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5. 5. 28. 21:14

성경읽기 : 창세기 18장 1-8절(요약)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창18:1-8,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18장에서는 세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고, 기 이후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것을 말씀해주시는 것이 초반부에 있습니다.
초반부는 1-8절까지, 9-15절까지 나눠볼수 있을거 같습니다.
먼저 1-8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8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아브라함에게 방문하십니다. 18장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소돔으로 보내진 두 천사였을 것이고 한 사람이 성육신 하시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절에 보면 이 세 사람이 뭔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보인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세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즉시로 달려나가 몸을 땅에 굽힙니다. 그가 얼마나 말씀 중에 있으며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원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창18:3, 개역한글)

아브라함은 세 사람에게 그늘 아래 쉬기를 간구하고 장막으로 달려가서 사라와 하인에게 급히 요리하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극진한 접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그들이 식사 할 때에도 식사 중에 그들 곁에 서 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접대의 가치를 배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성도간에 접대를 합니다. 성도간의 접대는 또한 주님께 한것과 같다는 것을 8절까지 배우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도 1-8절까지 아브라함의 접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특별히 접대를 잘 하시는 은사를 받으신 분들이 계십니다.
조카 롯은 소돔 성문에 날이 저물때에 앉아 있었고 아브람은 오정 더울때에 장막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서 맞은편의 세 사람을 보았습니다. 12장에도, 그리고 22장에서 하나님께서 모리아산에서 번제를 드리라 하셨을때 삼일길을 가서 '눈을 들어' 그곳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살펴보았을때 뿔이 수풀에 걸린 수양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먼곳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이 섰을 때에 아브라함은 달려가고, 급히 장막에 들어갔고, 하인에게 주었고, 그가 급히 요리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매우 바빴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이고요. 많은 하인이 있었지만 그는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김은 누구를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해야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2절에 "몸을 땅에 굽혀"라는 것이 예배에 대한 첫 언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절에 또 제가 교훈받는 것은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라고 말합니다. 롯도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마누아도 기다려 달라고 했었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주님인줄 모르고 같이 식사하러 들어가자고 하십니다.
이를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이 인색함이나 억지로 섬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자원함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교훈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말들을 볼 때에 저는 주님이 많이 기억됩니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싱들의 발을 씻으시고"(4절)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나무아래 쉬소서"(4절) 주님께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섬김에는 사라도 동참하고, 하인도 기름진 송아지를 요리하는데 참여합니다. 한 사람이 많은 가족들과 권속들이 주님을 섬기는데 함께 동참하게 합니다. 이러한 것이 저희 가정에서 있어야 할 좋은 그림의 모습인것 같습니다. 가장으로서 아브라함의 모습이 좋은 모습으로 비춰지는것 같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이 사람 셋은 이 땅에 오시기 전의 주님의 모습이며 나머지 둘은 천사임을 앞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라는 것은 장소적으로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진 뒤에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입니다. 그리고 롯을 구출하기 전에도(14장) 그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거하라고 하신 곳에 거하고 있습니다. '마므레'라는 것은 살찐것, 힘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이곳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것으로 살찌우고 힘을 기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정은 한낮이고 매우 더운 때입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17장에서의 하나님과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다고 교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99세이지만 그는 직접 서서 서빙을 하고요. 또 그는 짐승 떼에 달려가고, 하인이 요리한 요리를 직접 진설합니다. 그는 직접 접대합니다. 디모데서에서 장로의 조건이 접대를 잘하는 것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하는 접대가 세상 기관의 접대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저희가 성도에게 하는 접대는 잘 해야 하는 것이고 이에 대해서 주님께서 영적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잘 접대하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돈을 청지기로써 잘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서서 접대해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접대한 양을 보면 어마어마합니다. 고운가루 세스아는 수십명이 먹어도 될 양입니다. 이처럼 충분하게 접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접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오정 즈음은 가장 더운 때이기 때문에 발을 씻고 그늘에서 쉬게한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해야 할 때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5절에서 떡을 조금 가져오겠다고 합니다. 그는 매우 겸손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진설한 요리들은 매우 고급지고, 양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직접 서서 서빙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마므레 상수리 수풀은 13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단을 쌓은 곳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린 곳입니다. 그리고 "나타나시니라" 이는 히브리어로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또한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장막에 여전히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그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 셋"은 원어적으로 남성형 복수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장에서 두명이 천사라고 나와 있기 때문에 한명은 주님이시고, 두명은 천사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맞은편"은 원어적으로, 아브라함의 시야 맞은편에 서 있었고, 아브라함과 직접 대면하였다는 뜻으로 볼수 있습니다.

