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2. 7. 12. 21:44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에베소서 강해 5>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4:8-16, 개역한글)

에베소서 1장은 교회를 영원전에 계신 하나님의 계획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장에서 하나님께서 품으신 계획이 시대와 역사속에서 실현됩니다.
죽었던 자들을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살려내셨습니다.

3장은 그렇게 교회를 한 새사람으로 만드셔서 세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속한것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새 사람, 그리고 통치하는 교회 그리고 영적싸움을 싸우는 교회, 이 셋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세가지 내용입니다.

이 교회를 향한 헌신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임에 나와 생활하면서 모임내에서 인간적인 것들, 세상에 속한 것들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속한것, 주님의 성품에 속한것들을 드러내려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통치하도록 우리가 순종하고 교회를 그와같이 높이는 그와같은 일들을 우리 삶속에서 해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1-3장까지가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설계도 입니다.
4-6장까지는 교회가 이런것인줄 알았으니 이제는 '그에 합당하게 살자' 입니다. 우리의 실천사항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그대로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식이 지식으로 끝나버리면 그것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교회를 생각하셨은즉, 우리가 실천하자. 그 계획대로 그 교회를  이루자 하는것이 4장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지역모임에서 주님을 구체적으로 섬겨가게 될때 꼭해야 할 사항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4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이땅의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사람의 형체로 오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땅아래 음부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고 가장 높은 이름을 갖게 되셨습니다.
이 십자가는 골로새서 2장 15절을 보면, 이 십자가는 주님의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영적인 전쟁입니다. 십자가로 정사와 권세를 폐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이렇게 비유를 드는 것입니다.
전쟁을 할때, 한 국가의 왕이 다른나라와 전쟁을 해서 승리하면, 승리한 장군이 노획물들을 자기나라 백성들에게 나눠줍니다.
이제 주님은 십자가의 전쟁에서 이기셨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십니까? 모든 우주를 하나님의 통치아래 두는 그 일을 하실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교회를 통해서 하실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가장 높은자리에 올라가신뒤 하신 일은 교회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11절에 있는대로 은사있는 사람들을 교회에 주십니다.

사도와 선지자가 있고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목자로 번역하겠습니다.)와 교사, 이 다섯가지 은사있는 사람을 십자가의 승리후에 교회에 선물로 주십니다.

이 다섯명의 은사자들은 첫번째로 교회의 인도자들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인도하는 사람이 있고 순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물론, 다 같은 형제님들이요 주님의 종으로 섬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교회에 인도자를 세우시고 주님이 세우신 인도자들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인도자들을 말하십니다. 그리고 이 인도자들은 전부 말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도자들이 말씀의 권위 아래서 가르치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도와 선지자는 성경을 기록한 분입니다.
사도들이 성경의 교리들을 완성했다면 선지자들은 주로 적용시켰습니다.

선지자 하면 아가보를 볼수 있습니다.  아가보가 <천하에 흉년이 들리라>고 예언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부주를 보냅니다. 아가보는 안디옥에 와서 천하에 흉년이 들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해 줍니다.
그 계시를 받아서 교회가 적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을 주셨으니 예루살렘 교회를 돕자! 라고 합니다.

또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갈때 아가보가 동일하게 예언합니다. 자기의 혁띠를 풀고 수족을 묶으면서 사도바울이 체포될 것, 결박당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래서 많은사람들이 말립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내가 내 목숨을 조금도 귀중하게 여기지 않노라>라고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굳게 결심하고 올라갑니다.

결박을 알려준것은 올라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결박이 있음에도 그것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옳게 적용합니다. 결박이 있고 고난이 기다린다 할찌라도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주로 선지자들은 적용시키는 일과 관련이 있었고, 사도들은 성경의 교훈들을 기록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제 저희 시대에는 사도와 선지자는 없습니다.

지금 저희 시대에는 세분의 은사 있는 분이 있습니다.
전도자입니다. 복음을 전해 구원받지 않는 영혼들에게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위대한 말씀을 듣도록 성경을 근거로 제시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전하는 전도자 입니다.

