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기 >
2017년 8월 25일 금요일
강사 : 조나단 블락 형제님
< 출애굽기 >
안녕하십니까, 다시한번 오늘밤 여러분을 뵙게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시간에는 출애굽기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출애굽기 도해 나눠 드린것을 가져오셨기를 바라며 이 집회 기간동안 이 도해를 참고해서 보겠습니다.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4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 택한 장관이 홍해에 잠겼고
5 큰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에 내렸도다
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출15:1-6, 개역한글)
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12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13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출15:11-13, 개역한글)
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찌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명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출16:2-12, 개역한글)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출24:15-18, 개역한글)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출25:8-11, 개역한글)
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2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찌니
3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출28:1-3, 개역한글)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33:17-19, 개역한글)
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출40:34-35, 개역한글)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전10:1-6, 개역한글)
지난시간 저는 모세오경을 살펴봄에 있어서 이것이 파노라마와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말씀을 살펴보면서 창세기만 볼 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상고해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나와 있는 주요 단어인 형상이라는 단어가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출애굽기를 살펴볼때 주요 단어를 가지고 전체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읽은 성경의 여러 구절을 통해서 주요 단어가 나오는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영광>이라는 단어입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열리기 전날밤에 저는 신문 가판대에 신문 헤드라인이 이렇게 나와있는것을 보았습니다,
<런던의 영광>
여러분도 역시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있었기에 그 표현이 의미하는바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그 헤드라인을 보게될때 그것은 사람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룬 일에 대해서 영광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금과 은으로 관 씌우는 행동입니다. 2주간의 올림픽 기간동안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을 다루고 있는 출애굽기의 주제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에 참예함, 부활을 알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번시간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경험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을 배웁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를 자세히 살피기 전에 출애굽기 개요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와 창세기의 커다란 대조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에덴동산, 낙원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출애굽기에서는 애굽의 고난과 노예생활 가운데서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도해 밑에 부분에 주제로, 노예 구원 성화를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출애굽기는 창세기로 부터 시작된 역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출애굽기의 처음 여섯구절은 창세기에서 끝난 일이 어떻게 연결되서 진행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사이에 이러한 대조가 있을뿐 아니라 출애굽기 자체에도 그 시작과 끝이 대조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출애굽기의 시작은 노예된 집에서 시작하였지만 출애굽기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전의 영광으로 끝나는것을 보게 됩니다. 슬픔으로 시작했지만 영광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것은 여러분과 저에게 있는 동일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슬픔과 노예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지난시간 창세기에서 주요한 여덜명의 인물에 대해서 말씀드린것처럼 출애굽기에도 여덜명의 주요한 인물이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말씀을 보게 될때 우리는 모세와 아론만을 주요하게 생각하고 연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주요하게 사용하시기 전에 세명의 여인들을 주요하게 사용하셨습니다.
1장에서 십보라와 부아라는 여인이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자매님들이 이 두 여인에 대해서 주의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그들의 직장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분명하게 서 있었던 여인입니다.
십보라는 밝음이라는 의미를 이름에 가지고 있습니다. 부아도 밝게 빛나는 빛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처음 시작에 두개의 빛나는 광명이 처음 있었던것을 보았던 것처럼 출애굽기에도 두개의 빛나는 광명이 있음을 봅니다.
그 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왕이 그들에게 명령한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살려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전을 주고 있습니까? 때때로 우리는 직장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존귀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귀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집을 왕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1장에서 살펴본 두 여인에 대한 믿음을 보고 우리 모두가 도전을 받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자매님들에게 여러분이 있는 환경 가운데 빛으로 간증을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건, 가정에서건 빛이 되어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 밝은 빛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물론, 모세는 출애굽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될것입니다.
그의 삶은 세가지 기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40년 동안 애굽에 있었고 40년동안 광야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7장에서 발견할수 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출애굽기와 모세오경이 사실이고 자세하게 기록되었다는것을 이 말씀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것입니다.
