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전의석 형제님(요약)

복음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박이레 2022. 7. 24. 12:51

< 복음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 2022년 7월 24일 일요일(요약2) / 전의석 형제님

23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19:23-30, 개역한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이 19장에 나와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족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자가 합당치 않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잘 아시는 것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질때, 시몬이라는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관정에서 많은 모욕과 수치, 고난을 당하셨기에 십자가를 질수가 없는 몸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서 강하게 교훈받는 것은 사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고 시몬의 십자가요, 우리 각 개인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죽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원래 십자가를 절대로 질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저희들은 저희들의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자기의 십자가를 우리가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께서 그 옷을 사람들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이는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합니다. 보통 죽은 사람에게 수의를 입힙니다. 그것이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좋은 옷을 입히고 붕대도 감고 염을 합니다.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미물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예의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죽음은 그런 미물만도 못한, 그 옷마저도 빼앗기는 모욕을 당하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모두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 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한가지는 어머니 마리아와 사도요한과의 사이를 주님께서 중재하고 계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서는 그 자신도 벅차실텐데, 사랑하는 어머니와 사도요한을 보십니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19:27, 개역한글)

"그때부터"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때부터 모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놀라운 순종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도요한에게 아주 크나 큰 특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은 어머니 마리아를 모심으로 통해서 주님의 어렸을 적의 모든 일에 대해서 다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은 주님의 어릴적을 물어보았을 것이고 주님의 자라는 내용을 들었을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도 변화산상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야이로의 딸을 살린 내용도 들었을 것이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번민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을 들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가 서로 교제하며 주님에 대한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괴롭게 노젓는 사람들을 보셨고, 십자가 위에서 제자들을 보시고, 두렙돈 넣는 과부를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과부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남편이 일찍 죽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과부를 보시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우리가 노를 젓는 것처럼 괴로움 가운데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또 과부처럼 외로울수 있습니다. 또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 가운데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세세히 보시고 그 사람들에게 맞는 합당함 말씀과 위로를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해서 "내가 목마르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포도주를 물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생명의 샘이십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저희들의 죄 때문입니다. 저희들의 죄를 위해서 목마르셨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부자가 음부에 있을때에 나사로의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자기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주님께서는 목마르셨습니다. 이는 구원받은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와 크나 큰 담대함을 얻게 합니다.

또 이런 것을 생각해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실때 주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6일간 창조하셨습니다.
헤롯 성전을 보고 베드로가 주님께 "이 건물을 보십시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40년이 걸렸습니다. 그 성전을 짓는데 막대한 금과, 은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전도 유효한 제한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이 땅과 하늘도 결국에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의 시간을 생각해 볼때에, 그 사역을 영원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크게 생각합니까? 화려한 성전을 보고 사람들이 감탄했던 것처럼 크고 100층 짜리 건물을 보고 매료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 앞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역은 예수님의 몸과 영혼이 지불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때문에 지불된 것입니다. 이것은 계산할수 없는 가격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는 외침을 생각할때에 그 섬김과 고통이 우리가 당해야 할 섬김이고 고통이라는 것을 생각할때에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데까지 나아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