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을 부르심
2015년 9월 11일 금요일 강사 : 프랭키 차 형제님
안녕하신가요 저는 프랭키 차 형제 입니다. 제가 주챗모임의 안부를 대신 전해드립니다.
특별히 전에 이모임을 방문했던 주챗모임의 형제자매님들의 안부를 전해 드립니다.
다시한번 저를 이모임에 오게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특별히 오늘 교제를 통해서 형제자매님들을 격려하기를 원합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20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21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므엘과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창22:1-24, 개역한글)
이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바랍니다.
욥기 33장을 잠시 보시겠습니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욥33:14, 개역한글)
지금 저희가 읽는 부분은 괭장히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번 말씀하신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한번만 말씀하셨습니다.
욥기 33장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두번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두번 말씀하신것에 대해 교제하고자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22:11, 개역한글)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두번 부르십니다. 저는 특별히 이 여호와의 사자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욥기에서 하나님께서 두번 부르신것의 중요성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두번 부르고 계십니다.
내일은 두번 부르시는 다른 부분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사람을 두번 부르시는 모습이 몇번 나오는지 아십니까?
창세기 22장은 처음으로 사람을 두번 부르신 부분입니다. 이후에는 창세기에서 야곱의 경우에 두번 부르십니다.
출애굽기로 가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두번 부르십니다. 그다음 두번 부르시는 다른곳은 사무엘을 두번 부르십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총 두번 부르시는것이 네번 나옵니다.
신약은 어떻겠습니까? 총 3번 나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시몬아 시몬아" ,"사울아 사울아"
성경 전체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두번 부르시는것은 7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두번 부르실때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밤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에 촞점을 맞추겠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때에는 오늘과 어제에 걸쳐 두번 부르신것에 다루겠습니다.
창세기 22장은 매우 중요한 장입니다. 특별히 창세기 22장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이삭을 통해서 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볼수 있습니다.
22장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희생제물로 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임을 알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이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특별히 우리는 이 부분을 복음적으로 볼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경륜적으로 이 창세기 22장을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실현된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한 우리는 리브가를 볼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바로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드려진 이후에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다시피 산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올라갑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창22:19, 개역한글)
19절에 보면 아브라함만 돌아 옵니다. 이삭이 죽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만 돌아옵니다.
이 구절에 이삭이 없다는것은 우리 주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상징 합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죽으신 이후에 만들어지는것입니다.
22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특별히 볼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교회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경륜적으로 이스라엘은 배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주 아름다운 장 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부유한 장 입니다.
다른 차원으로 창세기 22장을 보겠습니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보겠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은 이 어려운 시험을 어떻게 통과할수 있었을까요? 특별히 또한 이 장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종들에게 자신의 비밀스런 뜻을 보여주시는지 보겠습니다.
그렇기에 창세기 22장은 매우 중요한 장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2-3년전에 한국에 왔을때 우리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교제 했습니다.
특별히 창세기 22장이 중요합니다. 이삭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을 이야기 합니다.
그다 음은 출애굽기 12장입니다. 유월절을 이야기 합니다. 양이 죽고 그 피가 문설주에 발라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양의 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오로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장은 우리주님의 구속과 보혈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레위기로 가보겠습니다. 레위기 16장에서 속죄에 관해서 볼수 있습니다.
두염소에게서 이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 두염소 중에 하는 죽고 하나는 멀리 보내집니다.
특별히 레위기 16장을 통해서 우리 주님의 속전을 말함을 볼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민수기 21장입니다. 붉은 암송아지에 대해서 볼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깨끗케 하심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주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꺠끗케 합니다.
그다음은 우리가 신명기 19장으로 갈수 있습니다. 어떤사람이 살해당했으나 누가 범인인지 모를때 관한 내용입니다.
그때에는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희생 제물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5개 장이 모세오경에서 우리 주님에 대해서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모세오경은 또한 우리 주님의 5가지 측면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우리 주님의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시 창세기 22장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우리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무언가 우리를 대신할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양이 이삭을 대신해서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주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죽으신것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22:11, 개역한글)
왜 우리주님께서는 이렇게 아브라함을 두번 부르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주목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한번 부른 것으로 충분치 않아 두번 부르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죽이기로 너무나 강력하게 결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회복하실것인가 어떤 계획을 세우시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 이미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아브라함은 여기서 하나님과 닮아 있습니다. 여기서 또한 이삭의 모습은 매우 순종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두번 부르신 것입니다.
<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말라 > < 아무일도 하지말라 > < 내가 이제가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아노라 >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얼마나 칭찬하는지 볼수 있습니다.
제가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렇게 신실하게 되었나요?
아브라함이 놀라운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작은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도와주신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믿음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실수 있는 것일까요?
이것을 생각해 보셨나요?
이것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시험입니다.
오늘 이자리에 오신 분의 많은 분들이 구원받은 성도님들입니다.
모두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그 믿음이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것은 모두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에서 제자들이 우리 주님께 "어떻게하면 믿음을 가질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시는것이 어떤 의미인지 살피고자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가운데 죽음을 보내신 것과 같습니다. 영어 성경으로는 특별히 시험한다는 동사를 쓰고 있습니다.
시험은 참으로 하나님의 명령적인 관점에서 볼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사단에게 받으신 시험을 볼수 있습니다.
사단이 시험하는것은 그리 좋은 시험이 아닙니다.