물론, 출애굽기에 나타난 중요한 분이 여호와 하나님 그분 자신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비록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와 있는것을 보지만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출애굽기에 계시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에 나는 스스로 있는자라고 말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복음서에서 <내로다>라고 하신 하나님이신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증인'이 공격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출애굽기의 주제는 구속입니다.
여러분이 이 도해의 밑에 나와있는 각장의 해석을 본다면, 그것이 구속이라는 이름으로 분류가 되어 있는것을 볼것입니다.
1-6장까지가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볼것입니다.
7-12장까지는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준비,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게 됩니다.
12장에서 애굽에서 나옴으로부터 18장까지가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길을 보게 됩니다.
19장에서 시내산에서 구속과 관련된 하나님의 명령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25장부터 40장까지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의 놀라운것들을 출애굽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 출애굽기, 창세기와 연결되는 놀라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의 내용은 창세기의 내용이 진리임을 확증합니다. 예를들어 출애굽기 20장 11절 말씀을 보게 될때,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11, 개역한글)
이제 여기서는 율법에 의하면, 이 일곱째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쉬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일하시고 마지막 날에 쉬셨기때문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특별히 여기 젊은 학생 성도님들 가운데서는 창세기 1장에 나온 엿새가 오늘과 똑같이 24시간의 날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그 날이 24시간으로 되어 있는 하루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구절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만약 창세기 1장에 나와있는 하루가 단지 여섯개의 기간이라면, 하나님께서 출애굽기에서 여섯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여섯개의 다른기간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알다시피 성경에 대한 가장 훌륭한 주석은 성경 자체입니다.
제가 지난시간에 모세오경은 다섯개의 문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문을 여러번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가 <그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느니라> 라는 문장에서 문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 출애굽기에 나온 문은 문지방에 그 구속의 피가 발라지는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한번 모세오경에서 문이라는 중요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제 출애굽기에서 영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어에서 영광에 해당하는 단어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영광이라는 단어의 문자적인 뜻이 '무겁다'라는 것입니다. 나쁜의미로 사용하자면 그것은 무거운 짐일 것입니다. 좋은 의미로는 영광의 풍성함, 영광의 엄중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는 영광에 해당하는 문자적인 뜻은 밖으로 '밝게 빛나는 빛'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다는것에 대해서 염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가치와 무게가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복음주의 계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벼운 것으로 다루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마포모임 성도님들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무거움을 느끼고 있습니까?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앞에 나올때에 하나님의 영광의 의미를 느끼고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가볍게 여길 그런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거움과 많은 가치를 두고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이 그러한 의미가 있다는것을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 확인하겠습니다.
만약 이 시간이 복음집회 시간이라면 로마서 3장에 기록된 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는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하나님의 영광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 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창세기에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광이라는 단어가 창세기에서는 단 한번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에게, 이 영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특별히 앞서간 성도님들에게 그 단어가 언제 나왔는지, 어디에 많이 나왔는지 살펴보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시간 시편기자가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부분을 보았습니다.
이와같이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창조로 말미암아 나타낸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자적으로 영광이라는 단어가 사용된것은 창세기에서 요셉과 관련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에게 가서 내가 가진 모든영광을 아버지에게 말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영광이라는 주제를 나타내실때에 아들이 그 영광을 아버지께 보여드리는 것에 영광을 처음 사용하셨습니다. 요셉은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인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나와함께 가지셨던 영광으로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영광이 훼손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움을 받았던 사람은 그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를 거쳐서 사람의 영광은 다시 회복되고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구속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가 이 영광을 회복하여 얻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간에 출애굽기와 관련해서 세가지 영광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출애굽기 15장에서 영광과 관련된 한 노래를 보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의 영광을 찬양하는 노래를 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되는 장면이 출애굽기에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물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날에도 지역모임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있습니다.
15장을 먼저 살펴볼때,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첫번째 노래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구속의 노래를 부를수 있습니다.
