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2. 6. 12. 17:11

성경읽기 : 로마서 2장 17-22절

성경읽기 : 로마서 2장 17-22절(요약)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하느냐"(롬2:17-22).
 
 
지난시간 추가 교제 :
- 14-15절에서 본성, 양심, 생각을 바울은 언급하고 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것을 언급함으로서 은밀한것과 잘 어울림을 볼수 있다. 하나님의 판단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이 외모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혈통적인 것을 말씀하신다고 생각한다). 곧,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판단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고 나쁨으로 분리된다. 죄의 출발은 사람이 보기에 좋고 나쁜것으로 판단하였기에 시작된 것이다. 그렇기에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으로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
 
 
17절 :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 이 말씀은 물론 유대인에게 하는 말씀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해 볼수 있다. 1)율법을 의지하며 2)율법의 교훈을 받고 3)율법에 있는 지식과 4)진리의 모본을 가진자로 믿었다. 이 모든것은 지식과 다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그 지식을 가진 유대인들이 그 지식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유대인은 지식만을 가지고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다. (17-20절)
 
-로마서 2방 1-10절까지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되 공정한 심판임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선택하셨다. 이것은 주권적인 하나님의 선택이지만 이방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편애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심판을 하실때에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 가운데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하실때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유대인에게 이방인과 동일한 심판을 내리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한 심판임을 분명히 한다.
 
* 유대인이라 : 헬라어로 유다 족속의 일원으로 포함된 단어를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특별히 모세의 전통을 고수하는 자들을 스스로 유대인이라 칭했다.
- 그들은 모세를 매우 존경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죽을수밖에 없는 환경 가운데 태어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살아났다. 그 이름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생각했어야 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모세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나타난 것은 온유함이 승했다.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갔다. 그러나 유대인은 모세의 성품을 닮지 못하고 드러난 것으로만 따랐다.
 
- 흠정역으로는 앞에 "보라"가 나온다. 그리고 "율법을 의지하며"를 "율법에 안주하며"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조건들에 상황에 맞춰 누리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를 알수 없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또 다른 뜻으로는 죄를 고백하고 인정하다는 뜻도 있다. 곧,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랑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는 존재이지, 내것을 자랑하는것처럼 부를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 그들은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불렀다. 스스로 선민사상에 빠져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11:26, 개역한글)
 
유대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유대인이라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떤 호칭이나 이름들은 그 사람이 스스로 불러달라고 해서 불리거나 그 본인이 그러한 요청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 그렇게 부르게 되는 경우이다. 유대인의 경우는 전자이고 그리스도인은 후자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바라셨던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라셨던 간증이지만 유대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자랑했다. 물론 정확하게 아는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는대로 행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선한목자이시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것을 아셨을뿐 아니라 정말로 이 세상에 오셔서 선한 목자이신 것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이와같이 안주하고 자랑하는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엎드리는 자세를 갖는것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된다.
 
- 일반적인 원리를 언급한 후에 17절에서부터 유대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잘못된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18절 이하부터는 그들이 마땅히 해야 했던 것이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열거한다. 그리고 20절에 보면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이 행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18절 :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19절 :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절 :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절 :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22절 :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하느냐
 
*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하느냐 :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21:13, 개역한글)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세가지로 추론한다. 1)마땅히 기도하여야 하는 거룩한 성전에서 장사를 한 일, 2)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일, 3)이방신전의 물건(금품)을 도적질한 일.
 
25 너는 그들의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것으로 인하여 올무에 들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26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이 진멸 당할 것이 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극히 꺼리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
(신7:25-26, 개역한글)
 
- 여기 나온 말씀을 볼때에 주님께서는 이방신전을 친입해서 약탈하는것을 금지시키셨다. 또한 우상들을 어떻게 처리할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것을 녹여서 다시 쓰지말고 그것을 다 불태우라고 하셨다. 도적질을 단순히 약탈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이득을 챙기는 모든 행위로 생각해 볼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가증히 여겼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유대인은 고리대금업자로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 유대인들이 세상에서 할수있는 사업이 한정적이기에 생존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일에 거리낌없이 투자하고 이득을 취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이 말씀이 쓰여질때에도 유대인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었고 금전적인 일에 많이 간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금전을 취하는 것에 대해서 양심없이 행했던 것으로 추측할수 있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이것을 신사물건을 도적질한다고 기록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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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 뿐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행19:24-26, 개역한글)
 
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행19:29-30, 개역한글)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 왔으니 (행19:37, 개역한글)
 
- 37절 말씀을 근거로 유대인들 가운데 이와같은 일을 행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로마서 2장을 기록할때에 사도바울은 이 사건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유대인들은 단순히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선을 넘어서 더욱 적극적으로 악을 행했다. 이방신전의 물건을 도적질 하고 그 사건에 잡히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 주님의 족보를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로 이어진다. 요셉이 아닌 유다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다. 요셉을 형들이 구덩이 던져넣을때에 유다가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창37:23-26, 개역한글)
 
유다는 자기 동생을 죽이려는 모의에 가담했었고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놓고 음식을 먹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한가를 이 부분을 통해 볼수 있다. 또한 그 다음장 38장을 보면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는다. 그리고 주님의 족보는 베레스로 이어진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유다가 요셉을 만났을때, 유다는 베냐민의 죄를 자신이 담당한다. 그는 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행했다. 그가 변화된 것이다. 그래서 야곱의 유언으로 유다를 이어서 예수님이 오실것을 예언한다. 이스라엘이 남유다 북이스라엘로 나뉘어지고 그 후에 유대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유다는 죄를 범하고 주님의 은혜로 변화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전혀 유대인들답지 않은 삶을 살았다.
 
- 이것은 물론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또한 이것을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할수 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믿지 않는자들에게 모독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구원받은 후의 모임에서 주님을 섬기는 삶 가운데서도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2:29,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