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로렌스 퍼킨스 형제님(요약)

02.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

박이레 2022. 7. 14. 15:12

2015년 6월 8일 월요일     강사 : 로렌스 퍼킨스 형제님

오늘밤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언젠가 모두 함께 하늘나라에서 한목소리로 찬양을 부를것을 생각합니다.
그때는 이와같은 언어적인 문제가 없을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언어로 말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하늘의 언어를 사용할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주님에 대해서도 잘 이해할것입니다.
지금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주님을 이해할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이땅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주님을 조금씩 더 알아가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목적이 있으시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몇가지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제 질문은 여러분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가운데 무엇을 하기 위하시는지 관심이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품으신 계획에 관심이 있습니까?

하지만 기억해야 할것은 우리가 주님앞에 서야할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의 흔적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나요.

우리가 이땅에 사는 잠시동안 우리는 주님을 더욱 알아가고 사랑을 표현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신분은 이 자리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20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히13:20-21, 개역한글)

우리는 이 긴구절을 이렇게 줄여서 말할수 있습니다
<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를 온전케 하사 >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기도이며 성령님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게서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가 이것에 대해서 설명 드리기전에 20절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평강의 하나님이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때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평강을 누릴뿐만 아니라 주님의 평강을 우리가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성품이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 평강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의 환경과 우리 자신의 문제 떄문에 우리는 이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21절에 나온것처럼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 이러한 평강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 때문에 마음가운데 낙심이 있습니까?
이러한 이유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임으로 모이도록 하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에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도록 하기 위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이와같은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땅에서도 이러한 평화를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셨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은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우리의 친구되신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보다 더 나은 친구를 만난적이 있으십니까?

제 아내는 저의 좋은 친구이고 저도 제아내의 좋은 친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보다 더 좋은 친구이십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기독교라는것은 관계와 관련된 것입니다.
여러가지 규칙으로 인해 생긴것이 아닌 우리는 살아계신분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것을 계시하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우리는 자주 세상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님과의 관계에 실패할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20절에서 < 주예수께서는 양의 큰 목자이신 > 이라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혹시 텃밭에서 양을 키우시는 분이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양에게 좋은 목자가 있다면 양은 필요한 모든것을 다 가졌다는 것입니다.

어떤분이 양의 지능에 대해서 말해준적이 있습니다.
양은 스스로를 보호할수 없습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처음에는 이 구절이 제가 많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그 구절에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나의 목자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위해 죽으셨고 살아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나는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흥미로운것은 시편23편 전에 22편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목자에 대해서 읽지만 시편22편에서는 구세주에 대해서 읽게 됩니다.
우리가 목자에 대해서 알기전에 우리는 구세주에 대해서 먼저 알게 됩니다.

22편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이와같은 구절로 시편 22편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번에 거쳐서 "아무도 나를 도울자 없나이다" 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내손과발을 찔렀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용하사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1000년전에 주님의 고난을 예언하셨습니다.
다윗은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러한 예언을 할수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이 성경을 쓴것이 다윗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우연으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20절에 < 영원한 언약의 피 > 라는 구절을 보게 됩니다.

형제자매님 여러분, 영원한 관계게 형성된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 영원한 관계의 근원이 된것은 아들의 피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피로 우리와 영원한 관계를 맺으신 것입니다.

영원한 언약의 피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 관계인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러한 영원한 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모든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21절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 평강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온전케 한다 > 라는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 입니까?

우리가 성경에 나온 단어들을 이해하는 것은 성령께서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살펴보는것입니다.
이 '온전'이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13번 사용되었습니다.

다른번역으로는 '온전'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해석된 것을 볼수 있습니다.
다르게 번역된 번역본을 통해 이 온전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다른단어를 찾아보는것은 지식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4:18-22, 개역한글)

우리가 히브리서 13장에서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다 라는 그 온전이 여기서는 그물을 깁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제자들중 어부인 사람은 그물에 구멍이 나자 그것을 손질할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모든 성도중에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뚫어지고 구멍이 난 그물은 바로 우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품 가운데 이러한 구멍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사람들은 정신상담자들이 이러한 것들을 도와줄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심리 상담자들이 할수 없는방법으로 우리를 고치고 계십니다.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슬픈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쉽게 화를 내는 성품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고치기를 원하십니다.
어부들이 손상된 그물을 고치는 것처럼 고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물과 우리와의 큰 차이점은 그물은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는 선택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물은 어부의 손에 의해 강제적으로 고쳐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고치려 하실때 우리는 주님의 뜻에 따르지 않을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닮게 하시려 하십니다. 물론, 이땅에서는 완벽하게 주님과 닮을수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를 주님과 계속 닮아가게 하실것입니다.