그리고 목자는 양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병들었을때, 연약해 졌을때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주님 교회 가운데서 힘있게 주님을 섬기도록 격려하는 자 입니다.

교사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과 교회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은사자들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식으로 갑니다.
은사자들이 하는일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은사자들을 주시고 이 은사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해서 성도를 온전하게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일합니다. 성도들이 일하면 몸이 세워집니다.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일은 성도들이 하는 것입니다. 은사자들이 하지 않습니다.
온전케 한다는 것은 <준비시킨다>는 뜻입니다.

이와 동일한 단어가 어디서 나왔냐면 마태복음 4장에서 주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잡고 있을때 부르십니다. 이르시기를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리고 조금 더 가시다가 요한과 야고보도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도 부르십니다. <그들이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좆으니라>

그때 그물을 깁고 있었다 라는 '깁다'라는 단어가 <온전케 하다>는 단어와 동일하게 쓰인 단어입니다.
그물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물에 구멍이 나있다면 물고기가 그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그물이 그물로서 그물의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물을 깁는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를 온전케 하는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하는일은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구원받은 성도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듭난 성도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성도들은 자기가 구원받을때 받은 은사를 사용해서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될때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자기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알고, 그 은사가 어떻게 쓰여지는지 알고 그 은사를 비로소 사용할수 있도록 되기까지가 은사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영광스러운 교회의 목표가 세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하나됨 입니다. (13절) 교회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교회가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세번째는 그리스도를 반영합니다.

각 지역모임이 세가지를 목표로 삼는것입니다. 1.하나되기 2.온전한 성숙한 교회가 되기 3.그리스도를 반영하기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있는 조직은 하나되기 어렵습니다. 특별히 견해가 다를 때 그것을 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서로 차이가 나는 견해를 가지고 있을때 그것을 통합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투표에 의해서 결정하거나 강제로 따르게 하는 방법이나 그 결정에 동의하도록 이익을 제공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것들은 결코 겉과 속이 똑같은 하나됨, 조직적인 하나님이 아닌, 마음으로 하나됨을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을 이루어 냅니다.
서로 은사가 다르고 서로 다양한 지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몸이기 때문에, 몸이 다양한 지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체끼리 싸우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입이 혼자 맛있는것을 다 먹으니까 손이 "나 이제 음식 입에 가져다 주지 않겠어" 라고 하지 않습니다. 몸은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먹을것은 입 혼자 먹어도 손은 음식을 입에 갖다만 주어도 그것으로 분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피차를 위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유익을 얻는것이 내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가운데 하나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목표입니다.

두번째는 성숙한 사람입니다.
이 부분은 14절에 있는대로 어린아이와 대조됩니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 사도바울은 교회를 한 새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새사람이 어린아이일 수도 있고 성숙한 어른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어른입니다. 교회가 어른답게 완전히 성숙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4:14, 개역한글)

어린아이는 요동합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예를 들면, 장래희망을 물어봅니다.
그럼 어린아이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월드컵이 열리고 있을때는 대부분이 축구선수가 꿈입니다. 또 김연아가 동계 올림픽 우승할때는 대부분이 스케이트 입니다. 계속 꿈이 바뀝니다.
의사가 될까, 변호사가 될까, 대통령이 될까, 요동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압니다. 내 은사가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할수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압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번째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반영합니다.
주님은 이세상에 태어나실때, 하나님이시지만 몸을 가지고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2천년전 이세상을 거니실때 가지셨던 몸이 첫번째 몸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두번째 몸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 가운데서 주님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들을수 있는 가장 모독적인 소리는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있으면 보여봐라."

이것은 우리에 대한 굉장한 모독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은 계십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보이지 않으시는 예수님,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님을 보이게 드러내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세상사람들은 교회를 보고 주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교회를 보고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배우는 것입니다.

교회의 세가지 목표는 이렇습니다.
1. 하나됨 2. 교회의 성숙 3.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냄

이 세가지를 이루기 위해서 네가지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집중해서 셜명드려보겠습니다.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4:14-16, 개역한글)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통치 않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이렇게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만약 저희들이 어떤 교회를 평가해야 한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어느 지역에 이사를 가서 교회를 다녀야 한다면 어떤 교회를 갈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다니는 지역모임의 장로 형제님들께서 천거해 주시는 모임으로 가면 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니고 어떤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인가, 어떤 교회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인가 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이런 기준이 많습니다.

