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

< 솔로몬 성전 9. 성전 건축 >

박이레 2021. 7. 23. 21:48

< 솔로몬 성전 9. 성전 건축 > 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

"솔로몬의 모든 원대로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을 주매 솔로몬이 히람에게 그 궁정의 식물로 밀 이만석과 맑은 기름 이십석을 주고 해마다 그와 같이 주었더라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 이에 솔로몬왕이 온 이스라엘에서 역군을 불러 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이라 솔로몬이 저희들을 한 달에 일만인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내매 저희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도니람은 감독이 되었고 솔로몬에게 또 담군이 칠만인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인이며 이 외에 그 역사를 동독하는 관리가 삼천 삼백인이라 저희가 일하는 백성을 거느렸더라 이에 왕이 영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왕상 5:10-18).

"다윗이 가로되 내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은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찌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대상 22:5-6).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대상 22:14).

우리 이 장을 지나가기 전에 우선 3절에서 "다윗이 준비하고"라는 표현을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5절 마지막에 "다윗이 준비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 "내가 환난 중에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그리고 역대상 29장에서 이 표현이 다시한번 기록된 것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대상 29:2).

그리고 3절 마지막에, "내 하나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여기서도 동일하게 영어 성경에서는 "예비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전 벽에 입히며 금, 은 그릇을 만들며 공장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대상 29:3-5).

역대하 2장에서 두 구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이제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부친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이 사람은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식양에 능한 자니 당신의 공교한 공장과 당신의 부친 내 주 다윗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대하 2:13-14).

오늘 이 시간에는 특별히 실제적인 교훈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솔로몬 성전의 특별히 뜰과 관련되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양한 여러 방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밤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이 고대 건축물을 어떻게 건축하였느냐 입니다. 어떻게 그 모든 재료들을 모아서 세웠는가? 그리고 누가 그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는데 일하였는가? 우리는 이 솔로몬 성전을 만든 건축가들이 또한 다른 건축물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금방 말씀드린 지역모임 입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덕을 세우다"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위한 건축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마도 놀라게 될만한 사실은 이 솔로몬 성전이 2년전에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국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솔로몬 성전이 브라질에 만들어 졌습니다. 거기에 어떤 협회가 있고, 거기서 솔로몬 성전의 완전히 똑같은 복제품을 브라질에 세워놓은 것입니다. 그 협회의 장은 백만장자 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특별히 돌을 채석해서 브라질로 운송해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커다란, 백만 평방피트 정도되는 크기에다가 뜰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많은 돈이 사용된 건축물 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갈만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다란 강당 앞에 언약궤의 모형을, 복제품을 또한 만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솔로몬의 성전이다." 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솔로몬의 성전보다 4배나 더 크게 만들어진 성전 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그 성전의 지붕 모양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평평한 지붕모양 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대로 토마스 뉴베리라는 분은 그것이 돔 형태의 지붕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그것은 그냥 평평한 지붕일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브라질에 그 복제품을 만든 사람도 평평한 지붕으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복제품 위에 헬리콥터가 내릴수 있는 착륙장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매 일요일마다 헬리콥터를 타고 그 성전에 착륙 합니다. 그래서 마치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거기서 설교를 합니다. 또 그 복제품 중에 솔로몬 성전과 전혀 다른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사람들에게 그때에 돈을 거둬 갑니다. 여기에 어떤 컨베어벨트가 앞을 지나가게 되고, 여러분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그 컨베어벨트에 올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돈은 컨베어벨트에서 빠르게 금고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것을 뭐라고 생각 합니까? 참으로 이 세상에는 너문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수백만의 돈이 그냥 낭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성전이라 불리우는 건축물을 지금 만들기를 원하고 계신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사람들이 벽돌과 돌로 만들어져 있는 그런 성전을 건축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살아있는 돌로, 사람들로 이루어진 성전을 만들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참으로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성전 복제품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아주 화를 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브라질 사람이 유대인들의 아이디어를 훔쳐 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브라질 사람은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놀라운 증거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 성전과 관련된 간증은 지난 세대의 경륜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째든간에, 여러분이 솔로몬 성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고 싶다면 휴가 중에 한번 브라질에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저의 조언은 '여러분의 돈을 낭비하지 마십시요.' 입니다.

