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성도 말씀

넉넉히 이기는 자

박이레 2021. 8. 20. 20:21

2021년 8월 15일 일요일 / 강성찬 형제님
< 넉넉히 이기는 자 >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6-39).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번 시간을 또 복주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여기 37절에 나와있는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는 말씀에 대해서 교제를 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이기는 자라고 말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 로마서 8장 17절에서는 "넉넉히 이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기는 자 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넉넉히 이긴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가지를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특별히 얼마 전에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올림픽에 보면 이기는 자들, 메달을 따는 자들이 나오게 되죠. 그러면 다 금메달을 따는 것이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한국이 양궁을 잘해서 이것은 우리가 메달을 많이 딸 수가 있고, 우리가 예전부터 계속 매달을 딴 종목이라고 해도, 한국이 양궁을 제일 잘한다고 해도 그 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조마조마 합니다. 이게 질것 같은데, 질것 같은데, 이렇게 되는 거죠. 보면 넉넉히 이기는게 아니라 간신히, 겨우 이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넉넉히 이기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더 이상한것은 그 앞에 보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이 말씀을 보면 이것은 넉넉히 이기는 거라 전혀 달라보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넉넉히 이기기는 커녕, 아주 크게 지고 있는 그런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계속 어려움과 핍박을 받는, 그런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모습, 마치 도살할 양같이, 힘없이 도살 당하는 그런 양같은 여김을 받는, 이 그리스도인의 모습,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넉넉히 이기는 자인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 첫번째로 왜 그리스도인은 넉넉히 이기는 자인가, 첫번째로는 그리스도인이 받은 구원은 영원토록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인다 할찌라도 그것은 영원히 안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단번에 이루어진 그 십자가 사역,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유일한 근거이고 우리가 구원을 영원토록 확신할수 있는 유일한 근거임을 보게 됩니다. 참 다시 운동 경기를 여러번 말씀을 드릴텐데요. 올림픽을 보면 영원한 챔피언이 없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 메달을 딴 사람들이 한번 메달을 따면 굉장한 것이고, 그리고 연속해서 그 다음 해에도 금 메달을 따면, 계속해서 그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면 두번만 해도 굉장한 선수로 기록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세번, 네번, 계속해서 그 자리를 유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지고 또 이 운동을 해서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굉장히 그 식단도 관리를 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메달은 그 운동 선수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그 구원이 달려 있었다면 우리는 앞에 말씀드리는 것처럼 철저하게 참패하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안전한 것이고 우리는 영원토록 챔피언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복인 것입니다. 특별히 이 로마서 8장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영원히 안전한 것을 두가지를 근거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31절에 나와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모든 만물보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어느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정죄하고 송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안전하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를 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하셔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내어 주신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아들보다 아끼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아들이라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장 좋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남기지 않고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하나님이시기에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구원이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여기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것은 그분이 얼마나 높으신 분이신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영광 중에서 그리고 그분이 행하시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두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은 이제 안전한 것입니다.

또한 두번째로 이것이 넉넉한 이김이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 끊어지게 하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지게 만드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길 뿐만 아니라 그리고 그 공격이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이 되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 공격을 맞서고 이겨내는 것 이상입니다. 오히려 그 공격이 우리를 성장시키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바닷가에서 놀게 되었는데요. 바닷가에 보면 바닷가에 부표를 띄워놓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부표는 파도가 치는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부 힘에 따라다니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바닷가 한편에는 방파제가 또한 있습니다. 그 방파제는 파도가 온다 할찌라도 그 파도에 떨밀려가지 않습니다. 그 파도에 맞서서 굳게 서있는 것이죠. 파도를 깨트리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이것은 그 파도를 이긴 것입니다. 그런데 넉넉히 이기는 것은 무엇이냐면, 그 파도에 보면 파도가 올때,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 굉장히 큰 파도가 쭉 밀려 들어오는데, 파도가 오니까 오히려 신나서 거기에 올라가서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파도가 오니까 더 재미있게 파도를 타고 노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파도를 넉넉히 이기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와 같은 것을 성경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고 선을 이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일들, 선을 이루어 갑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에 불행이라고 말하는 나쁜 일들,  이제 그러한 것들, 그러한 파도들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선입니까? 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심이라" 구원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선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은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생명이 참 놀라운 것임을 보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쁜 환경에서, "아니, 저런 환경 가운데 있으면 나 같으면 낙심되고 우울증에 걸렸을텐데." 그렇게 생각할만한 그런 환경 가운데서 오히려 단련되고 정금같이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 안에 두신 그 생명의 놀라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왜 그리스도인들이 넉넉히 이기는 것인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세상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긴다는 것은 굉장히 독특한 승리를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올림픽을 보면 새로운 경기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독특한 그런 경기들입니다. 예전에는 육상이나, 수영, 이런 전통적인 종목들이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경기도 있고, 클라이밍,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경기도 있고, 산악 자전거를 타는 경기도 있고, 이런 여러가지 독특한 경기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경기를 보면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그런 경기를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일상적인 시험을 겪게 됩니다. 특이한 것은 뭐나면, 특이한 승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유혹이 왔을때에 이기지 못합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항상 보이는 코스입니다. 이 세상신이 이끄는대로, 우상이 이끄는대로 세상 사람들은 그냥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독특하게 이기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같은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쉽게 돈을 벌게 되는, 하지만 정당하지는 않는, 그런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가운데서 이것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한다 할찌라도 다른 사람을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이익을 얻는 것이니까, 그냥 그렇게 해 버립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경기에서 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상황 가운데서 이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자기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원리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유혹을 이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잠깐 요한일서 말씀을 한군데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

