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열왕기하 9장 1-6절
성경읽기 : 열왕기하 9장 1-6절(요약)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2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3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찌니라
4 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5 저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았는지라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6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왕하9:1-6, 개역한글)
[ 1-6절 성경읽기 ]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예후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는 것을 오늘 볼수 있다. 이 일은 열왕기상에서 이미 예언된 일이다.
- 김윤철 형제님 : 엘리사는 왜 직접 예후에게 기름을 붓지 않고 선지자의 생도에게 기름을 붓게 하였는지 궁금하다.
일부에서는 엘리사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선지자 생도를 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왕들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엘리사가 이와 같은 것을 걱정 했다는 것은 이치상 맞지 않기 때문에 엘리사가 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수행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일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된다.
- 전의석 형제님 : 하나님께서는 열왕기상 19장에서 엘리야에게 직접 세명에게 기름부을 것을 명하셨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기름부은 장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나는 장면은 나와있다.
엘리사가 예후에게 기름부은 목적이 아합의 집을 심판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볼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합이 하나님께 빨리 심판 받기를 원하고 고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일어났다. 이는 아합의 집에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수 있고, 또한 사람이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때가 다름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압이 이러한 심판을 직접적으로 당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 그 심판을 당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지만, 이는 아합이 하나님 앞에서 겸비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인내하시지만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심을 마음에 경고로 받게 된다. (1-5절)
또한 엘리사의 생도를 부르는 일을 생각할때,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라고 한다. 이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너는 허리를 동이고..." (왕하9:1, 개역한글)
...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찌니라
4 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왕하9:3-4, 개역한글)
하지만 이와 같은 말씀을 보게 될때, 하나님의 일은 단 마음으로 집중해서 그 일을 해야 하고 그 일이 완수 되었을때는 머뭇 거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을 받게 된다.
- 김대현 형제님 : "허리를 동이고"(1절)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기전에 옷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긴장을 풀지 않고 마음을 단단히 하라는 의도가 느껴진다.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3절) 이는 모두 엘리사가 생도에게 명하는 내용이고 생도는 그렇게 했다. 왜 이렇게 명령했는가를 생각하게 될때, 예후가 생도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권력과 영향에 거리를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 주어진 모든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 최재홍 형제님 : 1절을 보면 "선지자 엘리사"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여기서는 선지자의 신분을 강조하는 것 같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다. 9장의 내용을 볼때에 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을 보게 된다.
북이스라엘 왕 중에는 예후 말고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없다. 이는 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6절에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북왕국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북왕국을 여전히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다. 지금 이 시대에도 그렇고 하나님께서는 패역하는 백성들을 오래 기다리시며 돌이키기를 기다리심을 생각하게 된다.
- 김보영 형제님 : 아합에 대한 심판은 엘리야 때에 이미 예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열왕기하 9장에서 실현에 들어간다. 하나님은 예후를 왕으로 선택해서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사실 아합의 때에 심판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열왕기상 19장 27절에서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을 들은 아합이 겸비함으로 아합때의 심판을 유보하고 그의 아들 때에 심판하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의 아들 때에 심판이 내려진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참으시는 중에 그래도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아합의 아들 요람이 그 아버지 때에 엘리야 선지자가 예언하는 것을 들었다면, 그리고 그가 회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개역한글)
그러나 아합도 그의 아들도 회개하지 않고 우상을 섬김으로 심판이 임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7절의 말씀을 보게 될때, 아합의 집을 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목적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원수를 갚기 위해서 심판하시는 것임을 볼수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소외 당하기도 하고 핍박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극한의 핍박을 받지는 않지만, 무슬림 쪽에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교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성도들은 상대가 악하게 행한다고 해서 악하게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 순교를 당하는 것은 승리가 될수 있어도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참패이다.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19-21, 개역한글)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를 위해서 친히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셨다. 주님의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승리하셨을뿐 아니라 말할수 없는 영광의 자리에 앉으셨다.
- 김민원 형제님 :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예후에게는 기음을 부어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지자 엘리사가"라는 대목을 보았을때, 엘리사가 선지자가 되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생도는 엘리사의 말을 따라 그대로 행한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군대장관들은 생도가 무슨 연유로 예후에게 왔는지를 궁금해 했다. 만일 생도가 남아 있었다면 그는 장관들에게 잡혀 그의 한 일과 그 연유에 대해서 캐물음을 받았을 것이다. 이에 대한 원천적인 차단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또한 아합이 나폿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다. 그때에 '너의 피를 개들이 핥는다'는 내용에서 '너의'가 영어로 'yours'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아합뿐만 아니라 아합과 관련된 가족의 피를 생각하게 된다.
- 장승훈 형제님 : 예후를 왕을 삼기 위해서 기름을 붓는 장면과 생도가 도망치는 모습이 부자연스럽지만 대조적으로 나온다. 이와 같은 모습이 사무엘상 16장에 나와 있다. 이는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장면이다. 그는 다윗이 오기까지 식사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추측해 볼수 있는 것은, 다윗이 오고나서 기름을 붓고 나서 식사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무엘은 평안히 라마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의 생도가 한 것은 기름을 붓고나서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 상황에서 식사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예후는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 되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마치 여로보암의 집을 심판 하기 위해서 바아사를 선택하신 것과 같다. 그는 여호와의 생도와 조금의 교제나 교통이 없이 하나님의 심판의 직무를 받은 것이다.
열왕기하 8장에서 엘리사가 하사엘이 왕이 될것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는 하사엘이 이스라엘에게 행할 여러가지 악을 인해서이다. 그러나 예후에게는 엘리사가 직접가지 않았지만 담담하게 그가 행해야할 심판의 일을 전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심판하실수 있지만 은혜 가운데 심판을 유보하시는 것을 또한 생각하게 된다.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모두 선지자 엘리사의 예언을 통해 성취 되었다는 것을 볼 때에 모두 하나님께서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심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