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26
2016년 6월 30일 목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마태복음 강해 26>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6:2-4, 개역한글)
주님께서 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시간에는 성도들이 돈을 어떻게 쓰는가, 헌금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돈을 어떻게 쓸것인가에 대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돈을 쓰는것은 육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일입니다.
돈 자체는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 입니다. 그러나 돈을 쓰는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교회인에서 재정을 관장하는것응 장로들이 합니다. 돈을 쓰는것이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돈을 쓰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훼방과 유혹을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유익한 것은 전부 다 가르쳤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헌금을 어떻게 하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지만 요즘 그렇게 행하는 모습들이 있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십일조를 가르칩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11조를 들렸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닌 교회입니다.
그래서 11조를 드리지 않지만 은혜가 율법보다 강하므로 기본으로 11조를 드리지만 그보다 조금 더 많이 드린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돈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구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시기를 구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다루실때 경륜에 따라 다루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창세기부터 모세까지 어떻게 다루셨는가, 모세율법부터 주님께서 오실때가지 이스라엘이 어떻게 헌금했는가, 주님부터 신약시대의 교회가 헌금하는 원리까지 셋으로 살펴보겠습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4:3-5, 개역한글)
성경에서 최초로 사람이 하나님께 드린 사건입니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에게 제사를 가져와서 드리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적어도 기록상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것입니다.
그런데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첫번째는 사람이 자원해서 드리는것이 있습니다.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가져오라고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두가지의 헌금이 존재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것은 피에 대해서 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뜻대로 어린양을 드립니다. 가인은 농사를 진 수고의 결과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영적인 결과의 것입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되겠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뭐라 말씀하지 않으셨기에 자기가 예물을 골라 하나님께 가져갑니다. 가인은 가인대로 아벨대로 고릅니다. 얼마를 가져갈지는 그들이 고릅니다. 곧, 자원해서 가져가는 것입니다.
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창8:20-21, 개역한글)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제물을 드려라고 직접적으로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방주에 들어간 짐승 중 정결한 짐승은 일곱쌍을 방주에 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노아가 어느정도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중요한것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제사를 드리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때 제사를 드릴때 얼마를 드릴것인지, 어떻게 드릴것인지는 노아가 자원해서 결정합니다.
거인과 아벨, 노아는 자원해서 모두 드렸습니다.
특별히 11조라고 하는 개념은 아브라함 대에서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창12:7, 개역한글)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창13:18,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때 아브라함은 그에대한 경배의 표현으로 단을 쌓았습니다. 곧, 예배를 드린것입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14:20, 개역한글)
여기에 11조의 원형이라고 할수 있는 십분의 일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온 11조는 율법가운데 주어진 십일조와는 개념이 다릅니다.
여기서 십일조를 드린것은, 가나안 지역에 신흥 5개의 국가가 서오릅니다. 그리고 원래 있던 전통의 바벨론 전통을 받은 4개국이 서로 전투하게 됩니다. 그 싸움의 결과 신흥국 5개의 국가가 집니다. 그 국가에는 소돔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그때 4개의 국가에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소돔에 있는 모든 재산을 빼았깁니다. 그 모든것을 아브라함이 되찾았을때 소돔왕이 나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라는 것은 어떻게 유지 되는것입니까? 국민과, 토지와, 재산으로 유지됩니다. 그런데 소돔왕은 토지만 있고 국민과 재산을 모두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국민과 재산을 되찾아온것입니다.
그때 소돔왕은 "사람만 저에게 주십시오. 재산은 당신이 가지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재산읊갖지 않습니다. 일절 취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내가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부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은 받은사람의 샘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진것은 하나님이 축복하신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소돔왕이 준것은 한푼도 받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와 싸움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을 위하여 되찾아온 재물의 십분의 일을 줍니다. 이것은 십일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드리는 십일조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뺏은 소돔성 재산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중 하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브라함과 동행한 사람들의 수고의 값을 치룬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11조를 드렸다는 것은 이것이 단한번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십일조의 원형이나 그림자로 해석하는것이 맞지 않는것입니다.
