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제사 : 속죄제
< 다섯제사 : 속죄제 > 크랙 먼로 형제님
예배 가운데서 함께 기쁨을 드려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했습니다. 레위기 4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속죄제입니다. 4장 1절부터 12절까지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찌니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또 그 속죄 제물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취할찌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화목제 희생의 소에게서 취함 같이 할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사를찌니라"(레 4:1-12).
13절도 읽겠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레 4:13).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레 4:22).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레 4:27).
히브리서 10장입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1-14).
하나님께서 이 말씀에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제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속죄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는 것을 매우 명백합니다. 지금 방금 히브리서 10장을 읽었는데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희생은 영원한 우리의 깨끗함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1장 4절은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침례 요한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완벽한 속죄제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안에 있으면 죄가 없다라고 이렇게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도 못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님께서는 속죄제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이렇게 속죄죄에 관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속해졌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영원히 우리를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은 지금 오늘 현재 그리스도인의 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우리가 죄를 저질렀을 때요. 그렇지만 우리가 죄를 저지른다 해도 하나님 우리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우리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님과 연합돼 있는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주님과의 교제가 흔들리게 됩니다. 만약에 제 아들들이 집에서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그러면 방에서 나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아들입니다. 여전히, 영원히 내 아들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들로서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이 영향받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하였을 때 우리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그렇지만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영향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요,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범하면 자백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실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2장 1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저지를찌라도 그러나 하나님 앞에 우리의 대언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백한다면 우리의 교제는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레위기 4장은요. 이 4장은 사람들이 죄를 저질렀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번제하고는 다릅니다. 그 번제는 번제단 위에서 모든 것이 불살라집니다. 그렇지만 속죄제는 부분적으로만 불살라진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번제는요, 우리 주님과 그 하나님의 관계가 영향받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번제는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그 요구를 완벽히 충족하신 것이고요. 그렇지만 속죄제는 사람의 문제점을 충족하시는 그런 것입니다.
번제 앞에서 우리는요, 예배자입니다. 그렇지만 속죄제 앞에서는 우리는 죄인인 것입니다. 그 번제 앞에서는요 우리는요, 아주 매우 귀중한 것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속죄제 앞에서는 우리는 이 죄가 얼마나 혐오스러운 것인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번제는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속죄제는 용서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번제와 그 속죄제가 여러 면에서 다르다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레위기 4장에서 처음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그 '그릇'이라고 그 2절에 이제 우리 말로 번역이 돼 있는데요. 부지 중에, 모른 채, 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속죄제와 관련해서 특별히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인즉슨 '그릇'과 이제 함께 보게 되면, 죄를 지었을 때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을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법을 어겼던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요, 지금 저는요. 한국말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교통 신호도 무슨 말이 있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그게 법인데요. 제가 어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걸 알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모르고, 한국말 모르고 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죄제는 모른 채 범한 죄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건제는요, 좀 다릅니다. 속건제는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저지른 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속건제에도요. 모른 채 성물에 대해서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속건제의 마지막 부분에는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저지른 죄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속죄제는 오로지 모른 채 범한 죄를 다루고 있는 그런 제사입니다.
