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복음 :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는 기적

박이레 2022. 7. 24. 12:50

< 복음 :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는 기적 > 2022년 7월 24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16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18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19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21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왕하4:16-22, 개역한글)

24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25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왕하4:24-25, 개역한글)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28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찌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왕하4:27-29, 개역한글)

31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왕하4:31-37, 개역한글)

읽지 않았지만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어떻게 대하였는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을때 그녀는 그에게 음식을 접대했고,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았습니다.

9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을 내가 아노니
10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왕하4:9-10, 개역한글)

음식을 접대할뿐 아니라 편히 쉴수 있는 거처를 수넴여인은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와같은 수넴여인을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뭔가 은혜를 베푸실 것이 없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없던 자녀를 허락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왕하4:14, 개역한글)

자녀없이 주님이 주신 생애를 살아가려던 차였는데, 그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고, 접대를 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들을 주십니다. 그러나 수넴여인은 이와같은 일이 불가능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기대하지 않던 아들을 얻었기에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도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기쁨과 같았을 것입니다.

1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2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욥14:1-2, 개역한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생애 가운데 나타나는 가장 화려한 때가 꽃과 같아서 금방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아서 머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꽃과같이 금방 시들 것이고 그림자 같이 금방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 그와같은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아이가 자랐고 기쁨 가운데 있었지만 그 기쁨이 길지 않았습니다. 배경은 곡식을 베던 때, 추수 때였습니다.  추수때는 보통 사람들이 기뻐하고 곡식을 얻을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입니다. 이 아이도 어렸지만 그 일에 참여하고 싶었을 것이고 어미의 허락을 받고 추수하는 아비의 곁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병이 나타나게 됩니다.

19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왕하4:19-20, 개역한글)

저희집에 조그마한 어항이 있습니다. 물고기 한마리를 한달 전부터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항 안에 물고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항밖으로 물고기가 뛰쳐 나와서 죽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항밖으로 뛰쳐나온 물고기를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거실 구석에 미라처럼 딱딱해진 물고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러한 미물이 죽었음에도 마음에 충격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가족이 죽는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대화하고 웃고 반응을 보이던 자가 죽으면 그에게서 어떠한 반응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여인도 그랬을 것입니다. 삶의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을 그 아이가 죽은 것입니다.
아이는 "내 머리야 내 머리야" 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희가 받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을 생각해 본다면, 생각은 머리에서 나옵니다. 그의 통증은 머리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교훈을 생각해 볼때, 그 사람의 생각, 마음이 그 머리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망의 원인은 우리 마음의 중심(머리)에 있는 것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10:4-5, 개역한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파하는 작업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희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싫어하여 높아진 탑이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여러가지 이론들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죽게 되었을때 수넴여인이 찾아간 곳은 갈멜산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저희 마음의 중심에 있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수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취해야 하는 것은 갈멜산,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으로 가야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을때 그 슬픔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냉정하게 하나님의 사람을 향해 갑니다. 그녀는 그 슬픔 가운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영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참 도움을 줄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수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달려가야 하는 곳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아이가 죽었을때 먼저 지팡이를 보냈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모든 사람들을 내보내고나서 아이 위에 엎드립니다.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왕하4:34, 개역한글)

이것을 두번 하자 아이가 일곱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뜹니다. 엘리사는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과 같이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육체를 입고, 이땅 가운데 보내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게 하십니다. 또한 사람들과 함께 잡수셨습니다. 주님은 어떤분이시냐면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의 손과 발에 못이 박혔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님을 죄인으로 대우하신 것입니다. 원래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주님을 갖다놓은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아이의 눈과 입과 손을 마주 대한 것처럼, 동일시 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우리의 받아야 할 심판을 받으심으로 이를 믿는자는 그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일곱번 재채기하고 눈을 뜹니다. 이는 주님의 부활하심을 보여줍니다. 일곱번은 온전한 수 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부활하심을 따라서 우리가 살 것을 우리에게 온전한 생명을 허락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같은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구원하십니다. 저희는 죽었던 이를 다시 살리신 일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주님께서 어떻게 죽을 죄인을 다시 살리시는지 그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와같은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깨닫고 주님을 인정하는 분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