그다음 십일조를 말한사람이 야곱입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28:22, 개역한글)
야곱이 하나님과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은혜를 주사 야곱을 보호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야곱이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또한 사람이 먼저 하나님 앞에 자원해서 한 것입니다. 얼만큼을 드릴것인지 사람이 정한 것입니다.
11조의 원형이 처음, 야곱에게서 발견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명령해서 헌금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창41:34,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바로왕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그 꿈을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했습니다.
그 꿈의 해석은 앞으로 7년간 풍년이 있을것이고 그후 7년간 흉년이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관리해야 합니다. 풍년에 식량을 비축하여 흉년을 대비해야 합니다. 요셉이 그 할일을 바로에게 말합니다. 그 요셉이 한말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애굽에 있는 모든 백성이 소득의 20%를 세금으로 바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강제적인 것입니다.
안바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나라 국민이면 누구나가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헌금에는 사람들이 자원해서 하나님께 드리는것과,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소득의 20%를 애굽국민들은 나라에 바쳐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 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창47:24, 개역한글)
1/5 은 세금으로 국가에 바쳐야 했습니다. 이제 나머지 1/5은 다음해에 심을 종자입니다. 그다음 오분의 일은 양식을 삼는 것입니다. 그다음 오분의 일은 가정을 위해서 쓰는것입니다. 마지막 오분의 일은 어린아이를 위해서,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모세이전까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렸던것을 생각해보면 두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 있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것(세금)이 있습니다.
이제 율법시대, 모세 이후로 오겠습니다.
하나님게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요구하십니다.
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31 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분 일을 더할 것이요
32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33 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
34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
(레27:30-34, 개역한글)
이스라엘 백성은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곧, 땅의 소산 1/10 입니다. 이것은 곡식, 과일 등의 1/10 입니다.
그리고 소나 양의 1/10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땅의 1/10을 자기가 가질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속하여 하나님께 다른 곡식 1/5을 (20%)-원래드리려던 양의 두배- 드려야 합니다.
짐승도 열번째 것은 무조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다 갖고 싶어해도 짐승은 다른 짐승으로 대체할수 없습니다. 짐승은 무조건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에서 난것의 1/10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한 것입니다.
이 11조는 강요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원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헌금은 항상 두가지 입니다. 강요되서 하는것과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11조는 세금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제사장, 레위인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11조는 헌금이 아니라 세금인 것입니다.
국가에는 많은 공무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서 일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금을 받아 그걸로 먹고 사는 것입니다.
레위인도 이와 같았습니다.
또하나는 이스라엘이 십분의 일을 헌금했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십분의 일보다 훨씬 많이 하였습니다.
이 11조는 레위인에게 준 십분의 일입니다.
두번째 11조를 보겠습니다.
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찌니라
(신12:6-7, 개역한글)
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찌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찌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신12:11-12, 개역한글)
이스라엘은 1/10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레위인에게 준것입니다.
두번째 1/10 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곳입니다. 우리로 치자면 모임인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인은 일년에 세차례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와야 합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올때에 그들은 십일조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십일조를 또하는것입니다. 이것이 절기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사회를 움직이기 위한 돈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절기를 준수하며 지켜야 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추석이나 설 같은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11조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와 자기 종들이 같이 먹습니다. 그래서 그 사회의 화합을 위해서 즐거워하며 먹게 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이 음식을 가져와 같이 즐거워 하며 먹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의 파틀락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두번째 십일조 입니다.
세번째 십일조를 보겠습니다.
28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14:28-29, 개역한글)
세번째 십일조는 삼년마다 한번씩 합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쓰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했던 것은 세가지입니다. 1.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 2. 절기를 위한 십일조, 3.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삼년에 하는 십일조 입니다.
이것을 모두 합치면 이스라엘이낸 세금은 수입의 23% 였습니다. 이스라엘이 1/10을 한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것만 한것이 아닙니다.
9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19:9-10, 개역한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추수를 할때 이스라엘은 모두 추수할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일부를 남겨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23%의 세금을 내고, 추수할때 모두 추수하지 못하는것까지 합치면 약 30%의 것을 세금으로 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경영하신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무릇 계수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찌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찌며 (출30:13, 개역한글)
이것은 인두세입니다. 이스라엘 성인 남성이면 전부 내야하는 세금이었습니다.
