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조나단 블락 형제님

고린도전서 11장 : 너울과 머리됨

박이레 2022. 8. 30. 22:58

< 고린도전서 11장 : 너울과 머리됨 > 2017년 / 조나단 블락 형제님

참으로 성경의 원리에 따라서 모임이 모이며 예배드리고 있는 지역모임에 방문하는 것은 항상 저에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항상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하고있는 그 실행에 대해서 성경적인 근거와 원리를 다시한번 찾아보는 것은 항상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많은 근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어떤 분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처음듣는 분도 계실거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하고있는 일에 대해서 그 근거를 성경적으로 잘 알고계신 분들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알거라 생각하며 또 그 중요성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하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은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그 진리들에 대해서 공격하고 그것을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같은 진리에 대해서 아직 강력하게 붙잡지 않고 또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도 이러한 말씀들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교제하는 것이 필요할거라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후시간에는 제가 오늘 오전에 했던 떡과 잔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해서 함께 상고해 보겠습니다. 이번 오전시간에는 고린도전서 11장에 나와있는 여자들의 너울과 머리됨에 대해서 주제로 다루겠습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4-17).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찌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찌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고전 11:1-16).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찌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고전 11:34).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행 18:7-8).

고린도 교회는 사도바울의 복음 전파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8장에서 그 중에 몇몇의 회심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보는 회당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인들의 회당과 신약의 교회의 다른 점은 하나님께서 신약의 교회에 세가지 예식을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첫번째로 구원받은 자들은 침례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18장 8절에서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았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첫번째 예식은 믿는 자들의 침례입니다. 저는 특별히 이것을 믿는 자들의 침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그냥 형식적인 세례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침례'는 물속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식은 우리가 오전에 한 것처럼 떡과 잔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침례와 마찬가지로 떡과 잔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이 떡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 잔은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서 그 말씀을 기쁘게 받은 자들이 "침례를 받아"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떡을 떼며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떡과 잔을 나눈다는 것은 우리의 교제를 나타내고 있는 중요한 상징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고린도전서 10장을 먼저 읽은 이유입니다. 여기서 이 교제에 대한 진리의 말씀을 10장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고전 10:16).

