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누가복음01_주님의 주권, 주님을 분명히 아는것

박이레 2022. 7. 11. 22:42

2017년 5월 5일 금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누가복음1_주님의 주권, 주님을 분명히 아는것 >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7시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 누가복음으 통해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체포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장면을 훑어보려 합니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대로 만난지라
33 나귀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43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46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눅19:28-48, 개역한글)

제가 읽어드린 대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장면입니다. 크게 세가지 스토리입니다.
주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이 나귀새끼를 어떻게 구했는가가 소개되고,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때 사람들이 환호합니다.

주님을 찬양하기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라고 합니다. 이 소리를 듣고 바리세인들이 "이 소리를 못하게 하라"고 주님께 말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이 소리 지르지 않으면 돌이 소리지를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때 사람들은 소리지르며 환호하고 기뻐하지만 주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성전으로 들어가서 성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았습니다.

다시 누가복음 전체를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전체의 주제는 1. 전반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데 세상에 오셨습니다. 2. 후반부, 그 예수님께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셨다. 입니다. (요한복음 16장 -아버지의 뜻대로 오고 아버지의 뜻대로 다시 가노라)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9:51, 개역한글)

이 구절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전환점이 되는 구절입니다.
주님께서 오신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오셨다는 대목은 주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하시고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받는가가 주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후반부, 주님께서 가신것에 대해서는 주님을 사람들이 따라갔을때 그가 얻게 되는 영광이 주제입니다.

9장부터 시작된 내용이 주님께서 영광을 향하여 걸어가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9장의 주님이 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것이 절정이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시고 예루살렘 밖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실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시는 주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것 중, 우리의 주목을 끄는 사건은 제사장 사가랴가 벙어리가 된 사건입니다.
또 가시는 사건은, 누가복음 9장에 나와 있는 대로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상종치 않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인들이 예수님을 거절하셨을때 제자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 마을을 태워버릴까요? 말했을때 주님께서 "너희들이 지금 무슨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시는 것의 절정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왕의 즉위식입니다.
우리나라는 왕권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의 취임식과 같습니다.

이 사건은 주님이 왕이 되심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겸손하게 이루어 졌습니까?

영국은 왕권이 남아있는 나라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식을 할때 그 모습이 얼마나 영광스러웠는가를 생각합니다. 여왕이 왕관을 쓰는 장면이 즉위식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이 장면이 즉위식의 핵심인데 이 일이 얼마나 겸손하게 이루어 졌는지 우리는 봅니다.

주님은 금요일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일주일 입니다.
주님께서 계신 일주일의 시간을 보면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주무시지 못합니다. 유월절이 되면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가 예루살렘에 와야 합니다. (일년에 세차례-유월절, 초막절, 나팔절) 이것은 외국에 사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도 와야 합니다.
이때가 되면 예루살렘 성은 사람들로 가득찹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만, 대략 그당시 얼마나 많은사람들이 모였는가 계산해 보면 200만명으로 예상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주무시지 못하고 감람산에서 주무셨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과 감람산을 왔다갔다 하시는데 두번 특이하게 들어가십니다.
첫번째, 주님꼐서는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기로 하셨습니다. 이는 구약(스가랴)에 주님께서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는것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온의 왕이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들어가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귀를 사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나귀새끼를 구하는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두번째,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특별한 경우는 들어가서 물동이를 이고가는 남자에게 준비된 방을 보여달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유월절에 만찬을 제정하실때에 그 장소를 독특하신 방법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때 들어간 제자는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첫번째 사건에서는 보내어진 제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상하기로는 베드로가 반드시 있을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누가가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누가복음을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다윗왕이 늙었을때 후계를 선택하지 않았을때 아들 아도니아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합니다. 그때 나단과 솔로몬의 어머니가 같이 후계를 세울것을 다윗왕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다윗왕의 명에 따라 솔로몬왕의 즉귀식을 합니다. 그때 솔로몬이 나귀를 타고 즉위식을 합니다.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26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단9:25-26, 개역한글)

왕은 69이레가 지나고 나면 끊어집니다.
69이레는 487년 후 입니다. (1이레는 7년입니다.)
이 이레를 세는 기준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후입니다.

이제까지 주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인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물으셨을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것을 칭찬하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께서는 스스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십니다. 다네엘서 예언한 때가 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귀를 탄 이유를 그때는 제자들도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두번째 예루살렘에 오실때는 영광의 왕으로 오실것입니다. 그러나 이 첫번째는 예루살렘에 고난의 왕으로 죽기위해 들어가십니다.

