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2. 8. 7. 17:09

성경읽기 : 로마서 4장 12-13절

성경읽기 : 로마서 4장 12-13절(요약)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4:12-13).
 
12절 :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롬4:12,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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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말씀에서 아브라함이 할례자로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유대인의 조상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혈통적인것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이 될수는 없다.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길에 동참하여 좇는 사람만이 될수 있다.
 
* 따르는(스테이케오) : 규정된 선에 정렬하다의 파생어에서 유래, 행진하다(군대가 걸음을 맞추어), 즉(상징적으로) 경건과 덕을 이루다. (질서있게) 걷다.
 
*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갈대아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갈대아 우르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그 아버지 데라로 인해서 갈대아 우르의 끝 하란에 머물렀다. 그 아버지 데라가 죽고 난 이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완전히 떠났으며 때로는 애굽에 내려가기도 하고 그랬지만 아브라함은 꾸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것과 그 믿음이 견고해졌다. 또한 자기 몸이 죽은것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을 알고도 그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점점 견고해 졌다. 아브라함의 그 처음의 시작의 믿음은 작고 약한 것이었지만 그의 삶에서 그는 그 믿음이 점점 견고해 졌다. 이와같이 우리의 처음 구원받을때의 믿음은 작고 약한 것이지만  믿음의 삶에서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 지기를 원한다.
 
- '할례는 아브라함의 그 믿음의 표로 받은 것이다'를 11절까지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12절에는 아브라함이 할례자의 조상도 된다고 말씀한다. 이것으로 오해를 할수도 있지만, 바로 이어지는 말씀으로 우리는 이 말씀을 옳게 이해할수 있다.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절 :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4:13,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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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 : 이것은 창세기 12장 15장에 나와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약속이 나오는데, 창세기 18장, 26장의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통해서 천하 모든 만인이 복을 얻을것이는 약속을 하고 계시다. 이것은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말미암은 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 오직 믿음의 의 : 율법도 주어지기 전이지만,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지만,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서 그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 천하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 또한 그의 후손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그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를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가를 보게 된다.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하신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다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야만 얻을수 있다.
 
- "믿음의 의" 이것은 있다와 없다로만 구분할수 있다. 50%의 믿음 30%의 믿음으로 말할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성도의 믿음을 좋다, 나쁘다, 적다 라고 할때에 이것을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 이것은 우리의 삶의 성화적인 삶에서의 믿음을 말할때에 그 믿음의 크기를 적다.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빼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그에게는 오직 가족묘의 땅만큼만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사후에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계속해서 이어져 하나님께서는 그 하신 언약을 이루셨다. 또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그 믿음을 따르는 자들의 영적인 조상이 되었다. 영적인 백성은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동일한 믿음으로 되었다.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17:5-8, 개역한글)
 
-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셨다. 그리고 이 약속은 실현될때가 아닌 그 약속을 받을때에 이미 유효한 것이다. 
 
".. 그리고 이것은 저도 좀 어려운 부분이지만.."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롬4:14,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의 것이고(한몸) 또 다른 몸은 율법을 지키고자 사람들이 하는 행위가 있고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 이 두개의 몸은 전혀 독립적인 것이다. 이 두가지는 절대 섞일수 없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7장에 하신 약속은 믿음에 속한 자들에게 하신 약속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행위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약속한 것이라면 그 약속은 이미 폐해진것이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일방적인, 무조건적인 약속이다. "만일 네가 ~을 하면 내가 ~을 주겠다." 하는 조건부적인 약속이 아니다.
창세기 17장 5절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어떤 행위에 대한 조건없이 일방적으로 그에게 약속해 주셨다.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이 그러한 약속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할찌라도, 자기의 수준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찌라도,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받는것, 그것이 믿음이다.
 
* 그 후손 : 주님으로 본다. 그리고 이 말씀은 천년왕국때에 이루어진다. 라고 이해될수 있다.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전3:21,23, 개역한글)
 
만물은 너희것(교회) 것이고, 또한 교회는 주님의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만물은 주님의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일방적인 약속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기인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뒤따른다. 이것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율법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조건적인 약속이다. 그렇기에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따라오게 된다. 이 두가지는 결코 섞일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