여기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 있어서는, 그리고 특별히 구원받고 자라가는 그 청년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특징이 흉악한 자를 이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흉악한 자는 사단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공중의 권세잡은 이 세상 임금, 이 흉악한 자에게 다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이끄는대로 끌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속에 있기 때문에 흉악한 자를 이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 이게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이김이고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참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으로 이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공생애를 이제 막 시작하실때에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게 됩니다. 그 사단은 이제 영적으로, 또한 혼, 육적으로 세가지 시험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이, 영과 혼과 육을 가진 우리 인생이 겪는 그 시험의 대표적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서 겪는 그 모든 시험의 핵심적인 부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모든 시험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시험을 볼때 보면, 족보라고 나옵니다. 제가 예전에 공부할 때는 그런게 없었는데 요즘에는 인터넷이 잘 되다 보니까, 학교별로 예전에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를 다 인터넷에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것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을 보면, 아 어떤 문제가 나오는구나 해서 미리 대비할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시험을 겪는 우리를 위해서 미리 족보를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겪는 시험에 대해서 주님께서 먼저 겪으시고 그리고 그 답을 다 적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따라오도록,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체휼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시험을 통과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셨습니까? 다 말씀으로 통과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돌을 떡덩이가 되어 먹게하라 하였을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니라" 라고 말씀을 인용해서 우리 주님은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사단이 성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그리고 천사들이 너를 받듦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하라고 하였을때,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라고 또한 말씀을 인용해서 그 시험을 통과하신 것입니다. 사단이 내게 절하면 천하 만국을 너에게 줄 것이라 하였을때, 우리 주님께서는 "오직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말씀을 인용해서 또한 이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교훈이 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함으로 우리가 악한 자를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그 말씀의 원리대로 살고, 그래서 세상이 보지 못하는 그런 독특한 승리를 우리가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네번째로 왜 이것이 넉넉히 이기는 것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기는 자의 상급이 놀라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자는 항상 상급을 받게 됩니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고 경기를 우승하게 되면 많은 상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경기를 이겼을때 받는 상은 더욱 놀라운 것임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그런 금 메달과 많은 돈과 비교할 수 없는 더욱 놀라운 상급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넉넉히 이기는 것이다. 이기는 자 이상이다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기는 자가 받는 상급에 대해서 성경은 많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기는 자의 상급에 대해서 많은 것을 기록한 것은 우리를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이렇게 소수의 이기는 사람만 그 상급을 받을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이기는 자이고 그리고 그 이기는 자에게 이런 상급이 기다리고 있음으로 더욱 힘을 내라,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서 많은 상급을 기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가서 그 상급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여기 2-3장에 거쳐서 우리 주님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시면서 이 상급을 약속을 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주님의 성령을 통해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바라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 이기는 자에게 주는 상급은 생명 나무의 과실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때 접근이 제한된 그 과실입니다. 그 죄로 인해서 먹을 수 없었던 그러한 과실입니다. 이것은 의인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상징하는 과일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넉넉히 이기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영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로 말미암아 그분이 행하신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이 영원한 생명을 온전히 누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약속된 상급니다. 또한 두번째 상급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1).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영원한 안전을 말을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고 죽는 자들은 한번 죽을뿐만 아니라 또 한번 죽음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둘째사망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둘째 사망은 하나님께서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는, 그래서 영원한 불못에 던지우는 그 무서운, 두려운 사망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 자에게 있어서는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이제 그들은 오히려 부활해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는 영원한 안전을 우리에게 상급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상급을 보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여기 세번째 상급은 감추었던 만나입니다. 그리고 그 만나와 흰 돌을 주실 것이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감추었던 만나는, 만나는 주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이 떡은 하늘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감추었던 만나는 그 만나 중에서도 이제 돌 항아리에 넣어서 지성소에 둔 그 감추었던 만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과 그리고 영광스러운 그 주님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여기는 오직 대제사장만 일년 일차 그 지성소 앞에, 그 언약궤 앞에, 그 언약궤 안에 들어있는, 그 감추었던 만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믿는 자들은,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주님과의 특별한 교제를, 주님을 만나고 친밀하게 교제할수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그 친밀한 교제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상급이 이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주님과 함께 친밀한, 개인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또한 상급인 것입니다. 또한 그 다음 상급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 2:26).