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 할찌니라 (출23:11, 개역한글)
제칠년은 안식년이었습니다. 안식년에는 농사를 지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안식년에는 6년동안 빚을 갚지 못한것을 다 탕감해줘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삶이었습니다.
이것은 강요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것은 헌금이 아니라 세금인 것입니다.
애굽의 경우 20%를 겉었습니다. 서양 선진국의 경우 40%의 세금을 겉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금이 적은편입니다. 선진국의 경우는 복지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많이 겉는것이고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적게 겉는것입니다.
구약의 11조는 세금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자원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바치는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헌금입니다.
12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1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14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은 네 것이 되리라
(민18:12-14, 개역한글)
이스라엘이 두번째로 드리는것은 강요된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드리는것입니다.
명령된것은 반드시 비율이 나옵니다. 자원하는것은 비율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야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이 헌금의 특징은 양을 말하지 않습니다. 질을 말합니다.
12절에 보면 제일 좋은것을 드립니다.
헌금할때, 첫소산의 것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었을때 첫 소산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산하지 않고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겉은것중에 제일 좋은것을 가져다 드립니다. 이것이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3:9-10, 개역한글)
이 말씀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게 주신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릴때에 어떤일이 벌어졌는지 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출25:1-2,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성막을 짖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료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원하는자들이 재료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5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출35:4-5, 개역한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재료를 말합니다.
21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22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거리와 여러가지 금품을 가져 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출35:21-22, 개역한글)
감동되어, 자원하여 드리는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털로 실을 낳았으며 (출35:26, 개역한글)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 (출35:29, 개역한글)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헌금입니다. 비율을 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즐거이 드리는 헌금을 원하십니다.
3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 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 오는 고로
4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정지하고 와서
5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 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6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7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출36:3-7, 개역한글)
백성들이 재료들을 너무 많은 재료를 가져옴으로 성막을 만드는 일꾼들이 모세에게 더이상 재료를 가져오지 않아도된다, 너무 많이 가져와서 일을 할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그만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와같은 일으 교회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필요하다, 교회안에 봉사가 필요하다, 예배당을 위하여 헌금이 필요하다 할때에 그만 가져오십시오, 그만 자원하십시오라는 역사가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이스라엘이 11조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헌금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십일조한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강요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는 세금을 성실히 내야 합니다. 우리는 탈세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탈세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우리는 정직히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헌금은 자원해서 내야 합니다.
한가지만 더보겠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짖는 경우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짖고 싶었지만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성전을 짖는것을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살아생전 성전을 짖는 재료를 모아둡니다.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대상29:9, 개역한글)
온 백성이 성전을 짖기 위해서 기꺼이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대상29:16, 개역한글)
그들은 헌신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신것이며 주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헌금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우리시대에도 이래야 합니다.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려야 하고 그것이 풍성해야 합니다.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시대, 이스라엘을 보았습니다. 이제 교회로 넘어오겠습니다.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17:24-27, 개역한글)
성전의 세겔은 인두세입니다. 우리로 치면 주민세입니다.
그런데 성전에 내는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내야 하느냐, 제자들이 내야하느냐, 교회가 내야하느냐, 하는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영적으로 이 세겔을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반세겔을 내십니다. 왜냐하면 아직 이스라엘이 율법가운데 있었던 것을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마23:23, 개역한글)
여기서 주님께서 11조를 긍정하셨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성경을 오해한것입니다.
바리세인들은 이스라엘의 율법사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인이었으므로 11조(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어느 누구도 11조라는 단어를 쓴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것도 행하고, 라는 말은 교회에게 십일조를 행해라라고 하신것이 아닙니다.
바리세인들, 구약성경의 경륜가운데 있는 사람이 11조를 해야하는 경륜가운데 있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11조는 이스라엘이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11조가 세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이렇게 적용할수 있습니다.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롬13:6-7, 개역한글)
이것은 정부의 위정자들이며 공무원들입니다. 국가의 통치잘들에게 세금을 내야 합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11조에 대한 신약의 적용입니다.