특별히 3절에서 첫 번째 누가 죄를 모른 채 범했는가?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지금 우리 말은 이렇게 번역이 돼 있어요. '만일'이라고 돼 있거든요. 그래서 형제님께서는 지금 영어로는 if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들 조금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이제 가정적으로 이런 상황을 한번 이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언자로 있다는 것처럼, 요한일서 2장 1절도 만일, 만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죄를 범한다면" 성령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약 그 죄를 범하는 것을 가정한다면"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지금 이러한 내용의 말씀이 또 있는 것입니다. 형제님 자매님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큰 이슈 중에 하나는요. 그 가장 큰 문제는 자백하지 않는 죄입니다. 만약에 자백하지 않고요, 우리 주님께 온다면 그렇다면은 영적인 차원에서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3절 이하에 그러한 여기는 "모른 채"라고 나오는 것에 대해서 지금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리고 이제 회복되는 것에 대해서 또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복은 어떻게 할까요, 라고 했을 때 제사장은 수송아지를 갖다가 제물로서 가지고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27절과 28절에 평민의 경우에는요. 그 암염소를 가지고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제사장과 평민은 똑같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제사장은요, 더 책임이 큽니다. 특별히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에 본디오 빌라도 앞에 서셨는데요. 그런데 그 본디오 빌라도에게 관계할 것이 없다라고, 너의 나라와 나의 나라는 관계할 것이 없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말씀대로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제사장처럼 이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은 어떻게 관계를 했을까요? 특별히 또 우리 주님께서는 늘 본디오 빌라도가 더 큰 죄를 지금 저지르고 있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또 그 당시에 가야바라든가, 대제사장,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 같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더 큰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본디오 빌라도가 왜 더 큰 책임이 있냐라고 했을 때,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디오 빌라도는 바로 우리 주인의 그 십자가에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본디오 빌라도는 아주 나쁜 죄인인 것입니다. 특별히 본디오 빌라도는 바로 로마 제국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야바는요, 그 대제사장은 바로 그 하나님 앞에서 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야바는 사실 본디오 빌라보다 더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사람보다 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속죄제는 제사장과 족장과 평민처럼, 다른 사람들의 다른 책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제사장이 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말라기서 2장 7절에 나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됩니다. 제사장처럼 모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실수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해야 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그 하나님의 기대만큼 죄에 대해서 민감해야 됩니다. 사실 지금 세상은 굉장히 오염되어 있습니다. 지금 스마트폰이 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정말로 유용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지금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 이 세상에 전체의 죄가 퍼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주의해서 지금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정결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사장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요? 3절입니다. 그 제사장은 지금 수송아지를 갖다가 속죄 제물로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이렇게 무지하면 사실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자백이 없다면, 고백이 없다면, 회복은 없는 것입니다.
이 수송아지에 안수를 하게 됩니다. 이 안수하게 되면 지금 자기가 범한 죄가 그 제물에게 이렇게 넘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피가 지금 흘려졌을 때 그 피를 어디에 지금 가지고 가는지를 봐야 됩니다. 세 군데로 지금 가지고 간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성소의 장에도 가지고 가고요. 그리고 금향단 뿔에도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번제단 앞 밑으로 가지고 가게 됩니다. 어떤 중요한 점이 있을까요? 제사장이 죄를 범하면 사실 회중 전체에게 영향을 주는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는요, 그 제사장이 죄를 범하게 되면 사실 회중의 예배에 영향을 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지금 성소의 장은 바로 하나님께로 가는 그 길입니다. 그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 성소로 들어가는 그 장은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금향단은 거룩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향기 나는 그러한 것입니다. 특별히 그 금 향단은 기도하고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 3절과 4절을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3-4).
그렇기 때문에 금 향단의 금 향단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기도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또 예배 경배와 연결되서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이 많은 제사장이 죄를 범하게 되면 그 성도, 회중들의 예배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범하면 우리와 같은 모임 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님들의 예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매우 심각하게 배워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 피를 가지고 장 앞에 그리고 금향단 앞에 이렇게 뿔에 바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 번째로는 번제단 밑에 쏟게 됩니다.
첫날 번제에 관해서 교제를 했습니다. 특별히 번제 때 그때 그 피를 번제단 주변에 이렇게 뿌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인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속죄제에서는 아예 변제단 밑에다가 그냥 쏟아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기초가 되는 근본적인 것임을 말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속죄, 용서의 가장 기본적인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8절부터 10절까지 어떤 제물이 있으면 제물 전체가 아니고요.