제가 이번 시간에 특별히 다루고자 하는것은 어떻게 이 큰 구조물이 세워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몇가지 것들을 주제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중의 어떤 것들은 여러분에게 이미 말씀을 드린 것들입니다. 이 성전이 건축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고려해야 하는것은 그 '성전 터' 입니다. 우리가 이미 본 대로 그것은 모리아산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리아산이 이 커다란 성전을 건축하는 터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리아산이 특별히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희생제사가 드려졌던 그 장소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지역모임도 그와같은 특별한 희생제사가 없었다면 어떤것도 세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모리아산에 있었던 희생제사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 갈보리에서 있었던 그 희생제사를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모임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모리아산은 단지 특별한 희생제사가 드려진 곳일뿐만 아니라 특별한 순종의 장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최고의 순종을 요구하신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순종이 바로 지역모임의 간증의 가장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단순하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전을 건축함에 있어서 단지 그 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 치수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이것은 어떤 모양으로 세워질 것인가? 그 길이는 어떤가? 그 폭은 얼마인가? 그리고 그 높이는 얼마인가? 거기는 얼마나 많은 방을 만들 것인가? 그 창문은 어디다 만들 것인가? 그리고 문은 어떻게 만들건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 상세한 설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시간에, 솔로몬은 그 식양이 그려진 설계도를 받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도면에는 솔로몬이 만들어야 되는 성전의 상세가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특별한 그 설계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여러 유능한 건축가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의 생각을 받아서 만든것이 아닙니다. 이 설계 도면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또한 지역모임도 동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것입니다. 역대상 28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이 식양을 받았다고 기록된 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설계는 상세한 것입니다. 또한 동일하게 지역모임과 관련되서 하나님께서 상세하게 기술해 놓으신 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솔로몬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령님에 의해서 이것을 계시 받았고 그것을 솔로몬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 터와 이 상세의 두가지 것을 생각하면서 이번시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번째로 공급에 대해서 또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성전을 건축함에 있어서 많은 재료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금속들이 사용 됩니다. 여러 종류의 또한 나무들이 사용 됩니다. 그리고 다른 보석들이 사용이 됩니다. 아주 특별한 건축물에 필요한 돌들이 사용이 됩니다. 이 모든 재료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이것과 관련해서 많은 이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솔로몬이 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을때, 그는 젊은, 아마도 20세 정도 되는 나이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참, 이것은 그렇게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솔로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점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부친, 다윗왕으로부터 많은 유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은 솔로몬에게 그 식양을 주었을뿐 아니라 산처럼 많은 재물들을 솔로몬에게 남겨준 것입니다. 우리가 역대상에서 읽은대로 다윗은 다섯번이나 거쳐서 "내가 준비하였으니", "예비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또한 말하기를, "심히 많이 예비하였다", "심히 많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역대상 22장 5절을 읽어보면서 마지막 부분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가로되 내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은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찌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대상 22:5).

흥미로운 것은 다윗이 죽기전에 "많이 준비하였다" 이 표현 입니다. 저는 때때로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 합니다. 왜 성경은 특별히 그가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에게는 이것은 불필요한 기록인데? 라고 생각이 듭니다. 누구도 죽은 후에 그렇게 준비할수는 없는것 아닙니까? 그래서 왜 다윗이 죽기전에 많이 준비하였다고 기록한 것일까요? 다윗왕은 상대적으로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짧은 그의 생애 가운데 다윗은 압축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많은것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그 인생의 심각함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특별히 형제님들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제 영원한 상태에 가면 할수없는 기회들을 이 생애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세워지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특별히 북아일랜드에 있는 나이 많은 형제님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들의 사업에 있어서 아주 잘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화려한 그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뭐,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분들이 지금 돌이켜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들은 후회하기를 지역모임에는 그렇게 많은 수고를 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대상 29장 3절에서 왜 다윗이 그의 삶 가운데서 많이 준비하였는지를 여기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보면 "내 마음에 하나님의 전을 '사모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그렇게 한 행동의 비결 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모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에게 최고의 것을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윗왕이 그렇게 한 것은 뭐 그럴수도 있는 것이지요. 결국 그는 왕이니까 그렇게 할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는 그렇게 하기가 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렇게 쉬운것이 아니었습니다. 역대상 22장에 가서 다시한번 그 흥미로운 표현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2장 14절에 다윗은 많은것을 예비하였는데 "내가 환난중에 그리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왕의 생애를 살펴보면 많은 환난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그의 왕국 안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정 안에서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반역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왕이 보좌에 오를때에 이스라엘 주위에 많은 대적들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서쪽에는 블레셋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에는 아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쪽에는 모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는 에돔이 있었습니다. 사방에 대적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었던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왕이야말로 "아, 그런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라고 말할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나는 할일이 너무나 많다." "내가 해야할 책임과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 모든 환난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우선순위를 항상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죽을때에 그는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수 있는 막대한 유산을 남길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할수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솔로몬 왕이 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할때에 그는 지난 세대에 남겨진 유산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역모임 안에서도 우리는 동일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세대에 선진들이 남긴 그 유산을 사용하게 됩니다. 지난세대의 선진들이 기록한 경건한 책들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100년 전에, 150년 전에 기록된 그 경건한 책들이 이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영적인 유익을, 그 유산으로서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선진들도 어려움 가운데 주님을 섬긴 사람들 입니다. 그들은 아주 어려운 고난을 받아야만 했던 사람들 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그들은 유산을 남겼고 그것을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세대에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는것은 유익할 것입니다. 이 지역모임의 간증은 우리 세대부터 시작되는것이 아닙니다. 이 지역모임의 간증은 거의 이천년 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수세기를 거쳐서 놀라운 영적인 유산들이 쌓여져 왔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와같이 그를 위해서 남겨진 유산을 사용해서 건축하게 됩니다.

