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예수님의 인생을 사랑하심,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

박이레 2022. 4. 24. 16:04

2022년 4월 24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 예수님의 인생을 사랑하심,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 >

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요11:33-36,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내용을 읽었습니다. 덕언 말씀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교제했는데요, 연장해서 교제해드리겠습니다. 눈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흘렀다는 것은 넘쳐 흐르는 것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허비되는 인상을 줄수 있는데 주님께서 흘리신 눈물은 그와 같이 허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흘린 눈물은 매운 귀하고 진귀한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지만 동등될 것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슬픔이 있거나 불만족될 것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구절은 매우 짧지만 주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 굉장히 큰 마음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생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주일학생들인 여러분을 위해서 주님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자기 죄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직 어린 친구들은 이런 어려움과 슬픔들을 잘 모를 거예요.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죄로 말미암아 비롯된, 또한 모든 병은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사람은 죽을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의 근원은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안타까워 하고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멀리서 피조물을 팔장을 끼고 바라보고 있는 분이 아닙니다. 가까이 다가와서 함께 슬퍼하시는 분입니다. 이 모습을 볼 때에 죄인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오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바쁘게 살고, 그 가운데 어려움을 직면하고 곤란할때에 과연 하나님이 계신가를 생각할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구하는 마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사람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예수님을 우상과 같이 그 수준을 낮춰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리를 알기를 원하시는 다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요11:36, 개역한글)

사람들이 주님께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43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19:41-44, 개역한글)

이것은 그들 가운데 찾아오신 참된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을 십자가에 달고 죽게 합니다. 그와 같은 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이 심판받고 멸망받게 될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우셨습니다. 아직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때 그들에게 임하게 될 심판을 진실한 마음으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화를 내시면서 경고하시는 것이 아니고 눈물을 흘리시며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형제님도 눈물로서 교회를 훈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20:31, 개역한글)

눈물로 훈계한다는 것은 그 훈계를 받는 대상이 얼마나 큰 잘못을 하였는지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저를 혼대실때 눈물을 흘리시며 혼내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눈물로 훈계한다는 것은 진심이 담겨있고, 그리고 그가 깨닫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저희들이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을 얻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죽게 된다면 반드시 지옥에 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것이고 진실한 것이고 참된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개역한글)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에 있을 심판입니다. 그 심판은 영원히 불못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는 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던 것처럼,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눈물로서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7-9, 개역한글)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되어 있는데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심판 통곡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그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이 받아야 할 심판을 주님께서 지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것을 순종하셨을까요? 사실 그것을 순종할 이유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거룩하신 분이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사람을 인도하시기 위해서는 심판이 필요함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실 죄를 지실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인정하고 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하는지를 이해하시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를 드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거룩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에 대한 거룩은 필요도 없고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경건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양심에 화인 맞은 채 그 길을 가다보면 그 불경건함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지를 알았고 죄에대한 심판이 필요함을 아셨고 순종으로 배우셨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심한 통곡과 눈물 가운데서 간구하신 것입니다.
죄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 할지라도 그 죽음이 결코 다른 사람을 구원할수 없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눈물을 생각해 볼때 주님이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셨는가, 그리고 사람이 심판을 받는것을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는가, 그리고 그 심판에서 사람들을 건져내기 위하여 하나님께 얼마나 간구하시는가를 생각할수 있습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1:18-19, 개역한글)

여기서 주님께서 흘리신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게 될때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닌가를 생각할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미련하고 거리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사도는 주님께서 흘리신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 저희를 구원할 것이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주님께서 주셨는데 그것이 주님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저희들이 잘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병원에 갔는데 고칠수 없다는 것입니다. 약이 개발중인데 다 개발되지 않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약이 빨리 개발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금은 잘 녹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이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하늘과 새 땅이 임할때에 금이나 은은 불로 다 녹아 풀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하지 못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일시적으로 죄를 사할수 있을지라도 영원한 속죄를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흘리신 보배로운 피는 영원한 속죄이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베드로전서에서 읽었던 것처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같은"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이 보배로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정확한 제물이시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아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의 첫 새끼를 드렸을때 하나님께서는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가인이 불순한 마음으로 드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방법으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실때에 그 재앙에서 면할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의 피가 애굽 땅에 임하는 재앙을 면할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그와 같은 분이십니다.
저희들에게 임하게 될 두려운 심판을 면하게 할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되는 정확한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희들이 두가지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희들이 처한 상황을 돌파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인생을 사랑하시고 인생이 심판을 받지 않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또 하나님을 경외하시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드린 제사가 믿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