그 부분은 또 따로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속죄제는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아닙니다. 특별히 죄를 지은 사람들이 전체 제물 중에 일부를 번제단으로 갖고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속죄할 수 있을까,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이 죄를 처리하는 것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이사야서 53장 10절에 나오는 것을 이해하고 계신지요? 우리 주님께서는 고난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그러나 자신을 속건 제물로 드리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1절과 12절에서는요, 수송아지 중에 어느 것은 번제단으로 10절까지 갖고 왔고요. 11절과 12절에서는 바깥에 버리는 곳으로, 진 바깥에다 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희 찬송가 중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떤 성벽 바깥에'라는 그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13장에 "영문 밖으로", "진 밖으로"라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 역시도 그 자신의 피로써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문 밖에서 고난받으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이렇게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레위기 4장 11절과 12절에 진 바깥이라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영문 밖에서 고난받으셨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렇게 여기서 이제 태운다는 것, 사른다는 것이 바로 그 영문 밖에서 고난받으신 것입니다. 그 번제는요. 이렇게 불살라지게 되면 그것이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른다는 것은 아주 불길이 날카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영문 밖에서 고난받으신 우리 주님이 이렇게 저주의 불사르는 불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을 고난 가운데 버리시는 그러한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아주 그 불길이, 그 날카로운 불길 가운데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우리 주님은 외쳤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시고 죄를 범한 적도 없으십니다. 그 갈보리에서 우리 주님은 홀로 외롭게 이것을 경험하셨던 것입니다. 그 영문 밖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버림을 받았고, 세상으로부터도 거절된 그런 장소인 것이다. 그 세상은 우리 주님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지금도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정결케 하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렇지만 현재도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함께 연합해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는 "우리 주님께 나아가자"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진 밖에서, 특별히 우리는 우리 주님을 향하여 이렇게 걸어가야 됩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 성 안에서 머물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우리 주님께 나아가야 되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은 특별히 그 성을 지키려고 합니다. 저희는 압니다. 한국 사람들이 서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압니다. 정말 큰 도시입니다. 저는 스코틀랜드에서 왔습니다. 특별히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딘버러를 좋아합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성을, 도시를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그 성을 떠나야 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도시로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그 밖으로, 영문 밖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이거 아시나요? 세상에 수많은 교파 교회들이 다 도시에 있다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로마 카톨릭은 로마에 있습니다. 그리고 무슬림들은 메카라는 큰 도시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이제 도시들에 이렇게 있습니다. 그리고 몰몬교는요, 솔트레이크 시티라는 그 도시에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 자매님들, 우리는 도시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어떤 도시에 본부가 없습니다. 우리의 본부는 바로 하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교적인 세상하고는 다릅니다. 특별히 우리는 그 축복받은 사람과 함께 연합돼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어떤 게 우리를 막고 있는 그런 아치 같은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큰 집단이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바로 그 영문 밖에, 그 거절의 장소에서 이렇게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에서 특별히 그곳이 재버리는 곳이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곳은 바로 이렇게 거룩하게 되는 그런 장소입니다. 특별히 여러분들 성막 안에서 거룩하게 되는 그런 곳을 기억하시나요? 요셉이 지금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이제 새로운 무덤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이 재 버리는 곳에서 새롭게 되는 것을 또한 표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3절입니다. 여기서는 "온 회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게 온 회중이 다 범죄하였다. 이것에 대해서 이게 무슨 말인가라고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온 회중이 범죄를 했기 때문에 진짜 심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회중의 장로들이, 이 '장로들'입니다. 이 회중의 장로들이 머리에 안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회중의 장로들이 다 이렇게 안수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에 이러한 내용이 또한 있습니다. 그 수산궁에 있을 때요. 특별히 그 수산궁에서 느헤미야가 그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또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럴 때 이렇게 우리가 범죄하였다라고 이렇게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요, 그들이 범죄였다고, 예루살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전체, 유대 전체가 범죄하였다고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집단적으로 온 회중이 잘못했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 나라인 스코틀랜드는요. 정말로 많은,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정말 여기도 저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몇몇 모임들이 신약 교회의 그 진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교제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그 교회가 잘못됐다가 아니라 우리 전체가 지금 잘못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많은 이제 교회들은 신학교의 진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지키지 않을 수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우리 전체가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떤 자유주의에 또 영향도 있습니다. 또 어떤 갈라디아 교회를 생각하면요, 거기는 율법주의가 되게 횡행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또 다른 문제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 오시는데 뭐 하러 일합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런 문제들을 다뤘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제 에베소는요. 이제 마음이 아주 그냥 차갑고, 이런 문제가 계시록 보면 있습니다. 그래서 첫사랑을 갖다 버렸다, 이런 이제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요, 아주 그냥 자부심이 더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그 자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모임은 이렇게 집단적으로 지금 잘못한 것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교리는 깨끗해야 됩니다. 우리의 실행도 깨끗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제 말씀을 통해서 온 회중에 관한 이야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온 회중이 이렇게 범죄하는 이런 경우, 그러면 모임 전체가 회복돼야 됩니다. 어떤 일부 교회가 지금 신약교회 진리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회복하시려고 이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22절로 넘어가겠습니다. 여기서는 족장이 잘못을 합니다. 그런데 족장이니까 또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에 모임에 적용을 해본다면 장모 형제님들 정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지 중에 범하는 것입니다. 심각한데요. 특별히 이제 장로 형제님들, 집사 형제님들 위해서 이런 이제 내용이라고 또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이렇게 자랍니다. 그리고 모임에서 또 이제 교제도 이렇게 하게 됩니다. 그렇게 특별히 이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나이 들어서요, 그래서 만약에 이제 이렇게 또 뭘 하게 되면 그거는 또 얘기가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장로 형제님들, 집사 형제님들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때도 또 어떤 제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주십니다. 특별히 이렇게 허물이 있을 때, 이렇게 예물을 가져올 수 있게 하십니다. 레위기 6장 24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무릇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 먹지 못할찌니 불사를찌니라"(레 6:24-30).