이 '참예함'이 교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오전에 나눈 떡과 잔은 우리 주님의 죽으심을, 그리고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지만 또한 동일하게 우리가 구원받아서 주님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떡과 잔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침례라는 것은 단지 한번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 떡과 잔을 나누는 것은 계속해서 우리가 하게되는 것입니다. 이제 세번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예식은 우리가 너울을 써서 그리스도의 머리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행전 2장에서 교제 다음에 떡과 잔을 말씀한 그 순서와 같이 이제 고린도전서 10장에서 교제를 먼저 말씀하신 후에,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이제 머리됨에 대해서 그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11장 후반부에서는 주되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순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주 되심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예식은 이와같이 밀접한,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주님의 머리되심과 주님의 주되심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교제를 나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머리됨과 주되심을 인정했을때에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와있는 것처럼 이제 여러분은 주님의 청지기로서 은사를 따라 섬길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은사를 주시고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신령한 은사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두 그것을 사용해야 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주님을 여러분의 머리로 주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은 그 은사를 마땅히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주님의 머리되심이라는 그 진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사도행전 18장에 있는 그 그리스보에 대해서 먼저 강조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구원받았는 것이 그에게 완전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음 속에서부터 있던 그 변화였고 그리고 또한 그가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것에 있어서도 완전히 다른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게 될때에 거기에 그 랍비들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회당에 있는 가르치는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를 부인하는 그런 것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날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이었던 회당장 그리스보는 하나님의 신약교회 안에서 그의 머리가 가리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1장에 마지막 부분에서 이제 한 질서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이것은 회당과는 다른 그런 질서입니다. 이것은 성전에서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입니다. 왜냐하면 이 질서는 한 희생제사에 근거해서 세워진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10장 마지막에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제 먼저 11장 1-16절까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 질서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4-16절까지는 하나님의 그 질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질서를 보시는 것이 기쁨이며 또한 천사들도 이러한 질서를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에 보낸 그 서신에서 이제 그가 "육신으로는 떠나있으나 신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의 굳은 것을 보는 것을 기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학교나 어떤 병원과 어떤 공항이 이러한 규모와 질서없이 이루어지게 될때 거기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혼란이 될 것입니다. 몸이 머리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 믿음을 고백한, 신앙고백을 한 믿음의 교회들이 이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지 않게 될때, 거기에는 많은 혼란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질서대로 또한 권위를 주시는 그 가운데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끝낼때에도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 가운데서 이 세상을 끝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권위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자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11장에 나와있는 그 머리되심에 대해서 보게될때에 그 가장 정점은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머리됨을 나타내는 예식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보게 됩니다. 이제 3절에 나와있는 그 머리됨에 관련된 질서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나와있는 이 질서는 특별히 이제 모임 안에 있는 지역교회와 관련된 것임을 말씀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16절에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20절에 "너희가 함께 모일때에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나니" 함께 모일때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머리됨과 관련된 너울을 생각하게 될때에 그것은 누가 우월하고 누가 열등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권위와 관련된 것임을 먼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3절에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것은 영적인 머리됨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의 육체적인 머리를 말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입니다. 그런 남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권위를 주셨는데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은 우리가 전체 성경을 통해서 보게되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창조물의 머리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남자의 머리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십니다. 그것은 영국의 여왕이 그 머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화목케 된 그 땅의 피조물들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의 전체적인 성경의 주제에 대해서 또한 이해를 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남자의 머리에 대해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단지 열등하고 우월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이 머리됨이 누가 열등하고 누가 우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는, 열등한 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고 그분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면을 이 머리됨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그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아들과 딸들이 함께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무언가를 하는 권위를 줍니다. 그것과 관련되서 여러분에게 어떤 열등함을 주는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러분에게 자원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남자들은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에게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하나님의 질서가 어떻게 말씀되고 있는지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이제 4-12절까지는 이와같은 질서가 어떻게 나타내 질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여왕은, 왕족은 어느때에 왕관을 쓸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웨스터민스턴 성당에서 열리는 대관식에 거기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왕관을 쓰게 됩니다. 또한 그 국회의사당이 열리는 기념식에 그 왕관을 쓰게되는 것입니다. 그의 권위의 상징이 머리에 씌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물론 그 여왕께서 그 집에 왕관을 쓰지않고 거할지라도 그 권위를 분명히 그녀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4-12절의 말씀과 같이 그 권위를 어떻게 나타내고 인정하는지가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4-5절에서는 이것과 관련된 2개의 문제가 있습니다. 4절에서는 그 남자의 머리를 가렸을때의 문제입니다. 남자가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한다면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해결은 이제 남자가 기도나 예언을 할때, 머리에 쓰지않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렇게 함으로써 남자의 머리를 존귀하게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5절에 나와있는 문제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이 여자는 두가지 것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소리를 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여자는 종용히 잠잠할지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두번째로 그녀의 머리가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는 이제 그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며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 무엇을 써야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여자는 조용히 기도할수 없습니다. 물론 그는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참으로 자매님들이 주님 만찬에서 기도하는 것은 굉장히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것을 소리를 내지않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자매님의 머리가 무엇으로 씌여져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여자의 머리가 가려져있지 않는다면 그 머리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것은 집안에서, 가정에서는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임에서는 그녀의 머리가 가려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모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 가운데서 머리로서 분명하게 드러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그 영광이 들려지고 남자에게 그 영광이 돌려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의 머리는 가려지지 않으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머리는 가려집니다. 그것은 남자의 영광을 가리고 이제 영광을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원리를 생각하게 될때에 지역모임 안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어야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 오직 자매님들만 모여서 집회를 하고자 하는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또한 남자들만 모여서 하는 그런 집회를 하고자 하는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오직 그 남자와 여자가 구별되서 남자들만 모일수 있는 집회는 장로모임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집회에서는 항상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머리됨에 대한 이 상징이 전혀 의미가 없이 보여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자 없는데 왜 여자의 머리가 그때 가려져야 되겠습니까? 