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조나단 블락 형제님

첫번째 폭풍우 : 요나

박이레 2025. 6. 28. 14:41

< 첫번째 폭풍우 : 요나 > 조나단 블랙 형제님

안녕하세요. 이곳에 방문하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 성도님들의 따뜻한 환대에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선지자 '요나'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나서 1장 1절부터 10절까지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욘 1:1-10).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욘 1:13).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욘 1:15-17).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1-4).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욘 2:9-10).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욘 3:1-5).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 4:1-11).

마태복음 12장입니다. 38절부터 41절까지 말씀입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마 12:38-41).

예, 이 제주에서 3일 동안 성경에서 나타내는 '폭풍우'와 관련된 부분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여기 제주에 사시는 분들은 얼마나 이 바다가 쉽게 변화되는지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저희들은 '페리호'를 타고 들어왔는데요. 아주 바다가 잔잔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을 바다와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자주 변화합니까? 얼마나 이 폭풍우는 자주 우리에게 다가옵니까? 참으로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구원해 주실 때 우리의 인생이 늘 잔잔한 바다와 같겠다고 약속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때때로는 폭풍우 속에 있는 것 같을 때가 있고, 폭풍우에서 나왔을 때 같을 때가 있고, 참으로 폭풍우가 저 앞에 다가오는 것처럼 있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아마도 이 잔잔한 때를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이 잔잔하고 평화롭다면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우리 중 어떤 많은 성도님들이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이제 '세 가지의 다른 폭풍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 오늘 요나에서는 이 폭풍우와 또한 그 ‘폭풍우의 원인이 되었던 요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참으로 여기에서 많은 교훈을 저희들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불필요하게 우리의 인생 가운데 폭풍우를 일으킵니다. 이 요나야서에 나타난 이 폭풍우는 그가 피할 수 있었던 폭풍우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이 이 폭풍우와 같은 것들을 경험합니다.
두 번째에서는, 내일 이 시간에서는 이제 그 폭풍우의 속으로 들어갔던 한 사람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바울의 배가 이제 폭풍우 속으로' 들어갔고 그 배가 망가집니다. 그러나 그 폭풍우는 바울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 번째 시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폭풍우'를 살펴볼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그들의 그분의 제자들을 그 폭풍 속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참으로 그곳에서 믿음에 관해서 저희들이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이 요나에 대해서 살펴볼 때, 이 각각 4개의 장에서 각각의 교훈들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여기 1장에서는 이제 요나가 그 폭풍우 한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그가 어떻게 해서 이 폭풍을 일으켰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장에서는 이제 그가 폭풍우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제 그가 어떻게 해서 기도를 하게 되었는지, 이제 3장에서는 그가 어떻게 폭풍으로부터 나왔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전도했는지, 말씀을 전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4장에서는 이 폭풍우가 요나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문제점들을 또한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그 하나님께서 또 다른 폭풍우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서에서 하나의 폭풍, 하나의 큰 물고기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또 다른 바람을 불러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고기를 예배하셨고, 하나님께서는 또한 벌레를 예비하셨습니다. 참으로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바다의 생물들과 땅의 생물들을 만드신 분이라는, 창조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폭풍과 관련된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분이신지를 저희가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폭풍우 속에서 요나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1장에서는 요나가 그 폭풍우 안에 있습니다. 1장 1절에서 3절까지를 보면 요나가 도망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여호와의 낮을 피하여 도망합니다. 여기에 보면 이제 그 폭풍우가 멈추게 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니느웨에 가서 이제 ‘전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을 '불순종'합니다. 이것이 요나의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입니다. 두 번째의 문제는 그가 '여호와의 낮을 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제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1절부터 3절까지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에 관한,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관한 아주 중요한 교리를 교훈을 받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순간 큰 위험에 직면하며 그 폭풍우를 직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다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것이 됩니다. 참으로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즐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번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그가 하나님의 뜻과 반대 방향으로 갔을까?'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동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서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욥바라는 곳으로 내려갑니다. 그가 욥바로 가게 된 것은 배를 타기 위해서 그 해안가로 간 것입니다. 아마도 그 배는 멀리 스페인으로 가는 배였을 것입니다. 이제 요나는 그 선가를 지불합니다. 오늘 저희들은 그 페리호를 타기 위해서 배 값을 치렀습니다. 티켓을 샀습니다. 그건 편도행 티켓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요나도 편도 티켓을 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돌아오는 표를 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는 배를 타기 위해서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물고기를 만나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다 사랑하십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곳에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분명히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를 들어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떡을 떼면서 주님을 기억해야 하냐고 하나님께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주님의 뜻입니다. 또 내가 결혼할 때 "주님 제가 이 모임 가운데 있는 믿는 자와 결혼해야 합니까?"라고 물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빛과 어둠은 서로 상관할 수가 없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두 개가 다른 것이 어떻게 합쳐질 수 있는가?" 