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들이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이거 안되겠다, 그래서 예수님을 체포해 오도록 보냅니다. 요즘으로 치면 경찰을 보낸 것입니다. "가서 체포해 와라." 그래서 이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명령을 받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갔습니다. 갔는데, 그때 마침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니까, 말씀 전할때 체포하는게 그렇잔항요. 그래서 말씀 끝나면 체포하자, 그러고 이들도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고나니까 이들이 예수님을 체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돌아옵니다. 이 하속들은 누구냐 그러면, 우리로치면 무술경관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체포조'라고 불리우는, 경찰들 가운데서도 교통이 있고 여러가지 있는데, 이 사람들은 특별히 범죄자들을, 위험한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훈련을 받은 경찰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명령에 복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체포해 와라 하면, 그가 누군지 왜 그런지 뭍지 않고 체포홰 와야 합니다. 만일 체포해오라는 명령을 줬는데 체포 안해오면 사직입니다. 이들은 직장 그만둬야 됩니다. 그들은 체포하기 위해서 채용하고 여러가지 훈련도 받고 월급도 준거죠.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체포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놀랍니다. "어떻게 된거냐?" 그랬을때 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런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건 사람들이 만들어낸 지혜로운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같은 말을 과거에, 예를들면 지혜로운 사람, 소크라테스, 공자님, 부처님, 이런 분들의 지혜로운 말과는 차원이 다른, 권위있는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고요. 그래서 저희들이 예수님의 말씀, 성경을 읽을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능력인데요. 이것도 요한복음 7장에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하셨는데 얼마나 많은 기적을 했느냐면 그 당시 그 기적을 본 유대인들 중 가운데 한명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할지라도" 그는 아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할지라도 이보다 더 많은 기적을 행하겠는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행하신 하나님만 하실수 있는 기적, 예를들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 나사로를 살립니다. 무덤에 들어가서 장사한지 사일이 지나서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려냅니다. 이런 기적을 보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진리말씀,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 두가지를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고백에 실패한 사람, 그리고 이 고백을 제대로 한 제자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들이 교회를 이룰 것이다. 이스라엘은 젓혀졌다." 이것이 마태복음의 이야기거든요. 그러면서 마태복음은 다시 설명합니다. 16장에서 그렇게 했고, 13장에서 그렇게 말하고, 14-15장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는지, 그들이 어떻게 그와같이 알게 되었는지, 또 그들이 그와같이 알게 되도록 하나님은 어떤 사건들을 주셨는지, 이게 14-15장입니다. 그래서 14-15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14장에 가 보겠습니다.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침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마 14:1-2).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가 쭉 있는데요. 그건 제가 스토리는 안읽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라고 하는것은, 아까 13장에서 나온 예수님의 지혜와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헤롯왕도 예수님에 대해서 딱 정확하게 듣습니다. 그가 왕이기 때문에 그 밑에 있는 신하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보고하고 그가 뭘 말했고 그 말의 내용의 요점은 뭐고 그 다음에 그가 무슨 행동을 했고 무슨 기적들이 일어났고를, 이게 정확하게 아주 체계적으로 공적으로 잘 기록해서 왕인 헤롯에게 보고한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보고입니다. 이게 밑에 있는 직원들이 속았거나 과장했거나가 아니고 정확하게 보고가 올라옵니다. 그 내용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지혜,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보고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데 실패합니다. 아까 제가 13장에서 읽어드린 나사렛 사람들이 실패합니다. 그것을 보고도 나사렛 사람들은 왜 실패했느냐? '요셉의 아들이다.' 이것때문에 실패합니다. 자기들이 안다는 거죠. 예수님에 대해서 어릴때부터 아는데, 그 아버지는 요셉이고 어머니는 마리아고 동생들도 우리가 다 아는데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야? 이게 실패한 겁니다. 외모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목수의 아들이라면 그들은 대답해야 합니다. 그 지혜가 어디서 왔는지, 목수의 아들이 그렇게 말할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은 대답해야 합니다. 목수의 아들이 기적을 행할 수 있는지,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사람들이 실패하고요. 두번째 실패한 사람이 헤롯입니다. 헤롯은 정확한 보고를 받고 예수님을 침례요한이라 표현합니다. 2절에 "신하들에게 이르되" 신하들이 보고 "많은 사람들이요,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고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헤롯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아니다. 침례요한이 살아났다." 왜 이렇게 말했느냐?
