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윗 생애의 네가지 전환점
2015년 7월 30일 목요일 강사 : 로렌스 퍼킨스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다시 마포모임에 방문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밤에는 다윗의 생애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의 생애에 관해서 많은부분을 할애합니다.
그중 특별히 다윗의 생애의 전환점이 됬던 4개의 사건을 살피고자 합니다.
그는 이 4개의 전환점에서 어떻게 행했는지에 따라 큰 변화를 겪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바뀝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시점입니다.
혹, 여기 계신분들중에 이런 중요한 시점에 계신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것은 우리의 나머지 인생을 결정할뿐 아니라 가족과 모르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것입니다. 이는 모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간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무엘상 17장에서 몇장만을 읽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내용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삼상17:4, 개역한글)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삼상17:10-11, 개역한글)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삼상17:26, 개역한글)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삼상17:32, 개역한글)
44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의 상한 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삼상17:44-52, 개역한글)
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였고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5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삼상18:2-7, 개역한글)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기는 사건은 그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중 하나입니다.
그는 전에는 단지 목동이었으나 이제는 국가적인 영웅이 된것입니다.
이는 그가 불가능한일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일은 정말 붕가능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누구도, 사울왕조차도 골리앗과 사우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치 고리앗이 이스라엘을 꽉 붙잡고 있는 형태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울수 없는 상황같았습니다.
우리들은 이와같은 상황들을 만나지 않나요? 인생가운데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 말입니다.
이와같은 사건들은 우리를 마치 포로처럼 꽉 붙잡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불가능한 사건을 만날때에 어떻게 대웅하겠습니까?
아무도 골리앗과 싸우고자 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왜 골리앗과 싸우고자 했나요?
다윗이 이전부터 골리앗을 알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이 물었을때, "어찌 이유가 없으니리까"
다윗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잘알고 있었습니다.
성도님들, 우리가 싸울만한 이유가 없습니까?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잘 알도록 알려줍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우리가 위기에 직면했을때 어떻게 행하는지를 보는것입니다.
우리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을때 우리는 세상에 주님을 드러낼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행했나요? 그는 단지 어린소년이었습니다.
그는 큰칼과 방패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소년다윗은 그 큰거인과 대응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다윗은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합니다.
다윗이 온전히 의지했던 하나님이 우리가 지금 의지하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뒷의 인생가운데 볼수 있는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것이니 >
여러분 이러한 여러움가운데 속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와같은 고백을 해야 합니다.
어떤분들은 내 인생에는 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라고 말할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모두는 우리의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지금문밖에 거인이 서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주님은 이러한 모든거인들을 해치우실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에대한 다윗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와같은 어려움들을 우리 인생가운데 자주 접하게 되지 않나요?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의지할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것들을 이길힘을 주십니다.
다윗이 양을 칠때도 사자나 곰이와서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곰과 사자와 싸워야 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빈손으로 곰과 사자와 싸우기 원하는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도 없던 상황에서 곰과 사자와 싸웠던것은 모든사람이 보는가운데서 골리앗과 싸울수 있는 경험을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골방에서 싸우는 싸움은 더 큰 싸움을 위한 경험이 됩니다.
이제 다윗의 두번째 전환점을 보겠습니다.
7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0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번 피하였더라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삼상18:7-12, 개역한글)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삼상22:1, 개역한글)
14 다윗이 황무지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황무지 산골에도 유하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니라
15 다윗이 사울의 자기 생명을 찾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더니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18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상23:14-18, 개역한글)
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쌔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4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삼상24:1-7, 개역한글)
이 두번째 인생의 전환점에서는 환난과 핍박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이스라엘 왕 사울은 다윗을 기뻐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자기보다 더 칭찬하는것을보고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윗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다윗과 같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일이 여러분에게는 없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혹, 말로써 사람들을 거의 죽이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핍박을 받는일이 드문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신자들에게 어려움을 끼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는 슬픈일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고자 하는것은 정당한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죄를 짖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대하는 것에서 정당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나요?
구원받지 않은사람들이 우리를 핍박할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나요?