창세기 22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의미의 시험입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치 않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나쁜의미의 시험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좋은 의미의 시험과 나쁜의미의 시험을 살피겠습니다.
나쁜시험은 사단으로부터 오며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의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우리를 말씀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시험받는 것에 대해서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어떤것은 하나님의 계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당할때에 능히 감당할 길을 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한계를 넘도록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감당할수 있는 시험이 우리에게 올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 시험을 통과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험중에 잘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의 이 시험은 아브라함에게 온것인데요 20장에서 나왔던 시험과는 조금 다른것입니다.
특별히 창세기 20장에서는 아브라함은 실패 했습니다.
그렇지만 창세기 22장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시험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인생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생애동안 7번 시험을 당했습니다.
22장의 시험은 마지막 시험이며, 가장 큰 시험이었습니다.
이전에는 6번에 결쳐 크고작은 시험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족에 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두번째는 기근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다음 자기 아내를 아내라 하지 못하고 누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애굽에서 견져내십니다.
창세기 13장에서는 분리에 관한 시험을 하셨습니다. 이는 조카 롯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서로간에 다툼이 있었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말했습니다.
" 형제간에 싸움이 없게 하고 원하는곳을 말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아브라함은 분리되는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창세기 14장에는 네번째 시험이 나옵니다. 롯이 잡혀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하인들과 가서 다섯왕과 싸웠습니다.
그다음 소돔왕이 아브라함을 만나러 왔습니다. 소돔왕은 아브라함에게 재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제물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돔왕에게 "나는 사람만 취하겠다" 라고 말햇습니다.
이렇게 재물에 대한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창세기 16장에 다른 시험이 나옵니다.
사래가 하갈을 취해 자녀를 낳으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릴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래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태어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가족에 관한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기근에 대한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분리에 대한 시험도 통과하였고 재물에 관한 시험도 통과했으나 자녀에 관한 시험은 통과하지 못한것입니다.
이제 6번째 시험이 있습니다. 창세기 20장에서 이스마엘을 쫓아내야 하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쉬운것이 아닙니다. 아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쫓은것입니다.
여섯번째 이별에 관한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
특별히 창세기 20장은 22장과 연결됩니다. 아브라함은 이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성적표입니다. 6번 시험을 받았고 4개는 통과했고 2개는 실패한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시험이 남았습니다. 이 마지막 시험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22:2, 개역한글)
여기는 언제에 관한 문제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누구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장소입니다. 모리아 땅입니다.
그다음은 무엇에 관한 문제입니다. 번제 입니다.
그다음은 어떻게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자세하게 지시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매우 어려운 시험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전부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여기 계신 누군가는 고통중에 계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모를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점에 이 시험의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실때를 생각해 볼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질문은 왜 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영광의 곳에 가게 될때 그 이유를 알게 될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어느정도는 주님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것들을 알수 없습니다.
이 특별한, 제일 어려운 시험을 아브라함은 최선을 다해서 치루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독자를 바칠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이삭은 독자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닌가요?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독자 이삭을>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아서 집으로 가면 가족들도 같이 구원을 받나요? 아닙니다. 오직 당신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정받은 자녀는 오직 이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독자인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을때 우리 주님에 관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우리주님에 대한 얘기가 있고요, 창세기 4장에도 있습니다.
그다음에 노아에 관해서도 우리주님의 모습을 볼수 있고 이삭에서도 볼수 있으며 요셉에서도 볼수 있습니다.
사실 구약을 읽으면 모든부분에서 우리 주님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험이 우리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창세기를 볼때 우리가 발견 할수 있는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 관해서는 한 부분만 발견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많이 발견할수 있지만 구약 전체를 통틀어서 아버지를 발견할수 있는것은 창세기 22장에서가 유일합니다.
신약에서는 또한 아버지 하나님을 볼수 있습니다. 이는 여러분 스스로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고난 가운데 계시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시험을 통과한 이후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겪는 어려움이 그 이유를 모른다 할찌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고난가운데서 우리 주님에 관한 많은것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아들을 바치는 중에 있습니다.
옛날에 독일에 한 농부의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네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넷째아들이 농사를 지어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해에 엄청난 흉작을 맞이하였습니다.
기근이 온것입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 중 하나를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엄마는 큰아들을 팔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큰아들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가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러나 둘째가 나를 닮았다고 하며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셋째는 아빠를 가장 닮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넷째까지 왔습니다. 문제는 넷째는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넷째를 팔아서는 현재의 가뭄을 이길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드릴까요?
저희는 아브라함의 고통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저 옛날일이라고 생각지 말고 지금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가르침에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특별히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형제님들이라면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같은 상황에 내아들이 아니고 다른아이들을 고른다면 누구를 고르겠습니까?
이 일은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고통인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희생입니다.
아브라함의 단순한 믿음은 그 후손, "씨"에 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시 그 후손을 세울것을 아브라함은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하여"라는 것을 봐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순종"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어려울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허락하셨다면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22:14, 개역한글)
이것은 어렵지만 중요한 주제입니다.
구약에 여호와 이레가 몇번 나오는지 아시나요? 내일 오시기까지 숙제로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이레라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비밀을 알려주고 계신것입니다.
이 비밀은 바로 갈보리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는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아브라함은 이 갈보리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지금혹시 이 가운데 고난받고 계신분이 있다면 격려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모든것을 준비 하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