하지만 솔로몬 그 자신이 드려야 하는 재료가 있습니다. 이제 22장 똑같은 구절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14절을 보면서 다윗이 무엇을 말해 놓았으며 이제 특별히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을 주의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대상 22:14).

다윗이 그 어린 아들, 솔로몬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많은 양을 예비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너는 더할 것이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2016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렇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 전 세대에서 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역사가 남긴 많은 유산들을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세대의 그 유산들을 즐거워 합니다. 하지만 이 세대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권과 책임은 거기다가 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모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이 세대에서 하나님의 일이 계속되고 더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솔로몬이 더하는 것들에 대해서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이제 그 일을 하는 종들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바로 이 성전의 그 놀라운 터와, 또한 상세와, 설계와, 또 공급뿐만 아니라 또 그 일들을 담당하는 종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역대기와 또 열왕기상, 하에서 이것에 대해서 읽게 됩니다. 우리는 8만명의 사람들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8만명의 일꾼이 있고, 또 7만명이 또 그런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 8만명이 돌을 뜨는 사람들이고 7만명이 짐을지는 담꾼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3만명의 사람들이 또한 있습니다. 이 3만명의 사람들은 세 파트로 나뉘어지게 되는데요, 만명씩 세 그룹으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일반적으로 이것을 간단하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성전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목들 중에 일부는 예루살렘 가까운 곳에서 찾아올수 있었습니다. 이 돌들은 이스라엘 땅 안에 있는 채석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재료들, 백향목 같은 것들은 예루살렘 안에 없습니다. 그래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 먼곳까지 가서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8만명의 돌을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일을 합니다. 하지만 이 3만명의 사람들은 레바논까지 가서 거기서 백향목을 가지고 오는 일을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작업이 됩니다. 이 만명의 사람들이 한달씩 일을 하게 되는데요. 만명의 사람들이 예를들어 1월달에 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른 만명의 사람들이 2월달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또 마치고 돌아 옵니다. 그리고 다른 만명의 사람들이 3월달에 갑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 옵니다. 이제 1월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이번에는 4월달에 다시 가서 일합니다. 이렇게 돌아가면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달은 멀리 떠난 곳에서 일을 하고 두달은 집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먼 거리를 여행을 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수고가 또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소원대로 모두 이루어 지기까지는 이 모든 것들이 소요 되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만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을 떠나서 가야 된다고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많은 요구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들의 가정 삶을 어렵게 하는 그러한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치있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의 일이 가장 가치있다 하고 다른 모든것을 제쳐놓고 가서 섬기게 됬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지역모임의 간증을 계속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동일한 원리가 신약성경에서 지역모임의 간증과 관련되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보냈던 시간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가 했던 여행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가 했던 수고를 생각해 보십시요. 또는 디모데를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고 아볼로를 생각해 보십시요. 지금 이 시대를 또한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가 마포모임에서 그 집회를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 합니까? 얼마나 많은 이동과 여행이 필요 합니까? 얼마나 많은 수고가 또한 필요 합니까?