저는 이러한 경고의 말씀에 대해서 참으로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때때로 이 여자들이 머리를 가리는 것을 그만두는 모임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만약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여자들은 또 기도시간에 말하고, 소리를 내서 말하는 것까지도 하게되는 것을 금방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순종을 하고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너울의 실행에 대해서 그만둔 후에 이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이미 너무 늦은때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계속 가르치고 확신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6절 말씀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것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머리에 쓰지 않는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머리를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머리를 깎거나 민것과 같다고 말하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자에게 머리에 쓰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머리를 가리는 것에 대해서 중요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머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쓰는것을 대신하는 것이고 너울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내용들은 이 11장에서 내용을 살펴볼때에 서로 모순이 되는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여자의 머리가 그녀의 머리가 쓰는것이라면 어떻게 남자의 머리가 가려지지 않게 만들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이 장을 주의깊게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여기에 깎거나 미는것이 다른 단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깎다는 것은 짧게 자르는 것이고 양털을 깎는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또한 미는것은 이제 면도하듯이 완전히 밀어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런 것들은 긴 머리가 그의 쓰는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그 쓴다는 것은 이제 너울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15절에 "쓰는것을"이라는 단어는 이제 6절에 나와있는 "쓰는 것"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이 6절에 나와있는 쓰는것은 머리를 가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5절에 쓰는다는 것은 이제 둘러서 가리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머리카락은 그 머리를 가리는 것이 아니고 그 여자의 머리를 둘러서 그녀의 영광이 되는 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위를 나타내는 것을 7-12절까지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설명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와같은 너울에 대해서 순전히 문화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7절에서는 여기에 하나님의 질서에 근거한 것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의 질서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의 창조와 관련된 것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것은 창세기에 기록된 근거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에 쓰지않은 남자를 통해서 창세기 2장에 나와있는 그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이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것은 여자의 머리를 가리는데서 나타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는 그 창조의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한 근거로서 8절에,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남자가 먼저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질서가 창조때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디모데전서 2장에서 그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할 것을 말하면서 사도바울은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질서에 대한 세가지 다른 이유가 더 있습니다. 우리는 8절에서 말씀을 드린것처럼, 그 창조의 기원과 관련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는 그 창조의 목적과 관련해서 근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의 목적은 남자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세번째 이유로 그 천사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이것을 보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들이 머리에 너울을 쓰는것은 신자들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도 중요하며 또한 천사들에게도 중요한 것임을 보게 됩니다. 왜 천사들이 그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천사가 그 타락한 루시퍼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그는 타락하였습니까?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머리되심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이제 땅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단이 공격하고자 했던 창조와 관련된 질서를 계속해서 회복하고 유지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또 다른 한가지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모두 함께 관련된 것입니다. 이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여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주되심이 머리되심과 또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함께 모여야 되기 때문입니다. 12절에서는 이제 또 다른 이유로서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성별의 차이는 동등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분명한 구별이 있습니다. 여자가 남에게서 난 것처럼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저는 다른 집회 시간에 이 성별의 구별에 대해서 공격받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결혼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근거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별의 구별은 또한 모임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적인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너의 성별을 네가 선택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이것까지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로부터 나고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입니다. 이러한 성별의 구별에 대한 공격이 계속될때, 참으로 모임은 큰 위험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별에 대해서 다른 의문을 품지 않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 가운데서 이러한 영향을 계속 받을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창조의 질서와 그 원리에 대해서 일어나서 말하기를 주저할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13절부터 16절까지는 이러한 하나님의 질서가 분명하게 구별되서 나타나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본성적으로도 구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13-16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본성적으로 두신 그런 내용들이 남자의 머리카락과 여자의 머리카락에서 차이가 나는것을 보게 됩니다. 14절에서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 욕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여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그에게 영광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그 긴머리는 그녀에게 쓰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여자들이 긴 머리를 해야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긴머리를 특별히 그분의 말씀 가운데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긴머리가 있으면 그것은 또한 하나님에게도 영광이 됩니다. 그것은 그녀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질서를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성별의 구별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남자와 여자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길고 얼마나 짧아야 되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 자신이 또한 어떤 경건한 형제님에게 물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 형제님은 저에게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만약 당신이 '얼마나 길고 얼마나 짧아야 됩니까?'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이 장에서 말하고 있는 중요한 주제를 지금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말로 하자면 남자는 내가 얼마나 머리가 짧아야 됩니까? 라고 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내 머리가 얼마나 짧아도 됩니까? 라고 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한 집회에 남자가 참석했을때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긴 머리를 가지고 뒤로 묶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와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주제를 가르칠때에 그분들이 어떤 반응들을 보일지 궁금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질때에 그것에 대해서 합당하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집회후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남자가 그렇게 긴 머리를 갖는것이 옳지 않은 일입니까?" 그분은 제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긴 수염을 가져서 이제 사람들이 그분의 수염을 뽑았다는 말씀은 읽는데, 왜 그처럼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지면 안됩니까? 하지만 제가 오늘밤 이 성경말씀을 통해서 당신이 듣게되었을때 남자가 긴머리를 가지고 있는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알았습니다." 제가 그분께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것입니다." 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집회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갔을때에 며칠후에 그 모임의 장로 형제님들에게 이 메일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그 젊은이가 그 기도집회에 참석하였는데 짧은 머리를 하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몇달후에 이제 그는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침례를 가지고 상담을 할때에 장로 형제님들에게 바로 그날밤에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고백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가 지금하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마음에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직 믿지 않는자도 이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창조의 질서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또한 그가 함께 살고있는 여자가 아직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도 그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친절하게도 그 모임은 구원을 고백한 형제님에게 결혼식을 위해서 비용을 대고 또한 장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16절에 이와같은 권위에 대해서 변론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서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 또한 이러한 경향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모든 교회는 복수형으로 그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호주에서 가르친 것과 또한 한국에서 가르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또한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도 동일한 것을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질서를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11장 1-3절까지 하나님의 질서가 정의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4-12절까지는 이러한 머리됨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남자는 그의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자는 그의 머리는 가리우고 기도합니다. 조용하게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오직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하나님의 질서는 본성적으로 차이가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여자는 긴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주어진 그 영광을 나타낼 그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는 짧은 머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도우셔서 이러한 하나님의 질서를 계속해서 우리가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한 하나님의 모임을 위해서 얼마나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가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