이 요나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자기가 동쪽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불순종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그로 하여금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때때로 이해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폭풍우를 주실 때, 우리가 지금 어떤 게 잘못되어 있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요나는 배 값을 치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배의 여행을 통해서 더 큰 대가를 지금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저는 이 시간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 가운데 많은 성도님들께서 내가 과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지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요나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제 욥바에 있습니다. 때때로 어떤 분들이 ‘아,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원하고, 타고자 하는 배를 만나게 됐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의 배를 딱 만났을 때, '아 이건 하나님께서 이 길을 원하시는 길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요나는 이 배 값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하나님의 자기가 돈을 갖고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 가운데 여러 가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 직장 가운데에서 누가 승진을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더 큰 월급을 주고, 아, 이렇게 나에게 좋은 직업이 주어졌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들을 저희들이 살펴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혹시라도 내가 큰 월급을 받고 그 일을 하게 됐을 때, 여러분들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대치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문제를 혹시 만나게 된다면 그것을 급하게 결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그 문제에 대해서, 선택의 상황에 대해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요나서 2장에서는 그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1장에서 했던 그 여행에 대해서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다시스로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제게 배를 탈 수 있는 돈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테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평안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를 즐겨하는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는 1절에서 3절까지 이제 바다를 향하여 가는 요나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4절부터 16절까지는 이제 그가 폭풍우 안에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밑에 배에서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5절에서 보면 그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서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저희들이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요나에게 있어서 슬픈 것은 그가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지금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배 안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 폭풍우 속에서 지금 각자의 신을 따라서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큰 폭풍우가 어떤 것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할 때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이제 엮이는 문제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믿지 않는 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는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그들은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요나를 깨우게 됩니다.
13절에 보면 그들은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주 파도가 심하고 물이 막 배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있는 성도님들께서는 성경 안에서 이제 '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물이 ‘잔잔한 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그것은 대체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물이 흐르고 있다면’, 흐르는 물이라면 그것은 ‘성령님’을 보통 상징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 ‘물이 막 요동치고 있다면’ 그 물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제 요나는 그 폭풍우 속에서 한 가지 해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나 자신을 들어서 배 밖으로 던지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성경의 요나의 다른 부분을 봤을 때 요나에게 있는 문제를 또한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요나서 4장을 보면 요나는 하나님께 자기의 목숨을 취해 달라고 자꾸 요구합니다. 요나는 자기가 배 밖으로 던져지면 죽는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이 폭풍우에 우리가 잡혔을 때, 그러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이 결코 아닙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그 폭풍우를 통과해 나가기를 우리에게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걸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참으로 그 폭풍을 통과하는 가운데 저희들이 더욱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위대한 선지자인 모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 일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그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이 너무나 힘듭니다." 모세는 그때 "하나님 저의 목숨을 취하십시요."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늘로 올라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폭풍이 다 끝난 다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를 그 폭풍 속을 통과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가운데 어떤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내게 그와 같은 큰 폭풍 같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 들어가면 이거보다 나을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그 해답이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향한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제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로마서 8장을 보면 우리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결코 떼어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떠한 것도 우리를 대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가 요나서를 통해 얻는 교훈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요나는 배 밖으로 던져졌습니다. 이건 참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까?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그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삼일 삼야를 배안에 있게 됩니다. 요나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을 원하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서 저희가 하나님에 대해서 두 가지 교훈을 받게 됩니다.