이 속죄제의 고기는요, 이렇게 삶을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렇게 그릇을 깨뜨립니다. 이것이 삶고, 깨뜨리는 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하시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귀한 피를 흘리셨고 그것은 절대로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교제하고 있는 내용하고 연결시키면,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한 내용을 지금 족장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과 연결을 시키면요. 그 족장들이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족장들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족장들,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다시 그런 범죄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을 또한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차원에서요, 용서하지 않는다면 영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4장 27절입니다. 평민입니다. 그 평민의 하나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이제 또한 제물이 또 나오게 됩니다. 죄는요, 당연히 용서되지 않습니다. 변경되지 않습니다. 그게 그 평민의 하나라 할지라도 그 죄가 변경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하게 정확하게 처리돼야 됩니다. 제가 자랄 때 이런 말 듣고 자랐습니다. 죄 저지르면 바로바로 하나님께 자백해라. 그게 계속되도록, 자꾸 오랜 시간 지속되도록 하지 말아야 된다.
27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요. 그리고 27절 평민에 관한 내용은 우리 모든 사람이 회복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게 되면 암염소도 나오고요, 또 어린 양도 이렇게 나옵니다. 그리고 레위기 5장에서는 비둘기 같이 이런 새들도 나옵니다. 지금 죄를 적절하게 처리를 해야 되는 건데요. 지금 여기서 나는 어린 양은 지금 우리 지금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것입니다. 얘기가 조금 이제 다르다는 말씀이신데요. 우리가 가는 장소와 도 다른 장소를 말씀하십니다. 또 읽는것도 우리가 지금 다르고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 죄를 처리한다면,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것저것 지금 다르게 다른 삶 속에서 삽니다마는 우리 죄가 처리되어야 된다. 변화되어야 된다,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우리 모두가 이제 내놓을 수 있는 그런 해결책을 이렇게 제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제 우리를 위한 속죄제의 경우에는요, 특별히 이제 그것을 닫고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까 이제 봤던 말씀에서 삶고, 또 익히고 이런 것에서 이제 닫고 또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이제 뭘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사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십니다. 우리가 이제 이렇게 옷을 입고요. 그런데 우리가 이제 입는 옷이 어떤 그 죄와 이제 연결된, 그런 연합된 옷이라면, 특별히 젊은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별히 어떤 SNS 같은 그런 것과 아주 주의 깊게 지금 좀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이 인터넷에서 보는 홈페이지나 어떤 사이트에서 주의 깊게 보셔야 됩니다. 특별히 또 여러분들이 어떤 것을 즐기러 가는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도 또 주의 깊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정말로 심각하게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를 좀 생각을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어떤 걸 이제 느끼는데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돌아가는 그런 삶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만약에 자기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거리가 있다고 생각을 하신다면요, 그런 경우에 정말 다시 한 번 이렇게 돌아올 수 있기를, 우리가 확신하기를 생각합니다. 예, 용서될 수 있습니다.
시간상 이정도에서 마쳐야 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속건제에 대해서 5장부터 6장 전반부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