제가 이 노래가사를 말하는데 있어서 통역하는 분이 어려움을 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만, 저는 구속을 받았다는 찬송가의 가사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구속의 노래를 모두 부를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 가운데서 구속하셨다는것은 우리가 노래 부를수 있습니다.
이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가 옮겨진것을 우리는 노래부를수 있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게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의 일곱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그는 온전히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노래를 부를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바벨론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시편 137편에서 그들은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노래부를수 없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마포모임 성도님들 중에 이와같은 노래를 부를수 없는 분이 계십니까? 그리고 아직 구속받지 못한분이 있다면 오늘밤이 구속받고 구속의 노래를 부를수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15장 1절을 보게 될때,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라고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출15:6, 개역한글)
우리는 이 구절들을 통해서 구속과 관련하여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게 됩니다.
그 외에 어떤것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 가운데서 구원할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말씀에서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하여 구속받은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
우리는 에베소서 1장 12절에서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게끔 구속을 받았다는것을 깨닫습니다. 그분의 영광이 굉장히 큰 무엇인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지난시간에 음악에 대해서 몇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그 음악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구속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좋은 음악을 듣고 있는것을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려드리는것이 참된 음악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처음 나와있는 구속의 노래로부터 이러한 교훈을 받을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광이라는 단어가 무거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의 어떠한 것도 우리 자신이 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영광의 모든 무게를 전부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는 만유안에 계시고 만유의 주신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노래에서는 그분의 인격에 대해서도 찬양하는 것을 봅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출15:11, 개역한글)
우리는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려드릴 때에 동일하게 그분의 거룩함을 찬송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영광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돌려드릴수 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때에 세계 신기록을 세운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벤 존슨이며, 그 기록에도 불구하고 그 메달을 빼앗기에 되었습니다. 그는 금지된 약물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영광을 빼앗기에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될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그렇게 행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여러분과 제게 항상 거룩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홍해 물가에 앉아 이 구속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모든것은 좋아보였고 나쁜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알다시피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찬양의 노래가 기록된 바로 그 장에서 또한 그들의 원망이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놀라운 승리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굽을 다시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저와 여러분에게 때때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시야에서 놓쳤습니다.
그래서 1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그들의 눈앞에 제시 하십니다.
새로운, 신선한 공급하심을 그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아침에 만나가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잠깐, 이 차트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른쪽 위편에 그들이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어떤 경로로 갔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 여정을 다 살펴본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린도전서 10장 말씀을 통해서 이 여정가운데 일어난 모든 일이 우리의 거울이 되어 교훈이 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여정에 대해서 단지 2분 동안 여러분과 제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께 이 여정 가운데 각각의 장소들이 어떠한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찬송가에서 가나안이 천국으로 비유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애굽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곳은 노예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굽이 성경에서 세상을 상징하는데 사용되는것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애굽의 기원이 창세기 10장에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함의 아들 중 하나는 바벨론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함의 아들 중 하나의 이름은 미즈람이고 히브리어로는 애굽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애굽에서는 태양신 라를 섬겼습니다.
그것이 저는 창세기 1장에서 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사용되지 않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양 자체에서 그들이 시선을 돌려 태양 자체를 만드신 창조자께 오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에 대해서 말할때 성경은 항상 내려간 곳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뭄이 들었을때 그 아내와 함께 내려갔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정체에 대해서 그는 거짓말을 하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절대 만족을 얻을수 없었습니다. 그는 반드시 애굽에서 올라왔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나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향했던 그곳을 보게될 때,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곳에는 단것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장에서 애굽은 쓴것이 있는 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나안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되는 축복들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애굽의 속박 가운데서 구속해 내셔서 그 축복 가운데로 넣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 생활 가운데서 구원해 내셨을 뿐아니라 구속의 곳으로 인도해 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1장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존재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축복을 우리의 육체적인, 물질적인 축복과 혼동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영적인 축복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받고 누리는 것입니다.