첫 번째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실패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제 요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다른 하나님 뜻과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나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그 실패한 요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줍니다. 저는 그와 같은 것에 대해서 참으로 기쁜 마음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 모두는 이제 하나님과 잘못된 방향으로 하나님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저희들 모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래서 요나에 대해서 너무 비판적으로만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두 번째 교훈은 참으로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는구나’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요나는 매우 교만한,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요나는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 요나의 중요한 공적 중에 하나는 해안 쪽에 있는 이스라엘의 성들을 지킨 것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이 요나에 대해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갑자기 요나에게 그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아수르는 북이스라엘의 평화를 아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중동 지역의 아주 최강대국이 앗수르였습니다. 이제 산헤립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 앗수르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런던에 있는 역사 박물관에 가보게 되면 어떤 돌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성경에 기록된 그 역사가 진실이라는 것을 그 유물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그 앗수르를 바라볼 때, 참으로 저 앗수르라고 하는 나라는 복음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앗수르의 복음을 전하기 싫었고, 이제 반대 방향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있는 그 놀라운 교훈을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러나 이 요나는 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하나님의 뜻을 온 세상에 전해야 되는 나라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온 세계에 하나님을 전해야 된다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것을 순종해야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두 가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은 요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제 2장에서는 그 폭풍우가 요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이제 1장에서는 요나가 자기의 선가를 지불합니다. 그러나 2장에서는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참으로 저희들은 분명하게 이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 폭풍우가 발생했을 때 저희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 있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경험할 때마다 참으로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더욱 아주 진지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요나의 기도를 통해서 저희들이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 기도의 깊이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지금 요나를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지금 요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아주 깊숙한 곳에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지금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배의 선원들은 이제 요나를 다 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요나를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듣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그와 같은 폭풍우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많은 파도가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다고" 5절에서 요나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가 말하는 것을 지금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가지 어려움들은 개인적인 것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이 좀 곤란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 계시는 젊은 성도들 가운데 어떠한 도덕적인 문제로 씨름하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고민하는 분이 또한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 가운데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듣고 계십니다. 참으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통과하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그렇게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고 계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주님께 기도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망적인 가운데 주님께서 빨리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4일 후에야 도착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께서 아주 때에 맞춰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 이곳에 빨리 오셨더라면 우리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그 폭풍우를 통과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나사로가 아픈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여러분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하나님은 때때로 그 응답을 늦추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들을 보고 계시며 여러분들을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로 그의 기도에 그가 '어디를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제 7절에서 보면 이 요나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서쪽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는 동쪽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올바른 방향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지금 그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는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그 요나가 어떻게 이와 같은 것들을 알게 되었을까요? 그가 젊었을 때에, 어렸을 때 이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올바른 방향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는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는 우리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늦게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때때로 여기 젊은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계획은 너무 크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제 매일 매일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오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내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으시고 그 뜻을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그가 올바른 방향으로 기도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그의 기도를 통해서 그가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살펴보게 보겠습니다. 2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령하십니다. 요나는 육지로 나오게 됩니다. 1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요나는 이제 바다를 향해 갔지만 하나님은 그를 육지로 다시 돌이킨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를 이와 같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기도에 대해서 응답하고 계십니다. 약 2주 전에 저는 이제 집에 있었는데요. 제가 어떤 집에 있었는데, 거기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어떤 성도가 계시는 집이었습니다. 거기에 어떤 딸이 있었습니다. 그 집의 소유물이 이제 그 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는 아주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책상 위에는 성경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성경책 옆에는 큰 아주 폴더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아주 가득 무엇인가가 차 있었습니다. 그 폴더를 조나단 형제님께서 열어보셨는데, 거기 안에는 기도 제목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참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 형제님이 이 땅에 남겨놓으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페이지를 넘겨서 볼 때마다, 그 어떤 한 페이지 밑에 조나단 형제님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 형제님은 조나단 형제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만일 오늘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면,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기도 제목을 남길 수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여기에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그와 같은 기도 제목을 나열하고 적어가는 것은 아주 좋은 ‘주님 안에서의 훈련’이 됩니다. 