우리는 이문제대해서 다윗을 통해 큰 교훈을 받게 됩니다.
참으로 이 핍박가운데서 다윗이 보인 놀라운 믿음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는것입니다.
다윗은 군인이고 용사였기 때문에 사울을 죽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은자를 죽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다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왕위에 있는 동안에는 다윗은 사울을 해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떠나 멀리 도망쳐야 했고, 굴같은 곳, 숲같은 곳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이러한 도망의 생활을 7년이나 해야 합니다. 7년이라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고통의 시간이 없이 그는 궁전에서 지낼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나무들가운데서 지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숲이나 동굴에서 지내본적이 있나요? 그것은 좋은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처럼 반대할때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그문제를 스스로 해결할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 될것을 알고 있었고 그는 사울을 죽일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동굴로 들어왔을때 다윗의 부하들이 사울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 부하들에게 사울에게 손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울의 옷을 벤것만으로도 다윗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옳은 일이지만 우린느 잘못된 방법으로 행할수 있습니다.
다윗은 능히 사울을 해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왕위에 오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한것입니다. 그 대가가 아주 큰것이라해도 다윗은 이것을 치뤘습니다.
7년동안 도망다니는것은 결코 좋은것이 아닙니다.
흥미로운것은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찾았지만 다윗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숨기시고 찾지 못하게 하신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안전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요나단이 다윗을 찾은것입니다. 그는 사울의 후계자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아주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윗이 다음 왕이 될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삼상23:16, 개역한글)
그는 다윗을 격려하였습니다.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삼상23:17, 개역한글)
요나단의 이 말은 다위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들은 이렇게 서로를 위로할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이 핍박이나 반대를 당하고 있을때 이러한 격려는 힘이 되는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주위에 이러한 격려가 필요한 분을 알고 계신가요?
다윗이 사울을 죽인다면 그는 바로 다음왕이 될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을 죽이는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러한 일을 결과는 또 너무나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핍박의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는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는 주님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주님은 땅에 누워 하늘을 보며 잠드셔야 했습니다
주님은 "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처럼 우리에게 중요하나요?
아무리 큰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의 뜻을 순종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것은 중요합니다.
다윗은 이 세계가 본 인도자중 가장 위대한 인도자 중 하나가 될것입니다.
만일 다윗이 사울왕을 죽였다면 다윗은 왕이 되었을지언정 위대한 왕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30:1-6, 개역한글)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9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한 육백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삼상30:8-9, 개역한글)
17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때까지 그들을 치매 약대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18 다윗이 아말렉 사람의 취하였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19 그들의 탈취하였던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의 대소를 물론하고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20 또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무리가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가로되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하였더라
(삼상30:17-20, 개역한글)
이 시점에서 다윗은 사울로부터 떠나서 시글락이라는곳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블레셋지경안에 있는 지역이었을 것입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시글락을 비웠을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침략해 다윗과 부하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포롤 잡아갔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읽는 이 상황은 끔찍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일이 여러분에게 닥친일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집에 가보니 여러분의 집이 불타있고 대적들이 여러분의 가족들을 다 사로잡아 간것입니다.
이때까지 다윗을 돕는 많은 부하들이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상황까지 간것입니다.
그들은 다윗과 함께 동굴에도 있었고 숲속에도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일이 그들의 태도를 바꾸게 한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충성되었지만, 이제는 다윗에게 돌을 던져 던지고자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크게 궁급하였으나> 라는 구절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대하여 "내가 주님께 충성되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라고 물을수 있었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했는데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어려분에게 이러한 큰 어려움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끔찍한 상황중에서도 여러분은 신실하게 주님을 섬길수 있나요?
이러한 어려움가운데서 많은사람들이 주님을 떠나가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나님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불만을 표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만을 표하면서 등돌리고 떠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러한 일들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윗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였나요? 다윗이 소리내어 원망하였나요?
< 다윗은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
이 말씀은 요나단이 다윗을 격려했을때 다윗이 얻은 격려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다윗을 붙돋아줄 요나단이 없습니다. 그저 그의 부하들이 돌을들어 그를 죽이고자 할뿐입니다.
