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이 땅에서 성도가 쉼을 누리는 방법(요약) / 전경렬 형제님
덕언 : 이 땅에서 성도가 쉼을 누리는 방법 / 24년 12월 8일 일요일(요약) / 전경렬 형제님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5-30, 개역한글)
세상에는 수고와 슬픔이 가득하고 참 쉼이 없습니다. 저도 주님을 섬기는 중에도 이 나그네의 삶에서 많은 수고와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사실 때에도 주님은 슬픔의 사람으로 고난받는 종으로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누구처럼 주님처럼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삶 가운데서도 언제나 쉼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저희들에게도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누리셨던 쉼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 쉽을 주시기 위해서 네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어린아이가 되라. 두번째는 아버지를 알라. 세번째는 내게 오라. 네번째는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습니다.
첫째는 어린아이들에게 쉼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여기 어린아이는 아주 천진나만한 상태에 있는, 젖먹이나 젖을 뗀 상태의 어린아이입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에서 어인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131:1-2, 개역한글)
우리는 다윗의 생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자 꿈꾼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부르셨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셉도 애굽에 총리가 되고자 애굽에 유학간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사도가 되고자 꿈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고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 안에서 쉼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는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해 나갈수 있습니다. 베다니 마리아 같은 경우도 주님 앞에 값비싼 향유를 붓고 주님의 장사를 미리 예비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그녀는 주님의 발 앞에서 참 쉼을 누렸습니다.
두번째로 아버지를 아는 자가 참 쉼을 누립니다. 주님은 "아버지"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십니다. 기도하시면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아버지의 뜻" "내 아버지" "아버지를 아는 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도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하셨습니다. 이전의 말씀에서 마을들에서 주님을 초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버지에게 오라고 주님께서는 초정하십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부요하신 분인지를 말씀하시며, 또한 아버지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참으로 우리의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입니다. 또 우리 아버지는 아들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내어주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만 행하고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는 주님께는 온전함 쉼이 있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내게로 오라, 온전히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가운데 있는 인생들의 삶이 슬픔 가운데 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짐을 맡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의 짐도 대신지고 십자가로 가신 주님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 주시는 분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개역한글)
네번째로 주님은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멍에는 두마리의 짐승을 연결하는 도구입니다. 또 멍에는 다른 의미로 권위에 순종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매는 자에게 쉼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주님과 함께 매는 멍에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아버지의 권위에 순종하시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들을 겸손히 감담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은 멍에를 매실 필요가 없는 분이지만 우리와 함께 멍에를 매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쉽다는 것은 사용하기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온유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고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든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것은 낮은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영광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본질적으로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멍에를 매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훈련하고 다스려질때 이러한 것들을 배울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주님의 주되심을 온전히 인정하고 주님을 위해서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는 실제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지만 주님앞에 나와서 주님의 멍에를 같이 매고 주님을 알아갈때, 주님이 주시는 쉼을 누리고, 온전한 쉼을 바라면서 이 땅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갈수 있습니다. 믿음의 삶도 주님과 함께라면 살수 있습니다. 우리 혼자서는 할수 없지만 주님과 함께라면 할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능력 주시는 주님과 함께 이 길을 갔습니다. 주님께서 도우셔서 저희 심령이 어린아이와 같고, 아버지께서 도우셔서, 주님의 멍에를 매고 주님께 배우면서 이 땅에서 쉼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