"어떤 지역모임에 가 보았더니 예배 시간이 아주 주님앞에 합당하게 드려 지더라. 형제님들이 주님앞에 드리는 감사의 내용과 끊임없이 감사를 드리는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부분에서 보면 맞는 말씀입니다.

두번째로 보면 이렇게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장로 형제님 아주 성경적인 견해를 가지고 계시고 아주 인격적이다. 나는 그런 교회가 좋다" 그러면서 장로 형제님을 보고 지역모임을 선택하는 형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아주 잘못된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교회가 어떠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예를 들어 선교나 사회에 자선사업을 하는)" 그래서 그러한 일을 하는 교회인가, 혹은 노숙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선한일을 베푸는가의 일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같은 네가지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기준대로 하고 있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속한 지역교회가 건강한 모임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바른 교훈입니다.

첫번째는, 교훈이 선포되고 있어야 합니다.
교훈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특징은 배타적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희들이 다른 분들에게 복음을 전할때 항상 있는 어려움 중 하나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왜 당신들은 예수를 믿어야 만 천국에 간다고 하느냐? 서울로 가더라도 길이 여러개가 있지 않느냐? 불교를 진실되게 믿는 사람이 천국에 가야지, 또 어느곳에서 테레사 수녀처럼 인도의 어느 촌에서 나병 환자를 돌보는 평생을 바쳐 선한일을한 사람들이 천국에 가야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옥에 가고, 당신들의 삶은 별로 감동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었다는 단 하나만의 이유로 천국에 간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이 말이 세상이 하는 반발입니다.

저희들이 합당하게 사야 하겠지만, 진리라고 하는것은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다를찌라도, 사람들이 그 진리에 거부감을 가질찌라도 배타적인 진리를 설명하고 확신하고 그 위에 가고 있어야 합니다.
2X2=4 입니다. 3.9999999...도 답이 아닙니다.

진리를 선포하고 있어야 합니다. 항상 모임의 강단에서 진리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가르쳐지고 그것을 배우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첫번째 조건입니다.

이렇게하지 않으면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의 궤술>은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사람의 생각에 이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에 이것이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에 이쪽으로 갈까? 하고 요동하는 것입니다.

<간사한 유혹>은 사단의 공격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진리를 배석하고, 그리고 사단이 진리를 외곡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의 행복을 가로 막는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좋은 선악과를 먹으라. 그것을 먹으면 눈도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될수 있다. 그 좋은것을 하나님이 못먹게 했다. 하나님 혼자 하나님 하려고, 너도 하나님이 될수 있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말씀을 그것이 우리를 제약하는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손해를 가져다 주는것이다라고 사단은 거짓말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요동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하고 조금 있다가 스케이트를 타보겠다 하는것은 축구선수 하나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축구 하나만 하려 해도 월드컵에 뛰기만 하려 해도 그는 엄청난 기간을 그것에 매진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댓가를 지불하고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걸 해볼까?" 그리고서 잘 안되면 "이건 잘할것 같은데?"라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배워가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사람의 생각'과 '사단의 간사한 유혹'에 흔들릴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진리가 강단에서 선포되는 교회여야 합니다.
이것이 첫번째로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교회고 우리가 추천해야 하는 교회입니다.

두번째를 보겠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5, 개역한글)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이것은 여러가지로 이해할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있어야 합니다.>
곧, 복음을 전하고 있어야 합니다. 전도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교회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 영혼 이 주님을 알지 못하여 멸망하여 가는것을 안타싸웠다 여기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내가 희생되더라도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최선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인생이 어떻게 해야 최선이 되겠습니까?
최고의 지위가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분의 형상을 본받는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그가 인생을 사는날 동안 그의 인생에서 일어날수 있는 최고의 복된것은 그에게 사랑으로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으셔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이 영광스러운 좁은길을 달려가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길끝에 영원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볼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위해서 그 마음속에 눈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것입니다. 어떤 모임이 주위에 영혼들에 대해서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데에 있어서 문제점은 사람들이 다 들었다고 생각하고, 알았다고 하고 전도지를 주어도 받지도 않고 이렇습니다. 교회 초정해도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로만 할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친절하게 대하고 안타까운 눈빛을 던지고 그리고 기회가 되는대로 그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온갖일을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말로해야 합니다. 말로 하는것을 피할수 없습니다.
복음집회에 오게 해서 복음을 듣게 해야합니다.