제가 구원받았을때 저는 단 1원도 더 부요해지지 않았습니다. 구원이 저의 은행계좌와 관련해서는 단 1원도 부자로 만들어주지 않는것입니다.
또한 구원이 저를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관련해서는 저는 이 세상의 가장 부요한 사람보다도 부요해진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매우 건강하지 않은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가나안 입니다.
저는 이것을 특별히 2017년도에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대는 번영을 약속하는 복음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되는것을 약속하는 복음이 있습니다. 건강을 약속하는 복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직장에서 승진을 약속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복음이 아닙니다.
참으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은 우리가 고난을 받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기쁨이 있는것입니다.
이와같이 애굽이 있고 가나안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나안에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복을 우리는 왜 누리지 못할까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지역의 사이에서 방황했던 것처럼 우리가 그러고 있기 떄문입니다.
그들 중의 다수가 그곳에서 방황하다 죽었으며 오직 여호수아와 갈랩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이 광야라는 것은 그들이 계속해서 원망했던 곳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부분의 시간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데 사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이 구원을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여러분의 구원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애굽과 광야 사이에, 광야와 가나안 사이에는 건너가는 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홍해이고 하나는 요단강이었습니다. 이 두개의 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힘으로 건너갈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죽음을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14장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분명히 도우신 것을 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또한 요단강을 하나님께서는 건너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셔서 여러분과 저를 축복으로 들어가게 하십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으로 우리가 그 축복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홍해에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보게 됩니다. 홍해를 통해서 내가 무엇과 구별되었는지, 그것은 세상을 상징하는 홍해로부터 구별된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통해서 나는 무엇으로 구별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축복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그림을 전체적으로 마음속에 두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이러한 질문을 해보십시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애굽에 있다면 여러분은 구속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죽으셨다는것을 믿어야 합니다.
혹시 내가 광야에서 하나님께 원망하고 있으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요단강과 관련된 진리를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분의 축복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16장을 보게 될때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해서 그들은 교훈을 받게 됩니다. 얼마나 많이 우리가 원망하는것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십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는것을 보게될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고 내버려 두시는것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제시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만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형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먹었던 고기를 원했습니다. 고기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좋은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유일한 해답은 오직 그리스도임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될때 어려움을 직면하면 때때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문제들을 겪게 될때 술에 의존해서 그 문제를 넘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들의 문제를 영화 감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 가운데서 벗어나서 만들어 낸 가상의 세계에서 위로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결국은 행복과 참된 만족으로 우리를 데려다주지 않습니다. 특별히 젊은 분들께서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 술을 마시고자 하는 유혹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것 없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어려움을 잊을수 없다고 생각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애굽에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매일같이 하나님의 만나를 거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디서 만나를 거둘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얻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 많이 모이신것을 볼 때 제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 만나는 40년동안 계속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공급이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놀라운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이렇게 행하셨습니까?
요한복음 2장에서는 이 기적들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고기로만 우리를 채우고 있다면,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놓치게 될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만나를 거두었습니까? 우리는 매일 그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때 만나는 더이상 내리지 않게 됩니다. 또한 구름기둥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그들은 언약궤를 통해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만나 대신 가나안에서 난 곡식을 먹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새로운 것들은 그리스도를 또한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이시고 나중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공부하게 될때 참으로 놀라운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이사야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기전의 영광을 보고, 높이 들리신 그 영광을 기록한 것을 봅니다.
그 영광이 온 땅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셨을때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주님의 영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또한 그분의 죽음에서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영광을 모든것 가운데서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시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출애굽기 16장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시기 전에 먼저 구름속에서 영광을 보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구름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얻기 전에 그분의 임재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또한 출애굽기 24장에서 모세는 산에서 다른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은 불 붙는것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오게 될때, 그것이 얼마나 엄숙한것임을 상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성이 있는 임재 가운데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영광의 광채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 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성막의 본을 보여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25장부터 그 본이 가르쳐지는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거하시는것이 그 분의 뜻임을 보게 됩니다.