참으로 재미있는것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한영합니만 주님은 예루살렘성을 바라보고 우십니다. 이 차이를 살피겠습니다.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눅19:35-36, 개역한글)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이와같은 상징들이 나와있습니다. 옷은 그사람을 대표하는 물건입니다. 그 옷을 펼친다는것은, 그리고 주님의 밑에 깔았다는것은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라는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식하고 순종할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37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눅19:37-38, 개역한글)

그 사람들 사이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돌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본바 모든 능한 일>
예루살렘 전의 성은 여리고 입니다. 예수님은 여리고 성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삭개오를 구원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만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워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동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곳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죄인인 나사로를 구원하시고 예루살렘에서 더 가까운 베다니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이와같은 소식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합니다.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곳에는 영광이로다>
이 말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때 천사들이 했던 찬양중에 하나입니다.
하늘에서 평화가 있으려면 사람들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죄인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늘에서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려면, 하나님의 아들을 이땅에 보내시는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찬양할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오해할수 없도록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그때 바리세인들이 "이것은 지나친 말이다. 이것을 못하게 하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부분을 문자적이 아닌 성경적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합2:11, 개역한글)

이 부분은, 하박국은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범하고 멸망시킬것을 예언한 선지자 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계시를 받은 하박국은 왜 더 악한 이방인에게 징계하게 하십니까 라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바벨론의 집은 전부 돌로 지어졌는데, 그 돌들은 정복한 다른나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돌들은 바벨론이 다른나라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정복했는가를 말해줍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성의 돌들이 소리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때 사람들은 주님을 찬양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그들은 잠잠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돌아가시던 금요일에 돌들이 소리칩니다. 이 돌들은 그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하였는가를 증거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고 성을 보고 우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성이 공격을 받아 그안의 사람들이 잔인하게 전부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거부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힌 40년 후에 일어납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주님은 이 사건을 먼저 보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실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고 주님께서 행한 기적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그 기적들로 로마의 압제에서 자기들을 구원할것을 기대하며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곧 그 환영이 분노로 바뀌어 주님을 죽일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거절당할것을 슬퍼한 것이 아니라 그 거절한 그들이 잔인하게 죽을것을 슬퍼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환영한 그들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그래서 주님은 금방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버리십니다.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19:44, 개역한글)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찾아오신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가 생긴것입니다.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오해의 상당한 부분은 성전에서 일어납니다.

주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십니다.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46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눅19:45-47, 개역한글)

예루살렘 성전이 건설될때 솔로몬이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하였는지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기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능케 하셨기에 우리가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이런 장소에 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이름을 두신곳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성전에 가서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첫번째가 예배입니다. 두번째 기도는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여러가지 필요가 있을때 그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그것의 응답을 받는것입니다. 그 장소가 성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찬양할것이라는 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자들의 복을 말했습니다.
성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찬양하고 기뻐해야 합니다만, 사람들은 성전을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습니다.

성전에는 이방인의 뜰과, 여인의 뜰과, 이스라엘 남자들이 들어가는곳과, 제사장이 들어가는곳과,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들어가는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인의 뜰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한 양들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 양들을 파는 장사군을 제사장들이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권한으로 제사장에게 돈을 내게 했습니다.

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때 하나님이 어떤분인지 잘 알려줘야 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그 일을 하지 않고 성전을 관리할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왜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양이 필요한지 배우지 못하고 엄청난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양을 사지 않고 직접 데려올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기 전에 제사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흠이 없는 양을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양을 사지않고 데려오면 일부러 그양을 제사장들은 거부했습니다. 양을 살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폭리를 취했고 그 돈으로 로마에 로비를 하고 권력을 얻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지식을 빼앗고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았았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장사꾼들을 쫓아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셨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주어집니다.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일을 통해서 누가복음은 두가지를 강조합니다.
첫번째는 주님의 나귀에 관한 것입니다. 나귀를 풀때 <주께서 쓰시겠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우선인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이나 메시아 대해서 피상적으로,대충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잘못된 종교 지도자 밑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루는 예수님을 찬양하고 환영하지만 그 후부터는 주님을 환영하지 않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1. 하나님의 필요가 가장 적대적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2. 주님에 대해서 주님께서 하신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귀를 일요로하시면 사용하실 권한이 있으십니다. 주님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나에 대해서도 주님이 원하시면 어떤것이든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내 시간, 나의 성품,  나의 모든것을 주님께서 사용하실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된 종교체계가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주님에 대해서,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에 의해서 주님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극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주님을 목도하고 기적을 보았고 주님을 예루살렘에서 환영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주님을 죽이고 맙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들이 받아야 할 심판에 대해서 주님을 울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시간표 대로 주님의 계획대로 일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