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데 필요했던 것이고 또한 지금 지역모임을 세우는데도 동일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와같은 것을 위해서 희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도전에 계속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덕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올바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이 일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이제 잠깐, 그 돌을 뜨는 일과 그 나무를 벌목하는 일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두가지 일 모두 아주 흥미로운 작업 진행들이 있습니다. 먼저 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 성전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돌이 사용되었는지 말씀드릴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있는것은 이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모든 돌들은 예전에는 땅속에 뭍혀있던 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돌을 사용함에 있어서 제일먼저 해야 하는것은 채석장에서 돌을 뜯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많은 기술이 필요한 일입니다. 망치를 들고 정을 대고 정확한 장소를 쳐야지만이 그 돌이 잘 떨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돌이 그렇게 분리되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돌은 이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 그림을 봐도 알다시피 모든 돌들은 그 모서리가 일자, 직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돌들도 거친 모서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돌들은 예전에는 그렇게 거친 모서리를 가지고 있던 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열왕기상에서 읽게되는 것은 그 돌을 다듬는 작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 돌을 떠내는 일이 있었고 그리고 그 돌의 표면을 일자로 다듬는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채석장에서 그 돌을 뜨는일을 하는 사람과 그 돌을 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일인 것입니다. 다른 종류의 기술이 필요 합니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재능이 필요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게 더 중요하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그 두개 다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다른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역교회에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은사중에 하나는 전도자 입니다. 그 사람은 이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합니다. 참 채석장에서 그 석공이 정을 대고 망치를 정확하게 쳐서 내리듯이 이제 복음을 전도하는 사람이 복음을 그에게 전해서 돌을 뜯어내는 것입니다. 이 능력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돌은 그 바닥에서 뜯어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목자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다른 은사 입니다. 목자는 거친 모서리를 잘 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 입니다. 막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여러가지 진리들에 대해서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참 이러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모서리를 만들고 그 표면을 잘 다듬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제 마지막으로 그 돌은 정확한 위치에 놓여져야 됩니다. 우리는 지역모임 안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은사들이 주어져 있다는 것에 참으로 감사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그 돌의 표면과 모서리를 다듬는 사람은 채석하는 일은 잘 못할수 있습니다. 제가 이 마포모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저는 자유함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기있는 모든 형제님들이 모두가 다 전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형제님들이 교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전도자이지만 교사가 아닐수 있습니다. 어떤분은 교사이지만 전도자가 아닐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분은 두가지 다 은사를 가지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게 되는 것은 다른 은사가 다른 형제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복음집회에 대해서 한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누가 복음을 설교하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이 "그냥 순서대로 하는데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모두가 전도자 입니다. 여러분은 "어떤분은 물론 복음 전하는 은사가 없고, 어떤분은 물론 교사의 은사가 없지만 그냥 순서대로 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복음 전하는 은사가 없다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여기서 복음을 전하는 은사가 아닐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모임의 간증에서 한 사람이 모두 다 하는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동일하게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성전을 만드는것과 동일하게 지역모임 안에서는 다른 은사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돌에 대해서 다 말씀드린것 같습니다.