저희들이 다시 스토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헤롯은 결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혼을 합니다. 그런데 다시 재혼합니다. 여자를 얻습니다. 재혼하려고 이혼한 겁니다. 누구랑 했느냐? 자기 동생의 아내와 재혼을 합니다. 그러자 침례요한이 비난합니다. 책망합니다. 부도덕한 일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이 결혼을 재정하실때, 결혼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가 아닙니다. 책에서는 그러죠. 모계사회가 있다가 부계사회로 넘어가고 그 다음에는 일부다처제도 있다가, 다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하나님이 일부일처제, 처음부터 결혼을 제정하셨습니다. 이것을 막 깬겁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요한이 책망합니다. 그런데 다른 성경에 보면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이 헤롯은 침례요한의 말을 달게 받더라"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헤롯은 침례요한이 자기를 비난했지만, 자기를 부도덕하다고 잘못된 결혼을 했다고 비난했지만 그 말은 옳다. 그가 할 말을 하는거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 맞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 권위 앞에, 왕한테 잘못 말했다가 혼날까봐 손해볼까봐, 속으로는 생각할지라도 말 못하고 있지만 침례요한은 제대로 된 사람이다, 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는 이렇게 받아들이지만 그의 아내 헤로디아가 미워합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하죠. "저거 죽입시다. 어디 왕이 한걸 가지고, 백성이 엇다대고, 죽입시다. 지금 이게 왕국 아닙니까? 당신이 왕 아닙니까? 왕이 하는일을 함부로 공적으로, 죽여야 됩니다. 안죽이면 왕이 무슨 권위가 있습니까?" 자꾸 하는겁니다. 이때 헤롯이 해야 합니다.
헤롯이 이 소식을 듣고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데 실패한 이유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헤롯은 인생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생은 즐기는 것이다. 결혼 했지만 더 마음에 드는 여자 만나면 결혼할 수 있는거지. 뭐 그게 안된단 말인가? 이것이 헤롯의 인생관입니다. 지금도 인생관이 그렇죠. '네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아라.' 학교 다니다가 저기 그러면 학교 그만둬도 된다. 그러죠. 직장, 자유롭게 그만두고, 요즘 인생은 자기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내 즐거움을 빼앗는 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거 맨날 못하고 하면 안된다 그러고, 하나님은 도대체 나의 즐거움을 빼앗는 존재다. 이게 아담 하와 때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선악과 보기에 좋고 먹기에도 좋은건데 그것을 못먹게 했잖아요. 먹으면 좋을거 같은데, 하나님의 우리의 정당한 즐거움을 못누리게 하는 분이다. 도덕이니, 거룩이니 이런 이유로, 그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는데 실패합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입니다. 자꾸 헤로디아가 죽입시다, 죽입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되죠? "그는 죽일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안된다, 못 죽인다." 그렇게 해야하죠. 그런데 그는 어떻게 하죠? 그는 인생은 즐기는 거라고 하고 자꾸 이렇게 나오니까, 그는 타협합니다. 자꾸 아내가 그렇게 하니까, 당신이 왕 맞소? 이 나라 통치하는게 당신이 맞나? 이렇게 하니까 할수없이 침례요한을 감옥에 가둡니다. 타협합니다. 첫번째, 생은 즐거움을 위하여 존재한다. 두번째 자꾸 난처한 상황이 되면 자기가 알고있는 바를 따라서 행하지 않고 타협합니다. 감옥에 가둡니다. 저거 이제 발언 못한다. 감옥에서 저가 무슨 소리를 하겠는가? 이 정도면 왕의 권위도 세우고 침례요한도 입을 막았고, 이 정도면 됐다. 그런데 무슨일이 벌어지느냐면 생일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잔치를 하죠. 저도 생일잔치 가족들과 하는데요. 이건 왕의 생일잔치입니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하죠. 사람들 초청하고, 아무나 초정받은게 아닙니다. 특별히 초청받은 사람만 오는 그런 잔치를 하죠. 그 잔치에 어마어마하게 화려하죠. 최고의 음식, 최고의 서비스, 그렇게 되어있는 거죠. 거기 가고 싶으십니까? 거기가면 무슨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이제 사람들이 앉아서 좋은 음식을 먹고, 여기 온 사람들은 특권층들이죠. 일반 보통 시민이 아니죠. 그래서 자기들끼리만 고급 음식을 먹고 고급한 의식을 행하는 거죠. 헤로디아 딸이 춤을 춥니다. 무슨 춤인지는 모르지만 별로 보고싶지 않은 춤일 겁니다. 