성막이라는 단어가 요한복음 1장에서 사용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이 거하시다라는 것이 '장막을 치다'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운것은 이 차트에 나와있는 성막을 보게 될때, 그림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맨 처음 본으로 그 식양을 말씀해주신것이 언약궤라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 성막에 대해서 말해준다면 저는 바깥쪽 뜰부터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이곳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임재가 있는 언약궤서부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궤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부터 시작하여 바깥쪽으로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성막이 다른 모든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성막에 대해서 보게될때도 마찬가지로 3이라는 숫자가 중요하게 사용되는것을 보게됩니다.
성막과 관련된 세개의 요소가 있습니다. 바깥쪽 뜰이 있고 성소가 있으며 지성소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뜰에 세가지 것이 있습니다. 거기 번제단이 있습니다. 물두멍이 있습니다. 세번째로 성막 자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막 안에 들어오게 될때 세가지가 있습니다. 왼쪽에 등대가 있습니다. 오른쪽에 진설병 상이 있습니다. 가운데 금향단이 있습니다.
또한 지성소 안으로 들어오면 거기에 세가지가 있습니다.
거기에 언약궤가 있으며 그 언약궤 위에 금테가 둘려져 있습니다. 세번째로 시은좌(속죄소;mercy seat)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는것이 아니라 언약궤안을 보게 될때 거기에 세가지가 또 있습니다. 거기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기록된 돌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막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놀라운 희생제사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시한번 복음서를 살펴볼때 이 3이란 숫자와 관련된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게 될 때 세개의 십자가가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머리위에 걸린 패는 세가지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시간동안 여러분과 저의 죄를 담당하시는 암흑의 세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분은 삼일만에 죽음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놀랍고 정밀하게 기록되었는지를 볼수 있습니다.
저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말하도록 마음이 감동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이것은 또한 여러분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날에는 그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손으로 짖지아니 한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거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가운데에 거하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엡3:21, 개역한글)
그리고 그분의 백성들이 모이는 이 지역교회 가운데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분은 그것을 볼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머리를 가리우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남자는 마땅히 그 머리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나햐면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나와있는 영광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여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사도바울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행할때 우리는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 지역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것들이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문화도 아니고 영국의 문화도 아닙니다. 이것은 창조와 관련된 진리입니다.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계획된 내용인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자매님들에게 이 말씀들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그 너울을 쓰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여러분들의 순종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마치면서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몇가지 상징물에 대해서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한가지 것에 대해서 이미 읽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28장에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처음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아름다움 없이 제시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단어가 사용된것을 사용된 곳을 보게될 때 다른 어떠한 것이 사용된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시편이 영광과 또한 질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빌립보서에서는 영광과 찬송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5장에서는 영광과 주권에 대해서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영광과 찬송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8장에서의 영광은 대제사장의 옷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옷에 대해서 말할때에 인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출애굽기 28장 2절에서는 그 아름다운 거룩한 옷을 만들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때 그분의 아름다운 옷같은것을 생각합니다.
이사야는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찬송가 작가가 기록한 것처럼 그분의 영광을 생각할때 그분의 아름다운 인성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그분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진 경험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구원받은 날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지 여러분이 그분의 옷 가장자리만을 만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변화산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옷을 또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 없는 분임을 그분의 옷에서 보게 됩니다.
또한 그분을 모세의 영광과 비교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3장에서는 바로 이분이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얻을만한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결국 어떻게 끝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막을 가득 채운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을 시편 29편에 있는 말씀으로 끝내고자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시29:2, 개역한글)
참으로 그분에게 경배드릴때에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영광을 찬양드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우리가 출애굽기에 기록된 구속의 노래를 그분께 계속해서 돌려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말씀을 매일 거둘때에 그분을 새롭게 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역교회로 모일때에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들을 소중하게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될때에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그분의 영광을 더욱 놀랍게 찬양할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