어부들은 왜 그물을 고치고 있을까요?
그물을 집안에 장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물을 고쳐서 물고기를 잘 잡자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와같은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고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치사 많은 사람들이 주님앞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할수 없는것을 우리가 하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온전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또 사용되었는지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6:1, 개역한글)

온전은 여기서 '바로잡고'라고 사용되었습니다.
6장 1절에 있는 문맥은 한 신자가 죄가운데 있을때 그것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바로잡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자리에 있는 분중에 바로잡을것이 하나도 없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는 아주쉽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한것은 하나님께서 회복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시편23편으로 다시 돌아가서 살펴볼때에 < 내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 라는 구절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게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지만 우리는 자꾸 벗어나려고 합니다.
여기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단어에는 다른뜻이 있습니다. 뼈가 어긋나거나 탈골된 것을 말합니다. 이는 아주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뼈가 탈골된채로 남은인생을 살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우리를 바로잡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뼈가 어긋난것과 같이 어긋난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서, 우리의 자세에서, 우리의 행동에서.

우리가 우리 눈으로 잘못했다는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한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바로 잡으십니다.

팔의 뼈가 빠졌을때에는 고통스러울 뿔만 아니라 그 팔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도들과 교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도를 사용하실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주십니다.

우리는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아주 중요한 구절을 보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하게 되는것을 기대하시는것이 아닌 우리가 정직하게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뭔가를 잘못했을때 그 모든것을 말씀드리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자복할때 우리는 아버지의 용서를 받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죄로 인한 형벌을 받는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 받았습니다.
우리의 이와같은 자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자백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죄를 자백하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처럼 유지되는것입니다.

어느날 저의 딸이 제 지갑에서 돈을 훔쳐 갔습니다. 그럼에도 제 딸은 여전히 제 딸입니다.
그러나 저와 제 딸 사이에는 기쁨이 없는 관계가 됩니다.
그럼 제 딸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 딸은 정직하게 저에게 나아와 아버지의 돈을 가져갔노라고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이와같이 할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같이 거룩하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배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기를 원하시고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10:5, 개역한글)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임하실때 이전에 가지지 않은 한가지를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님께 몸을 주셨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몸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가지지 못한것을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 위해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사자를 사냥한다면 그 사냥에 필요한 장비를 챙겨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에 사자를 사냥하기 위한 장비가 있을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저도 그러한 장비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것을 예비하십니다.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예비입니다.

간혹 우리는 다른사람을 보고 주님 저도 그와같은일을 하기 원합니다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건 선할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뜻과 다를수 있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우리의 일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 (히11:3, 개역한글)

여기서 하나님께서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지으셨을때 모든 만물들을 제자리에 위치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여러가지 것들을 하나님의 질서에 맞게 잘 배치해 놓으신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제 삶에 어떠한 질서도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제 자신의 질서를 따라 행했습니다.

이중의 어떤 분들은 내 삶이 무질서하다고 말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우주의 모든것을 질서있게 놓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질서있게 놓지 못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을 질서있게 못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어떤 분들은 주님의 질서를 좋아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내 고집따라 생활하려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것이 좋은것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잘할수 있습니까?

우리가 3절에서 볼수있는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모든세계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모든것을 질서있게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은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삶을 질서있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케하시를 원하시나요.
말씀을 마치기 전에 히브리서 13장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히13:21, 개역한글)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케 하실때에 < 모든 선한일에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
모든선한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이 모든방면에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뜻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는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처음 구원받을 때에 모두가 이러한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때의 마음을 가지고 행하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처음 구원받았을때에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나이까' 라고 합니다
그 질문의 사도바울의 전 생애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삶은 오직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제일 큰 미션은 복종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21절에 < 우리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

하나님께서는 우리속에 이루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방법은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모든것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속에서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을 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하는데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3장에 21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에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으로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일을 행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우리가 주님을 위해 행한 일들을 보십시오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모든 영광을 받으실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들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을 온전케 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저를 온전케 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나를 고치를 원하고 계시며 우리를 회복시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것들을 예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을 질서있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이러한 것들을 행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