이제 나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또한 흥미로운 작업 진행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레바논의 그 커다란 백향목을 벌목해서 이 성전에서 사용할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세가지 단계가 필요 합니다. 첫번째로 그 커다란 백향목을 벌목해서 쓰러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지중해를 통해서 운수해 오게 됩니다. 그것은 참 흥미로운 운수 과정 입니다. 레바논 산에서부터 40마일 정도 되는 강을 따라서 해안가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80마일을 바다로 운수하게 됩니다. 이제 40마일 가량을 마지막으로 육로로 이동해서 이 지역까지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성전에 바로 가지고 온 원목, 그 커다란 나무 줄기를 그대로 놓지 않습니다. 그 커다란 목재가 다시한번 잘 다듬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돌이 모서리가 다듬어진 것처럼 이 나무도 잘 다듬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 합니다. 여기에 이러한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역모임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아주 교만한 죄인으로 이렇게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의 메세지를 듣고 그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물을 통해서 운반되게 됩니다.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하나님의 집에 제 자리를 잡고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종들과 관련된 것을 다른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두번째 그룹에 대해서 아주 흥미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7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들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기를 짐을 지는 사람들이라고 기록이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 했는지, 그 사람들의 수를 보고 우리는 알수가 있습니다. 이 돌들이 채석장에서 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돌들이 네모난 모양으로 다듬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 그 돌들을 모리아 산 정상까지 가지고 가게 됩니까? 그리고 그 나무 목재들은 욥바까지 바다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 그 욥바 해안가로부터 40마일이나 되는 길을 따라서 모리아 산 정상까지 가지고 오는 것입니까? 여기는 많은 어깨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짐들을 들고 운반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짐을 매는 사람들은 다른 그룹에 있는 사람들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다루는 많은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 짐을 드는데 손을 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중에 어떤 분들은 "나는 설교자가 될수 없습니다." "나는 교사가 될수 없습니다." "나는 공적으로 말씀 전하는 일을 담당할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저에게 뭔가 두드러진 은사가 없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동일한 것을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그 짐을 지는데 동역할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이 지역모임 안에 얼마나 많이, 그렇게 같이 들어야 하는 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그 무거운것을 같이 짐지기를 원하는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어깨를 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전을 만드는데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이 일했다는 것을 볼때에 많은 교훈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 다른 종류의 은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다 놀랍게 협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내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채석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 돌을 가지고 가는 짐 담당하는 사람이 필요 합니다. 그 기술이 훌륭한 산 위에서 벌목하는 사람도, 그들도 180마일이나 되는 바다와 육로를 통해서 그 재목을 운반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기술은 다른 기술에 서로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로 경쟁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 보충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역모임 안에서도 동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두를 위해서 일하고 또 어떤 분들이 또 모두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어떤분들은 공적인 은사를 가지고 일하고 어떤 분들은 또한 보이지 않는 은사를 가지고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소한 우리 각자 모두가 모임의 짐을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겠지.'라고 하는것은 아주 쉽습니다. 제가 수년간에 참으로 이러한 태도가 많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데는 아주 적은 수의 성도님들께서 그 지역모임의 간증을 아주 진지하게 이끌고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수의 사람들이 그 지역모임의 모든 짐을 다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그 짐이 아주 무거울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위에 있는 많은 다른사람들은 그 짐을 드는것을 도와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솔로몬은 이 많은 사람들을 배분해서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한 사람이 이 모든일을 다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협력해서 함께 일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짐을 과하게 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 솔로몬 성전이야 말로 성전에 기록된, 함께 일하는 것의 가장 좋은 표본 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역모임이야말로 그와같은 본이 되는 것입니다. 함께 일하고 또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나가는 그 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그 기술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그의 이름이 언급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후람' 입니다. 이 솔로몬 성전과 관련되서, '히람(후람)' 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언급이 됩니다. 우리는 이 두사람을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깊게 말씀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이 둘다 두로라는 나라 사람입니다. 첫번째 사람은 그 두로의 왕이고 또 다른 사람은 두로에 있는 기술자 입니다. 저는 이 기술자인 후람에 대해서 빠르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니다. 그는 요단 평지, 그 계곡에서 일하는 사람 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25마일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한번 다루었습니다. 그는 그 요단 평지, 계곡에서 차진 흙을 가지고 놋 기둥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혼합된 결혼 관계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방인 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솔로몬 성전을 만드는데 가장 기술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사람에 대한 예를 신약성경에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신약성경에서 아주 유용한 그 종 중에 하나는 디모데 입니다. 여러분은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고 그의 아버지는 이방인인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하게도 아버지 이방인은 믿는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와같이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디모데가 사도바울 일행의 아주 유용한 종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만이 이와같은 일을 일어날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후람은 이와같은 일을 하는데 자원해서 일하게 됩니다. 그가 요단 평지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일은 다른 어떤 사람도 할수 없는, 알지 못하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제 성전에 올라와서 보게될때, 여러분은 또한 성전에서 이 반짝이는 놋 바다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 높게 세워져있는 놋 기둥을 보게 됩니다. 아주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열개의 물두멍을 보게 될때, 바퀴가 달려있고 또 장식이 아름답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기구들이 그가 작업을 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여기서부터 25마일 떨어져있는 요단계곡에서 만들어졌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이 이제 그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결과는 보았지만 어떤 작업을 통해서 만들어졌는지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임에서도 또한 동일한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그냥 저는 집회에 참석 합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집회를 통해서 저의 마음은 교훈을 받고 저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신선하게 됩니다. 