여기서의 상급은 영원한 기업을 말을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그는 사실상 그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기는 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놀라운 기업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다음 상급으로 3장 5절을 보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여기서의 상급은 흰 옷, 그리고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의로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흰 옷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분명하게 기록되게 됩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의인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그런 의로움은, 그런 의롭다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온전한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의로운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약속된 상급입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에 약속하신 상급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여기서의 상급은 하나님의 이름이 그 사람에게 기록되는 것입니다. 이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자신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소유된 자임을 그 이름을 기록하심으로써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된 이 상급은 우리가 영원토록 하나님의 소유임을, 다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신 그 상급을 보겠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여기서의 상급은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이 상급은 그리스도인이 받을 영원한 영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상급이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단지 돈 얼마의 가치가 있는 그러한 상급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가 있는, 영적인 가치가 있는 놀라운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이와 같이 넉넉한 이기는 자의 책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책임이기도 하고 또한 이기는 자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그들에게 그 메달리스트로서의 맞는 그런 태도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영광, 그런 자신감, 당당함, 기쁨, 이런 것들이 그의 태도에서 인터뷰할때 보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가 넉넉히 이기는 자로서 나타내는 태도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넉넉히 이기는 자의 태도는 무엇인가? 이것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2-17).

여기 사도바울은 이기는 자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는 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도바울이 처한 상황을 보면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여기 우리가 읽은대로 그는 심령이 편치 못하고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그는 이제 드로아라는 지역에 갔을때에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의 심령에 편치 못해서, 그는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고 그 교회를 염려함으로 그의 심령이 편치 못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지금 고린도교회에 보낸 사신 디도를 만나기 위해서 마게도냐로 이동하고 있는 그런 상황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그리스도인들이 넉넉히 이긴다는 것이 항상 모든 일이 잘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앞에 로마서 말씀을 본 것처럼,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고 고난 가운데 있고 일이 잘 안풀리고 그런 가운데 있을때도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그것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로 우리를 이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행렬을 인도하시는', 이렇게 번역이 될수 있습니다. 마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해서 지금 개선 행렬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을 사도바울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긴 사도바울의 태도는 첫번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자기가 바라던 일이 잘 풀려나가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넉넉히 이기는 자의 첫번째 태도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태도는 뭐냐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향기가 구원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심각한, 아주 엄중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넉넉히 이기는 자의 두번째 태도는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그런 한걸음 한걸음이 우리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던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태토입니다.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이것은 구원을 얻게 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또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그 복음을 거절함으로 그들 스스로 사망으로 달려가는 그 엄중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삶의 한 행동, 한 행동이 어떤 한 태도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이러한 태도로 사는 것입니다.그리고 넉넉히 이기는 자의 세번째 태도는 순전함입니다.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승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섞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전히 전파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넉넉히 이기는 자의 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의 상황이 좋지 않을때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한 우리의 삶이 무거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신중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로,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하며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순전하게 전파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다른 것과 섞지 않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넉넉히 이기는 자임을 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넉넉히 이기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영원토록 안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승리가 한번 얻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이김이 우리를 반대하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움이 오히려 더욱 우리의 이김을 돋보이게 하고 더욱 이기게 하는데 사용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넉넉히 이기는 자인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이기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넉넉히 이기는 자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상급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자임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러한 놀라운 은혜 가운데서 더욱 합당한 태도로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