그렇게 하기위해 여러가지 수고들을,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일본에 어떤 모임이 성도들의 가족들이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에, 저희들은 절기들을 지키지 않습니다만 세상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갈수 있다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위해서 그 기간에 좋은 음식, 초청하면 올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고 1년 내내 기도하면서 헌금하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영혼들에 대해서 어떻게든 다가가려 하는 사랑이 있는가. 이것이 두번째 교회가 건강한 표지입니다.

세번째,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그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제가 잠깐 간증을 드리면 제가 마포모임을 개척할때 95년도에 강서모임에서 기도하고 형제님들에게 모임개척에 대한 제 소원을 말씀드리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형제님들이 함께 기쁨으로 기도했습니다. 강서구와 마포구는 한강 다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한강 다리를 넘어와야 합니다.

넘어오면 마포인데 그곳에 제가먼저 이사하고 강서모임에서 저를위해 기도했습니다.
6개월동안 가정집회를 했습니다. 월요일마다 구도자들도 데려오고 전도지도 돌리면서 집 주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강서모임에서 함께 이 마포지역에 함께 동역할 형제들이 주님이 주시는 말씀과 함께 헌금함에 써 넣습니다.
저 포함 기혼형제 3명, 세가정, 청년형제 5명, 자매5명 16명이 강서교회에서 천거를 받아 마포지역으로 왔습니다.

저희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가정에서 모이니까 어떤 분들은 왔다가 "이게 무슨 교회야?" 라고 하면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랬습니다.그런일이 있다 할찌라도 기도 드리고 교회로써 말씀듣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정에서 모이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저희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청년들이 전부 젊고 어린 학생들이 많아서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20평쯤 되는 작은 홀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홀에서 모였습니다. 홀에서 비로소 교회라는 간판도 달고 마이크 시설도 칸막이 해서 부억과 유아실도 만들어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께서 또 은혜를 주셔서 그 홀이 너무 좁아졌습니다. 그곳이 인원을 다 수용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또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번에는 40평쯤 되는 홀을 주십시오."
40평쯤 되는 홀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또 주님께서 성도들을 더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또 기도해서 60평이 되는 홀을 구했습니다. 이제 현재, 60평을 하려다보니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어 지상에 있지 못하고 지하로 들어갔습니다.

성도님 중에 상당수가 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의 제자거나 저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포교회는 사람이 주인이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주인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주장하면 반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반대하면 교회에서 어떤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일 가운데서 기도하면서 여러 저희들이 알고 있는대로 교제를 따라 복수 장로를 기도하고 세웠습니다.
지금 현재 세명의 장로 형제님들이 마포교회의 일을 맡아 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맡아서 하고 있는 일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사람이 주인이 되면 안됩니다. 그사람의 생각과 의견이 교회를 지배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복수의 장로를 통해서 알리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서로 은사가 다르고 견해가 다른 장로들이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경험을 가진 형제들이 서로 모여 서로 견해가 다를찌라도 기다리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뜻을 구하고 성령께서 기쁨으로 하나되게 하셨을때,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예수님이 머리된, 주님이 통치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지역교회가 사람이 주인이 되는가, 주님이 주인이 되는가, 이것이 복수의 장로들이 세워져야하는, 건강한 교회를 구분하는 세번째 척도입니다.

네번째, 모든 지체가 은사를 사용하고 있는가 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진리가 가르쳐지고 있습니까.
2.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3. 예수님이 주인인 복수의 장로들이 교회를 인도하고 있습니까.
4. 모든 성도들이 그 은사를 사용하여 섬기고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한가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교회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두번째는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셔서 이 은사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도록 하신것입니다.