또 3절에서 "주여"라고 되어 있는데요. 원어로는 '아도나이'입니다. 이때 사용된 뜻은 '주인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롯도 19장에서 아도나이를 사용하는데요, 읽기는 똑같이 아도나이라고 읽지만 원어의 한글자, 모음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사용의 용례로는 '주인들'이라고 사람들을 부르는 정중한 호칭입니다.
아브라함은 또 "내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보내려고 하지 않는 경배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4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경배자로써 주님께 직접적인 섬김을 합니다. 그는 준비된 모습으로 섬깁니다. 또 나무 아래서 쉬소서, 라고 할 때에 나무 아래는 휴식과 보호가 있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5절에 또 떡을 조금 가져오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후에 보면 아브라함이 준비하는 양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드릴 것에서 최고의 것을 드리고 겸손합니다.
"종에게 오셨음이니다"(5절) 주님의 오심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또한 말해줍니다.
또 6절에 고운 가루는 소제의 재료로 쓰이는 단어와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7절에 달려가서, 취하여, 그가 급히, 라는 단어들이 계속 사용되는데, 이는 완료형 시제입니다. 그가 이러한 일들을 연속적으로 행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준비한 음식들을 그들이 먹습니다. 아브라함의 접대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을 말씀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8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시기 전에 영적인 몸으로 오신 장면입니다. 그리고 천사 둘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주님을 보고 "내 주여"라고 하는데, 그 원어가 아도나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17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자기집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긴 시간이 흐르지 않은 때에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17장의 말씀을 하신 후, 18장에서도 아직 사라가 임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오신데에는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에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좋게 여기시고 다시한번 나타나셔서 재차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극진한 접대의 섬김을 보게 됩니다. 형제님들이 앞서 교제해주셨습니다. 신약에서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10:42, 개역한글)

이는 섬김의 부요함에 의미가 있는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그 섬김의 자세를 주님께서 보심을 깨닫게 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형제님께서 교제해 주신것을 가지고 몇가지만 교제해보겠습니다.
세분 중의 한명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계세요.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 앞에 나타나시면 안되기에, 성육신 하시기 전의 주님이시라고 표현하시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없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자녀를 출산할수 있느냐라고 볼 때에, 14절의 말씀을 하실때에 사라가 아이를 가질수 있는 몸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아직 사라는 믿음이 올라오지 않은 상태잖아요. 그래서 그 믿음을 끌어올려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도 있고요.
그리고 여기 창세기 18장에서 주님께서 음식을 드시는 것이 구약에서 유일하게 성경에서 기록된 장면이라고 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이 세분이 잡수신 것을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연 영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식사를 하실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을 입으신 주님께서 당연히 식사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시고 새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생선과 떡을 먹으셨기에 당연히 여기서도 잡수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접대를 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받으셔서 식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지난주에 아브라함이 엎드려서 웃은것에 대해서 한주동안 계속 생각이 나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웃었다는 표현은, 18장에 사라가 웃었다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쁨으로 웃은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왜 웃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약속을 받은 것은 12장입니다. 13장에서 또 땅을 동서남북으로 바라보고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계속해서 약속해 주십니다. 15장에서 또 두려움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보호를 약속하셨을때에 아브라함이 자기가 무자함을 말합니다. 그는 상속자를 말합니다. 그때 하나님게서 '네 몸에서' 상속자가 날 것을 말씀합니다. 17장 사라에게서 날것을 말씀하시기 전에 계속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7장 16절에서야 비로소 사라의 몸에서 약속된 아들이 날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인간의 생각으로 "네 씨"라는 범위로 자연스럽게 이스마엘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20절에 하신 말씀이 아브라함의 말에 대한 대답이고, 21절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17장 1절 말씀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22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떠나 올라가신 이후에 아브라함은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자기도 할례를 받습니다. 그래서 18장에 하나님께서 빠르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으로 보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형제님께서 근거로 보시는 것이 17장, 18장의 웃음의 단어가 같은 단어이기에 그렇게 분별하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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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의 내용들은 저번주에 17장 17절의 아브라함의 웃음에 대해서 교제된 내용들을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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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원 형제님 : 이 웃었다는 표현이 긍정적으로 웃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아브라함의 웃음과 사라의 웃음이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몸에서 아들이 날 것을 이전에 들은적이 없으므로 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웃은 것이고, 사라는 자기의 몸에서 아들이 날 것을 이미 들은 상태에서 웃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왜 사라가 웃느냐, 하고 사라의 불신앙을 지적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