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2. 4. 20. 20:53

성경읽기 : 열왕기하 14장 1-7절(요약)

1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이년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대로 다 행하였어도
4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7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왕하14:1-7, 개역한글)


[ 1-7절 성경읽기 ]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유다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된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는 못했다. 또한 에돔을 파한 후에 마음이 교만해진 그는 북왕국에 선전포고를 했다가 전쟁에 패하였다. 1-7절까지 교제해 주시기를 바란다.
역대하 25장에 또한 아마샤왕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시면 좋을것 같고, 아먀사왕의 삶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시면 좋을듯하다. 그가 산당을 제하지 못한 부분도 교제해 주시면 좋을듯하다. 그의 모친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는데, 북왕국과는 달리 유다왕의 모친의 이름은 대부분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교제해주시면 좋을듯 하다.

- 전의석 형제님 : 아마샤왕은 아버지인 요아스와 대단히 흡사한 인생을 살고 있다. 아버지의 좋은점과 단점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 다음 왕인 웃시아왕도 그와 비슷한 삶을 살게된다.
아마샤는 부왕을 죽인 자들을 죽이는데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다. 이는 모세의 율법에 나와있는대로 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았던 것으로 볼수 있다.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지만 그는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게 된다. 한결같은 마음, 그 믿음을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요아스와 아먀사를 볼 때에, 요아스가 말년에 잘못된 것은 스가랴의 권면을 들었을때 그를 쳐 죽였다. 그리고 아마샤 또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셨을때 그를 위협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두 왕은 신하들의 모반으로 죽게 된다. 그러나 그 죽음의 본질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게된다.

- 김윤철 형제님 :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지만 다윗과 같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가 그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아버지인 요아스가 행한 일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아먀사는 다윗과 같지는 않았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기 때문에 에돔을 치고 세력을 강화할수 있었다. 아마샤의 삶을 볼 때에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는 삶을 살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전의석 형제님 : 7절에 에돔사람 일만을 죽이고 아먀사가 승리한 것을 보게 된다. 역대하 25장을 보면 이에 대한 정보가 더 있다. 아마샤왕의 큰 실패의 시작이 에돔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였다고 본다. 그는 에돔을 정벌한 생각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큰 용사를 부른다. 금 일백달란트를 주고 용병으로 부른다. 에돔을 정벌하는데 있어서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다기 보다는 이스라엘의 큰 용사에게 삯을 주고 그들을 의지했다. 그리고 그 일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책망을 받고, 다시 일백 달란트를 내고 그들을 돌려 보낸다.
또한 그는 에돔을 정벌하고 그곳에 있는 우상을 취해온다. 그는 그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기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교만해진다. 그의 인생의 하락기의 모습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아마샤의 모습이 나에게도 없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에돔의 우상을 가져온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그것에 취해있지 않은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는 아마샤에게뿐만 아니라 내게도 때때로 있을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기에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 최재홍 형제님 : 2절에 보면 아마샤의 어머니 이름이 나와있다. 그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뜻대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것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가르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또한 북왕조와는 다르게 남유다는 다윗의 왕가로 그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선한 영향력이 그 어머니로부터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북왕국의 많은 왕들이 악을 행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지만 아마샤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다윗왕조차도 완벽하지 못했음을 생각하게 된다.
아마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 그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았음을 또한 역대하 25장을 통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산당을 생각할 때에, 유다의 많은 왕들이 산당을 제거하는 것을 실패한다. 백성들은 성전에 가서 제사드리기 보다 가까운 산당에 가서 제사드리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당을 제거하는 것에 대해서 열왕기서는 계속되는 실패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것을 기 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후, 1-12절까지 자유롭게 교제 나눠주시기를 바란다.

- 장승훈 형제님 : 유다왕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 중에 하나가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나온다. 이것이 어떠한 문제가 있음을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산당이 필요했고, 선하게 사용될 여지가 있었지만 이는 변질되어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서나서 백성들이 산당에서 우상숭배를 드렸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요아스와 아마샤에 대해서 평가를 할때에 산당을 제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두 왕은 비슷한 잘못을 범한 것이다. 왕들이 산당에서 우상숭배를 했다는 기록은 볼수 없다. 그렇기에 산당을 제하지 않았다는 것이 왕의 우상숭배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로 인해서 백성들이 잘못을 진 것이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을 상관치 않은 것으로 생각할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정의 가장이나, 모임의 인도자들은 내가 죄를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가정의 구성원이나 모임의 성도님들이 그와 같이 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요아스와 아먀사는 그 부분에 있어서 실패한 것이다.
산당은 히스기야왕때에 완전히 제거된다. 만약 이스라엘이 한 장소에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면 산당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는 남유다의 문제의 씨앗처럼 계속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4장 5절에서 "부왕을 죽인 신복들은 죽였으나" 12장 20절에 요아스가 죽는 모습이 나온다. 요아스의 신복들이 요아스를 죽였다. 그리고나서 아마샤가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은 바로 한 일이 아니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한 것으로 보인다.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초기에는 아마샤가 왕이라 할지라도 어찌할수 없었고 후에 아마샤가 권력을 가진 후에야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인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굉장히 건조하게 써 있어서, 요아스가 신복들에게 모반을 당해 죽임을 당하고 그 다음에 아마샤가 왕이 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실상은 그 나라가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아마샤는 젊은 나이에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어느정도 해결하고 아마샤가 나라를 통제할수 있는 시기에 이르렀을때 그는 부왕을 죽인 자들을 죽인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 내에서 한다.

7절부터는 아마샤의 교만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이해가 된다. 북왕국의 왕이 그 부분을 직접 또 이야기 한다. 그러나 북왕국, 요아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악인의 입을 통해서 말하는 아마샤의 객관적인 평가라고 생각되어진다.

- 김대현 형제님 : 아마샤는 부왕 요아스의 행한대로 행했다.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2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왕하12:2-3, 개역한글)

요아스의 신앙이 굳건히 섰다면, 여호야다가 죽든 안죽든, 그의 삶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아스의 믿음이 여호야다를 의지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에 그의 믿음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산당을 제하지 않은 것, 작은 빌미를 그의 아들 아마샤도 그대로 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의 삶도 앞선 형제님들의 영향을 받을수 있다. 그러나 그 후에 스스로 말씀 앞에 굳게 서지 않으면 요아스와 같은 삶, 아마샤와 같은 삶을 살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 김보영 형제님 :  아마샤가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않은것을 생각하게 된다.

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대로 다 행하였어도
4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하14:3-4, 개역한글)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 (대하25:2, 개역한글)

요아스나 아마샤는 하나님께 온전히 행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다 드리지 않고 어느 부분은 자기 것을 가지고 있는 마음, 그것이 이와 같은 불행을 낳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마샤가 에돔을 칠 때도 순수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서 친 것이 아니라 용병을 쓰는 방법을 쓰려고 한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에돔을 그의 손에 붙이셨으므로 유다군사만으로 가라고 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러나 10만의 용병은 돌아가면서 무려 삼천의 사람을 죽인다. 또한 아마샤는 에돔을 정벌하고 에돔의 우상을 가지고 온다. 이러한 아마샤를 하나님께서는 징벌하시는 것을 이후의 말씀을 통해서 보게된다.
우리의 신앙은 전적으로 내 마음을 주님 앞에 드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신앙은 온전한 마음으로 다 드려지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