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3장 >
2018년 3월 30일 금요일 1
강사 : 내빌영 형제님(시드니 모임)
< 요한복음 13장 >
요한사도가 이제 기록한 요한복음에 대해서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보여주신 친절한 접대에 감사 드립니다.
요한복음 13장을 살피겠습니다. 이는 주님의 다락방 사역의 내용입니다.
이 주제를 살피기 전에 개요를 살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요13:1-21, 개역한글)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29 어떤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26-35, 개역한글)
배경을 알기 위해서 누가복음 22장 몇구절을 읽겠습니다.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13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눅22:7-14, 개역한글)
24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눅22:24-27, 개역한글)
마지막 유월절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한 흥미가 되는 주제입니다.
여러분은 유월절 마지막 만찬과 관련된 그림을 보면 큰 식탁이 있고 제자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인의 관습대로 반쯤 누워서 식사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여러분은 상상하면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여러분과 저는 이 다락방에 완전히 올라가지 모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에 있었던 감정들을 느끼기에 드문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의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데 드문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것이 얼마나 드문지를 생각합니다.
이와같은것에 관련해서 요한복음 13장에서 하는 말씀을 살피기를 바랍니다.
이 주제- 다락방에서의 만찬-를 다루는데 있어서 많은 주제가 다루어 지기에 모든것을 다룰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룰런가 하는 계기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단지 이 집회에 참석해서 이러한 것들을 배웠다는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분이 스스로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각자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은 12장 12-34절 말씀을 보면 <나는 들려야 하리니>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성막 앞의 놋제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것은 물두멍을 상징하며, 떡을 떼시는 것은 성막안의 진설병을, 그리고 이어서... 지성소를 생각하게 됩니다.
대재세장으로서 주님께서는 17장에서 이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17장 24절에서 <내가 기도하노니>라는 말씀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기도하실뿐만 아니라 <내가 이것을 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서 요한복음은 놋제단 물두멍, 성소, 지성소, 성막에 관해서 말하는 복음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다락방을 어떻게 여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집에 들어갈때, 그 집의 문의 열쇠가 그 집 문 옆에 자주 놓여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의 열쇠도 그 단락 옆에 높여져 있습니다.
요한은 주님의 다락방의 말씀 앞에 이렇게 말씀을 적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편집자의 주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요한은 그 단락에 앞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개요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3장부터 17장까지 열쇠와 요약으로 이렇게 적어놓는 것입니다.
요한은 여기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전체적으로 이런것들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의 처음에 요한은 이것을 개요적으로 설명합니다.
마찬가지로 13장에서 1-13절까지가 개요적으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문 앞에 이 문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를 설명하는 설명과 같습니다.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요13:2-3, 개역한글)
그 장면과 분위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시고>
이와같은 것이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이 장들에 거쳐서 주님의 많이 아심에 대해서 반복 됩니다. 주님께서 특별히 무엇을 하리라 하기전에 <아시고>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주님의 미리 아심과, 주님이 하신일에 대해서 요한은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나중에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그로 인해서 우리에게 많은 깊이와 경외심을 일깨워 줍니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복음서는 '때'에 대해서 많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제 <이 때가 이르렀으니> 라는 표현을 세번 보게 됩니다.
때와 관련해서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의 때만 말할뿐 아니라 그의 '자기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그 당시의 제자들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남은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이 교회시대의 핵으로 보실때에 요한복음에서 그것과 관련해서 가르치고 계심을 볼수 있습니다.
남은자들에 대해서는 감란산에서 말씀하셨고 교회에 대해서는 다락방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때와 관련해서는 주님이 떠나는 때를 말합니다. 이제 제자들은 세상에 남겨져 있습니다. 적들의 영토 가운데 제자들은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에 대해서 '코스모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해서 나타냅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에서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세번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63번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많은 용내가 13장에서 17장에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남아있게 되는 제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주님께서 떠나시고 제자들이 남겨져 있는 세상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 개역한글)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은 마지막 때까지 사랑하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겨진 제자들에 대해서 그들과 더이상 같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겨진 제자들에 대해서 계속 사랑하고 계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의 강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3장 34절을 보면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계십니다. 22번에 거쳐서 계속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다락방 사역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시지만 제자들을 정말로 사랑함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배경이 되고있는 이날 밤의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제자들과 만나는 이날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 날은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4절에보면 요한복음과는 조금 다르게 <예수께서 때가이르매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17세에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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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배경의 분위기를 보게 됩니다.
유월절 상 전에는 주님의 고난이 놓여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여러번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12시간도 남지 않은 시점입니다.
그러한 고난 앞에서 주님은 멈추지 않고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요한은 12장에서 주님의 걸어오신 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들(사람들)은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또한 관원중에서도 주님을 믿는자가 많았지만 드러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역설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앞에 그들의 반응은 참으로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서는 배경으로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고 다투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에서도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지를 논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수건을 두르고 서로 발을 씻기는 대신에 논쟁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밑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17장을 보면 가룟 유다안에 사단이 들어가서 주님을 배반합니다.
그리고 2절에서 이미 마귀가 유다의 생각에 주님을 팔 생각을 넣었음을 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11장에서 계획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위에서는 다른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싸움과 고난과 사단의 반대를 보셨지만 13장 1절에 이 말씀이 기록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 개역한글)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요12:28, 개역한글)
하늘에서는 주님에 대한 온전한 확신과 온전한 맏기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4절부터 30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싸움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 4-17절까지는 주님의 사랑을 가장 낮아지심을 보여 주십니다.
18-28절 절까지는 주님은 미워하는 죄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이 일을하시는데서도 주님은 배신자에게 그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그가 배신할것을 알고서도 가룟유다의 정체를 다른사람에게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떡을 찢어 가룟유다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친구에게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6장 71절을 보면 주님께서 유다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17절에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유다에게 하신 말씀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게 됩니다.
28절에 유다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이 하는일은 슬픔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발을 씻기시는 장면을 통해서 세가지를 되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발을 씻기심에 있어서 목욕하는것과 씻는것의 차이를 말씀해 주십니다. 목욕하는것은 한번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한번 일어나는 일이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씻는다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구원이 아니고 성화입니다. 우리가 발을 씻는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서를 또한 중요하게 따르게 됩니다.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물동이를 들고가는 사람을 따라가라고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다락방에 가라고 번지수를 말씀해주시지 않고 이런식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가룟유다는 그 장소가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수 없었습니다.
유다는 오직 주님께서 기도하고 쉬시는 동산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유다에게 다락방의 장소를 숨기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누가 높냐하며 싸우는것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세상에서 어떠한 사람이 높은지를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주관자들이 주관하고 여러 일들을 시킵니다.
누가복음음 22장 27절에 보면 큰자가 자리에 앉고 작은자가 섬기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큰자가 작은자를 섬깁니다.
또한 마태복음 11장에서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자도 침례요한보다도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작은자의 자리를 차지하시므로 가장 큰자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가장 큰자가 되는 기본은 가장 작아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유월절에 제자들은 가장 작은자가 되는 기회를 놓침으로서 가장 큰자가 되는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예를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본을 보인 것입니다.
<내가 행한 것처럼 너희도 행하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13:15, 개역한글)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13:17, 개역한글)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해야 하는 책임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에서도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이날 밤의 일을 생각하며 기록한것입니다. 곧, 노예의 앞치마를 두르는것을 문자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좌에 앉는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섬길것을 추구하는 자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