저는 그 집회를 통해서 전해지는 그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한시간 정도 그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그의 그 공적인 사역을 통해서 많은 덕 세움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한시간의 덕 세움을 위해서 그 뒤에는 제가 결코 보지 못하는 많은 시간의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제가 이것과 관련되서 아주 강조해서 몇가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형제님이 아주 은사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자동적으로 나온다고 생각 합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후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주 은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둥은 그렇게 자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놋 바다도 자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물두멍도 그러게 자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도 이와같은 기둥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간에 거쳐서 그 모양을 다듬고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동일한 것입니다. 단지 어떤 형제님이 은사가 있다고 해서 그냥 자다가 일어나서 아무렇게나 말해도 그것이 덕 세우게 되는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 봉사가 참으로 유익하기 위해서는 그는 아주 열심히 준비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이 시간의 마지막 소주제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모든것의 동기가 됬던것이,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많은 요구가 있는 일에 참여하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여기에 무엇이 그들의 동기를 불러 일으켰던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종종 직면하게 되는 문제 입니다. 우리는 지역모임에서 필요한 일들이 많은 요구가 되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땀을 흘려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 이제는 그만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때때로 드는 것입니다. 조금 하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내가 더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 중에 이제 막, 그와같은 상태에 있는, 포기하고자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섬기는데 동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역모임의 최고를 드리게끔 하는, 그 자극은 무엇 입니까? 저는 이 솔로몬 성전과 관련되서 그 한가지가 있다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잘 읽다보면 그 한가지를 발견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자주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윗왕은, 또한 솔로몬왕은 반복해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집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자극인 것입니다. 그들이 나무를 베게 될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채석장에서 일하게 될때에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게 됩니다. 이 후람이 그 요단 평지에 찰진 흙을 가지고 놋 기구들을 만들게 될때, 그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2016년 여기서 동일한 동기를 가지고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가지고 섬기건,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기독교 협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주된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때때로 비판을 받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떨어진 곳에서 오랜시간동안 홀로 일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일은 우리의 시간과 많은 장거리 여행과 우리의 수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그 자원하는 마음을 때때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이 한가지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작은일을 할찌라도 우리는 이 우주의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다른 이름은 그냥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빛나는 해와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맏고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떨때는 그냥 찬송가를 모아두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단지 바닥을 청소하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단지 의자를 정돈하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단지 문을 여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불을켜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전하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되는 것입니다. 제가 간단한 예를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그 신령한 집을 건축하는 건축자들 입니다. 제가 동의하는 것은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굉장히 존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 최고를 드리자고, 여러분께 기쁘게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수년전에 영국에 아주 커다란 채석장이 있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어느날 채석장에서 일하면서 돌을 깨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는데 영광스럽다거나 하는것은 전혀 찾아볼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커다란 망치를 들고 커다란 바위를 깨기 위해서 내려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채석된 바위들은 틀별한 작업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채석장에 어떤 한 방문자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방문자는 각각 다른곳에서 일하고 있는 세 작업자와 각각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이 방문자는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번째 사람에게 "당신은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첫번째 작업자는 "저는 단지 돌을 깨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 별로 관심없는듯이 그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는 이 일을 하는데 특별한 동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냥 단지 의무로서 그냥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두번째 작업자에게 가서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아, 저는 제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좋은 대답이었습니다. 적어도 그는 어떤 긍정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작업자에게 가서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망치를 내려놓고 그 방문자를 쳐다보며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저는 지금 궁전을 만드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세번째 사람이 참으로 그 동기가 있었던 사람 입니다. 그는 커다란 그림을 볼수 있었던 사람 입니다. 그는 단지 이 일을 돌을 깨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궁전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왕궁의 그 커다란 일을 위해서 그는 자기가 작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일은 무엇입니까? "아, 저는 단지 그냥 찬송가를 놓는것 뿐인데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여러분은 찬송가를 놓는일을 하고 있는것이 아니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역모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단지 의자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여러분은 의자를 정리하는 일을 하는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편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다양한 일에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한가지로 하나님의 그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그 신선한, 새로운 공기를 불러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 영적인 근육에 신선한 영적인 힘을 불어넣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께 그 일을 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이, 또한 이 많은 재료들이 이 존귀한 건축물을 위해서 7년동안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형제님이든, 자매님이든,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짧은 인생 가운데 놀라운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말씀들에 대해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