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2. 1. 23. 13:07

2022년 1월 23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 복음 : 노아의 방주 >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눅17:26-27, 개역한글)

노아에 대한 부분도 살펴보겠습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6:9, 개역한글)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6:13, 개역한글)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6:22, 개역한글)

저희가 성경을 보면 저희의 조상을 위로 올라가다보면 저희의 조상이 노아 할아버지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 상에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노아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십니다. 그 당시에 방주를 짓는 노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하신 것을 모두 준행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는 이유는 우리가 교훈을 삼기 위함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주님께서 오시는 때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매 삶을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어린 친구들은 자라나고 있고 성도님들은 하루 하루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인자의 때' 곧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때에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이고, 모임 안에서도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희들이 열심히 살고 있을때에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을 우리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그 말씀에 얼마나 반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때에, 우리가 세상 일들로, 어린이들은 학교의 일로, 어른들은 직장일로, 경제적인 문제로 마음이 가득차서 그 말씀을 받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에도 적용이 됩니다. 복음이 전해져도 그 마음에 다른것으로 가득차 있다면 복음말씀이 들어올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6:5,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보기에 좋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또한 그 속마음 자체가 악했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숨은 동기와 그 마음을 보시며 살피십니다.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6: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가 관영하고 사람의 마음을 보신 후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근심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을 멸하기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6:13, 개역한글)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신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정하신 때에 가서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3:20, 개역한글)

하나님의 심판 때에 방주 안에 들어가서 살게한 사람이 8명 뿐이었습니다. 노아서 120년간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먹고 마시며 장가들면서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을 수없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성실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120년간 짓게 하셨습니다. 이는 혹, 노아의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사람이 있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창5:25, 개역한글)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습니다.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끝이 오리라'입니다. 므두셀라는 세상의 모든 인류 중에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다림을 멈추시면 심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40일동안 하나님은 홍수를 이 땅에 일으키셨습니다. 그 안에서 코로 호흡하여 살아남을수 있는 생명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얼마나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지요. 사람은 어째서 지옥에 가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인생들에게 많이 비추지 않으셨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셔도 사람이 관심이 없고 여전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때문인가요?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알수 있을만큼 자신의 빛을 비추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자기의 일에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고수하고 자기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이는 노아의 시대에 살던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말씀이 얼마나 잘 전해졌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듣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구원의 방법을 그대로 좇지 않고 그 마음을 인간적인 것으로 가득채우고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8명이라는 숫자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6:7, 개역한글)

여기까지는 객관적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이 구절까지만 봐도 사람은 진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어진 8절을 보십시요.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8,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진멸해도 상관이 없으셨지만 노아의 가족들을 살리셨습니다. 노아는 아담의 후손이었기에 그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명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말씀들을 다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붇들어서 결국 그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11:7, 개역한글)

그렇기에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저희 모두는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 가운데서 죽음을 경험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하신 오래참은 뒤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 순서대로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표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잘 생각하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16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창6:14-17, 개역한글)

홍수가 일어나면 무조건 이 방주 안에만 들어가야 살수 있습니다. 상징적인 것들을 몇가지 보자면 문이 있는데 그 문이 옆으로 나 있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주님의 옆구리를 찔러서 물과 피가 나옵니다. 저희들이 구속을 받는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시고 저희들이 받아야 할 죄에 대한 심판을 주님께서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고난 받으신 것이 방주의 옆에 난 문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또 역청이 있습니다. 나무로 배를 지으면 튼튼하겠지만 나무와 나무 틈 사이로 물이 들어올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청을 칠해서 배 안에 물이 한방울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역청은 주님이 흘리신 보혈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심판을 모두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보혈이 저희들에게 오는 심판을 다 막아주는 것입니다.
인생은 참 순종치 않지만 그 가운데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의 방법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받아 들일 때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시42:7, 개역한글)

이는 주님께서 심판을 받으실때에, 주님의 심경을 말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저희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영혼이 떠나셨습니다.
이 말씀을 어린 학생들이나 아직 구도하시는 분들께서 중히 받으시고 노아와 같이 주님의 말씀을 모두 준행하는 가운데 방주되신 주님 안으로 들어와 구원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