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 기억하라 >
2019년 7월 17일 수요일
한봉래 형제님
< 00. 기억하라 >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벧후1:12-17).
성경에서 '기억하라' 하신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계속해서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로 사망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그날, 그들이 계속해서 유월절을 지켜와야 했던 것입니다. 저희들은 만찬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기억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혹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잊을수 있겠습니까? 구원받은 성도가 자기가 구원받은 그날을 그리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잊을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또 비유로 말합니다.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을수 있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옷을 잊겠느냐?" 당연히 잊을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잊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잊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명기 8장으로 가면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잊지 말아야 할것을 말씀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릴때에 이스라엘이 그 유월절을 잊어먹고 그들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때에 그들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약속을 좇아 그들을 건져내신 것을 잊고 내 능력으로 이 모든것을 이루었다 할까, 모세가 경고 합니다. 잊어서는 안된다고 경고 합니다.
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어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합니다. 그리고 남은 유다에게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보라." 그들이 어떻게해서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했으며 그 결과 어떤 멸망을 받았는지를 그들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유다에게는 이스라엘을 따르지 말것을, 하나님을 잊지 말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도 유다도 하나님을 잊고 우상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잊을수 없는 것입니다. 저희들도 저희들의 생애에 하나님이 하신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것을 알게 하시던 날,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내 죄가 사해졌다고 하는 것을 성령님을 통해 말씀으로 확정해 주신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가 기도했을때에 응답하셨던 때, 내 생애 가운데 은혜를 베푸셨던 떄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잊습니다. 왜 그렇죠? 왜 잊을까요?
베드로는, 베드로후서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 입니다. 성도들은 이미 진리 가운데 서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알고 그 가운데 서 있는 성도들에게 잊지 않도록 베드로후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알고 있어도 그 알고있는 말씀을 반복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의 문맥을 보면 그 당시 세상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흘러가냐면 "주님이 재림하지 않는다. 주님이 오신다고 해놓고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오시지 않느냐?" 라고 주님의 재림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증거로 "만물이 창조될 때부터 변함없이 있지 않느냐?" 라고 주님의 다시오심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이미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알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확신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다시 쓰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분명하다." 주님의 재림은 확실하고 그 재림의 관점에서 오늘 살아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주님의 재림이 어떻게 분명함을 말하냐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내가 변화산에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입니다. 이것이 복음서에 나와 있는데요. 이 모습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서를 죽 보시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영광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분명하게 두 눈으로 볼 자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신지, 어떤 경우는 8일후에 어떤 경우는 6일 후에 제자 세명을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 가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모습이 변화 됩니다. 얼굴이 해와같이 빛나고 그의 옷이 하얗게 변화 됩니다. 이 경험은 뭘 말하는거냐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할 왕으로 영광스럽게 다시오실 그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왕이신 것을, 장차 왕으로 오셔서 이 나라를 통치하실 것을 자기의 눈으로 목격한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변화산의 경험을 그와같은 문맥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두번째로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성경을 듭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경험은 셩경과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왕이신 것을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말씀하셨고 그리고 구약에서 그토록 이야기 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주님은 다시 오신다. 왕으로 오신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해도 상황이 어떻게 된다해도 주님의 약속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그 안에 서있지만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항상 이와같은 말씀집회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나라 같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 앞에 성도들이 모여서 주님을 함께 찬양하고 또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안에 있는 진리지만 다시한번 분명하게 세기고 이렇게하는 것은 꼭 하나님 나라와 방불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가 되었을때에 어떻게 이루어지냐면 주님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고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렇게 이해합니다. 모세는 주님이 공중에 오실때에 죽은 성도들입니다. 모세는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왕으로 오실때에 공중에 오실때에 그때 성도들 가운데 죽어 그 몸이 썩은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여 주님의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 입니다. 엘리야는 주님 오실때에 아직 죽지않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몸도 영광스럽게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세명의 제자가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죠. 모세와 엘리야를 교회쪽으로 본다면 이들은 유대인들의 남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함께 천년왕국에서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는 주님의 출애굽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이제 드디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가게되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주제 입니다.
이와같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을때에, 그것이 저희들이 경험하게 될 말씀집회와 수양회를 통해서 경험하게 될 놀라운 영광들입니다. 그 놀라운 것들을 사람들은 잊을 수 있습니다. 산 위에서는 영광스러웠지만 산 밑으로 내려가면 금방 현실앞에 무너지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잊지 않도록, 그 가운데 서있지만 다시 분명하게 서도록 서신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잊었을까요? 출애굽의 영광을 왜 가나안에 들어가서 잊었을까요? 그들이 보고 있는것이, 베드로후서에서도 그렇게 나옵니다. 베드로후서에서 말하고 있는것은 이것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이 있기 때문인데요.
첫번째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구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구원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인가, 이론적인 것이 아니고 얼마나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하나님이 손대신 것인가,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지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것을 주신 구원입니다. 그 생명은 영권한 생명입니다. 절대로 건드리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생명 뿐만이 아닙니다. 경건에 속한 모든 것입니다. 그 생명이 실제적인 삶에서 발현될수 있도록 모든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구원이 충분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것임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세상이 이기지 못한 것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구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책임이 있습니다. 그 구원은 실제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그래서 믿음을 기초로 해서 사랑에까지 이르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실제, 구원의 책임 그리고 그렇게 했을때에 나타나는 구원의 열매, 그의 삶에서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놀라운 열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잊어서는 안되고요.
베드로가 두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성경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진정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고 두번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을 잊어서는 안되고-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한 구원이기에- 그다음 세번째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되는가 하는 하나님의 원리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때 우리가 넉넉하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잊느냐하면 그가 바라보는것이 진리의 말씀이 아니고 잘못된 가르침에 자꾸 노출이 될때 잊어먹습니다. 세상에 자꾸 정신을 쏟을때에 영적인 것을 잊어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실제적인 구원을 받았다 할찌라도 그가 세상사람처럼 산다면 세상의 영향력을 받고 산다면 자기의 마음을 말씀으로 계속해서 채우지 않는다면 그는 잊어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지만 잊어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잊어먹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잊지 않도록,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을 채우기를 기뻐하고 와같은 것을 하는데 있어서 열정으로 하라. 그리고 그 앞에 나오지요. 죄를 멀리하라, 죄를 미워하라. 그렇게 될때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그리고 구원하신 후에도 우리의 생애 가운데 어떻게 구체적인 손길로, 섭리로 우리 생애를 끌고가고 계신지 그리고 말씀에 약속하신대로 어떤 영광으로 우리를 이끌 것인지, 이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관점에 서서 오늘 하루를, 나에게 주어진 선택을 이 관점에서 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삶을 살도록 베드로가 당시 고난 가운데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도 잊을수 없는 사건을 댑니다. 변화산에서 주님이 얼마나 영광스럽게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보았는지 그리고 지금도 주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경험의 확실성을 가지고 잊지 않는 그 경험을 제시하고 성경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기도하는 것은 이번에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보고 이것을 마음에 담아둠으로 그리고 이것과 배치되는 여러가지 잘못된 생각들을 제거함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로 베푼것들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 되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고 그것이 주님께 영광이 되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저희를 불러 모으셨고 또 저희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참석했고 그래서 이 일이 구체적으로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모두 도우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