우리를 교회로 만드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세우게 하십니다.
교회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실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홀로 세우실수 있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 홀로 그것을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와 함께 세우자고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바라보는것은 그런 유치한 개념이 아닙니다.
상이라는 것은 유치한 것이 아닙니다. 상을 준다 하니까 상을 위해서 하고 상이 없으면 부끄러움을 당할것 같으니까 하고가 아닙니다.

상을 주시겠다고 하는것은 우리의 모든 수고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증거들을 낱낱히 보이시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우리에게 은사를 주셔서 우리가 섬김으로써 교회가 세워지기를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자기가 주님 믿을때 받은 영적인 은사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쓰고 있지 않다면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저희들이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병원에서는 기본적인것을 점검합니다.
체온을 잽니다. 건강을 점검하는 기본적인 표지가 있습니다.

교회의 건강을 측정하는 네가지 표지가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고 있는가,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 복수의 인도자들이 섬기고 있는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가, 모든 성도가 은사를 따라 섬기고 있는가
이 네가지를 성경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천사항입니다. 지역모임 가운데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주신 이유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전도자가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은사를 사용할때 소수의 특정한 사람이 일하고 다수의 성도들이 구경하는것은 성경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고린도전서 12장은 이 두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또 <눈이 손더러 말하되 너는 내게 쓸데없다> 말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제일 장애가 되는것은 자기가 가진 은사를 작게 여기는 것입니다.
"나는 발이다 그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자기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혹은 내가 다른사람의 은사를 무시하는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달란트를 주셨는데 한달란트 받은 사람이 꼭 안쓰려고 합니다.
세상적인 관점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은사라도 주님이 주신것을 모든 성도들이 쓰고 있을때 그때 몸이 세워집니다. 이것이 실천사항의 원리입니다.

이와같은 교회의 모습을 안디옥 교회를 찾아 살펴보겠습니다.

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11:19-30, 개역한글)

이 네가지 기준을 가지고 안디옥 교회를 점검해 보겠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교회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1,2,3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지 않은 지역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이 복된 특권을 누리게 되었는가, 점검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진리를 전하고 있었는가.

그들에게 어떤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방법과 사단의 공격에 흔들리지 않는 진리가 선포되고 있었습니까?
저희는 그것을 압니다. 바나바는 자기가 말씀을 가르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을 다소까지 찾아가서 데려와서 가르쳤습니다. 진리를 가르친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진리를 가르치고 성도들인 진리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셨음을 보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따라간 것입니다.

두번째, 그들에게 사랑이 있었는가.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와 불편한 관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 와서 할례를 받지 아니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여 문제를 일으켰던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헌금을 보내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 유대인에게만 전했는데 그들은 영혼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에 이들은 이방인이라 할찌라도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합니다.
또한 모든 성도들이 전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주인이셨는가.
저희들이 나중에 보면 알겠습니다만,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 5명의 인도자들이 나와있습니다. 처음에는 바나바 혼자였습니다. 나중에는 바울이 옵니다.
그리고 13장 1절을 보면 다섯명의 인도자들이 함께 교회를 섬겼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종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서로 계급이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것들과 관계없이 영적인 하나됨을 이루어 냈던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가 가진 네가지 특징을 안디옥 교회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교회를 사용하셔서 이방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셨습니다.
저희들이 섬기는 지역모임이 네가지 특징에 있어서 분명한, 견고한 증거를 가지고 세상에 주님을 드러내고 주님께서 또 저희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뜻을 드러내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20:28, 개역한글)

장로는 성령께서 세우십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딤전3:1, 개역한글)

여기도 감독도 장로를 나타냅니다. 감독은 사람을 나타내고 장로는 일을 나타냅니다.
디모데전후서, 디도서는 사도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개인적인 서신입니다.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에 다섯번 <미쁘다 이 말이여>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말은 믿을만한 말이다. 이말은 반드시 신뢰하고 따라가기에 합당한 말이다> 라고 말하고 다음말을 합니다.
그 다음 말은 지역모임 가운데서 장로들이 어떻게 세워지는가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어떻게 부르시냐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직접 부르셨습니다. 모세를 떨기나무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직접부르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직접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셨습니다. 12명을 세우셨습니다.