각각 매일매일 다른 제목의 기도 제목들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와 같은 기도 리스트를 쓰는 것 중에 좋은 점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어떤 사람은 10년간 그 기도가 적혀질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을 위해서 또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구원받았다면, 여러분들이 그 이름을 발견했다면, 참으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요나의 기도에 대해서 매우 빨리 응답하셨습니다. 때때로 1년 전의 기도를 또한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 요나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3일 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폭풍우가 요나에게 끼친 영향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3장에서는 그가 폭풍우에서 나와서 어떻게 행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니느웨로 가는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서 전도하기 위해서 니느웨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3장에서 살펴보는 아주 흥미로운 것은 요나가 전도했을 때 그 백성들이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누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니느웨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요나를 믿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2장 9절에서 말씀에 보면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잘못된 개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전도하는 사람이,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무언가 잘해서 사람들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구원시키라고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한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 도시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니느웨에서의 그 결과는 아주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백성들이,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였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부흥'이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요. 니느웨가 부흥한 것입니다. 때때로 저희들이 이제 복음을 전하면서 기대하게 되는 것은 한 두 영혼이라도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제 그 씨앗을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복음을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믿지 않았을 때, '아, 뭔가 내게 잘못된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결과가 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뿌리고 다른 사람들이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변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온 세상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안다면 참으로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요즘은 복음 전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저는 런던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교회당에 왔는데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곳에서 약 14년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아주 적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반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복음을 전할 책임이 바뀌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참으로 다른 사람들이 변화하든, 변하지 않든, 우리는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참 많은 도시들이 한국에 있습니다. 이 니느웨와 같은 곳도 있을 것입니다. 그 도시 가운데 이제 복음을 들을 만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그곳에 보내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다메섹으로 가는 바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일어나서 저 도시로 들어가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와 같은 것을 명하셨다면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반응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폭풍우를 통해서 요나는 순종하는 법을 이와 같이 배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마지막 4장을 보게 되면, 저희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방향의 결론으로 이릅니다. 우리는 3장에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서 요나가 정말 엄청나게 기뻐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여기에 제주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부흥을 일으키신다면 여러분들은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4장 1절은 매우 충격적인 단어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많은 성도님들이 이 요나서를 공부하면서 4장 1절에서 왜 요나가 이와 같이 화가 났는지를 질문을 합니다.
이제 그다음 절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나는 자기 마음속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요나는 하나님은 참으로 ‘인애가 크신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은혜가 크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거기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교훈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로 하여금 순종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을 이제 요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 요나가 하는 말들을 보면 '나', '나를 위하여', '나를' 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그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그러한 사랑하는 마음을 요나는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단지 그냥 전하고만 싶었습니다. 그것이 그것을 자기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이 4장을 통해서 하나님은 요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드러내시고 계십니다. 참으로 그가 싫어하고 노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운 다른 교훈을 줍니다. 때때로 저희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요. 여러분들 가운데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하여 노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생애에 하시는 일들에 대해서 그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데, 왜 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가?’에 대해서 화가 날 수가 있습니다. '그는 저렇게 축복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데, 왜 나를 이렇게 하실까?'라고 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에 대해서 화를 낸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의문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그와 같은 사랑으로 요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편애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요나는 자기의 마음을 변화시켜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요나는 성 밖으로 나가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집을 그가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한 식물을 예비하셨습니다. 요나로 하여금 그 태양을 가려주는 한 식물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그때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요나는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와 같이 요나는 아주 빨리빨리 변덕스러운 사람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화를 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언가를 해주셨을 때 또한 그는 금방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은 또한 한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벌레가 그 박넝쿨을 다 씹어버렸습니다. 이제 요나의 머리에 뜨거운 햇빛이 비추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동풍이 요나를 향하여 불었습니다. 요나는 이제 또 다른 폭풍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요나입니다. 그는 죽어버리면 나에게 있는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또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다시 한 번 화를 냅니다. 왜냐하면 이 벌레가 자기를 보호해 주는 것을 다 갉아먹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교훈을 나타내십니다. "너는 저 니느웨 사람들보다 그 박넝쿨을 더 사랑하는구나. 너는 저 니느웨 사람들보다 이 박넝쿨을 향하여 더 마음이 있구나. 참으로 이 니느웨에 사는 12만 명의 영혼이 얼마나 더 중요하냐? 그런데 너는 이 식물을 아끼고 있구나."