춤을 추는데 이것을 보고 헤롯왕은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춤을 잘 춰서 흡족하게 햇으니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소원 한가지를 들어주겠다."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이게 왕이 할 소리가 아닙니다. 나라 절반을 춤췄다고 주면 됩니까? 나라가 그렇게 나눠지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소리를 하는거죠. 그러니까 헤로디아의 딸이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갑니다. "뭐 달라고 할까요?" 저는 이 대목에서 이 모든것은 헤로디아가 꾸민 계획입니다. 헤롯왕을 압니다. 생일이 오면 기분좋게 사람들 초청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도 먹고 자랑도 하고 그리고 틀림없이 춤도추고 그러면 이 사람이 틀림없이 소원 들어준다고 할거야. 그래서 딸에게 미리 "만약 왕이 그 소리를 하면 나에게 와라." 그리고 뭘 달라 그럴까요? 여자가 이야기합니다. "침례요한의 머리라고 해라." 그래서 음식이 있고 춤이있고 또 술이 있고, 그리고 그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들이 다 모인 곳에 접시가 하나 들어오는데 사람 머리를 잘라서 피가 흥건히 고여져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심판하지 않으셔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사는게,
그래서 헤롯왕에 대해서 다시보면 그는 인생은 즐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요? 나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번째요, 그는 타협합니다. 그는 자기가 알고있는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그는 사실상 여자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것을 꾸미고 있는것은 자기 아내 헤로디아입니다. 그리고 그를 조종합니다. 그는 침례요한을 죽여야 된다고 원했습니다. 감옥에 있는걸로 안된다. 감히 내 결혼을 비난했으니 저건 죽여야 된다. 어떻게 죽이지? 자기에게 죽일 힘이 없죠. 남편왕을 움직여야 되죠. 어떻게 왕을 움직일 것인지 다 알고 계획을 짜놓고 거기에 헤롯이 싹 들어가버립니다. 그는 정확한 보고를 받습니다. 왕이니까 얼마나 제대로 된 관리들이 제대로 조사해서 정확하게 보고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로운 분이다. 예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가 아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님이 아니면 행할 수 없는 기적을 행했다는 보고를 듣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데 실패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헤롯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을 실패하고 있다면 그 대표적인 예로 성경이 헤롯을 드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 넘어가겠습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 14:25-33).

여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고백하게 되었는가? 이것을 살펴보려고 하는것입니다. 핵심을 이야기하면 그렇습니다. 그들이 배를 타고 있었는데 함밤중이었습니다. 새벽 세시, 네시쯤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처음부터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고요. 그 다음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배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라." 그래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건너가는데, 주님이 가라고 했을때는 저물때입니다. 그러니까 오후 6시쯤, 날이 저물때 주님께서 건너가라 하셔서 그래서 건너갑니다. 건너가고 있는데 처음에는 잘 갔지요. 그런데 조금 가다보니까 바람이 불어서 노를 저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벽 3-4시 되었으니까, 약 7-8시간을 예수님께서 건너가라고 해서 노를 저어 가는데 바람 때문에 건너지 못하고 6-7시간을 계속해서 배를 몰고 있는데 안되는 것입니다. 날은 어두워 졌는데, 한 밤 중이고 이제 더이상 못하겠다. 더이상 노 못젓겠다. 배는 더이상 나가지 않고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 있습니다.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생각했느냐면 제자들은 '귀신이다' 했습니다. 귀신 보셨습니까? 저는 귀신 못봤습니다. 뭐 본사람들도 있다고 그러는데요. 이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그랬었죠. 하여간 한밤중에 바람은 불고, 물위를 걸어오고, 주님이라고 생각 못합니다. 제자들은 마땅히 주님이 오셨구나 그래야죠. 저희들은 성경을 알고 있죠. 주님이 가신거죠. 그런데 주님이시다, 그렇게 안하고 놀라서 소리를 질러대면서 귀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게 사람이 갖고있는 거죠.