다윗은 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그렇게 할수 있었나요?
다윗은 많은 시편을 썼습니다. 시편의 많은부분들이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 가운데서 다윗은 항상 주님이 어떠하신분인지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다윗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인생가운데서도 이러한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을때에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며, 우리에게 가지신 계획과 목적을 알게됩니다.
다윗은 이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지신 목적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곰과 사자와 싸울때 하나님게서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셨는지, 도우셨는지를 생각한 것입니다.
동일하게 우리의 과거 어려움 가운데서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도우셨는지를 생각하며 우리는 힘을 얻을수 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삼상30:8, 개역한글)
그가 하나님께 무엇을 할지를 물은것을 주의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뭍지않고 행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모든것을 행할때에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것이 어떤결과를 가지고 오나요? 적은수의 부하를 데리고 가고 모든가족을 되찾아온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생긴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이 재앙으로 끝난다는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여러움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시험이 될 뿐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인생가운데 세번째 전환점입니다. 이는 아주 큰 비극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가운데서 주님을 계속 신뢰했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계속 신뢰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땅가운데 계실때에 보이신 본이 아니십니까?
주님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노라 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런데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계속 순종하셨습니다.
2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3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4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 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하11:2-4, 개역한글)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삼하12:1, 개역한글)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삼하12:7-10, 개역한글)
이 네번째 전환점은 유혹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대적은 골리앗이나 사울이 아닙니다. 그의 대적은 도한 아말렉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대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육신입니다.
다윗은 이번전쟁에서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골리앗과 싸울때 주님을 신뢰했던것처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사울과의 전쟁에서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스스로 힘있게 하였던것처럼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믿음과 그의 순종과 하나님에대한 의지를 보지 못합니다.
오직 다읫의 실패만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은 닫을수 없는 문을 열었다" 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가서는 안되는 길을 간것입니다.
성도님들 어느누구도 이러한 것에서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이러한 여려움가운데서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우리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용서한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용서에 대해서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일을 인생내내 겪게 됩니다.
다윗이 왜 지붕위에 올라갔고 그곳에서 무슨생각을 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슨생각으로 밧세바가 목욕을 하고 다윗에게 나아갔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에 어떻게 행할지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도망쳐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음행을 피하라"라고 합니다.
요셉은 이에대해 좋은 예가 됩니다.
주인의 부인이 요셉을 유혹할때에 "내가 이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앞에서 득죄하리이까" 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앞에서 도망합니다.
형제자매님들, 어떤것들은 우리가 미처 피하기전에 눈으로 보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단지 식료품을 사러 가게에 들어가도 노출이 심한 여자들의 사진이 들어있는 잡지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티비와 영화들, 우리가 보지 않는것이 나은것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우리마음이 휩쓸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이러한 것들은 재앙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문을 닫아야 합니다. 도망가야 합니다.
처음 보는것을 피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두번째, 세번째 보는것은 피할수 있습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사람이 이러한 범죄를 하였다는것은 슬픈일입니다.
형제자매님들은 이것은 우리에게 경계가 됩니다.
우리는 다윗보다 나은자가 아닙니다. 다행스러운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시16:1, 개역한글)
이 말씀이 다윗의 범죄 전후 인지는 모르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바라야 합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일어났다면 우리에게도 일어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에게 일어나야 하는일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네번째 다윗의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전환점들로부터 교훈을 얻지 않나요?
첫번째 전환점은 거인과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믿음을 보았습니다.
두번째 전환점은 사울왕으로부터 받는 핍박입니다. 그러한 핍박가운데서 다윗은 계속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세번째 전환점은 다윗에게 일어난 큰 곤란이었습니다. 마을이 불타고 가족들이 잡혀갔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중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네번째 슬픈 인생의 전환점은 유혹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실패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윗의 인생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 말씀으로부터 교훈을 받을것인가입니다.
그의 좋은 결과나 나쁜결과로부터 교훈을 받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