참으로 요나 안에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요나는 자기에 대해서, 지금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도 자기를 더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요나는 아주 아픈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폭풍 속으로 통과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다루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이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던 내 안에 있는 문제들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에게 있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 요나가 변덕스럽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주 작은 것들을 너무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작은 것은 귀하게 여기면서, 멸망해 가는 그 영혼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조그마한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 있는 많은 필요에 대해서는 다 잊는 것입니다.

이제 마치면서 이 요나서에 있는 주님에 관한 교훈을 마지막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가 주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여기에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 계십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요나를 들어서 자신의 모습을 이제 교훈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아까 그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요나의 이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요나의 이적은 ‘주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와 같은 것에 대해서 의문을 표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불순종한 사람이 완전한 삶을 사셨던, 흠 없는 주님을 예표하는가?' 그러나 요나의 그 불순종한 삶이 그 이적이 아닌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을 위한 무덤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해서 물고기를 예비하신 것처럼, 주님을 위해서는 무덤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무서운 파도가 요나의 머리를 덮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사망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제 3일 밤낮을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습니다. 그다음에 그가 토해내져서 육지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 오시기 1800년 전에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부활에 관한 이러한 놀라운 그림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요나가 3일 밤낮을 있었던 것처럼 주님도 3일 밤낮을 있어야 된다고 얘기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는 금요일날 죽으시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에 있어서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만일 주님께서 3일 밤낮을 그대로 있었다고 하면, 그러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네 번째 날에 부활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셋째 날'에 부활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약간 문제가 생깁니다. 이제 '이 3일 밤낮'은 ‘유대인의 개념’으로 저희들이 이해해야 합니다. '하루의 일부분만 들어가도 그게 하루인 것'입니다. 제가 믿기로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그 아름다운 그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은 주님 때처럼 더 많은 이적들을 요구합니다. 어떤 불신자들은 "내가 내 눈으로 직접 주님을 봐야 그때서야 믿겠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또 다른 이적들을 또한 요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복음의 근본은 주님의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이적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강력한 능력의 표시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직면하셨던 그 폭풍우 같은 폭풍우가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있으실 때 폭풍우를 경험하십니다. 그 폭풍우는 주님께서 예상치 못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그 폭풍우를 주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십자가에 달려서 그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가셨을 때,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신 곳으로 주님은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사야서에 말하는 그 온전한 종이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 주님은 그 예루살렘을 향하여 똑바로 바라보면서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다다르셨을 때에, 그 폭풍우의 어두운 구름이 둘러쌌습니다. 이제 주님은 주님 자신을 십자가에서 폭풍우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악한 것들의 폭풍들이 또한 둘러쌌습니다. 또한 모든 세상이 주님을 향하여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제 온 세상에 어두움이 임한 것입니다. 참으로 그 폭풍우 한가운데 주님 홀로 남겨진 것입니다. 이제 그 폭풍우의 한가운데서 주님께서 이와 같이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제 그 폭풍우는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가 주님께로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폭풍우를 주님께서 통과하셨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어둠이 거쳤습니다. 모든 구름이 거쳤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 생명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은 그 폭풍우를 이기신 것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그 구름을 통과하여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또 다른 폭풍이 이 세상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폭풍’입니다. 그러나 그 폭풍우를 우리는 결코 경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의 마음이 참으로 기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폭풍우를 경험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실수로 인한 폭풍이라 할지라도, 또한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오는 폭풍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우리는 히브리서 6장에서 그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의 닻’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우리의 닻은 하늘에 견고하게 내려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래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요나를 통해서 많은 교훈을 배웠습니다. 참으로 그가 그 폭풍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참으로 그 폭풍우가 어떻게 그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였는지, 참으로 그가 어떤 잘못된 마음으로 또한 전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또 다른 기회를, 두 번째 기회를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