아까 헤롯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헤롯은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합니다. "침례요한이 살아났다." 이렇게 말합니다. 보고는 이렇게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아들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갈등이 심각하게 될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을때, 헤롯은 확신 가운데 말합니다. "하나님 아들 아니다. 침례요한이 살아난거다." 그는 침례요한을 자기 생일날 죽입니다. 그가 침례요한이 살아났다고 말하는 이유는 뭐냐면 그는 죽여서는 안되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게 그의 가슴에 박혀있는 것입니다. 침례요한은 이때도 이렇게 합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춰서 "내가 너에게 뭘 줄까?" 그랬을때 "침례요한 머리요." 그러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렇게 해야죠. "그 사람은 죽여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누가 건드린단 말이냐? 누가 너에게 그딴 소리를 했느냐?" 그렇게 해야죠. 그런데 그는 계속 타협합니다. 타협하고 그 다음에 뭘 내세우느냐? 안들어 줄 수가 없죠. 여러 사람이 다 보는데서, 소원 들어준다고 했는데, 안들어주면 뭐가 문제가 되죠? 자기 체면이 문제가 되는거죠. 왕인데 내가, 왕이 한번 말을 뱉었는데. 맹세했는데, 그것을 안지켜? 이것과 침례요한은 죽여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와 어떤게 큽니까? 그는 자기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뜻을 고집하는 사람의 속에 있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가 제일 두려워하는게 뭐죠? 침례요한이 살아나는거죠. 내가 죽였는데, 밤에 이제 잠을 자면 꿈을 꾸는거죠. 이것은 성경에 없는거고 제 상상입니다. 꿈을 꿨는데 침례요한이 와서 하는거예요. 침례요한이 했던 말들이 막 들리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은 성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한번도 기적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말로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적을 막 행합니다. 이 기적을 어떻게 설명하죠? 만약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한다면 이 기적을 어떻게 설명해 내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침례요한이 죽었다가 살아난거다." 사람들이 못믿는 이유는 불순종하고 그들에게는 미신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미신과 공포, 이 두개가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침례요한이 살아난 사람으로 이해하게 한 것입니다. 침례요한도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했거든요.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은 기적을 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수 있었던 것은 죽은 후의 그 음부의 권세를 가지고와서 기적을 행하고 있다, 이렇게 본 거죠.
그 다음에 제자들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제자들도 처음에는 "귀신이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 첫번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다." 주님이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만 다른 성경을 하나만 더 도입해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마태복음에서 갈릴리 바다를 배를타고 가고, 그런데 풍랑이 일고 그랬던 적이 한번 더 있습니다. 지금 마태복음 14장이잖아요. 마태복음 8장을 보시면 있습니다. 이때도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그때는 주님 배에 모시고 주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람과 파도가 칩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에 의하면 물이 배에 막 가득차서 배가 넘어갈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은 뭐하고 계셨느냐? 주무시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을 깨웁니다. "주님 우리 보세요. 물이 차서 가라앉게 생겼습니다. 주님 생각이 없으신거 같은데 지금 주무실때가 아니죠." 하고 깨웁니다. 주님 어떻게 하시죠? 일어나셔서 바람과 파도를 향하여 "잠잠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왓더바이블 티치스에 어떤 형제님이, 바람과 파도가 그렇게 치죠. 주님이 잠잠하라 하자 즉시 그쳐집니다. 관성의 법칙이라는게 있거든요. 파도는 치면 일단 치고 잠잠해야죠. 그런데 파도가 치다가 주님이 잠잠하라 할때 싹 사라집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바람에게 명령한다고 바람이 알아듣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믿음이 적은자여 왜 무서워 하느냐?" 이 대목을 제가 말씀과 경건 잡지에 실었었는데요. 왜 무서워 하느냐? 이 말도 이상한 말입니다. 무서워 해야죠. 배에 물차는데 무서워해야죠. 