구약에서 헌금은 무엇을 얼만큼 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일 좋은것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신약에서의 헌금적용의 원리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1.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며 하나님만을 섬기는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19-21, 개역한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개역한글)
사람들이 가장 의지하는것이 돈입니다.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월급날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통장에 돈이 있으면 걱정이 안되고 든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돈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헌금의 첫번째 원리인 것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딤전6:17, 개역한글)
재물은 정함이 없는 것입니다. 한국에 100년이 넘은 기업이 얼마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기업인 대우도 최근에 없어졌습니다. 삼성이 지금 절대 흔들리지 않는 대기업이라 해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것입니다.
이처럼 정함이 없는 재물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우리에게 넉넉히 주시는 분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우리가 느낀다면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혹은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16:11-12, 개역한글)
불의의 재물은 돈입니다. 이 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것입니다. 내게 돈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것입니다.
우리가 돈문제에 충성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혼을 그에게 맡기지 않으십니다.
저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일꾼가운데 돈문제를 정직하게 하지않아 결국 하나님께서 그사람을 쓰지 않는것을 많이 봐 왔습니다.
저희도 이 시대에 많은 일꾼들이 있었지만 쓰이지 않은 일꾼들을 보면 그들이 모두 돈문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정말 영적인 일에 하늘에 관심이 있다면 땅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헌금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돈에 관심이 없고 영적인 일에 진정한 것에 관심이 있다는것을 고백하는것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7, 개역한글)
헌금을 할때의 참고 기준이 이스라엘이라면, 30%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정한대로 헌금해야 합니다.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6-7, 개역한글)
우리가 헌금을 할때 그것은 자원함으로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많이 드리는자가 많은 축복을 받을것입니다. 이것이 헌금의 원리입니다.
삭개오는 구원받고 자기재산의 절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2. 헌금은 희생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막12:41-44, 개역한글)
여기서 주님께서는 항상 연보궤 앞 맞은편에 앉으셔서 매번 사람들이 헌금하는것을 보셨습니다. (41절의 말씀에서 '보실쌔'는 반복적인 동사가 쓰였습니다)
이는 한번 이런사건이 있었다가 아닙니다. 그런데 두렙돈을 넣는데 예수님께서 가장많이 드렸다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재산의 절반을 내었지만 이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오르난(오벳에돔)의 타작마당을 살때에 오르난이 그냥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였으나 다윗이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헌금은 희생입니다. 남아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에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이 과부는 두렙돈 생활비 전부를 드리고 그날 굶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과부를 반드시 돌보셨을것입니다. 이것이 헌금의 두번째 원리입니다.
3.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2:44-45, 개역한글)
어떤사람은 여기서 공산주의를 따온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런줄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은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각 사람이 자기것을 받는것을 지지 합니다. 누구나 자기 소유가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자기 밭을 팔아 일부를 숨기고 사도들 앞에 내놓았을때 베드로가 "땅을 판후에도 그것이 네것이 아니었느냐?" 라고 합니다. 아나니야는 자기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맘대로 할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한번도 모든것을 다 팔아서 가져와 나눠쓰는것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예루살렘 교회에서만 일어납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는것은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다' 입니다. 헌금을 필요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필요가 있는 형제, 필요가 있는 하나님의 일, 그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금의 세번째 원리입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의 원리
1. 하늘에 보화를 쌓는것
2. 희생하는것
3. 필요를 채우는것
예루살렘교회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시 살던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가기 전에 교회를 배워야 합니다. 교회를 배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립니다. 가져온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바로 그때에 어떤분이 자기의 재산을 팔아다가 형제들이 영적으로 배울수 있도록 헌금한 것입니다.
이것이 헌금의 원리입니다.
험금은 필요를 채웁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일어나도록 물질로 지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구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11조는 1.구제를 위해서 쓰였습니다. 2.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쓰였습니다. 3. 매3년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이 원리를 따라 바리세인들이 명령을 따라 구제했습니다. 이것은 명령된것입니다. 비율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저희들에게 가져오면 이것은 다 세금입니다. 우리의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대로 가장 좋은것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비율은 우리가 정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것은 돈으로 살지 않음을, 우리가 사는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하나님 앞에서 확인하는것입니다. 그리고 희생하며, 하나님의 원리대로 채우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들이 풍성해지는 모임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마태복음 강해 26|작성자 강단 말씀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