저희들은 교회시대입니다. 성령께서 세우십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도 아니고 성령께서 세우십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께서 장로들을 세우십니다. 어떻게 세우시나요? 디모데전서 3장 1절입니다.

성령께서 부르시면 내 마음속에 선한일에 대한 사모함이 생깁니다.
선한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고 싶다는 그와같은 열망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을 두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령께서 두신 소원인지, 내 마음에 가지고 있는 욕구인지 그것을 구분해 내야 합니다.

어떻게 구분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두고 보면 압니다. 내가 원한것은 사라져 갑니다.
처음에는 강한 욕구 였지만 약해집니다. 성령께서 두신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부인하고 싶어도 그 소원이 자기를 계속 붙드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 입니다.
<내가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꾸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온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함부로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경외심을 가지고 과연 그러한가, 정말인가, 반드시 그렇게 되겠는가 하는 경외심이 있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야망과 성령께서 두신 소원의 차이를 알아낼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 하나는 히브리서 13장에 보면 인도자들에게 인도한 일에 대해서, 영혼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계산해야 합니다.

장로의 일은 무거운 일입니다. 잘못하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되려 많이 노력하지 말라>

그 자리는 무슨 명예로운직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무슨 높은 지위가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야망을 따라 올라가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는 부름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고 해야하는 무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취하려고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장로자리는 일입니다.

높은데서 통치하거나 결정권을 행사하는것이 아니고 수고하는 일입니다. 밑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권세자가 지배하고 자기 임의대로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곳이 두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는 교회에서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중에 큰자가 섬겨야 하리라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함이요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이스라엘과 교회 두군데는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이곳에서는 큰자가 작은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잘 감당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인도자들입니다.
인도자들이 누구냐에 따라 그 교회의 성격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인도하지 않습니다. 인도하는 유일한 근거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만물을 그 통치아래 두기 위해서 첫번째로 하신것은 교회에 은사자들을 두셔서 성도들을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된 성도들이 섬기기 시작합니다. 성도들의 섬김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집니다.
다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성도님들 스스로 질문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은사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는가? 그래서 내가 준비되어 있는가?'

예를들면 저희들이 복음의 은사가 있는 분을 불러서 복음집회를 합니다.
복음은 이미 저희들에게 이루어 진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은사를 가진분이 복음을 전할때 잘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복음을 저렇게 전하는구나를 알고 내가 어떤 구도자에게 복음을 전할때 그렇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은사자를 통해서 내가 배우는 것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또 교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때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순종하고 실행 할뿐 아니라 말씀을 저렇게 교제하고 묵상하고 저렇게 소중히 여겨서 깨닳은 것들을 이렇게 나누는 구나 라고 배워야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나는 은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진리에 있어서 자라고 있는가?'
'사랑에 있어서 더욱 풍성해 지고 있는가?'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기쁨으로 순종하고 있는가?'

이러한 것들을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영역에 있어서 진리에 있는가, 어떤 부분에 순종하고 어떤부분이 부족한가 살펴야 합니다.
저희들이 주님께서 저희들 가운데서 약속하신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은 만홀이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것을 심으면 반드시 영적인 것을 거둘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적인것을 심고 기도해서 영적인 것으로 거두지 못합니다.
심은대로 거둘것입니다.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꺼번에 못올라갑니다. 안타깝지만 하나하나 작은것부터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가, 그 은사를 어떻게 알아볼수 있는가, 그리고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들이 이 말씀 앞에서 다시한번 점검하고 순종해야 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늘, 혹시라도 어떠한 모임을 추천해야 할때 우리는 네가지 기준으로 가야 합니다.

진리가 선포되고 있는가,
사랑이 있는가,
주님의 주 되심을 드러내는 복수의 인도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따라가고 있는가,
모든 성도들이 은사를 따라 사용하고 있는 교회인가

이와같은 교회를 저희들의 시대에 저희들이 많이 목도하게 하시고 저희들이 다 함께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된 지역모임의 교제가 이루어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