그것을 무서워하도록 주님이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서움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안전한 길을 찾는거죠. 그런데 주님이 "왜 무서워 하느냐?" 그리고 "믿음이 적은자여" 그랬을때 그들이 이렇게 나옵니다. "저가 누구길래 바람도 순종하는고?" 이게 앞에 한번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 그들은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냐? 어떤 사람들은 목수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목수의 아들이 기적을 행할 수 있느냐? 이게 설명이 안되는거죠. 그래서 그들이 다시한번 갈릴리 바다에서 생각했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냐, 도대체? 그리고 두번째입니다. 바람과 파도를 명령해서 잠잠케 하신 분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경험입니다. 주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십니다. 이분은 누구입니까?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어떤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다." 그러면서 막 댑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이 우주에 있는 모든것을 다 갖다 댑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아무리 있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이번에는 물 위를 걸어오시는 이 분은 누구냐 그러면, 자연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합니다.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가 대표적으로 한 건데요. "정말 주님이시면 저를 물 위로 오라고 해 주세요." 그래서 인간 중에 유일하게 물 위를 잠시라도 걸었던 유일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도 걷습니다. 물론 가다가 빠졌다가 다시 걸었지만, 이것을 통해서 뭘 배우냐면 주님은 중력이 없는 세상을 만드십니다.
잠깐 다시 보면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때 어떻게 승청하시냐면 베다니라는 마을로 함께 가십니다. 제자들과 베다니 마을로 가서 거기서 쭈욱 올라가십니다. 올라가시다가 나중에 너무 위로 올라가셔서 가물가물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영광의 구름이 가립니다. 그런데 주님이 승천을 어떻게 하시냐면 주욱 올라가십니다. 주님은 중력이 필요없는, 자연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영적인 법칙으로 만들어진 나라로 가시는 분입니다. 또 하나요, 그 나라에 주님만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함께 갈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중력의 법칙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주님도, 그래서 이분은 누구냐?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뭐하시는 분이냐?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중력이 필요없는 지금 이 세상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분이다, 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은 "나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두려워 하느냐" 라고 하는 이 말씀들이 계속 쌓여서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물이차서 무서워 했는데 무서워 했다고 왜 뭐라고 하시지? 주님이 뭐라고 하신 이유는 딱 이거입니다. "너희들이 무서워한 이유는 내가 누군지 몰라서다." 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줄 안다면,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있으면서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이냐? 바람과 파도가 하나님의 아들을 건드릴 수 있단 말이냐?" 이렇게 질문하는 거죠.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완전히 물 위를 걸어서, 베드로도 걷고, 그리고 배 안으로 들어갔을때 또 한번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다 한 가운데였거든요. 주님이 배 안으로 들어가자,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데요. 즉시 도착합니다. 이제까지 내 바람이 불어도 그들이 아무리 수고해도 갈수 없었던 그 목적지에 주님이 배에 오자 즉시 도착합니다. 이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분이냐? 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또 자연법칙을 창조하신 분이죠. 그 다음에 이 자연법칙을 없애실 분입니다. 자연법칙과 상관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걷게하신 분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능력을 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시간 관계상 빼겠습니다만,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마15:22).

여기 가나안 여자가 나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8).

여기서 제자들은 또 한번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만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고 믿는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14장에서 그렇고 15장에서 이게 쌓입니다. 그리고 1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베드로는 담대하게, 이제 마음에 확정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분이냐? 사람들을 영원한 나라로 이끌어가시는 분이십니다. 또 이스라엘만 그렇게 하느냐? 아닙니다. 이방인들도 구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뭘로 구원하느냐? 조건은 딱 하나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다. 라고 하는것이 쌓여서, 14-15장에서 쌓여서 16장에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다음에 성경을 하나만 더 찾겠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4-5).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것이 중요한 이유는, 첫번째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교회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교회로 들어온 이후에도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것은 구원받고 바로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 강도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꼴 저꼴 안보고 구원받고 바로 하늘나라에 갔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대부분의 사람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살라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주님을 거부하고 못박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주님을 믿는 사람을 유혹하고 핍박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갈수 있겠습니까? 그 비밀을 성경이 말합니다. 딱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됩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맞다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아가워하지 아니하고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우리를 용서하셨다면,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이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이제 주님의 명령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할때 우리는 타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죽어야 될 십자가에서 대신 피흘리고 죽으셨다면, 이게 사실이라면, 그분이 우리에게 한 말은 무거운게 아닙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게 무거울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뭐라고 말해도, 그래서 제가 다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보니까,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그 다음에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먹은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가지가 있으면 하고 싶어합니다. 먹고싶어 하죠. 저도 먹을것을 너무 좋아해서 문제가 생겨서 다이어트해야 하는데요. 맨날 먹는 것, 그 다음에 보기 좋은 것, 제가 지금도 아이패드 쓰는데요. 이거 기능이 삼성만 못합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잘 팔리느냐? 예쁘다는 것입니다. 별로 예쁜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예쁘다. 그게 사람들이 그렇게 기꺼이 돈을 내는거죠. 그리고 지혜로운 것, 이 세상 자랑입니다. 공부 잘하는것, 독창적인 것, 이런것 다 지혜로운거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성경이 계속 말합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것을 성경이 뒤집어 갑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먹는 것으로 사는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산다. 그래서 억는게 아니고, 우리의 육체의 배를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나를 살찌우는가? 이게 변화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는 보기에 좋은거죠. 예쁜것, 이것은 어디서 나오냐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내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를 왕으로 세울 것이다. 네가 가서 기름부어라." 이새에게 "아들들을 다 불러오세요. 그 중에 한명 하나님이 정한 왕이 있습니다." 이새가 어떻게 하느냐? 다윗은 빼버립니다. 사무엘이 말했거든요, 아들들 싹 데리고 오라고. 그런데 이새가 생각합니다. 다윗은 아니다. 다윗일리가 없다. 그래서 "너는 양치고 있어라." 그렇게 한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명하고 첫째아들 엘리압을 딱 보고 사무엘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긴것을 보아라, 이게 정말 왕답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코고 우뚝하고 모소리도 좋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들은 외모를 봅니다. 오, 예쁘네. 하나님은 그것을 안보십니다. 성경에서 예쁘다고 나온 사람들 다 실패한 것 아시죠? 압살롬, 그 머리털과 아름다움, 반역하다가 죽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외모에 속는거죠. 그 다음에 지혜로운 것, 지혜로워서 이생의 자랑이 되는 것.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니라." 지혜가 무엇입니까? 그 많은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지혜의 근본인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아무것도 지혜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죠. 그런데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사람은 말씀으로 산다. 중심이 중요하다. 사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성령을 통해서만 알수 있는 중심이 중요하다. 그리고 많은 지식이 중요한게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 세가지를 통해서 그는 세상의 유혹을 이깁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에게 이와같은 말씀이 주어지고 그는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저희들 가운데서도 인생은 즐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사람은 자기가 만든 존재가 아닙니다. 우연히 생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자기 생각을 내려놔야 합니다. 헤롯처럼 되어서는 안됩니다. 헤롯은 그 당시에 왕입니다. 굉장한 부화 명예와 권력을 누렸지만 그는 지금 하늘나라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어부였던, 이 이름없는 제자들은 천국에 가보면 예루살렘 성에 이 열두사도의 이름이 세겨져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뭔가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기 깨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죠?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외곡시키지 않고 자기 생각으로, 혹은 자기의 목표를 가지고 외곡시키지 않고 말씀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을지라도, 이 세상이 아닌 영원한 세상으로 끌고가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것은 주제넘은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일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일입니다. 우리도 물 위를 걸을 것입니다. 주님이 중력을 어기고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 공중에 오시면 공중으로 끌어올려갈 것입니다. 중력을 이기고 그리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 사이에 여러 고난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믿기 때문에 말씀으로 살고, 중심을 보고,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이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같은 은혜를 저희들에게 계속 베푸셔셔 저희 가운데 구원의 역사와 또 성돠운 믿음의 선택이 있게 되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